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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톈(飛天)대학 중국 고전무용 수업 설법

 
 

李洪志

 

(2019년 7월 27일)

 

무엇이 중국 고전무용(古典舞)인가? 근본부터 말하자면 중국 고전무용의 “신법(身法)”은 많게는 고대부터 무술의 “일무양용[一武(舞)兩用]”에서 내원한 신(神)이 전한 기법이다. 그러나 “신운(身韻)”은 많게는 희곡 중의 “신단(身段)”에서 내원했다. 초기에는 “중국 고전무용”을 “희곡무용(戲曲舞蹈)”이라 했다.

왜 어떤 사람은 중국 고전무용은 북경무용대학(北京舞蹈學院)에서 창작(創編)한 새로운 종류의 무용이라고 하는가? 사실 북경무용대학 무용의 신법(身法) 역시 무술과 희곡에서 왔으며, 대학 식의 수업에 적응하기 위해 발레무용의 초급 훈련방식을 일부분 참조했는데, 더 현대개념의 무용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탄쯔궁(毯子功)은 더욱이 수천 년 전통의 중화문화의 다양한 각종 예술에서 내원했다. 간단하게 말해서 북경무용대학은 중국의 고전무용을 창작하지 않았다. 북경무용대학은 “중국 고전무용”이라는 이름을 창작했고, 원래 있었던 “중국 희곡무용”을 “중국 고전무용”으로 명칭을 바꿨다.

북경무용대학 스스로도 인정하는바 신운(身韻)은 희곡 중의 신단(身段)을 채용했다. 그러나 무용의 신법(身法) 중의 요소(元素)는 희곡무용과 무술의 신법(身法)을 많이 채용했다. 사실 희곡도 신법은 무술에서부터 왔다고 인정했으며 일찍이 먼 고대시기에서부터 희곡은 이미 중국 전통무술의 신법을 채용했다. 그렇다면 다시 말해서 중국 고전무용은 일찍이 존재했던 것이지 북경무용대학에서 발명한 것이 아니다.

그러면 북경무용대학에서는 왜 고전무용을 그것이 창조한 새로운 무용이라고 말하는가? 물론 그것은 “희곡무용”을 “중국 고전무용”으로 바꾼 것 외에, 또 중국 고전무용을 가르치는 한 세트의 수업방법을 제정했다. “중국 고전무용”이라는 이 이름은 그것이 고친 것이다. 왜냐하면 북경무용대학은 초기 중국 고전무용도 “희곡무용”이라고 불렀는데, 발레무용의 그런 수업방식을 결합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뿐만이 아니라, 북경무용대학에서는 또 중국 고전무용 수업을 대학 수업 방식으로 하는 것을 채택했다. 과거 중국에서는 예술을 배움에 있어서 모두 전통적인 방식으로 가르쳤는데, 극단에서 노사부(老師傅)가 제자를 이끄는 방식으로 가르쳤다. 어떤 이는 동시에 많은 학생을 이끌었는데 심지어 한 극단에 몇 십 명이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고전무용은 예술대학에서 “중국 고전무용”을 가르치는 방식으로 진입했는데, 아마도 그 당시 북경무용대학이 처음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그들 이후의 젊은 학생들은 이런 것을 잘 알지 못했다. 중공사당(中共邪黨)이 중국역사에 대해 목적 있는 파괴를 더함으로써 학생들은 중국역사를 알지 못해 “중국 고전무용”을 그것들이 발명한 새로운 종류의 무용으로 여겼는데, 이 자체가 역사와 중국의 수천 년 전통문화를 존중하지 않음이다.

사실 북경무용대학의 설립과 동시에 중국 각 성(省)과 각종 예술단체는 동시에 모두 중국의 이런 무용 수업과 공연을 사용했다. 우리 페이텐예술학교의 곽(郭) 교장이, 4-50년 대, 소속되어 있던 중남예술극장(中南藝術劇院)에서는 바로 이런 무용으로 공연을 했다. 그때 북경무용대학은 아직 설립되지도 않았다! 북경무용대학의 설립 전후에, 다시 말해서 중국의 많은 예술단체는 이미 이런 중국 고전식의 희곡무용으로 공연을 했다.

여러분 알다시피, 북경무용대학의 고전무용 수업 중에서, 무용의 기술 명칭과 요구, 채용한 신법과 신운의 명칭도 전부 희곡의 것을 모방했는데, 게다가 똑같게 가져왔다. 무슨 “충(衝)・고(靠)”며, “함(含)・전(腆)”이며, “영(擰)・경(傾)・원(圓)・곡(曲)”이며, 삼원궤적(三圓軌跡), 즉 평원(平圓)・입원(立圓)・팔자원(八字圓)이며, 수(手)・안(眼)・신(身)・법(法)・보(步)며, 무슨 량상(亮相)이며, 정(精)・기(氣)・신(神) 등등등등 많고 많은 것들이다. 모든 무용의 요령, 우로 가려면 좌로 먼저, 위로 가려면 아래로 먼저, 뒤로 가려면 앞으로 먼저, 앞으로 가려면 뒤로 먼저, 등등 모두 희곡에서 따왔으며, 똑같다. 다시 말해서 이런 것들은 그것이 창작한 것이 아니며 원래부터 중국의 고전무용 중에 이미 있던 것이었다. 북경무용대학에서 중국의 “희곡무용” 명칭을 “중국 고전무용”으로 명칭을 바꾼 후, 중국의 각 성에서는 지방에서부터 군대에 이르기까지, 아마추어에서 프로 예술단체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각 대학과 전문대학까지 이런 무용을 모두 “중국 고전무용”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는데, 희곡학교와 극장은 예외였다.

그러면 말하다보니 션윈(神韻)과 페이텐(飛天)대학까지 말하게 되었는데, 그 션윈과 페이텐대학은 중국 고전무용을 사용하지 않았는가? 사실 션윈과 페이텐대학은 당초 북경무용대학 고전무용 수업 중의 그 운율(韻律)을 채용하기는 했다. 북경무용대학 무용의 신법 수업 중에서 고정된 운율을 규범화했지만, 이런 요소(元素) 자체는 이미 있었던 것이다. 션윈은 다만 그것의 수업 중의 운율을 채용했을 뿐이다. 내가 말한 이 뜻을 이해했는가? (다들 고개를 끄덕임) 션윈과 페이텐대학은 단지 북경대학의 운율을 채용했을 따름이다.

중국 고전무용은 현재 중국에서 성마다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북경의 몇몇 대학에서는 북경무용대학의 운율을 사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공개적으로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전국에서 북경무용대학의 무용훈련과 공연을 채용하는 예술단은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모두 제각기 자신의 것이 가장 좋은 중국 고전무용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상한 것은 북경무용대학의 청년무용단마저 자신의 중국 고전무용 면모를 모두 다르게 만들었는데, 이른바 중국식의 현대무용을 섞어 넣었다. 이것은 정말로 북경무용대학에 대한 최대의 풍자이다. 자신마저도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데, 어찌 다른 사람에게 당신을 존중하라고 하겠는가? 심지어 가짜의 이른바 한당(漢唐)이라는 어떤 것을 중국 고전무용으로 간주하여 가르치는데, 사실은 모두 여우의 동작으로 요기(妖氣)를 많이 풍긴다. 이 중국무용의 최고 학부는 참으로 안타깝다.

페이텐대학 설립초기, 수업 중에서 그것의 운율을 배우려하면 반드시 일부 무용조합을 가져와 배워야했다. 사실은 중국민족대학(中國民族學院)의 무용운율을 사용할 수도 있고, 지방의 것을 사용할 수도 있었으며 어떠한 성의 무용운율, 또한 희곡 중의 무용운율을 바로 채용할 수도 있었다. 페이텐예술학교, 그 당시는 북경무용대학을 졸업한 교사가 대다수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선생님들의 운율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런 운율 자체는 맞는 것으로, 션윈의 요구에 부합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업 중에서 북경무용대학의 운율을 채용했다.

이 운율을 말하니, 수련의 각도에서 보면 중국문화는 신이 전한 것으로, 또한 신이 돌보고 있다. 그러므로 그해 북경무용대학에서 이 고전무용 수업을 할 때에, 고층생명은 이미 장래에 션윈이 쓸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 이 무용의 배후에는 틀림없이 신의 도움이 있다. 션윈은 이런 무용으로 사람을 구하려하는데, 그야말로 작은 일이 아니다. 인류 문화는 한 차례 한 차례 반복되는 것이다. 그것은 사전 최초시기에 신이 인류를 위해 다져준 문화와 부합하는가? 그러므로 션윈이 사용하기 전에 반드시 사용할 것을 만들어 내야하며, 션윈이 중생구도를 위해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 한 점으로 본다면 초기의 북경무용대학에서 중국 고전무용 수업을 만든 창시자는 확실히 크고 좋은 일을 했다.

션윈과 페이텐대학이 오늘날까지 발전했는데, 여러분들이 보았듯이, 페이텐대학과 션윈예술단은 북경무용대학의 신법 요구와 이미 기본상 같지 않다. 션윈과 페이텐대학은 고전무용 수업의 추구에 있어서 북경무용대학과 완전히 다른 이념이다. 전자가 가려는 것은 전통의 길로서, 이런 무용의 최고경지·신전문화(神傳文化)의 정수를 되찾아 오는 데 있다. 하지만 후자는 사회가 아래로 미끄러짐에 따라 유행을 좇아가고 조류를 좇아가는 중에서 전통의 고전적인 것을 변이시키고 있다. 현재는 또 중국식의 현대무용, 당대(當代)무용, 가짜 한당(漢唐)을, 이른바 한당무(漢唐舞)는 사실 정말로 여우에게 이용당해 만들어낸 동작인데, 고전무용 무용과에 섞어 넣어 수업하고 공연하고 있다. 이런 말을 그들은 틀림없이 듣기 싫어할 텐데, 그들의 이익과 감정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우기만하면 여우부체가 붙을 것인데, 사람을 해치는 것을 보고도 관여하지 말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런 것들이 거들먹거리며 인류의 대학에 들어갔는데, 비록 슬프지만 또한 이 시대의 조화이다.

북경무용대학이든 페이텐대학과 션윈이든, 현재로 보면 중국 고전무용의 기본 요소는 무용 중에서 완전히 똑같다. 다만 신법 요구가 다르고 나아가는 방향이 다르며, 운율도 신법의 연장 중에서 개변되고 있다. 당초 페이텐대학과 션윈은 그것의 운율만 사용했지만, 오늘날 션윈의 이 운율은 북경무용대학의 것과 이미 달라졌다. 실제로 이미 점차적으로 벌어진 거리가 매우 크다.

여러분 알다시피, 션윈은 이미 무용 신법(身法)의 최고 요구에 이르렀다. 이런 신법 기술은 단지 중국 고전무용 자체의 모색에 그치지 않는다. 각종 무용과 신체 예술에서 모두 탐색하고 있다. 예부터 오늘날까지 사람들은 줄곧 찾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아무도 알지 못하는 무용기술이라 한다. 이는 이미 모든 무용의 최고봉까지 걸어갔는데, “몸이 손을 이끌다(身帶手)”, “골반이 다리를 이끌다(胯帶腿)”라고 부른다. 이미 현재에 이르기까지 연장했으며, 어떠한 종류의 무용도 할 수 없는 기술 훈련으로서, 발레와 리듬체조에서조차 모두 사고하고 있으며, 이런 것들을 찾고 있다. 단지 듣자하니, 아무도 가르칠 줄 모르고 아무도 파악할 수가 없다는 것으로, 지금은 이러한데, 아무도 이것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모른다. 다만 여러분은 모두 ‘몸이 손을 이끌다’와 ‘골반이 다리를 이끌다’를 알고 있다. 이 역시 사부가 전해 나온 것이다. 현재 션윈과 페이톈대학, 페이톈예술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이 모두 배우고 있고, 모두 하고 있는데, 가장 잘하는 반이 바로 07반과 17반이다. 수업 중에서 학생에 대한 훈련은 이미 션윈의 중국무용으로 하여금 북경무용대학의 틀이 아니게 했다. 무용의 틀은 기본상 션윈 자체의 것으로, 자기의 운율이다. 그럼 실제상 이는 북경무용대학의 것과 이미 같지 않은 것이다. 당신이 보기에 그것이 같은 조합일지라도, 며칠 전에 북경무용대학의 조합 비디오를 보았는데, 당신들이 그 조합을 션윈의 신법(身法)으로 해내면, 그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션윈은 당초 단지 그것의 운율만을 채용했고, 차츰차츰 자기 길을 걸었다. 현재 운율은 신체 동작의 연장으로 인해 독보적인 것이 되었다. 여러분은 반드시 이 문제에 똑똑해야 한다.

실제로 중국 고전무용 자체는, 그것은 정말로 ‘고전(古典)’으로서, 수천 년 문화의 결정체이다. 북경무용대학조차 스스로 이를 고전무용이라 부르는데, 그것조차 그 ‘고전’이라는 두 글자를 벗어날 방법이 없다. 그것은 왜 고전무용이라 부르는가? 현대의 새로운 종류의 무용을 어찌 고전무용이라 부르겠는가? 이것은 모순되지 않는가? 왜냐하면 그것이 현대의 이런 수업 방식을 개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전적인 것은 원래부터 있던 것이고, 요소(元素)는 원래부터 있던 것이다. 이 개념이지 않은가?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다)


내가 과거에 여러분에게 말했는데, 내가 말하기를, 신전문화(神傳文化)라, 중국은 바로 하나의 특수한 곳으로, 신의 전반적인 보살핌 속에서 펼쳐낸 문화이다. 전 세계의 모든 사람, 어떤 인종이든, 모두 중국에서 한 조대의 사람이 되었으며, 모두 중국에서 200년을 전생했고, 또 기타 곳으로 가서 전생했는데, 이 오천 년은 이렇게 지나온 것이다. 그래서 이 문화는, 간단히 말해, 전 세계인이 모두 경험한 것이다. 그러므로 전 세계 어떤 민족의 사람이든지, 션윈이 표현하는 전통적인 프로그램을 보기만 하면, 특히 그들이 중국 고전무용 공연 중에서 펼쳐지는 문화를 보기만 하면, 마치 예전에 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표현해 낸 것은 인류가 예부터 있었던 보편적인 가치관, 전통문화의 사상과 생활방식으로, 그들은 전부 다 이해한다. 바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이런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션윈이 중생을 구도할 때, 그들은 이해할 수 있고, 구도될 수 있다. 그러므로 당신이 어떤 민족의 것을 써도 이렇게 큰 영향이 있을 수 없는바, 이해하는 데에 모두 곤란이 있을 것이다.

다른 한 방면에서 말하자면, 중국 고전무용은 초기에, 사전(史前)에 신이 인류문화를 전해줄 때, 중도에 유전(流傳)되는 중 사람이 이 고전무용을 전하면서 원래 모습을 잃어버리게 됨을 알고 있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사람은 발전을 이야기하면서 남달리 특별한 주장을 내세우려 하고, 발전 중 남들과 같지 않으려 하고, 혹은 더 잘하고 싶어 한다. 사실, 이런 사상은 모두 전통을 개변하고 있다. 당신이 아무리 개변해도 원시적인, 신이 전한 그것보다 좋지 못하다. 당신이 일시적으로 느끼기에, 매우 신기하고 매우 좋으며 매우 재미있다고 느끼겠지만, 내포적인 것이 없어 신에 의해 수호되고 지속될 수 없다. 그럼 다시 말해, 신이 고전무용을 전한 당초, 이런 문제를 고려했기에, 직접적이고 완정(完整)하게 고전무용을 전하지 않았다. 궁정(宮廷)에서 일부분을 전하고, 이 민간에서 일부분을 전했으며, 이 희곡(戲曲) 중에서 일부분을 전했는데, 그러나 이 진정한 신법(身法)은 무술 중에 보존돼 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이 무술은 역사 중에서 아주 엄숙했다. 과거에 무술을 배우는 것은 치고 죽이고, 전쟁터에서 쓰는 것이었다. 당신이 함부로 사용하면 죽음을 당하기 때문에 감히 함부로 쓰지 못했으며, 그래서 효과적으로 그 신법(身法)이 변하지 않도록 보존할 수 있었다. 그렇다, 수천 년 동안 체계적인 무술의 동작, 그 신법(身法)은 줄곧 무술 중에서 유전되었다. 근대에 와서 이 중공사령(中共邪靈)은 중국인을 박해하기 위해, 중국 전통을 파괴하기 위해 온 것이다. 무술은 전통문화이기에, 그것이 보게 되면 또 파괴하려 한다. 그래서 사람으로 하여금 신(新) 무술을 만들어 내도록 했고, 중국의 전통무술은 전부 버렸다. 아마 심산 속의 그런 수련인들, 그들은 아직 있을 수 있는데, 물론 근본적인 것은 모두 그들에게 있다. 하지만 사회에서 전해지는 것은, 이미 중공사당에 의해 파괴되었고, 완전히 신 무술에 의해 대체되었다. 그렇다면, 과거 수천 년 동안 전통무술, 그것이 이 신법을 효과적으로 보존했다는 말이다.

중화(中華)라는 큰 문화권 속에서, 예술은 서로 부합하고 서로 용납하는 것으로, 그것은 서로 참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매우 많은 예술형식이 모두 탄쯔궁(毯子功)을 참고로 했으며, 매우 많은 예술형식이 모두 무술의 신법(身法)을 참고했다. 그렇지 않은가? 희곡(戲曲) 중에서 유전되는 신운(身韻)의 부분, 그것도 지극히 관건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내포적인 것을 표현하고자 한다면 그 가치가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발레처럼 직설적인 것은 내포를 표현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 고전무용은 반드시 신운(身韻)의 그 일부분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당신 내심의 정감을 표현해 낼 수 있고, 당신이 체현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해 낼 수 있다. 마치 션윈 무용극에서 인물을 묘사하는 것과 같이 그것은 이런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이것이 있기에 그것은 인물을 묘사할 수 있고, 이것이 있기에 그것은 극의 줄거리를 묘사할 수 있으며, 이것이 있기에 션윈은 비로소 소형 무용극으로 사람을 구할 수 있다. 이 각도에서부터 곧 신전문화의 이런 가치와 의의를 보아낼 수 있다.

신전문화는 특징이 있는데, 인류의 음양평형을 고려해야 하고, 한 가지 물건은 정(正)과 부(負) 두 가지 쓰임새가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면 무술은 단순히 무술을 위한 무술일 수만은 없는바, 그럼 곧 “일무양용[一武(舞)兩用]”이어야 하는데, 발음이 같으나 글자가 다른 것으로, 심지어 일무다용(一武多用)이다. 신이 일을 함에 단일하게, 한 가지 일을 위해 하지 않을 것이다. 매번 세상에 한 가지 것이 나타날 때마다, 그것은 각 공간의 관계와 서로 연관돼 있다. 이것이 각 공간에서 어떤 작용을 일으키는지, 고층과 저층 공간에서 어떤 작용을 일으키는지, 세로 방향의 공간과 가로 방향의 공간에서 모두 어떤 작용을 일으키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나타난 것은, 모두 각 공간에서 반드시 정면적이어야 하고, 관계를 잘 조율(協調)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래야만 비로소 세상에 자리 잡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자리 잡을 수 없고, 인정받을 수 없으며, 유전되지도 않을 것인데, 신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신이 전한 것은, 단지 이 한 가지 것만 전하고 나머지 것은 상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 범위 속의 관계를 바로잡으려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간단한가? 그것은 간단하지 않다.

어떤 때 예술계가 논쟁하게 되면 또 아주 재미있다. 이 희곡(戲曲)계에서 말하기를, 북경무용대학 당신이 무슨 고전무용을 창립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우리 희곡의 것이라고 한다. 정말 다 그것의 것인데, 특히 신운(身韻)은 전부 그것의 것이다. 그럼 무술을 하는 사람이 또 말하기를, 당신 희곡 중의 무용 그것은 모두 우리 무술 중의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 거의 모든 것이 다 그런데, 신운(身韻)의 것일지라도 무술의 신법(身法) 중에서 발전해 나온 것으로, 모두 이러하다. 그럼 뿌리를 캔 결과, 정말 무술에까지 이야기가 미치게 된다. 왜 내가 처음부터 “일무양용[一武(舞)兩用]”을 이야기했는가? 근원을 깊이 파고들고 끝까지 추적하면, “일무양용[一武(舞)兩用]”이다. 문용(文用)하면 그것은 곧 무용이 되고, 무용(武用)하면 그것은 곧 싸움에 쓰이는 것이다. 일문일무(一文一武), 일정일부(一正一負)이다. 문화라, 사람의 문화는 바로 이러한데, 한 가지 것이 전해져 나오면, 인간 세상에서는 반드시 양면(兩面)적인 것이다. 당신이 선(善)만 전해서는 안 되고, 그것은 또 반드시 악(惡)의 그 일면의 것이 있어야 하며, 당신이 악을 전해도 그것은 안 되며, 당신은 반드시 선의 것이 있어야 하는데, 인간 세상의 것은 선악이 평형을 이루고 음양이 평형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로 이렇게 온 것으로, 이것이 곧 사람의 문화이다.

그럼 중공사당은 왜 하늘에서부터 땅에 이르기까지 누구든 다 그것에 반대하는가? 신이 그것을 승인하지 않으며, 선한 것이 아니고, 또 신이 허락한 악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변이된 것으로, 시대의 흐름에 부합되지 않는 진정 사악한 것이며, 우주 중에는 그것의 위치가 없고, 단지 마지막 시기 사람의 업력이 클 때 나타난 것이다. 표현상 아무리 나빠도, 아무리 기세가 강해도 소용없다. 신은 그것으로 업력이 큰 사람에게 소업(消業) 해주고, 다 쓰고 난 뒤에는 그것을 소훼한다. 그러나 신이 사람 중에서 전한 고층 법리는 사람을 구하는 데 쓰이는 것으로 그것은 다르며, 사람 이 한 층 이치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결국, 사부가 말한 것은 아주 간결하지만, 내가 말한 것은 매우 정확한 것으로, 바로 이렇게 온 것이다. 여러분 알아들었는가? (모두들 고개를 끄덕임)


(전교 교직원 및 무용 학생들 일제히, “사부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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