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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스턴 법회 설법

 

李 洪 志
(1996년 10월 12일)

 

나는 휴스턴 정부와 휴스턴 시민들이 내게 준 영예에 매우 크게 감사드린다. 나는 수많은 法輪功(파룬궁) 제자들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대법(大法)에 대한 그들의 지지와 열애(熱愛)에 감사드리기 바란다. 우리 박수로 경의를 표시하는 것이 어떤가? (박수) 나는 휴스턴 정부의 우호적인 성의와 휴스턴 정부가 내게 준 영예를 모든 法輪功(파룬궁) 제자와 중국인들에게 가져다주겠다.

나는 늘 백인 · 흑인 · 황인종 그리고 기타 종족의 제자를 포함한 미국 法輪功(파룬궁) 제자들을 걱정해 왔다. 법(法)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당신들의 연분(緣份)이 닿았기 때문이므로 줄곧 여러분의 수련이 어떠한지 와보고자 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본 적이 없지만 모두 책을 보았고, 또 이 법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늘 사부를 만나보지 못해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데, 나를 만난 후에 마음이 좀 놓인 것 같다. 사실 나는 — 당신들이 경문(經文)이라고 부르는 — 그런 짧은 문장 속에서 이미 여러분에게 알려주었다. 나를 만나지 않아도 수련할 수 있고 마찬가지로 마땅히 얻어야 할 것들을 얻을 수 있으며, 아무것도 빠짐이 없다고. 왜냐하면 진정한 수련은 형식에 달린 것이 아니고 사부를 만났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러분 알다시피 석가모니 부처가 세상에 있지 않은 지 이미 2천여 년이 지났지만 후세사람들은 줄곧 수련하고 있다. 그들 역시 석가모니 부처를 볼 방법이 없지만 여전히 수련 성취할 수 있다. 이는 그의 경서가 인간 세상에 있고 그의 법신(法身)이 사람을 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미 이렇게 큰 법(法)을 전했고, 여러분도 책 속에서 이미 다 이해했다시피, 역사상에서 지금껏 이렇게 큰 일을 한 사람이 없었으며, 진정하고 완정(完整)하게 체계적으로 하늘에 오를 수 있는 이치를 인류에게 말한 적이 없었다. 과거에는 허용하지 않았으며 과거의 인류사회에서는 절대로 인류에게 이러한 것들을 남겨줄 수 없었다.

물론 많은 사람이 석가모니 부처의 경서를 본 적이 있지만 사실 그것은 모두 후인(後人)들이 정리한 완정하지 못한 것으로서 일부 이치를 말했는데, 후인들이 전설과 기억에 근거해 정리했으므로 끊어졌다 이어졌다 했다. 무엇 때문에 이랬는가? 왜냐하면 이 역시 신(神)이 그 한 시기 역사 중에서 유일하게 인류에게 남겨줄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석가모니 부처는 확실히 아주 많은 말을 했지만 그때 인도에는 아직 문자가 없었기에 바로 기록할 수 없었다. 석가모니 부처가 세상을 떠난 지 5백년 후에야 후인들이 비로소 석가모니 부처가 한 말을 문자로 정리해냈다. 물론 시간 · 지점 · 장소와 당시 사람을 겨냥했던 환경은 모두 변화가 발생했고 그 일체를 되찾을 방법도 없었다. 그러나 설사 이렇다 해도 불경(佛經)은 여전히 진정으로 수련하려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속에서 불리(佛理)를 깨달을 수 있게 했다. 그러나 홍대(洪大)한 불리(佛理)를 놓고 말할 때 그는 오히려 완정(完整)한 것이 아니며 체계적인 우주의 근본법은 더욱 아니었다. 그러나 석가모니는 부처로서 그가 한 말은 확실히 불성(佛性)과 그 한층 불리(佛理)의 체현을 지니고 있었다. 예수 · 노자 역시 석가모니의 정황과 같았으며, 당시 그들은 모두 설법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대대로 수련해 낸 고승(高僧)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늘, 앞 사람들이 여태껏 한 적이 없는 일을 했다는 이런 한마디 말을 한다. 제자들 중에서도 이런 한마디 말이 유전하는데, 사부님께서는 사람에게 하늘에 오를 수 있는 사다리를 남겨주셨다는 것이다. 이 말을 신(神) 역시 하고 있는데, 뭇 신들은 “당신은 사람에게 하늘에 오를 수 있는 사다리를 남겨주었다.”고 말한다. 석가 · 예수 · 노자가 남겨놓은 것이 매우 적거나 혹은 불완전한 것은, 과거에는 그렇게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말한 이 법(法)은 매우 크다. 당신들이 오로지 이 법(法)에 따라 수련한다면 당신은 곧 원만을 이룰 수 있다. 이는 과거의 중생에 대해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며, 그 속에 관련된 천기(天機)가 매우 많고 매우 크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수련하지 않으면서 이 책을 펼쳐서 본다면, 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는, 이치를 말한 이런 책임을 발견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수련하려고 하여 다시 두 번째로 보면서 매 문자의 의미를 일일이 따지지 않고, 오로지 진지하고 진지하게 그를 본다면, 다 본 후에 당신은 그가 일반적인 책이 아니며 당신이 첫 번째 보았을 때의 감수와 그 속의 내포가 모두 변화했음을 발견할 것이다. 당신이 세 번째로 다 보았을 때, 당신은 내포가 또 변화했고 또한 앞의 두 차례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바로 이렇게 보아 내려가며 완전하고도 완전하게 세 번을 다 본다면, 당신은 이 책을 이미 내려놓을 수 없을 것이며, 평생 내려놓지 못할 것이다. 무엇 때문에 이럴 수 있는가? 왜냐하면 사람의 표면에서부터 말한다면 두 가지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사람은 모두 지식과 진리에 대한 갈구(渴求)가 있으며, 다른 하나는 바로 사람마다 모두 불성(佛性)이 있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말한 것은 불리(佛理)이며, 그는 당신 자신의 불성의 일면과 서로 통하는 것으로 당신이 보기만 하면 곧 친근함을 느낄 것이다. 진짜 법리(法理)는 당신을 격동시킬 것이며 당신은 이것이 바로 당신이 갖고자 했던 것임을 느낄 것이다.

또, 수련에는 과정이 있어야 하기에 법(法)을 배우기 시작할 때 당신들은 단지 좋은 사람이 되는 이치만 알 수 있다. 실질적으로 이 책 속에는 부동(不同)한 경지의 이치, 부동한 층차의 이치가 포함되어 있다. 불교 중에서 삼계(三界) 내에 33층의 하늘(三十三層天)이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삼계(三界) 내에는 부동한 층차가 있다. 당신이 어느 한 층 하늘로 수련하고자 하면 당신은 그 한 층 하늘의 이치를 알아야만 수련해 올라갈 수 있으며, 당신이 그 표준에 도달했을 때에만 당신은 승화할 수 있다. 당신이 삼계 밖으로 수련하려면 곧 삼계 밖의 이치를 알아야만 수련해 올라갈 수 있다. 이 법(法)은 당신을 지도하여 부동한 고층차로 올라가게 하는 수련의 요소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말한 것처럼 당신이 초등학교 교과서를 가지고 대학에 간다면 당신은 여전히 초등학생인 것과 같다. 왜냐하면 당신은 대학의 지식을 장악하지 못했으므로, 당신의 대학 공부를 지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이치이다. 그러나 당신은 이 책에서 많은 천기를 누설했다고만 보지 말라. 수련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표면상 당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당신이 수련하려 하고, 당신이 진지하고 진지하게 이 책을 보려 할 때, 그 속의 내포가 지극히 큼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정도로 큰가? 당신이 얼마만큼 높이 수련할 수 있다면 당신이 그만큼 높이 수련할 수 있게 지도할 수 있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내력이 있고 연분이 있는 것으로 어떤 사람은 아주 높은 층차에서 온 생명일 것이다. 당신들이 세상에서 보는 사람들은 모두들 마치 다 같은 것 같다. 왜냐하면 표면상으로 당신은 그가 누군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늘 이 한 마디 말을 하는데, 이렇게 큰 법을 전하는 것 역시 함부로 사람에게 배우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그러므로 당신이 들었다면 아마 인연이 있을 것이며 바로 연분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내가 한 말은 목적 없이 하는 것이 한마디도 없는데 장래에 실증될 것이다. 물론 내가 그렇게 큰 법(法)을 전하므로 나는 곧 그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사람을 제도하지 못한다면 바로 함부로 천기(天機)를 누설하고 천법(天法)을 파괴하는 것으로 이는 절대로 안 되며 누구도 감히 이렇게 하지 못한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과거에 누가 함부로 천기를 누설했다면 천벌을 받아야 했다. 수련인은 왜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으려 하는가? 첫째, 사람이 너무 집착하기 때문이고, 둘째, 수련하지 않으면 또한 진상을 아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련인은 하늘의 이치(天理)를 알기에 말해 낸 것은 모두 천기이다. 속인에게 함부로 말한다면 바로 천기를 누설하는 것으로 그 자신도 떨어지게 된다. 그럼 나는 오늘 왜 할 수 있는가? 그뿐만 아니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수련해 올라오고 곧 수련 원만을 이룰 수 있는가? 왜냐하면 나는 이 일체를 책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이 일을 할 때 우선 사람에 대해, 인류사회에 대해, 각계 중생들에 대해, 우주에 대해 책임지는 것을 고려했고, 이런 기점에 서서 했기 때문에 나는 그를 잘할 수 있었다. 법(法)이 부동한 층차의 내포를 포함했고, 수련하는 사람이 온 층차가 비교적 높아서 현재 어떤 제자는 이미 아주 높은 층차로 수련되었는데, 바로 이 법(法)으로 지도한 것이다.

이 법(法)은 어느 정도로 높은가? 과거에 속인 중에서 법(法)을 전하는 사람은, 부처 이 층차를 초월한 법(法)을 말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더 높은 층차의 부처가 있는지 없는지, 신(神)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게 하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 속에는 원인이 있는 즉, 사람은 늘 사람의 인식으로 신과 부처를 상상하는데, 이는 신과 부처에 대한 불경(不敬)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만약 더욱 높은 부처를 사람들에게 알게 하여 함부로 부처의 이름을 말하게 한다면 바로 부처를 비방하는 것이 된다. 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은 또 무의식중에 부처를 모독하고 있다. 옛사람들은 정말로 신과 부처를 공경했는데, 지금 사람들은 설사 믿는다고 해도 성심(誠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부처를 아주 공경한다고 생각하며 부처의 이름이 그의 입에 달린 듯 직접 그의 이름을 부르지만, 실은 부처를 비방하는 것이다. 과거의 사람들은 부처란 이 글자를 말할 때, 사람들은 모두 경앙(敬仰)하는 마음과 숭경(崇敬)하는 마음이 일었으며 매우 신성하게 느꼈다. 지금 사람은 그렇지 않다. 심지어 식사할 때 요리 메뉴마저도 ‘불도장(佛跳牆)’이란 이름이 있을 정도로 제멋대로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부처는 사람에 비하면 신성하기가 비할 바 없다. 속인의 사유논리, 속인의 사상구조, 말하는 표현방식은 부처의 경지 중에는 없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으로 부처를 대하는 것은 어떻게 해도 사실은 모두 불경(不敬)이다. 하지만 부처는 사람에게 자비하고, 사람이 미혹 중에 있으며 또한 이치가 반대로 되었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허물을 탓하지 않는다. 사람을 제도하려 하기 때문에 또한 사람이 부처의 존재를 아는 것을 허용한다. 그럼 더욱 높은 부처, 더욱 높은 신(神)을 사람에게 알게 한다면, 그 사람은 그에 대해 쉽게 업을 빚을 수 있으며 그에 대해 쉽게 불경할 수 있다. 바로 이 원인 때문에 사람으로 하여금 알지 못하게 하며 사람이 더욱 높은 층차의 부처를 알지 못하게 했다. 여래불(如來佛)이 사람을 보면 속인이라 가련할 정도로 작으며 마치 미세한 먼지와도 같다. 그렇다면 매우 높고 매우 높은 신(神)이 고개를 돌려 여래불을 본다면 역시 속인과 같다. 왜냐하면 그가 지극히 높기 때문이다. 그럼 그가 사람을 보면 어떤 모양이겠는가? 아무것도 아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인류는 줄곧 사람들이 속인사회에서 아주 잘 생활하고 있다고 느끼며 사람은 우주 중에서 가장 대단한 생명이라고 생각한다. 실제적으로 속인사회 이 환경은 이 우주의 가장 낮은 층차로서 우주의 생명 중에서 가장 더러운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아주 높은 신(神)의 눈으로 보면, 인류 이곳은 우주의 쓰레기장이며 고층생명의 분뇨장이다. 그럼 더러운 분뇨 속에서 부처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낸다면, 이 자체가 바로 불경이다. 그러므로 더욱 높은 신(神)을 사람이 알지 못하게 했다.

방금 내가 한 말을 여러분은 모두 좀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수도 있다. 나는 내가 전한 이 법(法)은 사람이 함부로 와서 지식으로 여기고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당신이 올 수 있다면 아마 당신에게 인연이 있을 터인데, 믿지 못하겠다면 여러분이 내 말을 기억하라. 물론 당신이 얼마나 큰 연분이 있든지 당신이 얻었다면, 내 생각에 당신은 마땅히 소중히 여겨야 한다. 물론 이 자리에 앉은 여러분은 다 소중히 여길 것이다. 천리를 마다하지 않고 심지어 외국에서 온 사람, 홍콩에서 온 사람이 있으며 심지어 유럽에서 온 사람도 있다. 목적은 모두 수련을 위한 것으로 하나는 사부를 보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법(法)을 들으려는 것이다. 바로 당신이 선(善)을 지향하고, 수련을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부가 말한 것을 진리로 여기는데 사실 사람의 진리로는 대법(大法)을 가늠할 방법이 없다. 그는 우주의 근본이다. 그러므로 내 생각에 여기에 앉은 매 사람은 모두 마땅히 이 연분을 소중히 여겨야 하며 이 법을 얻었다면 당신은 곧 수련해 나가며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 법(法)을 전한 방식은 역사상 사람을 제도한 어떤 한 차례와도 같지 않다. 무엇 때문인가? 여러분은 이미 차이를 보았다. 어떤 한 가지 불법(佛法)이 전해져 나올 때든지 그는 모두 사람에게 출가하여 수련하라고 하지만 나 여기서는 이것을 주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이것을 주장하지 않는가? 왜냐하면 불교는 불교의 울타리 안에서 불교를 말하고 있고, 도교는 도교의 울타리 안에서 도법(道法)을 말하고 있으며, 그런 서방종교 그것 역시 그것의 교의에서 뛰쳐나오지 못하고 있지만, 나의 이 한 차례는 완전히 종교의 범위를 벗어나 우주의 근본대법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어떤 사람이 말하길, 사람이 수련하려면 곧 속인 중의 일체 물질이익을 다 내려놓고 심산수림 속에 들어가거나 혹은 사찰에 가서 완전히 이 세간(世間) · 세속(世俗)과 끊어야 비로소 청정한 수련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목적은 사람으로 하여금 물질이익의 집착심에서 해탈하도록 강화하는 것이다. 나는 당신들을 이러한 길로 이끌지 않는다. 무엇 때문인가? 나는 한 가지 정황을 보았다. 사람이 가급적 빨리 원만에 이르고 동시에 또 수많은 세인들로 하여금 수련할 수 있게 하자면, 오로지 속인사회 중에서 수련해야만 비로소 할 수 있다. 사실 복잡한 환경 중에서라야 진정으로 사람 자신을 수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복잡한 환경을 피해 수련하는 것보다 시간이 훨씬 단축된다. 또 한 가지 관건적인 문제는 바로 많은 수련방법이 자신을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 副元神(푸왠선)을 수련하게 된다는 것인데, 과거에 이는 큰 천기였다. 여러분은 책에서 다 보았을 것이다. 나는 오늘 바로 당신 자신이 자신을 수련하도록 하며, 이 법을 진정으로 당신에게 주려 하기 때문에 나는 당신들이 속인의 복잡한 환경 중에서 수련하도록 선택했다. 이렇게 수련하면 인류에 대해서도 좋은 점이 있다. 수련 중에서 속인사회에 영향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인류사회에 좋은 점을 가져다준다. 수련자 역시 사회 중의 일원으로서, 정상적인 일과 생활이 있으며 사람 또한 줄곧 원만에 이르기까지 법(法)을 배우고 수련할 수 있다.

내가 당신들에게 이런 한 갈래 수련의 길을 선택해 주었기 때문에 다른 법문의 수련과는 완전히 같지 않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완전히 종교의 범위를 벗어났기 때문인데, 나는 늘 우리는 종교가 아니라고 했다. 나는 곧 이 법(法)을 사람들에게 전해주어 사람들로 하여금 법(法)을 얻게 하며 최후까지 수련할 수 있는 사람은 원만에 이를 수 있게 한다. 만약 어떤 사람 그가 금세(今世)에 수련할 수 없다 해도, 그가 이 법(法)의 표면 이치를 알면 그는 곧 좋은 사람이 될 것이며, 이러면 사회에 대해서도 좋은 점이 있는 것으로 인심(人心)이 선을 향하게 할 수 있다.

현재 사회문제가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법률을 아무리 많이 제정할지라도 여전히 죄를 범하는 사람이 있다. 문제가 나타나기만 하면 곧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고, 다시 죄를 범하면 또 제정한다. 인류는 자신에 대한 제한이 너무나 많을 뿐만 아니라 인류는 현재 이미 어쩔 수 없이 인류가 자신을 위해 창조한 이 일체를 감당하고 있다. 자신을 봉폐함이 엄하면 엄할수록, 이 방면에서 더욱더 극단으로 나갈 것이며 동시에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우주의 진리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한다. 사실 사회를 불안하게 하는 원인은 법률조항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민족에서 개인에 이르기까지 일체를 불안하게 하는 인소(因素)는 바로 한 글자 ── 德(더)이다. 바로 사람의 心性(씬씽)이 안 되고, 지금의 사람이 사람의 규범을 잃어버림으로써 사회를 이토록 난잡해지게 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사람이 모두 매우 높은 사상경지 중에 있고, 모두 매우 높은 心性(씬씽)이 있다면, 이 사회가 어떤 모양이겠는가? 전체 인류사회가 어떤 모양이겠는가? 사람들이 모두 나쁜 일을 하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자신에 대해 좋지 않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 모두 나쁜 일을 하지 않는다면, 내 생각에 경찰마저도 필요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사람마다 모두 스스로 생각하여 인류의 도덕준칙(道德準則)을 수호할 것이다.

물론 인류의 이런 일은 내가 주요하게 하려는 일이 아니다. 내가 이 법(法)을 전하는 것은 여러분이 법(法)을 얻고, 수련하여 원만을 이룰 수 있게 하려는 것이지만 속인사회 중에서 수련하다 보면 그는 반드시 이런 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법(法)이 사회상에 전해져서 인류에게 가져다주는 좋은 점이다. 수련인에 대해 말하자면 사람으로 하여금 진정하게 법(法)을 얻을 수 있게 한다. 복잡한 환경 중에서, 현실이익 중에서 당신이 초탈해 나올 수 있다면 당신은 대단하며, 당신은 마땅히 원만을 이루어야 한다. 그럼 이 속에 무슨 조건이 있는가? 사람이 이 법(法)을 수련하면 물질적인 것들을 모두 가지지 말아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이 법(法)을 전할 때 나는 이 법(法)이 아주 널리 전해질 것을 고려했으며, 역사 중에서 오늘날 어떻게 법(法)을 전할 것인지를 다져 두었기 때문이다. 기공의 출현은 바로 오늘날 내가 법을 전함에 길을 닦아준 것이다. 중국대륙에서 어떤 사람은 당시의 기공형세를 조신운동(造神運動)이라고 불렀다. 만약 시작할 때 이러한 환경이 없었더라면 나는 오늘 법(法)을 전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적으로 기공은 내가 법(法)을 전할 수 있도록 길을 닦아주었다. 물론 현재 일부 가짜 기공사들이 나와서 화란(禍亂)을 일으키고 있는데, 만약 자연적으로 나타난 것이라면 그것 역시 정상적인 것이다. 인류는 바로 이러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정법이 전해지고 있기에 반드시 그런 바르지 않은 요소들을 건드리게 되는데, 바른 것이 있으면 사(邪)한 것도 있는바, 사람이 어느 한 문으로 들어가는지 본다. 수련 중 나쁜 요소의 교란은, 사람을 또 수련 중에서 승화하게 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을 교란하는 나쁜 것들이 없다면, 내 생각에 당신은 수련할 수 없다. 개인 수련은 곧 이러하며 수많은 요소들을 건드리게 된다.

어떤 사람은, 나는 세상을 살아감이 마땅히 편안하고도 편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속인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 없다. 사람이라 그는 곧 좀 잘살고, 좀 즐겁게 살고, 고생을 좀 적게 하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수련인으로서 고생을 좀 겪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주의 이치는 사람 여기와는 반대인 것으로, 인류 이 공간의 이치와는 반대이기 때문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인류사회의 사람들이 모두 편안하려 하면, 곧 이익을 얻기 위해 서로 쟁투할 것인데, 다른 생물 역시 재앙을 겪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산다는 것은 바로 업을 빚는 것이고, 곧 다른 사람과 다른 생물을 다치게 하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해 보라. 당신이 업을 빚기만 할 뿐, 업을 갚지 않고 고생을 겪어 업을 없애버리지 않는다면, 이 업(業)은 쌓일수록 커지고 쌓일수록 커지는데, 마지막에 이르면 그것이 어떤 문제가 되겠는가? 이 사람이 안에서부터 밖에 이르기까지 전부 다 흑색의 업력으로 가득차면, 이 생명은 곧바로 훼멸되어야 한다. 사람의 생명이 정말로 훼멸되어 영원히 존재하지 않게 된다. 반대로 말하면, 사람에게 고생을 좀 겪게 하고 죄를 좀 감당하게 하여, 고통 속에서 사람의 일부 업을 제거하면, 이후에 그는 매우 행복하게 생활할 것이다. 이는 우주의 바른 이치와 생명 순환의 법칙이다. 과거에 노인들은 늘 “사람이 어릴 때 병이 좀 있고 젊을 때 고통을 좀 겪으면 나중에 생활이 좋아진다.”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이러하다. 이것이 사람이 소업(消業)을 하는 법칙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소업하지 않으면 곧 행복도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업력이 너무나도 많은데 어디에서 행복이 오겠는가? 또한 이 업력은 그것 자체가 바로 당신을 즐겁지 못하게 하고, 고생을 많이 겪게 하며, 당신으로 하여금 대가를 많이 치르게 하는 근본 원인이다. 이것은 사람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 생각해 보라. 수련인으로서 당신이 당신의 업력을 없애버리지 않고 고생을 좀 겪지 않으며 편안하고도 편안하려고만 생각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수련하겠는가? 당신이 여기에 앉아 ‘나는 오늘 삼계를 벗어나고 내일은 수련하여 성불(成佛)하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이 생각한다고 곧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실제 수련 중에서, 현실사회 속에서 엎어지고 부딪히면서 속인 중에서 집착하는 당신의 그 마음을 제거해야 하고 사람이 내려놓지 못하는 집착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물론 문화정도가 비교적 높은 일부 사람이거나 혹은 노인이라면 좀 잘할 수 있다. 일반적인 사람과 모순이 발생할 때 혹은 무슨 곤란에 봉착했을 때, 아주 냉정하게 다른 사람처럼 다투고 싸우지 않을 수 있다. 이는 장기적인 사회경험 중에서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중에는 사람의 두려운 마음과 어쩔 수 없어 하는 것들이 있다. 수련인은 단번에 이 문제를 투철히 볼 수 있다.

수련인으로서는 모순에 봉착하면 마땅히 그것을 감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참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래야만 당신이 진정으로 승화하여 올라올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업신여길 때, 그는 당신에게 德(더)를 준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업신여길 때, 당신은 확실하게 고통을 감당하고 있으므로, 당신 자신의 업력 역시 아래로 제거되고, 또 德(더)가 생긴다. 당신은 수련하는 사람이기에 德(더)는 곧 공(功)으로 전화되는데 그러면 당신의 공이 곧 자라 오르지 않겠는가? 당신이 참는 동시에 정확히 인식할 수 있어 화를 내지 않고 미워하지도 않는다면, 당신은 또 당신 자신의 心性(씬씽)을 제고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이치는 바로 반대로 보아야 한다.  

나는 늘 말했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업신여길 때, 당신에게 번거로움을 조성해 줄 때, 혹은 당신이 무슨 고통을 받을 때, 당신은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당신은 수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만약 당신에게 번거로움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면, 그가 당신에게 제고할 기회를 만들어주지 않는다면, 당신이 어떻게 수련해 올라갈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당신은 비단 그를 미워하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당신은 마음속으로 또 그에게 감사드려야 한다. 어떤 사람은, ‘사람이 너무 나약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당신에게 이런 환경이 없으면 당신은 확실히 업을 없애버릴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신이 구하는 것은 안일이 아니며 당신의 수련 역시 속인사회의 수련환경을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방금 말했듯이, 내가 이 법(法)을 전할 때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진동이 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와서 배울지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현재 중국에서 이 법(法)을 수련하는 사람이, 매일 수련하는 사람이 천여만 명이다. 이 법(法)을 알고 있는, 수련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사람을 모두 합하면 1억이 넘는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또 머지않아 세계적으로 매우 큰 진동이 생길 것을 알고 있다. 현재 이 법(法)은 아직은 과학기술계가 요해(了解)하지 못하고 있지만, 장래 인류사회의 과학은 모두 이로 인해 매우 큰 변화가 발생할 것이다. 나는 확실하고 확실하게 인류에게 많은 천기를 알려 주었다. 인류는 완전히 봉폐되었으며 사람의 지혜 역시 제약되어 있다. 당신이 속인사회 중에서 얼마나 큰 학문이 있고 얼마나 큰 직함을 갖고 있든지, 당신은 속인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의 실증과학은 또 인류를 봉폐하는 길로 사람을 인도하여 진정으로 우주의 진상을 인식할 수 없게 한다.

방금 나는, 주로 사람이 수련할 때 고생을 좀 겪는 것과 일부 고통을 감당하는 이것은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나는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수련하므로 나는 마땅히 편안하고도 편안하게 수련해야 하며, 마땅히 마난(魔難)이 없이 공(功)이 자라야 하고, 그렇게 많은 번거로움이 와서 나를 교란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한다. 수련인이 업을 갚지 않고, 경지를 제고하지 않으면 공(功)은 영원히 자라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가족들이 나를 수련하지 못하게 하는데, 나에게 조건을 주지 않고 나에게 시간을 주지 않으며 심지어 이혼하자고 야단이다.”라고 말한다. 사실 꼭 진짜가 아닐 수도 있다. 아마 당신의 수련 비중이 얼마나 큰지 고험(考驗)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표현되어 나오는 것은 확실히 아주 격렬하다. 수련은 엄숙한 것으로, 한 관(關) 한 난(難)이 결코 장난 같지 않을 것이다. 수련인에게 무슨 번거로움이 나타날 때는 꼭 원인이 있다. 사실 누가 당신에게 번거로움을 만들어 줄 때는 모두 당신의 제고를 돕는 것이다. 당신의 사상경지를 제고시키는 한편 당신으로 하여금 고통을 감당하는 과정 중에서 소업하게 한다. 그리하여 동시에 또 이 법(法)에 대해 당신이 확고한지 고험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법(法)에 대해 확고하지 못하다면 그럼 근본적으로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

설법 중에 나는 수련생들에게 어떤 미혹된 점이 있는지를 다 보고나서 그것에 대해 말한다. 그러므로 아주 체계적이 아닐 수 있다. 여러분도 내가 오늘 말한 것들을 앞으로 수련의 체계적인 지도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당신들의 체계적인 수련을 지도하는 것은 오로지 『전법륜(轉法輪)』이다. 앞으로 내가 말하고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그 무엇이든 모두 『전법륜』을 둘러싸고 하는 말이다. 여러분의 수련을 지도하는 것은 오로지 『전법륜』 이 책뿐이며 이는 가장 체계적이다. 여기에 앉은 많은 사람들의 문화수준이 비교적 높다. 당신이 대만에서 왔든 중국대륙에서 왔든, 아니면 다른 국가에서 온 화인(華人)이든, 노 화교(老華僑)를 제외하면 모두 문화층차가 비교적 높은 사람이며 화인 중의 엘리트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늘, 이 법(法)이 전하는 것은 다른 기공과 차이가 매우 크다고 말한다. 다른 기공을 연습하는 사람은 흔히 모두 노인으로 퇴직하고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인데, 절대다수는 신체를 단련하고자 하며 아울러 모두 기를 연마한다. 그러나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연마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노인이 일부분을 차지하지만 청장년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상당히 클 뿐만 아니라 문화층차도 비교적 높다.

내가 법(法)을 말하고 공을 전할 때도 다른 기공사들과는 같지 않다. 일반적인 기공사들은 간단하게 이치를 말하고 그런 다음 사람들에게 어떻게 동작을 연마하고 정보를 내보내는지를 가르친다.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하지 않았다. 내가 진정으로 법(法)을 전하여 당신들을 위로 이끌고자 한 이상, 나는 우선 법(法)을 말해야 한다. 매 한 차례 학습반의 매 한 강의는 법(法)을 한 시간 말해야 하고, 그런 다음 다시 당신들의 원만 수단인 ― 연공동작을 가르쳐야 한다. 그러므로 다른 기공과 같지 않다. 법리의 내포 역시 매우 커서 문화수준이 높은 사람일수록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고 더욱 좋게 느낄 것이다. 지식이 더욱 높은 사람이 와서 배우면 쉽게 이성적으로 법을 인식한다. 물론 문화층차가 약간 낮은 사람 역시 인연이 있어 오는데, 신과 부처에 대해 일정한 인식이 있으며, 특별히 법리상에서 아주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으면, 제고함이 매우 빠를 것이다.

여기에 앉은 또 일부 사람들은 法輪功(파룬궁)에 대해 아직 그리 잘 이해하지 못하기에 나는 다시 간단하게 개괄적으로 法輪功(파룬궁)의 정황을 말해 보고자 한다. 왔으니 당신들에게 좀 많이 말해 주고자 한다. 내가 전한 이 법(法)은 역사가 아주 오래되었으며 이 말을 하자면 길다. 현재 인류사회는 여러 차례의 문명을 거친 후에 남겨진 인류가 또 새롭게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슨 뜻인가? 이 미국의 대륙판을 가지고 말하겠다. 바로 아메리카 대륙으로 말하면 그것은 여러 차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가 여러 차례 올라온 것이다. 이 대륙 위의 문명 역시 여러 차례이다. 매 한 차례의 문명은, 사람들에 대해 말하자면 모두 상당히 오래고 먼 연대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말해서 시간이 좀 짧은 것도 있다. 원인은 인류의 도덕이 너무도 빨리 부패해서 조성된 것이다. 속인을 초월하는 각도에서 보는 역사와 속인이 보는 역사는 같은 개념이 될 수 없다. 속인은 다만 현재 존재하는 인류문명 중에서 인류역사를 보는데, 수련인과 속인을 초월한 이의 인식은 이 한 시기 인류문명을 훨씬 초월한다. 그러므로 내가 역사를 볼 때는 아주 멀리 본다.

이 法輪大法(파룬따파)의 역사 역시 매우 오래고 멀며 매우 오래고 멀다. 거슬러 올라간다면 사람의 지금 시간개념으로 그를 분명하게 말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法輪大法(파룬따파)의 법리는 매우 크며 층차는 측정할 수 없을 만큼 높다. 나의 이 법문 중에서 수련하는 제자는 원만을 이룬 후에 法輪世界(파룬쓰제)로 갈 수 있으며 또한 다른 많은 천국세계로 갈 수 있다. 천국세계를 말하게 되어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우주 중에는 무량(無量)한 신(神)의 세계가 있다. 우리 은하계 범위 내에 대응되는 것에도 많은 천국이 있다. 부처에 대해 인류 역시 일정한 이해가 있다. 예를 들면 아미타불(阿彌陀佛)이 주지하는 극락세계(極樂世界), 그리고 유리세계(琉璃世界), 연화세계(蓮花世界), 미호세계(美好世界)가 있으며, 신(神)이 주지하는 신(神)의 세계가 있다. 서방종교의 예수, 또 성모 마리아가 있고, 또 일부 다른 정교(正敎)가 있는데, 그들에게도 그들의 천국이 있다. 물론 일부 천국은 인류가 인식하는 우주의 범위를 훨씬 초월했으며 이 소우주(小宇宙)의 범위를 초월했다. 그러므로 내가 수련의 것을 한번 말하려 하면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모두 대단히 크다.

그렇다면 사전(史前)의, 매우 멀고 오래며, 매우 멀고 오래된 한 연대에, 이번 차례 인류문명 전에, 나는 일찍이 세인들 중에서 광범하게 법(法)을 전하고 사람을 제도한 적이 있다. 그때 오늘날 불교처럼 사람을 제도했다. 이번 한 차례에 나는 대법(大法)이라는 근본법으로 더욱 큰일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법을 말하자면 내포가 아주 크다. 왜냐하면 하려고 하는 일이 매우 크기에 또 수많은 불(佛)·신(神)·도(道)들이 모두 내가 하는 이 일에 협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법(法)은 단지 불가(佛家) 한 문의 이치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한 것이 우주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전반 우주는 모두 ‘眞(쩐)·善(싼)·忍(런)’ 물질요소로 구성된 것으로 아주 높은 경지 중에서도 ‘眞(쩐)·善(싼)·忍(런)’이다. 眞(쩐)·善(싼)·忍(런) 중에서 좋음이 생겨날 수 있고, 아름다움이 생겨날 수 있으며, 자비가 생겨날 수 있고 또한 정반(正反) 두 가지 요소가 생겨날 수 있다. 그럼 ‘인(忍)’, 그는 참을 수 있는 것과 참을 수 없는 것을 낳을 수 있다. 그러므로 법(法)이 아래로 갈수록 법리는 더욱 방대하고 복잡하며, 음양(陰陽), 상생상극(相生相剋)이 모두 ‘眞(쩐)·善(싼)·忍(런)’에서 나온다. 매 층차의 경지 중에서 더욱 아래로 내려가 사람 이 일보까지 왔을 때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인류는 선과 악이 있고, 좋고 나쁨이 있으며, 또한 정(情)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의 이치는 또 거꾸로 되었다. 사람의 이치 중에 왕자치국(王者治國), 병정천하(兵征天下), 강자위영웅(强者爲英雄)이 출현했다. 인류는 반신문화(半神文化)가 있은 후, 더욱 복잡한 문화표현이 나타났는데, 인류사회에서 말하는 무슨 인(仁) · 의(義) · 예(禮) · 지(智) · 신(信) 등등 이러한 것들을 포함한다. 인류에게는 바른 법리가 없기 때문에 사람 또한 우주의 진법(眞法)이 무엇인지 모르며, 진정한 좋고 나쁨과 시비를 똑똑히 가리지 못한다. 사람은 또 모두 불성(佛性)과 마성(魔性)으로 동시에 구성되어 있다. 사람이 정서가 불안정할 때, 악념(惡念) 혹은 충동을 일으킬 때는 바로 마성의 일면에 이끌린 것이다. 사람이 매우 이성적인 정황 하에서 심태가 아주 온화하고 선량하게 일을 할 때는 불성의 일면에 이끌린 것이다.

法輪大法(파룬따파)는 우주 일체 층차의 이치와 물질생명의 표현을 포함하고 있으며 포함하지 않는 것이 없고 빠뜨린 것이 없어 모두 이 법(法) 속에 있다. 대법(大法)은 불가의 범위를 초월했으며, 그에게는 일체 불(佛)·도(道)·신(神)의 이치가 있고 또한 그들의 이치를 초월했으며 전부 속에 들어있다. 우주는 그로 인해 생겨났다. 그가 우주의 일체를 규범하고 그가 각 층차의 중생을 육성했다. 대법(大法)이 널리 전해지는 중에 수많은 부동한 층차의 신(神)·불(佛)·도(道)는 모두 나를 협조해 일하고 있다. 현재 중생이 법(法)을 얻는 가운데 가장 법(法)을 얻기 힘든 것이 바로 종교 중의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속에는 그들이 믿는 신(神)이 있으며, 그들의 불(佛)이 있고, 그들의 도(道)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 다른 신(神), 다른 불(佛), 더욱 높은 신(神)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대법(大法)을 듣지도 보지도 않는데, 이는 그들이 법(法)을 얻을 수 없도록 저애하는 요소이다. 여기에서 그들이 좋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들이 믿는 것이 과거의 진정한 신(神), 바른 신(神)이었기 때문에, 이 역시 그들로 하여금 법(法)을 얻기 어렵게 했으며 장애를 형성했다. 그들은 종교가 사람을 제도할 수 없는 시기에 도달했음을 모르며 뭇 신들이 모두 이 법(法)을 얻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여러분 알다시피 석가모니는, “말법시기에 나의 법(法)은 사람을 제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을 마음에 두는 사람이 없는 듯하다. 사실 지금은 말법시기마저도 이미 지나간 지 아주 오래되었고 법(法)이 전혀 없다. 종교 중의 신과 부처가 과거에 말한 법(法)은 현대인들로서도 진정하게 그의 진실한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 출가인 역시 경서의 원뜻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거기다 많은 역대 승려들이 쓴 수많은 책 또한 경서라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보게 한다. 법(法)이 난잡해져 세인은 어떻게 수련하는지를 모른다. 나는 또 기독교의 사람에게 “예수가 다른 사람이 당신의 왼쪽 뺨을 때릴 때 당신은 오른쪽 뺨도 그에게 내밀라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라고 물었는데 그들은 분명히 말하지 못했다. 바로 지금은 신(神)이 말한 진실한 함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아주 드물며, 모두 현대인의 사상관념에 입각하여 신(神)과 신(神)의 말을 이해하며, 과거 대각자의 말을 이해하고 있는데, 법(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 예수가 말한 함의는 매우 간단하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때릴 때 그는 당신에게 德(더)를 주는 것이며, 당신이 고통스러워할 때 당신 자신의 업이 제거된다. 당신이 태연하게 얼굴의 다른 쪽을 다른 사람에게 때리라고 할 때 그 경지는 이미 매우 높다. 종교를 믿는 것은 사실 바로 수련이다. 본래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 당신이 오직 사람의 일면을 잘하기만 하면, 예수 · 신(神) · 불(佛)은 곧 당신을 도와 공을 연화해 주며, 모두 이렇게 그들이 제도하는 생명을 돕는다. 당시의 문화와 언어문자 등의 제한성 때문에 예수는 단지 이치의 표면만 말하고 그것의 실질을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오늘날 법(法)을 전하는 가운데 우주의 법리를 전면적으로 말하였다. 비록 이러하지만 말법시기의 사람들이 법(法)을 얻기란 여전히 어렵다. 이번에 내가 이 법(法)을 전하는 것은 중생들이 모두 법(法)을 얻기 쉬운 시기(時機)를 선택해 전했으며, 모든 종교가 말기에 이르고 인류가 가장 좋지 못할 때를 선택해 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세인은 마음속에 사람의 규범이 없고, 또한 진심으로 신(神)을 믿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나는 이때를 선택해 법(法)을 전했다. 나는 방금 설법 중에서 내가 사람에 대해 책임지고, 내가 사회에 대해 책임진다고 했는데 사실은 또 신(神)을 위해 책임지는 것으로 어떠한 종교도 간섭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때의 종교는 그들의 신(神)마저도 승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가 이때에 이르러 인심이 모두 좋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많은 사람, 그가 아직도 불성선근(佛性善根)이 있으며 단지 인류의 부패한 거대한 흐름 속에서 아래로 미끄러지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이때의 사람은 그래도 구도할 수 있다. 거기다 법(法)이 크기에 사람을 구도하는 능력 역시 크다.

이 법(法)은 인류사회에서 하루 이틀 들썩거리며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구도하는 동시에 또 미래를 다지고 있다. 이 법(法)은 매우 커서 그 속에 포함된 내포도 크다. 사람이 수련하는 과정 중에서, 공(功) 중에서 연마되어 나오는 것도 몹시 풍부하다. 여러분 알다시피 공능(功能)이란 많고도 많아 매 한 층차에 모두 만 가지가 넘는다. 대법(大法)은 단지 불가 이 한 문의 것만이 아니라 그는 모든 능력을 집합한 것이며 그는 우주의 법(法)이다. 그럼 당신들이 한번 생각해 보라. 이처럼 큰 것을 최후 원만으로 수련했을 적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함께 수련되어 나오겠는가? 수련하여 원만을 이룰 때면 층차가 높고 위력도 크며 법력(法力) 역시 매우 크다.

방금 내가 ‘상생상극(相生相剋)’이란 용어를 말했는데, 무엇을 상생상극이라고 하는가? 내가 이 이치를 여러분에게 말해 주겠다. 무엇 때문에 신(神)은 그러한 인류사회의 나쁜 사람, 천상의 마(魔), 아래의 귀신(鬼)들을 모두 깨끗이 청리하지 않는가? 안 된다. 왜 안 되는가? 어느 경지의 생명이든 만약 부(負)면적인 생명의 작용이 없다면, 한 차례 노력을 거치지 않고 곤란을 거치지 않고 성공했으며, 저층 생명이 간고(艱苦)함과 부지런한 노력을 거치지 않고 얻고자 하는 것을 얻었다면, 생명은 얻은 것을 소중히 할 줄 모를 것이며, 또한 얻어오기가 쉽지 않다는 감각이 없을 것이다. 더욱이 무엇이 승리와 실패인지 모를 것이고 만족의 기쁨이 없을 것이며 무엇이 고통인지 모르는가 하면 또한 무엇이 행복인지 모를 것이다. 마침 우주 고층에 정부(正負) 생명이 있고, 더 아래로 선(善)이 있고 악(惡)이 있으며, 더 아래로 마(魔)가 있고 불(佛)이 있고 신(神)이 있고 요귀가 있으며 선인(善人)이 있고 악인(惡人)이 있기 때문에, 우주의 생명은 비로소 생기가 있는 것이며 모순 속에서 생명은 비로소 사는 흥미가 있다.

방금 공간을 말했으니, 그럼 내가 우주의 공간과 생명의 표면 물질형식을 더 말하겠다. 우주의 아주 높고 아주 높은 경지에는 유형적인 생명이 없다. 무형적이면서 공간 속에 가득 찬 극히 미시적인 그런 물질, 그것 역시 살아있는 영체(靈體)인데 또 그것보다도 더욱 미시적인 것이 있다. 그럼 표면으로 갈수록 우주의 입자 과립은 더욱 크다. 인류 현재의 과학은 일부 입자를 알고 있다. 예컨대 분자, 원자, 중성자, 전자, 쿼크, 중성미자이다. 그러나 물질입자의 최후 ── 본원물질에 이르면 그건 그야말로 차이가 너무나도 크다. 인류 이 한 층 공간에서는 어떠한 물질이든 모두 분자입자로 구성된 것이다. 공기, 지금 여기에 있는 탁자, 탁보, 철, 흙, 돌, 물, 어떠한 한 가지 물건이든 모두 분자 이 한 층의 입자로 구성되었다. 나는 늘 이 이치를 말하는데, 사람의 두뇌는 신(神)에 의해 통제당하며 과학자의 두뇌 역시 신(神)에 의해 제한받는다고 나는 말한다. 사람은 어떻게 하면 이 한 층 공간을 뚫을 수 있는지 생각해 내지 못한다. 분자든지, 원자든지, 그들은 단지 입자의 개체 형식, 입자의 한 점, 몇 개 입자의 존재형식에만 치중해 연구할 뿐이어서, 그들은 전체 분자와 원자입자가 존재하는 면을 볼 방법이 없다. 물론 지금은 이런 과학기술 수단이 없다. 사람이 정말로 이 면을 볼 때 사람은 곧 다른 공간을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간단하다. 그러한 공간은 매우 광활하며 매우 아름답다. 그것의 시공과 대소개념은 속인의 이런 이념(理念), 속인의 사유방식으로는 인식할 수 없다. 사람이 이 사상 상황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그것을 인식할 수 없다. 많은 미시적인 입자로 구성된 공간은 우리 이 공간보다 더욱 광활하다.

입자는 모두 에너지가 있는 것이다. 그럼 이렇게 본다면, 과거 이 우주는 바로 에너지로 구성된 것과 같다. 인류는 원자가 방사성이 있고 원자핵이 방사성이 있으며 중성자가 방사성이 있음을 인식했다. 그러나 당신들은 쿼크, 중성미자, 더욱 미시적인 물질일수록 에너지가 더욱 크며 방사성이 더욱 강하다는 것을 아는가? 사람으로 말하자면 여전히 분자로 구성된 이런 표면물질 역시 방사성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단지 사람의 신체도 분자로 구성된 것으로, 물질세계의 일체가 다 분자로 구성되었으므로 사람은 분자의 에너지와 방사성을 감수하지 못할 뿐이다. 인류세계의 과학연구 수단, 화학실험 도구, 측정 도구 자체가 모두 분자로 구성된 표면물체이며, 인류가 에너지를 측량하는 계기가 모두 분자로 구성된 것인데, 당신이 어떻게 분자에 에너지가 있다는 것을 실험으로 측정해 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사람은 분자의 에너지를 측정해 내지 못한다. 우주 중에서 분자는 절대로 최후 한 층의 입자가 아니다. 분자보다 더욱 큰 한 층 입자 위의 생명 역시 마치 사람이 원자를 보면 에너지를 갖고 있는 것과 같다. 수련 중에서 어떤 수련자는 단지 높은 데로 공이 자랄 뿐만 아니라 또한 낮은 데로도 공이 자랄 수 있다. 그 층차에 입각해 사람을 보면 더욱 별도로 되는 뜻이 있다. 다시 말해서 분자 한 층은 아직 가장 표면적이고 가장 큰 입자가 아니다.

우리는 원자 속에 원자핵과 전자가 있다는 것을 안다. 전자가 원자핵을 에워싸고 운동하는 형식은 우리 이 지구와 몇 개 큰 행성이 태양을 에워싸고 운행하는 형식과 같지 않은가? 당신은 그것이 작다고만 보지 말라. 입자는 비록 미시적이지만 그것의 층면(層面)은 더욱 클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전체적인 체적은 아주 크다. 예컨대 사람을 보는데 단지 사람의 한 개 분자입자만 보아서는 사람을 보아낼 수 없다. 사람을 구성하는 모든 이 한 층의 입자로 구성된 표면을 볼 수 있어야만 사람을 볼 수 있다. 가령 배수가 높은 초광각(超廣角) 현미경으로 원자를 지구처럼 확대하여 위에 얼마나 되는 생명이 있는지 본다면, 물론 사람은 지금으로서는 해 낼 수 없는 것이지만, 당신은 그것이 또 다른  광경임을 발견할 것이다. 그런 생명으로 말하면 그것 역시 광활한 천지이다.

나는 방금 분자는 표면적으로 가장 큰 입자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가장 큰 한 층의 입자인가? 사람은 가장 큰 한 층의 입자를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자보다 큰 한 층의 입자를 여러분은 눈으로 모두 볼 수 있다. 그러나 감히 생각하지 못한다. 하늘 속의 이런 별들과 우주 중의 이런 별들, 그것이 한 층의 입자가 아닌가? 당신의 개념이 현재의 과학 속에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당신이 보면 별들이 천체 속에 흩어져 있지만 그것들은 내재적인 연계가 있다. 거시적으로 가령 인체가 별을 초월하여 대단히 클 때, 당신의 체적, 당신의 신체, 당신의 사상, 당신의 용량이 그것을 아주 많이 초월했을 때, 마치 사람이 분자를 보는 것처럼 당신이 되돌아본다면, 이런 별들은 미시적인 입자의 구조와 대동소이(大同小異)하지 않겠는가? 사람은 또한 그처럼 큰 지혜와 상상력이 없다. 내가 말한다면 불타(佛陀)야말로 가장 큰 과학자이다. 인류의 과학은 인류 자신을 봉폐했다. 인류의 실증과학은 인간에게 많은 오류를 조성케 했으며, 여기로 국한했다. 당신이 그것을 초월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비과학적이라고 말하며 바로 이런 소위 과학으로 갈수록 자신을 더욱 심하게 봉폐함으로써 우주의 진상을 더욱 인식할 수 없게 한다. 현재의 실증과학은 인간의 발전이 진화해 온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진화론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은 진화해 온 것이 결코 아니다. 인류는 역사상 끊임없이 여러 차례 문명이 나타났으며 매 문명시기마다 부동한 내용이 있었다. 나는 말을 한 김에 여러분들로 하여금 좀 더 이해하게끔 하려 한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문화층차가 비교적 높고 이해능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박수) 나는 이 방면을 좀 많이 말하고자 한다.

우주의 구성은 지금의 과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대폭발로 형성된 것이 전혀 아니다. 사람은 원숭이에서 진화해 온 것이 전혀 아니다. 애초에 다윈이 진화론을 내놓을 때 진화론은 흠집투성이였다. 그 자신 역시 전전긍긍하면서 내놓은 것이며 그 속의 가장 큰 결함은 바로 원숭이가 사람으로 진화되는 중간의 상당히 긴 역사과정이 없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도 실물이 나타나지 않았으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모두 찾을 수 없었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마치 진리처럼 믿고 있다. 현재 실증과학은 한 가지 가상이고 인류의 방향은 잘못된 것으로 우주의 진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다른 공간의 존재를 승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똑똑히 말할 수 없는 다른 공간의 각종 현상은 오히려 인류 이 공간으로 반영되고 있으나 사람은 오히려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것을 승인하지 못하며 그것은 과학이 아니라고 여긴다. 만약 현대의 과학방법으로 인식할 수 없는 것을 인식했다면 그럼 그것은 모두 과학이 아니란 말인가? 왜냐하면 과학이 과학에게 정의를 내림으로써 사람이 초월하여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우주를 말할 때 소우주(小宇宙)의 개념을 논한 적이 있다. 이 소우주가 얼마나 큰지 사람은 감히 상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물론 사람의 사상 역시 줄곧 우주가 얼마나 큰지 탐구하려 하지만, 내가 말하는 소우주는 현대 과학 중에 아직 이 개념이 없다. 과학은 이 우주란 바로 눈으로 본 우주라고 여기고 있다. 내가 말한 이 우주 그것은 얼마나 큰가? 인류의 숫자, 인류의 언어로는 형용할 수 없다. 하지만 대략적인 구조를 말할 수 있다 ── 여러분은 소우주 중에 은하계와 같은 성계(星系)가 얼마나 있는지 아는가? 아마 여기에 앉아 있는 이 방면의 전문지식을 갖춘 사람은 책에서 배웠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것은 같지 않다. 은하계와 같은 성계는 현재 이 소우주 속에 27억여 개 내지 30억 개가 못 되게 있다. 이는 사람의 눈으로 물체를 보는 방식을 사용하고 사람이 인식할 수 있는 일종 성체(星體) 구조의 형식으로 말한 것이며, 장래의 우주는 또 이 숫자와 같지 않다. 석가모니는 한 마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는 여래불(如來佛)이 갠지스 강의 모래처럼 많다고 했다. 석가모니 역시 여래불이다. 그는 여래불이 갠지스 강의 모래처럼 많다고 했다. 이는 불안(佛眼)으로 물체를 보는 방식으로 본 것이다. 사실 누락 없이 본다면 소우주 내의 성체(星體)는 모래처럼 많으며 마치 분자의 밀도와도 같다. 이 소우주의 범위 그것 역시 외각(外殼)이 있다. 그럼 그것이 이 우주의 가장 큰 범위인가 아닌가? 물론 아니다. 더욱 크고 광활한 공간에 서서 이 소우주를 본다면 역시 단지 거대한 공간의 한 입자에 불과할 뿐이다. 

그럼 우주 밖은 무엇인가? 아득한 시공(時空)의 과정을 거쳐 먼 곳에서 본다면 마치 반짝이는 한 점을 발견한 것과 같다. 그것과 더욱 가까이 접근하면 이 반짝거리는 점이 갈수록 더욱 크고, 더욱 크고, 더욱 큰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때에 그것 역시 우주이며 우리 이 우주의 크기와 비슷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우주가 얼마나 있는가? 여전히 사람의 눈으로 물체를 보는 방식으로 말한다면, 이러한 우주가 대략 3000개 있다. 이는 모두 사람의 인식과 일종 물질 요소에 대한 인식의 개념적 숫자이다. 우주의 구조는 극히 복잡하다. 이 밖에 또 한 층의 외각(外殼)이 있는데 이것이 제2층 우주를 구성한다. 그런 다음 이 제2층 우주 밖의 더욱 큰 범위에 그렇게 큰 우주가 또 3000개 있으며 또 제3층 우주를 구성한다. 이것은 그 무슨 얼마나 되는 층의 공간이 아니다. 속인사회의 종교에서 말하는 9층천(九層天)은 내가 이 한 층 입자로 구성된 면으로 그것에 대응시키자면, 이 9층천은 바로 삼계 내 그 중 한 층 입자로 구성된 공간이 대응하는 9대행성의 범위이다. 우리 태양계는 수미산(須彌山) 남쪽에 있다. 나는 늘 생명과 우주는 영원히 인류의 미혹이고, 사람은 영원히 우주의 진상을 인식할 수 없으며, 또한 생명을 구성하는 가장 본원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밝혀내기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사람은 영원히 과학기술을 그처럼 미시적으로 발전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생각할 것이다. ‘오래도록 이처럼 내려간다면 인류의 과학기술이 더욱더 높아지지 않겠는가?’ 사실 그렇지 않다. 인류의 과학기술은 외계의 생물이 직접 조종하고 있지만, 사람의 과학과 이러한 외계 생물 역시 동시에 신(神)에 의해 일찍이 배치된 것이며 과학기술은 단지 신(神)이 배치한 대로 따라갈 뿐이다. 인류사회는 다만 천상변화에 따라 협력하고 운동할 뿐이며, 과거의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으로, 오늘날 역사 역시 더 이전 역사의 반복과 수정(修正)일 뿐이다.

내가 방금 말한 이러한 것들은 당신들의 사상을 열어주고자 하는 데 있으며 당신의 수련에 좋은 점이 있다. 우주는 인류가 인식하는 것처럼 그렇지 않다. 그럼 이 우주는 도대체 얼마나 큰가? 내가 여러분에게 우주의 개념을 말한다면, 억만 층의 범위가 더 있다 해도 역시 다만 거대한 천체 속의 먼지 한 알에 불과할 뿐이다. 사람에 대해 말한다면 나는 이치와 한 무리 숫자로써 당신에게 말해줄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이미 감수할 방법이 없으며 사람은 또한 영원히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신(神)처럼 그런 신체(神體) 구조가 없으므로 사유용량과 지혜를 전혀 감당해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 또한 그런 사유형식이 없으며 사람의 대뇌 역시 거대한 개념을 감당해 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수련인이 그처럼 고층차에 도달했을 때, 대뇌며 사상이며 신체가 모두 고에너지체로 이루어졌을 때에야, 비로소 그처럼 큰 에너지, 그처럼 큰 체적, 그처럼 큰 지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대뇌는 인류보다 높은 것에 대한 많은 감수와 고층에서 펼쳐지는 현실을 용납할 수 없다.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지식 역시 제한적이다.

다른 한 방면으로 만일 사람이 그렇게 높이 인식하고자 한다면, 사람은 곧 그렇게 높은 도덕 경지가 있어야 한다. 신(神)은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의 마음을 갖고 부처의 층차에 도달하게 할 수 없다. 인류의 과학기술을 부처처럼 높게 발전시키자고 말한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여러분 알다시피 사람은 사람의 정(情)이 있는가 하면 또한 각종 집착심이 있고 칠정육욕이 너무나도 많으며 또 쟁투심이라든가 질투심 이런 것들이 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만일 정말로 부처의 경지에 이르게 한다면 부처 세계를 어지럽힐 것이 아닌가? 당신이 부처 거기에서 어떤 일로 인해 질투심이 일어나 부처와 모순이 발생할지도 모르는데 그것은 절대로 허용할 수 없는 것이다. 색(色)에 대한 마음이 제거되지 않아 대보살이 더없이 예쁜 것을 보고 신(神)에 대해 색심(色心)이 일어난다면 이는 천상에서는 절대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사람의 기술은 영원히 신과 부처의 경지까지 발전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인류의 과학기술 수단은 영원히 당신이 신(神)의 경지에 도달하게 할 수 없는 것으로 이 점은 확실하다.

나는 방금 상생상극의 이 이치를 말했는데 지금 이어서 말하겠다. 대단히 높은 경지 중에서는 생명의 존재 역시 아주 간단하며 사상 역시 아주 간단하고 청정(淸淨)하지만 지혜는 극히 크다. 아래로 내려오면 동일한 생명의 양면성이 나타날 수 있으며 더 아래로 내려가면 그것이 두 가지 부동(不同)한 물질요소로 변한다. 우주 천체가 대단히 크기 때문에 더 아래로 내려갈 때 두 가지 부동한 물질은 점점 대립성이 나타난다. 더 아래로 내려가면 두 가지 부동한 대립성 물질, 그것의 부동한 특성이 더욱더 뚜렷해지며 정부(正負) 생명의 존재형식으로 나타난다. 더 아래로 내려가면 부처(법왕)가 있고 또한 마(마왕)가 있으며 동시에 여러 가지 대립요소가 나타난다. 예를 들어 음양(陰陽), 태극(太極) 등이다. 더 아래로 내려가면 상생상극의 이치가 생기며 두 가지 부동한 물질의 모순성 역시 갈수록 더욱 커진다.

더욱이 인류사회에 이르렀을 때 이 상생상극의 이치는 상당히 뚜렷하다. 한 사람이 한 가지 좋은 일 혹은 한 가지 나쁜 일을 성사시키려면 당신은 상대적인 모순을 극복해야만 이 일을 완성할 수 있다. 개인, 단체, 현대사회의 한 회사 혹은 한 정부를 막론하고 한 가지 일을 성사하려면 당신은 많은 모순을 극복해야만 비로소 이러한 일을 이룰 수 있다. 오로지 하늘의 뜻에 따르는 것만이 순조로울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통쾌하고도 통쾌하게 무슨 일을 하기만 하면 이루어지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사람 이 한 층의 이치에서 말한다면 사람은 좋지 않은 일을 하여 굉장히 많은 업을 빚졌기 때문에 무엇을 할지라도 빚을 갚아야 한다. 왜냐하면 상생상극의 이치는 거의 없는 곳이 없는 것으로 사람이 무엇을 하든지 모두 어렵다. 그럼 그것은 어떤 좋은 점이 있는가? 법리는 원용(圓容)한 것이다. 다른 한 방면으로 말하자면, 한 생명이 상대적인 모순을 극복하고 나서 얻고자 하는 것을 얻어야만 비로소 얻음이 쉽지 않음을 느낄 수 있으며, 비로소 그것을 소중히 여길 수 있고 비로소 얻은 후의 만족과 승리 후의 희열과 행복을 알 수 있다. 만약 이런 대립성의 존재가 없다면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라. 무엇을 하려고 하면 곧 하고 하기만 하면 성사되며, 무엇을 하고 싶다고 바로 한다면 당신은 어떤 일을 쟁취할 필요가 없다. 무엇을 하든지 간에 모두 아주 쉬우며 무엇을 해도 모두 곤란이 없다면, 당신은 사는 재미가 없다고 느낄 것이다. 바로 당신이 얻음이 쉽지 않음으로써 당신은 비로소 행복을 느끼는데, 이것이 바로 인류가 생존하는 상태이다. 이 때문에 사람 또한 활력 있게 살 수 있다.

방금 말한 이런 것을 통해 나는 여러분이 자신의 사상을 넓히고 수련 중에서 정진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이런 것들을 말하자면 할 말이 너무나 많기에 어떤 때 나는 이것을 말하고 싶기도 하고 또 저것을 말하고 싶기도 하다. 시간이 아주 짧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하려고 한다. 여러분이 여기에 올 때 많은 문제를 갖고 왔으며 나를 보면 또 많은 문제를 묻고자 하므로 나는 되도록 시간을 여러분에게 주려한다. 내가 당신들에게 문제를 해답해 주겠다. 여러분은 모두 진지하게 들어야 한다. 이것 역시 설법이며 아울러 겨냥성이 있다. 그럼 이어서 나는 여러분의 문제에 해답해 주겠다. 일어서서 큰 소리로 여러 사람이 다 들을 수 있도록 말하거나 또 쪽지로 전해도 된다.

앉은 자리에서 손을 들고 물어도 된다. 쪽지를 너무 길게 쓰면 읽는 데 시간이 걸리므로 여러분은 쪽지를 쓸 때 단도직입적으로 첫째는 무엇을 묻고 둘째는 무엇을 묻는다고 간단히 쓰도록 하라.

제자: 나이가 많아 원만하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부: 이 수련생은 대표성을 띤 문제를 제출했다. 이 자리에는 나이가 많은 사람이 비교적 많다. 그가 제출한 문제는, 바로 나이가 비교적 많아 원만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는가이다. 수련은 아주 엄숙한 일이다. 지금 중국 대륙에서처럼 여러 사람이 뒷거래만 하면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안 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말로 착실하고도 착실하게 당신 자신을 수련해야만 비로소 된다.

이 문제를 해답하는 동시에 나는 먼저 수련과 일의 관계를 말하겠다. 수련은 당신의 정상적인 생활에 영향주지 않는다. 당신이 사회에서 회사를 설립하거나, 당신이 정부에서 큰 직책을 맡거나, 당신은 인간세상의 어떠한 일 중에서도 모두 수련할 수 있다. 과거에 예수는 이런 한 마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는 돈 있는 사람이 천국에 가기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왜 이 말을 했는가? 왜냐하면 많은 사람이 돈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당신에게 돈이 얼마나 많이 있어도 괜찮다. 당신 집의 방에 돈을 쌓아놓거나, 당신 집의 길을 금으로 깔거나, 당신이 맡은 관직이 아무리 커도, 당신이 대통령이 되었다 해도 당신은 모두 좋은 사람으로 될 수 있으며 당신은 그 환경 속에서 당신 그 계층의 모순 중에서 모두 자신을 수련할 수 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우리 이 자리에는 같지 않은 계층의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다만 밥벌이만을 위한 것이라, 하층 생활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부 모순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 한 계층의 사람 그가 능히 모순과 고통 속에서 좋은 사람이 되도록 견지하면서 수련의 표준에 도달한다면 최후에는 원만을 이룰 수 있다. 그렇다면 중산계층의 사람 그 역시 그 계층의 모순이 있으며 그들이 이러한 모순 속에서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어 제고하여 올라올 수 있다면 역시 수련할 수 있다. 나는 어떤 한 계층 중의 사람이든지 모두 제고하여 올라오고 모두 수련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대통령도 그의 그 소그룹 속에 역시 고뇌가 있으며 역시 그의 그 계층의 모순이 있으며, 국가와 국가 사이에, 민족과 민족 사이에 모두 모순이 있는 것으로 인류는 모두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세상에 사는 것이 바로 고생이다. 때문에 모두 수련할 수 있다. 나의 이것은 제자들에게 종교의 틀에서 벗어나 수련을 인식하며 진정한 사람의 수련을 실현하라는 것이다.

그럼 나이가 많은 사람의 수련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의 공(功)은 성명쌍수(性命雙修) 공법이라, 수련하는 한편 수명도 연장하므로 이 시간이 충분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전제는 나이가 많은 사람은 더욱 정진해야 하며 수련을 엄숙하게 대해야 한다. 만약 나이가 많은 사람이 어떤 원인으로 인해 정말로 원만하지 못했다면, 만약 백년 후 임종하기 전에 나는 다음에 꼭 수련하겠다고 맹세한다면 그는 法輪(파룬)을 갖고 환생할 수 있으며 수련의 것들을 지니고 환생하여, 전생에 이어 수련할 수 있다. (박수) 또 하나는 사람이란 실로 너무나도 고생스러워서 오려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는가? 얼마만큼 수련했으면 그만큼 얻는다. 그럼 그가 현재 수련한 층차가 어느 층차에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만약 삼계의 어느 한 층 하늘이라면 곧 그 한 층의 하늘에 가서 그 한 층의 생명이 된다. 만약 당신이 삼계를 벗어날 수 있으나 원만의 과위가 없다면 당신은 아마 천국세계에 가서 중생이 될 것이다. 그 세계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 속에 모두 불(佛) · 보살(菩薩)이고 다른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는 무량한 중생이 있으며 굉장히 번창한 아름다운 세계로 그 속에는 천인(天人) 백성이 있다. (박수) 그러나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그들 역시 신(神)이므로 세인들과는 비할 수 없으며 그들은 단지 과위만 없을 뿐이다. 당신의 문제를 기본적으로 다 해답했다. (박수)

제자: 진수제자(眞修弟子)는 병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사부: 중국 대륙의 여러 곳에서 사람들은 한 가지 설을 형성했다. 어떤 사람이 병이 낫지 않을 때면 주위 사람이 곧 그에게 알려준다. “당신은 빨리 가서 法輪功(파룬궁)을 배우세요, 배우기만 하면 효과가 있어요.” 왜 이럴 수 있는가? 이는 法輪功(파룬궁)이 수련인의 신체에 대한 조절이 아주 빠르기 때문이다. 목적은 조절한 후에 즉시 수련으로 진입시키려는 것이며, 속인이 인식하는 이런 것과 똑같은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연공하러 왔을 때 병을 치료하려는 어떠한 생각도 가지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왜냐하면 수련은 집착하지 말 것을 요구하므로 구함이 없어야만 치료될 수 있다. 구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집착심이므로 효과는 좋지 못하다. 나는 병을 치료하러 왔다고 한다면 당신은 집착이 있는 것이다. 대법(大法)을 세상에 전하는 것은 사람의 병을 치료해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제도하려는 것이다. 병을 제거해 주는 것은 제도 받는 자의 신체를 조절해 주는 것이다. 집착을 위해 왔다면 이 병이라는 것을 잡고 놓지 않는 것과 같으므로 병을 제거할 방법이 없다.

인류의 이념(理念)과 우주의 이치를 서로 비교하면 반대로 되는 것으로 구할수록 더욱 없다. 당신이 오직 이 마음을 내려놓을 때에야 당신은 비로소 이 병을 내려놓게 된다. 수련하러 왔다면 병을 치료하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말하자면 구하고자 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병이 있는 사람은 연공 중에 병이 있는 일을 개의치 말아야 한다. 당신이 구하고자 함이 없이 당신이 그것을 상관하지 않고 당신이 연공하는 일만 생각한다면 연마할수록 더욱 좋아질 것이다. 아마 연공을 마치고 돌아간 다음 하룻밤 사이에 어떤 병이든 다 사라질 수 있다. (박수) 이런 현상은 중국 대륙의 많은 곳에서 사람들이 모두 전하고 있으며 아주 신기하게 여겨 많은 사람들이 모두 배우고 있다. 그러므로 배우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졌다.

나는 바로 이 이치를 말한 것이다. 즉 구하고자 함이 없어야 가장 빠르며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아마 늦을 것이다. 내가 병을 보는 견해는 이러하다 ─ 내가 제자에게 이러한 일을 해줄 때 역시 병을 제거한다고 말하지 않고 수련인의 本體(번티)를 정화(淨化)한다고 하는데, 정화의 목적은 수련의 기초를 닦기 위해서이다. 병이 있는 신체를 갖고는 공이 나올 수 없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신이 연공하러 왔으면 연공하도록 하라. 당신은 어떠한 집착도 갖지 말아야 하며 또한 무슨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음이 가장 좋다. 이러면 내가 당신의 신체를 정화해 줄 수 있으며 거의 병이 없는 상태까지 정화해 줄 수 있다. 하지만 개별적인 사람은 당신의 수련에 영향을 주지 않는 상황에서 아마 아직도 당신에게 좀 소업(消業)해야 할 것과 병이 있는 감각을 남겨둘 수 있다. 왜 좀 남겨두는가? 왜냐하면 어떤 수련인은 오성을 제고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한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만약 한 사람의 표면신체에 모두 병이 없을 때면 바로 초상적인 것으로서 소업하는 감각마저 다 없다면 그것은 수련이 아니다. 그럼 물론 믿게 되는데 이래도 아직 믿지 않겠는가? 끝까지 믿을 것이다. 때문에 어떤 개별적인 사람은 정황에 따라 수련에 쓸 고만한 일부 요소를 남겨둘 필요가 있는데 당신이 믿는지 믿지 않는지를 본다. 목적은 수련인으로 하여금 깨달음으로써 걸어 나오게 하는 것인데 이러한 것이 아닌가?(박수)

그러나 또 한 가지 문제를 내가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하겠다. 사람은 수련할 때 여전히 일부 번거로운 일에 부딪힐 수 있으며 또한 난(難)이 있을 수 있다. 이 난은 두 가지 방면으로 표현된다. 하나는 신체적으로 나타나는 불편이고, 하나는 다른 사람이 당신을 화나게 하는 것이다. 신체적으로 불편한 원인을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는데 병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표현되는 것은 병과 마찬가지이다. 여러분은 그것이 소업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다. 무엇이 소업인가? 사실 나는 당신의 전반 신체를 정화하고자 한다. 사람이 속인 중으로 환생하는데 환생 중의 일생일세(一生一世), 일생일세라든가, 어떤 사람은 이십 몇 세(世)이며 어떤 사람은 삼십 몇 세(世)이며 심지어 더욱 오랜 사람도 있다. 그처럼 여러 차례 환생하는데, 사람 중에서 환생하고 환생하면서 매 한 차례 모두 대량의 업을 빚는다. 물론 매 한 세(世) 중에 병이 있거나 고통이 있을 때는 업을 좀 없앨 수 있지만 매 한 생(生)마다 모두 아주 많은 것으로 많이 누적되면 병이 생길 수 있다. 사람이 병이 있을 때면 의사를 찾아가 병을 보게 마련이다. 의사가 병을 볼 때면 단지 사람의 신체 표면을 처치해 줄 뿐이다. 사람은 병이 생긴 고통으로 인해 역시 일부 업을 없앨 수 있다. 그러나 다수 업력과 본질적으로 병을 조성한 근본 원인은 다른 공간에 있기에 그런 것들을 의사는 고치지 못하는데 병이 생기는 근본 원인은 거기에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생생세세 모두 일부 업을 남기게 된다.

여러분은 지금 사람의 이 신체가 어떠한 모양인지 아는가? 내가 강의할 때 본 어떤 수련생의 골수(骨髓)는 그 속에 모두 한 덩이 한 덩이의 시꺼먼 것들이 있다. 물론 이 공간에서는 보아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업력은 다른 공간에서 체현되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람의 신체는 미시적인 입자에서 표면입자에 이르기까지, 작은 데에서 큰 데 이르기까지 한 층 한 층 입체적으로 본다면, 마치 나이테의 동그라미처럼 매 한 층이 모두 깨끗하지 않다. 나는 가장 중심에서부터 당신의 신체를 정화해 주고 있다. 만일 당신이 수련하지 않는다면 당신에게 이러한 일을 해줄 사람이 없다. 과거 불교에서는 사람은 일세(一世)에 수련할 수 없다고 말했는데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정화할 수 없으며 제고하기란 더욱 어려웠다. 만일 수련하려 한다면, 반드시 정법(正法)이 있어야만 했다. 당신들이 대법(大法) 중에서 수련하려 한다면 나는 당신들의 이 신체 속에 쌓인 업력, 조성된 오염, 신체가 좋지 못하게 된 일체 원인을 모두 밀어내 주어야 한다. 단번에 당신의 표면물질 신체에서 밀어낸다면 사람은 견뎌내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밀어내는 과정 중 대부분은 다른 공간에서 이동해 가며 당신의 신체를 떠나 이동하는데, 다만 극히 적은 일부분만 당신의 신체 표면에서 밀어낸다.

왜 표면에서부터 가는가? 모두 다른 공간에서부터 가면 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한다면 하늘의 이치에 부합되지 않는다. 얻은 것이 있으면 잃어야 하며 빚을 졌으면 곧 갚아야 하는데 이것이 하늘의 이치이다. 사람이 업을 빚었다면 갚아야 하며 수련하는 사람은 특히 이러하다. 사실 나는 당신에게 단지 조금만 갚게 하는데 곧 당신이 갚은 것으로 친다. 왜냐하면 당신은 수련하려는 이 소원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당신에게 표면적으로 조금만 감당하라고 했지만 당신은 또한 갑자기 신체가 중병을 얻은 것처럼 괴로워 견디지 못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그야말로 살지 못할 것처럼 여긴다. 오성이 좋은 사람은 알고 있다. ‘내가 기왕 수련을 했으니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나는 법도 들었고 나는 책을 읽었으며 나는 이치도 다 알고 있으므로 내가 또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바로 이처럼 소박하고 확고한 일념(一念)이다. 그러나 그것은 금보다 더 빛난다. 그는 약도 먹지 않고 의사에게 가보지도 않았지만 갑자기 아무 일도 다 없어졌다. 한 차례 큰 난이 지나갔으며 한 덩이의 큰 업이 사라졌는데 더욱 큰 업은 다른 공간에서 밀어냈다. 사실 표면에서 나온 것은 단지 조그마한 것뿐이지만 이 업을 없애버린 것으로 치며 이것을 당신이 갚은 것으로 친다. 그러므로 수련과정 중에서 어떤 사람은 신체적으로 괴로운 정황이 나타날 수 있는데 이런 괴로움은 그 어떤 병과도 다 같지 않다. 때문에 이런 정황이 나타날 수 있는데 그 속에는 또한 당신이 근본적으로 견정한 정도를 고험하는 것이 있으며 난(難) 속에서 당신이 자신을 연공인으로 간주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보며 이때에 당신이 또 이 법을 믿는가, 믿지 않는가를 본다. 부처수련이란 바로 아주 엄숙한 일이다.

世間法(쓰젠파) 이외의 수련은 신체가 고도로 정화된 것이며 또 나한체(羅漢體)라고도 부른다. 그 때의 신체는 이미 고에너지물질의 신체로 승화되었으며 속인의 조그마한 세포마저도 다 없다. 표면적으로 볼 때에 속인과 같지만 또 같지 않다. 이때에는 더는 병업이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세간의 병은 이미 당신의 이 고에너지물질로 구성된 신체를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世間法(쓰젠파)를 벗어나면 이미 모든 병업을 다 밀어낸 것이다. 世間法(쓰젠파) 수련에서는 신체에 불편함이 나타날 수 있고, 혹은 놀람은 있으나 위험은 없는 어떤 일에 부딪칠 수 있다. 그때 당신은 두렵지 않겠지만 다른 사람은 겁이 나서 야단인데, 이런 일이 나타날 수 있다. 대법 진수제자(眞修弟子)들은 그렇게 많은 사람이 수련해도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오직 당신이 수련하기만 하면 나는 당신을 보호해 준다. 물론 당신이 수련하지 않는다면 나 또한 당신을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수련하는 사람을 위해 이런 일을 한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다른 사람을 끌고 와서 병을 치료해 달라고 하지 말라. 속인의 일을 나는 지금 관여하지 않으며 당신들도 법을 파괴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 그가 만일 수련하지 않는다면 그는 그 자신이 한 일체를 감당해야 하는 것으로 그가 어떤 일에 부딪히든지 간에 모두 인연관계가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다 해답해 주었다.

제자: 오늘 여러 사람들을 위해 신체를 정화해 주실 수 있습니까? 더욱이 다른 공을 배워서 남긴 것들을 말입니다.

사부: 여러분은 아무튼 걱정하지 말라.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당신이 이곳에 앉아서 강의를 다 들은 후 나갈 때는 틀림없이 변한다. 여기까지 말하여 나는 정진하지 않는 수련생들에게 알려주겠다. 왜냐하면 당신이 수련하는 사람이 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에 대하여 오히려 엄격하게 요구할 수 없는, 배우는 둥 마는 둥, 닦는 둥 마는 둥 하는 이들은 신체에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원인은 당신이 진수(眞修)하지 않아 신체가 속인상태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이때 당신은 신체가 어째서 늘 좋지 않을까라고 여길 것이다. 수련은 엄숙한 것이다. 왜 좋지 않은가? 이는 당신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당신은 법을 믿는가, 믿지 않는가? 당신이 수련인임을 믿는가, 믿지 않는가? 당신의 마음은 그렇게 안정되었는가? 당신이 정말로 견정(堅定)하게 수련할 수 있고 사람 마음을 모두 내려놓는다면 1초도 안 되어 당신의 병 증상은 모두 사라진다. (박수) 수련은 대충대충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당신이 수련 중에서 ‘이 법이 그러한 것인가 아닌가?’하며 심신(心神)이 불안정하다면 당신은 “내가 수련하는가, 수련하지 않는가? 내가 지금 속인인가 아니면 수련인인가?”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진정한 불법수련은 말법시기의 종교처럼 그렇게 제멋대로가 아니며 수련은 아주 엄숙한 일이다. 만약 당신이 견정(堅定)하지 않다면 모두 허사이다. 만약 당신이 명(名)·이(利)·정(情)을 내려놓을 수 있는데 당신이 원만하지 못한다면 나마저도 불평할 것이다. 사람이 명(名)·이(利)·정(情)을 내려놓음은 생명을 내려놓는 것과 같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바로 돈이요, 명예요, 사람의 정 이런 것을 위해서가 아닌가? 당신이 그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데 당신이 여전히 사람일 수 있겠는가? (박수) 사람은 이런 것을 위해 산다. 오로지 신(神)만이 이러한 것이 없다. (박수) 그러나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신(神)도 사람이 상상하듯이 조각상처럼 거기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하늘을 모르지만 무척 아름답다. 그들이 놀면 사람보다 더 잘 놀지만 그곳은 오히려 고상하고 자선(慈善)하며 더없이 아름답다. 바로 그들에게 그렇게 높은 경지가 있기 때문에 그들은 능력이 있다. 그들의 신체는 떠다닐 수 있고 날아다닐 수 있으며, 곳곳마다 모두 그렇게 아름다운데 사람의 언어로는 형용할 수 없다. 그곳의 색깔이 사람 여기에는 전혀 없다. 신(神)의 형상은 모두 아주 예쁘고 아주 아름답다.

우리 이 자리에는 나이가 아주 많은 사람이 있고 물론 또 젊은이도 있다. 수련 중에서 사람의 몸은 당신 선천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는데 사람이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더욱 젊다. 정말로 당신의 선천적인 본래 모습으로 돌아갔을 때, 당신은 당신이 아주 젊은 것을 발견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비록 나이가 아주 많지만 그의 元神(왠선)은 오히려 젊거나 혹은 어린아이이다. 여러분은 많은 노인들이 노년 치매에 걸리는 것을 안다. 사람들은 늙은 아이라고 부르는데 아이들과 먹을 것을 다투고 아이들과 함께 논다. 무엇 때문인가? 사람들은 이 사람이 늙었고, 아주 늙었다고 말하는데, 현대과학으로 그것을 해석하면 바로 그러하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사람이 늙어 집착심을 내려놓게 되었고 사람이 된 일체 목적, 추구가 없어졌다. 그가 전부 내려놓을 때 그의 본성이 곧 되돌아 나온다. 아마 그의 元神(왠선)이 본래 바로 어린아이일 수 있다. 그러므로 그는 늙은 아이 같은 그런 것이 나타날 수 있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정말로 이렇다. 수련 중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더욱 예쁘고 더욱 젊다. 어떤 사람은 한층 아래의 생명을 보았을 때 머리도 잘 빗지 않고 마구 헝클어졌다고 말하는데, 이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욱 보기 흉하기 때문이다. 수련 중에서 위를 향해 올라갈수록 더욱 아름답다. 단지 신체에 병업이 없을 뿐만 아니라 더욱더 순정(純淨)하다.

“더욱이 다른 공을 배워서 남겨진 것들”이라고? 당신이 오로지 진정으로 수련하기만 하면 이런 것들을 나는 모두 당신에게 정리해 줄 수 있다. 이런 것들은 마음에 두지 말고 또한 더는 그것을 생각하지 말라. 당신은 당신의 사상에서 그것을 내려놓으라. 당신이 만약 전적으로 이 일 때문에 온 것이라면 안 된다. 만약 당신이 그것에 너무 집착하면 바로 자신이 붙잡고 놓지 않는 것으로 내가 당신에게 제거해 주어도 당신 역시 마음이 든든하지 못하다고 느낄 것이다. 진정으로 수련하고자 하면, 나는 당신에게 그 어떤 좋지 못한 것이든 다 제거해 줄 수 있다.

제자: 우리가 이번에 와서 법을 듣는데 당신께선 모든 이에게 法輪(파룬)을 주실 수 있습니까?

사부: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이곳에 와서 법을 듣는 이와 오지 못한 이들을 나는 다 책임질 것이다. 단지 法輪(파룬)을 줄 뿐만 아니라 대법(大法)을 수련하면 나는 또 전면적으로 수련생들의 신체를 조절해 주어야 한다. 때문에 당신이 나를 만나거나 나를 만나지 않거나 다 마찬가지이다. 진정으로 수련만 하면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을 모두 준다. 중국에서 내 강의를 들은 사람은 단지 몇 만 명에 불과하지만 지금 수련하는 사람은 전 중국 곳곳에 다 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두 나를 만나지 못했지만 그들은 대법(大法)을 수련함에 필요한 일체가 다 있다. 내가 이렇게 큰 법(法)을 전하면서 무엇이든 다 나 주체(主體)가 와서 한다면 다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매 사람을 일일이 만날 수 없다. 나는 당신들에게 法輪(파룬)을 넣어주는데 당신이 수련하고 당신이 이 책을 보고 당신이 법(法)이 좋음을 느끼고 당신이 대법(大法)을 수련하고자 하면, 당신이 정말로 이 일념(一念)을 움직였다면, 당신은 당신의 신체에 같지 않은 느낌이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나는 또 당신에게 法輪(파룬)만 넣어주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수련하지 않는 사람이, 수련에 필요한 기제(機制)가 없는 신체로 무엇을 연마해 낼 수 있겠는가? 法輪(파룬)은 내가 당신에게 준 모든 일체 것들의 뿌리이다. 또 당신의 업력을 제거해 주고, 당신에게 인간세상과 각 층 공간의 은혜와 원한(恩怨)과 각종 연원(淵源)관계를 매듭지어 주고, 당신에게 체내 체외에서 당신의 전반 신체를 이끌어 변화할 많은 기제(機制)를 주고, 또한 당신의 그 단전(丹田) 등 부위에 물체를 넣어주어야 하는바, 씨앗처럼 만 가지가 넘는 것들을 생기게 하고, 장래에 또 당신들을 지옥에서 제명해 주어야 한다. 이는 당신들에게 알릴 수 있는 것이며, 또 더욱 많고 더욱 많은 것들을 당신들에게 해주어야만 당신들은 진정으로 수련할 수 있고 대법(大法) 중에서 진정으로 수련해 낼 수 있다.

가끔 나는 그 가짜 기공이 사람을 속인다고 말하는데 그들은 정말로 사람을 속인다. 그가 당신에게 무엇을 해주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런 것들을 사람에게 주지 않으면 사람이 어떻게 연마하겠는가? 연마해 낼 수 있겠는가? 아울러 수련 중에서 당신을 보호하지 않으면 생명에 위험이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은 업을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을 보호하지 않으면 당신이 이전에 빚진 명(命)을 어떻게 하겠는가? 지금 사람 중 명(命)을 빚지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생생세세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업이 있는가. 인간세상은 곧 험악하다. 만일 사람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면 바로 사람을 해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바로 사람을 해친다고 말한다. 당신들은 대법(大法)을 수련하므로 이 일체를 여러분에게 모두 해결해 줄 것이다. 오로지 당신이 진정으로 배우기만 하면 당신은 얻을 수 있다.

이 자리에 앉은 일부 사람들은 교육수준이 비교적 높은데 이 현대이론에 의해 제한받지 말아야 한다. 『전법륜(轉法輪)』 이 책을 만약 천목이 열린 사람이 보면, 당신은 그가 매 한 글자마다 모두 만(卍)자이며 매 한 글자 또한 모두 부처임을 발견할 것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 법(法)이 얼마나 큰 힘이 있으며, 이 책에 얼마나 많은 부처가 있는가? 아울러 매 글자 모두 층층의 부처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우주 부동한 층차의 이치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수련 중에서 매번 제고할 때, 이때 당신이 책을 보면 동일한 한 마디 말이 원래 당신이 책을 보았을 때의 뜻과 같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으며, 당신은 또 새로운 인식이 있을 것인데 이는 다른 한 층의 의미를 말하는 것이며 매 한 글자 속에는 모두 층층첩첩 무수한 층의 부처가 있다. 물론 속인은 볼 수 없다. 때문에 나는 여러분에게 이 책이 몹시 소중하다고 알려준다. 이전에 강의할 때 어떤 사람은 그를 엉덩이 밑에 깔고 앉았는데 당신은 이 법(法)이 무엇인지 아직 인식하지 못했다. 당신이 인식했을 때 당신은 이 일체가 모두 아주 엄숙함을 발견할 것이다. 수련 중에서 당신이 일념(一念)을 움직여도 그는 모두 알고 있으며, 당신이 일념을 움직이기 전에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할지 그는 안다. 사람은 사람의 사유반응이 아주 빠른 과정이라고 느끼지만 조금 빠른 공간에서 당신의 사유를 보면 아주 느린 반응과정으로, 당신이 미처 생각을 다 하지 못했지만 저쪽에서는 바로 알며, 당신이 생각을 움직이기만 하면 저쪽에서는 바로 안다.

어떤 사람이 내게 말하길, “선생님, 제가 당신께 학비를 드릴 테니 저희 집 누구누구가 오지 않았는데 당신께서 그에게 法輪(파룬)을 하나 주십시오.”라고 한다. 물론 그를 탓할 수도 없다. 그는 수련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런 것들을 줄 수 없음을 모른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당신이 몇 억을 지불해도 살 수 없다. 그는 사람 속에 없는 것으로 그는 초상(超常)적이며 신(神)의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말하자면 그의 생명은 당신 지금 사람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으로 그는 고급생명이다. 때문에 이를 어찌 가치로 가늠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한 사람이 수련하고자 한다면 나는 아무 대가 없이 당신에게 줄 수 있으며 또한 이것뿐만이 아니라 최후에 나는 또 당신이 원만을 이룰 때까지 줄곧 보호해 줄 것이다.

제자: 생명이 하늘이 준 수명에 이르지 못하고 사망한 것을 어떻게 해석합니까, 이런 사람을 어찌해야 합니까?

사부: 앞으로 여러분은 당신들의 수련과 상관없는 일을 제기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심지어 나에게 종이를 태우면 쓸모가 있는가를 묻는다. 이런 일은 대법(大法) 수련과 관계가 없으며 또한 해답할 시간이 없다. 하늘이 준 수명에 이르지 못하고 사망한 사람의 종말은 비참하다. 왜냐하면 나는 이러한 이치를 말한 적이 있는데, 한 사람이 출생할 때, 신(神)은 사람의 일생을 그에게 모두 잘 배치해 놓았다. 만약 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갑자기 사망했다면 그는 곧 극히 고통스러운 경지에 처하게 된다. 어떤 고통스러운 경지인가? 왜냐하면 생명은 배치가 있기 때문에, 당신이 먹는 것, 당신이 마시는 것, 사회에서 당신의 지위, 당신이 인생 속에서 발붙일 곳, 이러한 것들을 다 배치해 놓았다. 사람이 단번에 죽으면 이런 것들을 잃게 되고, 수명을 다하지 못하면 환생할 수 없어 망령(亡靈)은 곧 아주 황량한 공간으로 들어간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마치 사람이 화성에 간 것과 같다. 사실 화성에는 사람이 있다. 그는 다른 공간에 있는데 우리가 본 것은 마침 황량한 이쪽의 공간이다. 그렇다면 단번에 이 경지에 처했을 때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하며 아무것도 없어 그는 몹시 고통스럽다. 그러나 굶어 죽지는 않는다. 그럼 그는 이 공간에서 줄곧 기다리는데 인간세상의 진정한 수명이 다 찰 때를 기다려서야 비로소 전생(轉生)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그 고혼야귀(孤魂野鬼)를 가리키는 것이다. 과거 불교 중에서 초도(超度), 초도를 말하는데 지금의 사람은 무엇이 초도인지 잘 모른다. 이렇게 죽은 사람이라야만 비로소 초도할 수 있다. 일반 사람은 이쪽에서 죽으면 이미 다시 전생하는데 또 무엇을 초도하겠는가. 과거에 초도라고 함은 바로 이런 생명을 초도하는 것을 가리켰다.

말이 나온 김에 나는 한 가지 문제를 말하겠는데 사회문제이다. 지금 많은 국가에서 ‘안락사(安樂死)’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어떤 환자가 고통을 감당할 수 없어 그가 죽고자 함은 그 자신의 일이다. 누가 그에게 해준다면 그가 바로 살인하는 것이며 바로 살인의 대업(大業)을 빚는 것으로, 신(神)들은 모두 이렇게 본다. 아울러 그를 가장 고통스러운 경지에 처하게 하는데, 더욱 고달픈 공간에 가게 만드는 것이다. ‘안락사’를 요구하는 그 사람은 그 자신도 모르는 까닭에 그는 그곳에 간 후에 후회하며, 살아서 고통스러운 것보다 못하다고 느낀다. 왜 사람은 고통이 있는가? 사람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바로 업을 짓는 것으로, 어떤 사람은 업력이 크고 어떤 사람은 업력이 작다. 어떤 사람은 바로 죽기 전에 고통스럽다. 고통 속에서 일생동안 지은 아주 많은 업들을 갚으면 다음 생에 좋은 생활이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은 그가 빚진 업력을 사망 전의 순간에 그것을 갚아버리기 때문에 그는 다시 태어난 후 업력이 없다. 그러나 그가 고통스럽지 않으려 하고 그가 갚으려 하지 않는다면 내세에 태어날 때 그는 병체(病體)를 갖고 나오거나 심지어 장애인, 혹은 수명이 길지 못하게 된다. 사람인 그는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람은 곧 ‘현실’적인 것을 믿는다. 나는, 사람이 현재 과학의 가상(假相)에 의해 아주 심하게 봉폐되어 무슨 ‘안락사’를 만들어 낸다고 말한다. 조금도 안락하지 않다.

제자: 수련인으로서 여전히 속인사회의 일과 학습 중에서 향상에 노력해야 합니까?

사부: 그래야 한다. 나는 방금 전에 이미 이 문제를 말했다. 무엇 때문인가? 내가 이 법(法)을 전할 때 이미 이 문제를 고려했는데 배우는 사람이 아주 많고 매우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장래에 전반 인류사회에 보급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좋기 때문이며 우주의 법(法)이 사람을 수련해 주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아지면 한 가지 가장 큰 사회문제를 초래하는데 여러분이 모두 출가하면 이 인류사회는 없어지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안 된다. 마침 내가 당신들에게 속인사회 속에서 수련하라고 했기 때문에 수련하는 사람이 최대한도로 속인사회에 부합되게 수련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동시에 사람 자신으로 하여금 진정하게 법(法)을 얻게 한다.

당신은 속인의 어떤 정상적인 일이든 할 수 있고, 수련하는 사람은 그 어떤 생활환경 속에서나, 그 어떤 일 속에서나 모두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수련인으로서 당신은 어디에서나 다 반드시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수련하는 사람으로 말하면 속인사회 속에서 잘하지 못하면 그것은 반드시 자신의 책임이며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고 자신을 엄격하게 요구하지 못한 것이다. 사장이 당신을 고용했는데 당신이 남에게 잘하지 못하고, 당신이 학생인데 숙제를 완성하지 못하고 수업시간에 강의를 듣지 않는다면 그럼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좋은 사람은 그 어떤 환경 속에서도 당신은 다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당신이 학생이라면 당신은 학습을 잘해야 하고, 당신이 피고용인이라면 일을 잘 완성해야 한다. 자신과 사회, 사람의 관계를 잘 바로잡아야 하는데, 당신들은 모두 사상이 있다. 여러분이 평소에 좀 더 잘할 수 있다면 모순이 적어지고 적어지겠지만 모순은 여전히 있을 것이다.

당신들을 제고시키기 위해서도 당신들에게 일부 고험을 줄 수 있다. 수련 중에서 모순이 올 때는 흔히 아주 갑작스럽다. 그러나 당신이 수련한다면 그것은 우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수련하려고 하면 나는 곧 당신의 수련의 길을 새로 배치하고 생활의 길을 새로 배치하기 때문이다. 수련인의 제고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문제에 부딪칠 때는 흔히 갑작스럽게 나타나며 마치 우연인 것 같고 표면상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순과 구별이 없다. 절대로 신선(神仙)이 와서 당신에게 모순을 만들어 주진 않을 것이다. 표면상에서 모두 사람이 당신에게 만들어준 번거로움이라야만 당신의 제고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잘 처리해야 하는가? 당신은 평소에 늘 자비한 마음을 유지하며 문제에 부딪히면 자신을 보아야 한다. 나는 그날 여러분에게 한마디 말을 했는데, 만일 당신이 당신의 적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부처가 될 수 없다고 했다. 한 신(神) 혹은 수련 중의 한 사람이 어찌 속인을 적으로 여길 수 있겠는가? 어찌 적이 있을 수 있겠는가? 물론 지금은 아직 도달하지 못했지만 당신은 서서히 도달해야 한다. 최종적으로 당신은 도달해야 하는데, 당신의 적은 속인 중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찌 신(神)의 적이 될 수 있겠는가? 어찌 신(神)의 적이 될 자격이 있겠는가?

제자: 사부님께서 사람은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신(神)이 배치한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럼 낙태는 태아의 생명에 대하여 어떠합니까?

사부: 이미 수련을 시작한 사람을 놓고 말할 때, 이전에 무슨 일을 했더라도 우선 그것을 다 내려놓아야 한다. 과거에 무지(無知) 속에서 했다면 한 것으로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오로지 수련만 하라. 수련 중에서 끊임없이 제고하는 것이 제일위이다. 당신이 진정한 수련인일 때 나는 무엇이든 모두 당신이 해결하도록 도울 수 있으며 나 역시 해결해 줄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가 있다. 만약 잘못한 것을 알고 잘못임을 알면서도 또 저지른다면 그것은 수련인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은 것이며 그럼 수련인이 아니다.

낙태에 대해 말한다면 나는 여러분에게 내가 본 한 가지 광경을 알려주겠다. 병원에는, 많고 많은 병원의 문 앞과 실내 공중에는 많고 많은 어린 영아의 영체들이 떠다니고 있는데 어떤 것은 사지가 완전하지 않다. 이런 어린 영체들은 갈 곳이 없어 아주 가련하다. 어떤 것은 모친과 어느 일생, 어느 일세에 친인의 인연관계가 있을 것이다. 앞으로는 주의해야 한다. 당신이 수련하기 때문에 나는 당신을 도와 다 해결해 줄 수 있다.

제자: 사부님, 왜 보도원이 공법을 가르칩니까? 편차가 있을까 두렵지 않으십니까?

사부: 이 문제는 이러하다. 나는 보도원이 공을 가르칠 때 『法輪功(파룬궁)』에서 말한 대로 가르치라고 요구한다. 동작은 매 사람마다 주형에서 찍어낸 듯이 똑같을 순 없으므로 조금 차이가 있는 것은 관계가 없다. 그러나 가급적 표준적으로 해야 하고 가급적 요령에 따라 해야 한다. 왜냐하면 法輪功(파룬궁)의 연공(煉功)은 다른 공법의 연공(練功)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공법은 연마(練)하지 않으면 멈추고 수공(收功)해야 한다. 당신들은 그렇지 않다. 法輪功(파룬궁)은 법이 사람을 연마(煉)하므로 24시간 모두 공에 의해 연마된다. 무엇 때문에 그런 정도에 도달할 수 있는가? 바로 내가 당신에게 넣어준 기제(機制)가 자동적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연공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당신은 내가 당신에게 넣어준 그 기제들을 강화하고 있다. 여러분은 기억하라. 당신들의 연공은 내가 당신들에게 넣어준 그 기제들을 강화하는 것으로 진정으로 당신을 연마하는 것은 그 기제들이다. 기제가 공을 이끌어 24시간 끊임없이 사람을 연마한다. 대법(大法)연공은 그 기제들이 이끌어 연마하는 것이다. 때문에 동작이 조금 편차가 있어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반드시 되도록 정확하게 해야 하고 동작은 그래도 규범에 맞아야 한다.

제자: 많은 낙후한 지역에서 교공(敎功) 테이프를 볼 수 없어 동작은 한 사람이 두 번째 사람을 가르치고, 두 번째 사람이 또 세 번째 사람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 연공장에는 동작이 같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사부: 연공하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지고 수련생들이 서로 왕래할 것이기에, 이런 것들은 모두 아주 빨리 해결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법(法)을 얻음은 아주 쉽지 않기 때문인데, 이 점을 나는 알고 있다. 아울러 여러분은 모두 법(法)이 좋다고 느끼고 이 법(法)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려고 하며 또한 묵묵히 아주 많은 일들을 했다. 나는 모두 알고 있으며 공덕(功德)이 무량하다.

제자: 제게는 두 살 난 딸아이와 두 달 된 아들이 있는데 오늘 하마터면 그들을 데려올 뻔했습니다. 어떤 방식을 통해 어느 때에 가서야 그들로 하여금 하루 빨리 법공부와 연공을 접촉하게 할 수 있습니까?

사부: 중국 대륙에서는 세 살, 네 살에 연공하는 애들도 있다. 세 살에 연공하는 아이는 비교적 적고 네 살에 연마하는 아이는 아주 많고 매우 보편적이다. 아울러 당신은 그를 아이로 여기지 말라. 당신은 그가 마치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느낄 것이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어쩌면 그의 선천적인 본성이 좋아 어른보다 더 잘 이해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모두 아이는 접수능력이 비교적 빠르다고 말하는데 무엇 때문에 빠른가? 왜냐하면 그의 선천적인 지혜가 아직 완전히 덮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어떤 때 아이는 아주 명백하게 알고 있다. 만약 아이가 내력이 있다면 그럼 혜근(慧根)이 더욱 좋다.

제자: 천목(天目)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부동한 층차에서 천목이 열림에 따라, 연공(煉功)은 우주진상에 대해 더 깊은 인식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주진상에 대한 부처의 인식은 또 어떻습니까?

사부: 내가 여러분에게 이것을 알려주겠다. 사람이 우주의 진상을 영원히 인식할 수 없는 그것은 사람이 사람 이 층차에 있기 때문이다. 부처가 우주를 인식할 수 있음은 부처의 층차 경지가 결정하는 것이다. 저층의 신(神)은 더 고층의 우주정황에 대해 그 역시 인식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부동한 층차 중에서 수련인의 개오 혹은 부동한 층차의 각자(覺者)가 본 것은 그들이 있는 층차의 우주진상이며 그들의 위는 볼 수 없다.

그 밖에 수련과정 중에서 당신들 매 사람마다 모두 천목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마치 부처처럼 그 무엇이든 다 똑똑히 볼 수 있다면 또한 수련할 수 없으며 아주 느릴 것이다. 천목이 정말로 열리면, 보는 다른 공간은 이 사람의 공간보다 더 진실하고 입체감과 물체에 대한 느낌이 사람을 보는 것보다 더 분명하고 진실하다. 일반적인 정황에서 나는 볼 수 있는 수련생으로 하여금 다른 공간 정황의 일부를 보게 하며, 보는 범위가 아주 큰 사람은 본 정황이 일반적으로 모호하거나 혹은 낮은 층차의 정황만 볼 수 있는데 특수한 정황은 제외한다. 무엇 때문인가? 만약 사람마다 모두 이렇게 똑똑히 보게 한다면 사람들은 즉시 모두 와서 수련할 것이며 또한 아주 견정(堅定)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혹은 이미 깨져 깨달음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수련해도 인정하지 않는다. 사람은 오직 미혹 속에서만 수련할 수 있고 미혹 속에서만 깨달을 수 있으며 이렇게 고생해야만 비로소 인정해 준다. 무엇이든 모두 똑똑히 볼 수 있다면 아무리 많은 고생을 겪어도 원망이 없을 것이다. 부처의 층차에서는 왜 그가 제고하기 어려운가? 어떠한 진상도 다 볼 수 있는데 그가 어떻게 제고하겠는가? 제고한다 해도 아주 느리다. 왜냐하면 그가 고생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진상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은 비로소 수련할 수 있다. 볼 수 없는 것도 고생이며 사람은 일체가 다 고생이다.

어떤 사람은 내게, “사부님, 저도 공을 연마했는데 어찌하여 병이 낫지 않습니까?”라고 묻는다. 나는, “당신이 당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온 것인가? 아니면 수련하러 온 것인가?”라고 말한다. 만약 당신이 수련하러 왔다면 당신은 병에 대한 일을 아예 생각하지 말라. 이 일들을 완전히 생각하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좋아지며 집착이 없어야 비로소 좋아진다. 왜냐하면 당신이 아직도 원래의 그 속인 마음을 품고 당신을 연공인으로 간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사람의 집착을 제거한 후 어떠한지 보라. 어떤 사람은 잠을 자지 못하는데 잠이 오지 않으면 마침 연공하기에 좋지 않은가? 당신은 당신이 잠이 오는지 오지 않는지 보라.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바로 그러한 일념(一念)의 차이이다. 사람과 신(神)의 구별은 이 일념의 차이에 있다. 내려놓을 수 있으면 곧 수련인이고 당신이 내려놓지 못하면 당신은 바로 사람이다.

제자: 지금 전업(專業) 수련이 있습니까? 만약 있다면 제가 전업 수련제자가 될 수 있습니까?

사부: 법이 전해져 나와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바로 이렇게 수련한다. 물론 일부 비구니, 승려도 대법(大法)을 수련하고 있다. 대법(大法)수련은 형식을 중시하지 않는다. 사실 천상의 불(佛)·도(道)·신(神)은 모두 이렇게 본다. 부처는 속인 중의 형식을 중시하지 않으며 사람 마음을 닦아 버림을 중시한다. 절을 아무리 많이 짓고, 날마다 불상을 향해 머리를 조아려도 사람이 문만 나서면 제멋대로 한다면 이것은 수련이 아니다. 한 마음 한 뜻으로 당신 자신을 수련하면 부처는 보고 곧 기뻐한다. 형식에 있지 않다. 진수(眞修)하는 사람은 사부가 당신을 책임질 것이다. 수련이란 바로 사람의 이 마음을 닦아 버리는 것이다. (박수) 사실 이 복잡한 사람무리를 이탈하여 대법(大法)을 수련하면 오히려 느리다. 물론 당신은 출가수련을 하려 하는데 우리는 지금 아직 이런 조건이 없다.

제자: 사람의 신체가 고에너지물질로 전화(轉化)한 후 먹은 음식에는 어떠한 영향이 있습니까?

사부: 먹은 음식은 수련 중의 기제(機制)에 의해 전화된다. 수련 중에는 여전히 정상적으로 수련해야 한다.

제자: 미국에서 태어난 중국인은 영어만 말할 수 있는데 수련원만을 이룰 수 있습니까?

사부: 현재 많은 제자들이 백인인데 어떠한 언어를 써도 수련에 영향주지 않는다. 나는 스웨덴에서 백인제자들에게 수련반을 한 차례 열었는데 그들은 아주 잘 이해했고 수련 중에서 제고한 것도 아주 빨랐다. 화인(華人)은 유구한 역사와 아주 심원한 문화가 있으며, 화인의 특징은 아주 내성적이고 마음속에 많은 것이 있다. 이치를 화인에게 명백히 말하려면 아주 투철하게 말해야 한다. 그러나 백인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성격이 외향적이고 말도 분명하게 한다. 그가 화를 내면 당신이 보아낼 수 있고 그가 기뻐해도 당신이 보아낼 수 있는데, 내심에는 아무것도 없고 모두 표면에 있다. 그들의 직감은 화인보다 더 강해 그리 깊은 이치를 사용하지 않고도 말이 통하기만 하면 명백해지는데, 그리 많은 심리장애가 없어서 오히려 닦는 것이 아주 빠르다.

중문(中文)을 몰라도 마찬가지로 수련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가 있는데 영문은 오로지 내가 말한 표면의 뜻을 번역할 수 있을 뿐이며 아주 정확하게 표층의 뜻을 번역해 내진 못한다. 그러나 고층의 내포에는 영향주지 않는다. 장래의 사람이 법(法)을 공부함에 사람의 표면 이 층의 것이 아주 중요하다. 그러므로 장래의 사람들은 중문을 모르면 아주 어렵다.

제자: 부동(不同)한 인종에는 부동한 천국이 있는데, 왜 아프리카의 흑인에게는 없습니까?

사부: 흑인 역시 그들을 만든 신(神)이 있는데 다만 그들이 너무 일찍 잊어버렸을 뿐이다.

제자: 종교에는 모두 천국이 있습니까?

사부: 정교(正敎)라야만 천국이 있고 그런 사교(邪敎)에는 천국이 없다. 그 밖에 사실 실제로, 말법 시기의 모든 종교에는 상관하는 진정한 신(神)이 없다. 과거에 신(神)이 사람들에게 준수하라는 것을 사람들이 모두 준수하지 않았으며 종교 중의 일부 사람들은 앞장서서 좋지 않은 일을 했다. 어떤 사람들은 종교 신분을 이용해 돈을 벌고, 어떤 사람은 정객이 되고, 어떤 사람들은 사회의 부패에 앞장서고 있다. 그들 자신마저도 신(神)을 믿지 않으며 그들 자신마저도 수련할 수 없다. 당신이 가서 그 출가인에게 물어보라. “당신은 나를 원만에 이르게 할 수 있는가, 당신은 원만에 이를 수 있는가?” 출가한 지 6, 70년 된 사람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극락세계가 있다고 말하지 못했는데 그럼 또 무엇을 수련한단 말인가? 천국의 문은 이미 닫혔고, 난잡한 것들은 원래 신(神)이 전한 것도 아닌데, 무슨 천국에 간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제자: 꿈에서 사부님께서 우리를 가르치고 우리와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았는데, 이 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사부: 일부 근기가 비교적 좋은 사람들은 확실히 접촉할 수 있으며 어린이들이 좀 많다. 일반 정황 하에서 입정(入定)하여 가부좌를 하는 중에 나를 보면 대다수는 당신에게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말을 하더라도 역시 점화(點化)이다. 어떤 사람은 꿈에 사부님께서 공(功)을 가르쳐 주신다고 하는데, 이 점은 경계해야 한다. 당신에게 무슨 공(功)을 가르쳐 주는가를 보아야 하는데, 이 5장 공법을 벗어났다면 꼭 당신을 교란하러 온 것이며, 말한 것이 내가 전한 법리를 벗어났다면 그것은 절대로 내가 아니고 가짜이다. 무릇 가짜를 만났을 때에는 당신은 그를 쫓아내 버릴 수 있다. 당신은, “나는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수련하므로 당신의 것을 가지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가 가지 않으면 당신은 내 이름을 부르도록 하라.

제자: 고생을 겪으면 소업(消業)할 수 있는데, 병을 감당하면 소업할 수 있습니까?

사부: 병을 감당하는 것이라, 사람이 고통을 감당할 때는 다 소업하는 것이다. 병을 감당하는 것도 소업하는 것이다. 내가 방금 전에 말했듯이 사람이 일생 동안 병에 걸리지 않는다면 그는 백년 후에 반드시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일생 중에서 업을 짓기만 하고 업을 갚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복은 속인이 추구하는 것이다. 수련인이 고생을 좀 겪지 않으면 이전에 빚진 업력을 갚을 수 없다. 동시에 사상 상의 제고가 없다면 또한 수련이 아니다.

제자: 언제 전업수련제자가 있게 됩니까?

사부: 내가 여러분에게 전업수련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어떤 절의 승려는 이미 대법(大法)을 수련했는데 그는 이미 출가했고 환속할 수 없었다. 그럼 일정 시기 내에 이런 정황이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출가하지 않은 사람들은 집에서 수련하라. 내가 당신들에게 남겨준 것은 바로 속인사회 중에서 수련하는 길이다.

제자: 스승님께서 여러 사람들에게 천목을 열어주시기 바랍니다.

사부: 이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당신이 수련하는 과정 중에, 당신이 책을 보는 과정 중에 바로 당신에게 해준다. 수련인이 원하는 일체, 천목을 포함해서 모두 열어준다. 그러나 사람마다 볼 수 있게 하는 것은 아니다.

제자: 제 남편은 세상을 떠났는데 저는 그가 너무나 그립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만 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겠습니까?

사부: 당신이, “그가 너무나 그립다”고 하는 것은 속인의 마음이며 그것을 내려놓아야만 당신은 수련할 수 있다. 내가 여러분에게 간단한 이치를 말해 주겠다. 사람은 모두 속인 중의 육친 정에 집착하는데 당신은 속인 중에서 얼마나 많은 윤회환생을 했는지 아는가? 당신은 일찍이 얼마나 많은 부모, 형제, 아내, 자녀, 남편이 있었는가? 당신이 속인 중에서 환생할 때, 당신의 매 한 생(生)의 친인들을 당신은 모두 이렇게 그들을 그리워한 적이 있는데, 당신이 다 그리워할 수 있겠는가? 어느 것이 당신의 진정한 친인인가? 당신 생명을 만든 그곳이야말로 당신의 진정한 친인이다. 그는 당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당신은 오히려 여기에 미혹되어 이런 잠시적인 것에 집착하고 있다.

여러분이 한 가정으로 오거나, 세간에 오거나 간에, 마치 여관에 투숙한 것처럼 하룻밤 잠깐 머물다 다음날이면 흩어지는데 내세(來世)에 누가 누구인지를 알겠는가. 당신 주위에 바로 당신이 이전에 다정했던 남편과 다른 친인들이 있는데 당신은 알아보는가? 그가 당신을 알아보는가? 내가 말한 것은 바로 법리이며, 여러분이 부모에게 효도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이 이 사람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그 어떤 일종의 마음이라도 당신을 잡아끈다면 당신은 다 수련할 수 없다. 그것이 다 단단하게 당신을 잡아당겨서 당신으로 하여금 수련하지 못하게 하며 당신을 성불(成佛)하지 못하게 한다. 이 각도에 입각하여 말한다면 그는 당신을 마(魔)에 걸려들게 한 것이 아닌가? 당신으로 하여금 성불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당신 자신은 아직도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른다. 과거의 사람은 이미 지나갔는데 그는 여전히 당신을 잡고 있으므로 당신은 마땅히 내려놓아야 한다. 나는 여기에서 당신이 알 수 있도록 이치를 말해주는 것이다. 당신이 설령 수련하지 않는 속인일지라도 속인 중에서 당신이 늘 과거의 사람을 위해 고통스러워한다면 당신의 삶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인생은 매우 짧다. 부처의 세계에서 보는 속인사회는 더욱 짧다. 두 부처가 대화하고 있을 때 당신이 태어난 것을 보고 뒤돌아 다시 몇 마디하고 나서 보니 당신은 이미 백년이 지나 땅속에 들어갔는데, 바로 이렇게 빠르다. 사람이 사람 여기의 시간장(時間場) 속에서 꽤 길다고 느낄 뿐이다.

제자: 때로는 일부 잡념이 있어 저도 좋지 않은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배제하기가 아주 어려운데 마(魔)가 아닙니까?

사부: 당신이 당신의 이 잡념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당신은 그것을 되도록 배척하라.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늘 자신이 사고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자신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들은 오늘날의 사람들을 보라. 어느 나라 사람이든 하루 종일 아주 바쁜데, 그가 어떻게 사는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어떤 사람은 반은 자신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며, 심지어 어떤 사람, 그는 전부 다 자신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현대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자신은 다 알고 있는가? 사람은 일생 중에서 어려서부터 커서까지 생활하는 중에서 소위 경험을 많이 쌓는다. 그러나 이런 경험은 사람의 사상관념을 형성한다. 사람은 문제에 부딪힐 때, 내가 이렇게 처리하기만 하면 잘할 수 있다고 느낀다. 오래고 오래되면 고정 관념이 이렇게 형성된다. 아주 많은 일을 당신이 잘 처리했다고 느끼지만, 당신 자신은 오히려 없어졌고 당신 자신은 이미 가서 잠을 자버렸다. 속인사회에서 생활하는 당신, 당신의 육신은 이런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에 주재(主宰) 당한다. 이 일을 하고 저 일을 하는데, 하루 종일 흐리멍덩하게 바로 이렇게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이런 관념들은 모두 당신이 상해를 받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생긴 것이다. 당신이 상해를 받지 않으면 당신은 업을 갚을 수 없으며, 마땅히 얻지 말아야 할 이익을 얻을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입힐 수 있는데, 그럼 당신은 끊임없이 업을 지을 것이다. 이런 업력 역시 살아있는 것이다. 후천적인 관념과 업력은 사람의 대뇌에서 사상 업력을 형성할 것이다. 그럼 당신이 수련할 때 그것을 없애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이 수련할 때, 그것으로 하여금 수련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며, 그것이 수련하고 당신이 수련하지 않는다면 당신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며, 물론 나도 가만있지 않는다.

내가 당신에게 성불하라 하고 당신에게 수련하라고 한 만큼, 수련 중에서 당신은 당신의 후천적인 관념을 제거해야 하며, 당신을 대체한 사상업력을 깨끗이 제거해야 한다. 그럼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런 것들을 깨끗이 제거해 버리려 하면 그것이 살아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제거되지 않으려고 한다. 마침 그것이 당신의 대뇌에 있기 때문에 그것이 당신의 사상을 동요케 하고 당신의 사상으로 하여금 안정되지 않게 하며, 당신으로 하여금 법 공부를 하지 못하게 하고 법을 믿지 않게 하며, 당신에게 이것저것을 하게 하는데, 심지어 비자각적으로 나쁜 일을 하게 한다. 왜냐하면 당신이 예전에 수련하지 않을 때, 사람을 욕한 적이 있고 나쁜 일을 생각한 적이 있어 이런 업력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좋다, 그럼 사상업은 모두 당신 사상에 반영된다. 사람을 욕하는 말이라거나, 당신에게 법을 믿지 못하게 한다거나, 심지어 나를 욕하게 한다. 나는 당신의 잘못을 탓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당신이 나를 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의 죄는 아주 클 것이다. 나를 욕하는 것은 당신의 사상업이지만, 수련 중에서 당신이 그것을 배제해 버리지 않으면 바로 당신이 나를 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그것을 배제하고, 그것을 배척하기만 하면 당신은 당신이 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업력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마(魔)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공동으로 그것을 제거하여 당신 자신을 찾아와야 한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그의 의식,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을 위해 살고 있다.

제자: 천상(天象)이란 무엇입니까? 얼마나 높은 층차의 수련자라야 천상의 암시를 받지 않을 수 있습니까?

사부: 천상(天象)은 사람에 대해 무슨 암시가 없을 것이다. 현재 단지 영기(靈氣)를 얻은 그런 동물들만이 인류의 이 좋지 않은 시기에 사람을 통제하는 이런 일들을 한다. 신(神)은 인류에게 하늘에 아주 큰 반(盤)을 만들어 돌게 했다. 그 위에 인류사회가 어느 시기에 어떤 상태가 나타날 것이라는 것을 정해 놓았다. 일정한 시기로 돌면 인류사회는 비자각적으로 어떤 상황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바로 천상(天象)변화이다.

제자: ‘윤회(輪迴)’의 표준은 무엇입니까?

사부: 윤회에도 표준이 있는가? 한 생명은 윤회 중에서 아마 금생에는 사람일 수 있고 다음 생에는 동물일 수 있으며 또한 식물로 전생(轉生)할 수도 있다. 아무튼 무엇으로든 다 전생할 수 있는데 무엇으로 전생하는가는 사람의 업력 크기에 따라 정해진다.

제자: 숙명통(宿命通)은 미래를 예지(預知)할 수 있습니까?

사부: 숙명통이 미래를 예지할 수 있느냐고? 숙명통은 사람의 일생일세(一生一世) 혹은 몇 생 몇 세, 또 더욱 많은 것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며, 또한 당신의 장래가 어떠하리라는 것도 알 수 있다. 자신의 것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것도 알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숙명통이다.

제자: 부처와 보살은 과거를 얼마까지 알 수 있습니까? 미래는 얼마까지 알 수 있습니까?

사부: 누락이 없어야만 부처, 보살로 수련될 수 있는데, 누락이 없다면 무엇이나 다 알 수 있다. 당신은 이런 것들을 지식으로 삼아 구하지 말아야 하며, 나도 이런 문제를 해답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늘 나에게, “부처님은 어떻게 생활합니까?”라고 묻는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사람은 부처가 어떻게 생활하는지 절대로 알 수 없다. 당신이 부처가 어떻게 생활하는지 궁금하면 당신이 부처로 수련되도록 하라. 어떤 사람은 극락세계를 보았고, 法輪世界(파룬쓰제)를 보았으며 또 다른 세계를 보았는데, 이는 당신의 그 층차 중에서 당신에게 나타낸 것이다. 만일 당신이 그것의 진상을 완전히 보려면 부처의 표준에 도달해야만 그것을 볼 수 있다. 마치 이 법(法)처럼, 당신이 이 층차에서 본 것은 이 한 층차의 법리이며, 당신이 다른 한 층차에서 본 것은 또한 다른 한 층차의 법리이다. 낮은 층차에서 높은 층차의 진상을 나타낼 수 없는데 이것은 우주의 이치이다.

제자: 장래에, 절해서 나온 가짜 부처의 말로는 어떠합니까?

사부: 그것들의 선악(善惡)을 보고 결정한다. 사회를 화란(禍亂)케 하고 우주를 화란케 하는 것들은 모두 제거해 버려야 한다. 물론 좋은 것은 출로를 주어 전생(轉生)하게 해야 하는데 모두 배치가 있다.

제자: 心性(씬씽)의 수련에 체계적인 방법이 있습니까?

사부: 내가 당신에게 준 이 법(法)이 바로 가장 체계적인 것이며, 이것보다 더 체계적인 것은 없다. 당신은 『전법륜』을 보도록 하라.

제자: “도살용 칼을 내려놓으면 당장 부처가 된다.”는 불교 중에서 말한 것인데 法輪功(파룬궁)에서는 또 어떻습니까?

사부: 이 말은 석가모니가 한 것이 아니며 후세의 사람들이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는 말법시기에 와서 수련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부처의 말이 아닌 것을 부처의 말로 간주하는데, 현대인들은 어찌된 영문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부처의 이치가 아니다. 사람을 많이 죽이고도 칼만 버리면 나는 곧 부처인가, 어디 이런 일이 있는가? 좋은 사람도 수련해야 하는데 이런 이치가 아닌가? 물론 그 속에 들어있는 뜻은 아마 지금부터 나쁜 일을 하지 않고 수행을 하려는 이런 뜻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부처와는 거리가 너무나도 멀다.

제자: “신체가 크게 변할 수 있다”를 진일보로 해석하면요?

사부: 수련인의 사상, 신체의 용량, 체적이 모두 커진다. 때문에 어떤 때 당신들이 참장(站樁)을 할 때, 아주 높고 크게 변했음을 느낄 수 있으며 또 어떤 사람은 아주 작게 변했음을 느낄 수 있다. 왜냐하면 수련된 그 쪽의 신체(身體)는 크게 변할 수도, 작게 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련인의 신체는 확실히 크게 변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고층에서 당신은 우주진상에 대한 인식을 감당해 낼 수 없다. 수련 중의 신체는 한 공간이 한 공간에 비해 크다. 여기에 앉아 있는 나의 육신은 바로 당신들이 본 것처럼 이만큼 크지만, 나의 저쪽 신체는 하나가 하나에 비해 크고 하나가 하나에 비해 큰데, 크기로는 여기에 앉아 있는 천목이 가장 잘 열린 사람도 나의 이 발가락 아래밖에 보지 못하며 발가락 위의 것을 보지 못한다. 이것도 아직 가장 큰 것이 아니다. 물론 이것은 무엇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며 사제지간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당신들에게 말하자면 수련인의 신체는 확실히 체적이 커진다. 내 기억에 인도 요가에 그림 한 폭이 있는데 박가범(博伽梵)이 그의 제자에게 “당신이 보라, 일체 신(神)들은 모두 내 신체 속에 있다.”라고 말하는 내용을 그렸다. 그림 중의 뭇 신들은 모두 그의 신체 속에 있었다. 수련이란, 목적이 바로 신(神)으로 수련 성취되는 것이다. 신(神)의 크기는 바로 층차의 크기이며 과위의 고저이다. 그리하여 신체(神體)로 하여금 과위 층차에 부합되게 하는 것이다.

제자: 이번에 미국에 오셔서 한 차례 9일 학습반을 꾸리려 하십니까?

사부: 아니다. 원인은 이 법(法)을 이미 완전하게 모두 말했기 때문이다. 『전법륜』이 나온 후, 나는 더는 체계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다시 말한다면 내가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전법륜』에 따라서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강의할 때 원고가 없다. 나는 수련생의 부동한 정황에 따라 강의하며, 동일한 문제를 내가 부동한 각도에 서서 강의하기 때문에 매번 다 같지 않다. 그럼 내가 다시 학습반을 꾸려 체계적으로 강의한다면, 수련생들이 『전법륜』에 따라 수련하는 것을 교란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동일한 문제에서 말할수록 더욱 높게 말함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는 갈수록 수련생들로 하여금 알게끔 하려고 했기 때문에 (박수) 강의를 하면 수련생들의 수련을 교란할 수 있다. 이 법(法)이 이미 인쇄되어 나왔기 때문에 더는 체계적으로 강의할 수 없다. 그러나 여러분은 『전법륜』에 따라 수련하기만 하면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수련 중의 개별적인 문제들을 여러분에게 해답해 주는 것은 괜찮다.

제자: 세계적으로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사부님께서는 누가 수련하고 있는지 어떻게 아십니까?

사부: 수련은 높은 경지와 낮은 경지에서 사상인식이 같지 않으며 당신이 사람의 사상으로 상상한 것과 같지 않다. 사람이 수련과정 중에서 일정한 경지에 도달했을 때, 법신이 나올 수 있는데, 무수한 법신이 나온다. 법신은 주체(主體)[주존(主尊)이라고도 함]를 도와 제자를 거느리고 제자를 보호하는 것을 완수하며 아주 많은 구체적인 일들을 한다. 법신은 바로 나의 지혜의 나타남이며, 이런 지혜는 또한 신(神)의 형상이 있는데, 명백히 말하자면 바로 나 본인이다. 그러므로 나의 법신은 나 본인의 온전한 형상, 온전한 사유를 갖고 있어 무슨 일이나 다 할 수 있다. 하지만 또 주체와 구별이 없다. 그러나 이 층차 아래에서는 누구도 이런 내재적 연계를 보아낼 수 없으며, 이 층차를 초월한 후에야 볼 수 있다. 구체적인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직접 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나의 사상의 형상이 있는 체현이기 때문이다.

제자: ‘구하고자 함이 없으면 스스로 얻게 되다(無所求而自得)’와 ‘그치지 아니하면 그런 마음이 생긴다(無所住而生其心)’는 어떠합니까?

사부: 대법(大法)수련 중에 불교 중의 경서를 해석하는 것은, 내 생각에 그리 적합하지 않다. 작은 데서 말하자면, 석가모니가 말한 것은 그의 그 한 문(門)의 것이고 여기는 나의 이 한 문의 것이다. 이는 불이법문(不二法門)의 문제와도 관련된다. 큰 데서 말하자면, 일체 법(法)은 모두 대법(大法)에서 내원했으며 또 당신이 알지 못하는 많고 많은 복잡한 요소들이 있다. 그러므로 불교 중의 명사, 개념들을 나는 종래로 해석하기가 싫다. 어떤 때는 말이 나온 김에 말한 것이고 예를 든 것인데 그것은 나의 법(法)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또 여러분에게 권고하겠다. 당신이 머릿속에 만약 종교 중의 것들을 가지고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수련하고 있다면, 당신은 빨리 그것을 내려놓고 자신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을 엄중하게 교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신은 또 불교 중의 것을 가지고 내가 한 말을 가늠할 수 있으므로 수련할 수 없다. 불교 중에서도 불이법문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은 말법의 난법(亂法)시기이니 여러분은 주의해야 한다.

불이법문을 말하자면 사실 종교 중에 얼마나 되는 사람이 그 뜻을 진정하게 알고 있는가? 종교 중에는 또 무엇이든 다 수련하는 사람이 있다. 화상은 선종(禪宗)을 수련하면서 또 밀종(密宗)도 수련하고 어떤 경서든 다 보는데, 정토(淨土)를 수련하면서 또 선종의 것도 말한다. 어느 한 문(門)의 것을 수련하면 어느 한 문의 것을 보아야 하는데, 그 경은 모두 석가모니가 말한 것이 아니다. 『화엄경(華嚴經)』을 보고 수련 성취한 후에는 화엄세계(華嚴世界)로 가고, 아미타불경을 보았으면 극락세계(極樂世界)로 가는데, 후세의 사람들은 경서는 모두 석가모니의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므로 당신이 섞어서 수련하면 어느 부처도 당신을 상관하지 않는다. 현대인들은 부처를 믿음에 모두 한 가지 생각이 있다. ‘모두 부처님인데 누구를 모신들 안 되겠는가? 모두 부처님의 책인데 누구의 것을 본들 안 되겠는가?’ 그것은 사람의 생각이다.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전법륜』을 보면 法輪世界(파룬쓰제)로 수련되어 갈 수 있고, 수련 중에서 法輪(파룬)을 얻는 등 이 한 문에서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을 얻는지 아는가? 종교의 경서 역시 마찬가지로서, 당신이 그것의 그 문을 수련하면 당신은 그 문의 것을 얻는다. 그러면 그 법문의 신(神)이 당신 신체에 그 문의 것을 넣어준다. 그럼 당신이 또 이 문의 책을 보면 이 문에서는 또 당신에게 이 문의 것을 넣어준다. 어느 문의 것도 다 가져온다면 당신의 신체는 엉망이 되어버리는데 당신이 어떻게 수련하겠는가? 예를 들면, 텔레비전에 세탁기의 부품을 하나 가져다 넣는다면, 내가 보기에 당신 이 텔레비전은 볼 수 없다.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고 쉬운 것이 아니다.

수련은 매우 엄숙하고 복잡한 공(功)과 생명이 승화되는 연화(演化)방식으로 인류의 가장 정밀한 계기보다 더 정밀하다. 그러므로 수련의 것을 한데 섞어서는 안 되며 또 섞을 수도 없다. 사람이 일단 이렇게 하였다면, 부처는 당신이 이것도 수련하고 저것도 수련하는 것을 보고는 당신에게 그들의 것을 주지 않는다. 이것 역시 수련인의 心性(씬씽)문제이다. 여래 부처는 그 자신 수많은 세대(世)의 고달픈 수련을 거쳐 그 한 세트의 것들은 수련해 냈으며 그의 세계를 구성한 것이다. 그의 세계는 모두 그의 그런 수련요소들로 구성되었다. 당신은 아직 사람인데, 그를 마음대로 고치려 하는가? 동시에 두 법문을 수련하는 것은 당신이 두 부처의 법(法)을 파괴하는 것과 같으며, 동시에 세 법문을 수련한다면 당신은 세 부처의 법(法)을 파괴하는 것과 같은데, 이것이 죄가 아니겠는가? 어떤 사람은, 자기는 몰랐다고 말한다. 바로 당신이 모르기 때문에 부처는 당신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으며 또 당신에게 이 죄를 범하게 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불이법문의 근본 원인이다. 사람들은 모르면서도 이래야만 학식이 넓은 것으로 여기는데 이것은 집착이다.

어느 문을 수련하면 바로 어느 문이다. 선종이면 바로 선종이고, 정토면 바로 정토이며, 화엄이면 바로 화엄이고, 천태(天台)면 바로 천태이며, 밀종이라면 바로 밀종이다. 하지만 밀종에서도 난잡하게 수련할 수 없는 것으로, 홍교(紅敎)면 바로 홍교이고, 백교(白敎)면 바로 백교이다. 이것은 절대 함부로 할 수 없다. 수련 그것은 가장 엄숙하고 가장 엄숙한 일로서, 인류에게는 이것보다 더 엄숙한 일이 없다. 그것이 가장 위대하기 때문에 반드시 엄숙하게 대해야 한다. 물론 나는 당신에게 꼭 法輪功(파룬궁)을 배워야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만약 불교 중의 어느 문에서 원만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가서 배우도록 하라. 그러나 내가 당신에게 똑똑히 말해주지 않는다면 나 또한 당신을 책임지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인연이 있어 여기에 앉아 있으므로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말법시기 종교는 출가인마저도 수련하기가 매우 어렵다. 당신이 그런 출가인에게, “당신은 원만을 이룰 수 있는가?”하고 물어 보라. 나는 무엇이든 다 알고 있다. 세간의 출가인은, 전 세계를 포함하여, 世間法(쓰젠파)에서 걸어 나오고, 초과(初果) 나한 과위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은 단지 몇 사람뿐이다. 게다가 한쪽 발은 문 안에 있고 한쪽 발은 문 밖에 있는데, 이것 또한 副元神(푸왠선) 수련이다. 사실 그들 역시 모두 부처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당신이 그에게 당신을 제도하라고 한다면 어디로 제도하겠는가? 그는 나한이기에 그는 또 수련하여 부처의 세계에 가려고 한다. 어떤 부처가, 그를 받고 안 받고는 부처가 결정하는데, 그가 당신을 어디로 제도하겠는가?

제자: 사부님께서는 고층차에 가서는 완전히 모두 자동적으로 연공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사부: 중국에 기공이 막 나타났을 때, 어떤 사람은 기공은 원만에 이를 수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때 전한 기공은 모두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 이 한 층차의 것에 속했기 때문이다. 나는 방금 한 마디 말을 했다. 사실 기공은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전하기 위해 길닦이를 한 것이라고 내가 말했다. 만약 기공이 전해지지 않았더라면 내가 오늘 대법(大法)을 전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가장 엄한 사회에서 그를 전할 수 있었다. 장래에 역사상 그 어떤 사회에서 전하더라도 다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기공이 유위법(有爲法)이라고 한다. 석가모니는 유위법은 마치 몽환(夢幻)이나 물거품과 같아 원만에 이를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 이 말을 한 사람 자신도 무엇이 유위(有爲)인지를 모른다. 그들은 연공하는 동작이 바로 유위(有爲)라고 말하지만 도가공(道家功)을 연마하는 많은 것들에 동작이 있으며, 수련되어 나온 대도(大道)는 상당히 높다. 선천대도(先天大道)는 일반적인 신과 부처보다 높은 많고도 많은 것을 수련해 냈는데 동작이 있다고 해서 곧 유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밀종(密宗)도 수인(手印)을 하고, 한인지역(漢地)의 승려도 부동한 수인(手印)을 하며 반가부좌, 결가부좌를 중시하는데 그것은 동작이 아닌가? 유위(有爲), 무위(無爲)를 또 동작이 많고 적음으로 기준을 삼을 것인가? ‘유위’는 이런 뜻이 아니다. ‘유위’란 사람이 수련 중에서 집착이 있는 것을 내려놓지 않고 사람의 형식을 중시하는 것을 가리킨다. 또 어떤 사람은 그 무슨 방법, 기능(技能), 법술(法術)들을 찾는데, 이렇게 하면 제고할 수 있다고 여긴다. 집착하는 마음을 닦아버리는 것을 근본으로 하지 않고 소술(小術)을 추구하고 유위적인 일을 한다. 어떤 출가인은 돈벌이를 하고, 사찰을 많이 짓는다든가, 사회를 위해 무슨 복리(福利)를 한다든가, 정치에 참여한다든가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유위가 아닌가. 이런 것들을 위해 수련하는 것이야말로 몽환과 물거품이 아닌가. 자신의 수행을 잃었는데 원만할 수 있겠는가? “내가 부처에게 사찰을 얼마 지어주고 뒷거래를 하면 당신은 나를 올려 보내주어야 한다.” 어디 이런 법이 있는가? 당신의 이 속인 마음을 제거하지 않고는 당신을 신(神)의 경지에 가져다 놓아도 당신 스스로도 감히 그곳에 머물러 있지 못할 것이다. 신성(神聖)하고 장엄(莊嚴)하며 더 없이 순정(純淨)한 신과 부처와 비교하여, 당신은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를 것이며 당신 스스로 당신이 마땅히 여기에 있지 말아야 함을 발견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사상경지는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당신 자신이 내려오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동작은 유위가 아니며 사람의 집착이야말로 진정한 유위이다.

나는 수련 중의 사상활동은 모두 쉽게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가급적 생각을 움직이지 말고 하고자 함이 없어야 한다. 그 어떤 물체라도 다른 공간에서는 모두 살아 있으며 생명이 있다. 당신은 연공 중에 내가 당신에게 넣어준 수련의 기제(機制)를 강화하는데, 그 기(機)가 일정한 강도(强度)에 도달하면 그것은 자동으로 운행한다. 장래에 연공할 때, 매번 모두 아홉 번씩 연마하여 그것을 강화하는데, 갈수록 강하게 함으로써 최후에 이르러 당신은 수를 셀 필요가 없이 당신이 연공만 하면 되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아홉 번째에 이르면 그것이 스스로 法輪(파룬)을 밀어 돌리며, 아홉 번째에 이르면 그것이 스스로 結印(제인) 한다. 수를 셀 필요도 없다.

제자: 자신이 世間法(쓰젠파)를 벗어났는지 사람마다 다 알 수 있습니까?

사부: 어떤 사람은 근기가 아주 높기 때문에, 그로 하여금 그가 선천(先天)에서 온 곳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보증하기 위해, 그에게 아무것도 알려줄 수 없다. 그에게 조금이라도 알려준다면, 그의 길을 망가뜨려 그가 그의 원래 위치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개인의 부동한 정황에 근거하여 정해야 한다. 어떤 때는 알 수 있으며, 개별적으로는 알 수도 있다.

제자: 장래에 전업수련제자들은 절에서 수련하면서 속인 중으로 가서 행각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 ‘장래’는 이번 인류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아니면 이 이전의 것입니까?

사부: 출가인은 속인과 다르다. 나는 그들로 하여금 수련하여 다른 대법제자(大法弟子)들과 마찬가지로 더욱 큰 과위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더욱 큰 위덕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고자 한다.

제자: 법신의 보호가 있는지, 몸에 法輪(파룬)이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사부: 그 法輪(파룬)은 어떤 사람은 민감하여 느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민감하지 않아 느끼지 못한다. 사람마다 모두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法輪(파룬)이 도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法輪(파룬)이 그의 신체 속에서 안정되면 역시 느끼기 어렵다. 마치 당신의 심장이 뛰는 것과 같은데 당신이 그것을 만지지 않는다면 당신은 심장이 뛰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가? 그가 당신 신체의 일부분이 되었을 때 당신은 느낄 수 없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느끼지 못하는데, 이는 신체가 민감하지 않은 것이다. 아무 관계없다. 사람의 신체 정황은 매우 복잡한 것이며 매 사람마다 다 다르다.

제자: 가령 한 젊은이가 수련원만을 이루어 곧 천국으로 가게 되면 그는 그의 부모와 자식에 대해 마지막 책임을 지지 못하는 것으로 되는데, 그럼 곤란을 또 타인에게 남겨놓는 것이 아닙니까?

사부: 바로 당신이 현재 원만을 이루지 못했고 당신이 그렇게 높은 사상을 구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신은 여전히 속인의 사상으로 이 문제를 본 것이다. 사람이 그 경지에 도달할 때면, 일체에 대한 인식이 다 같지 않을 것이다. 수련 중의 위덕으로 말미암아 주변의 정황도 개변된다. 사실 사람은 각기 운명이 있어 누구도 누구의 운명을 좌우지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나는 나의 후손들이 잘 되게 하려고 한다.”라고 말한다. 만약 당신의 후손이 복이 없다면, 당신이 아무리 복을 남겨놓아도 그는 모두 깨끗이 탕진해 버리거나 혹은 불에 태워버리거나 혹은 잃거나 도둑맞을 것이다. 만약 그에게 복이 있다면 그는 계승할 수 있다. 사람은 각기 운명이 있는 만큼, 누구도 누구를 책임질 수 없다. 당신의 친인이라고만 보지 말라. 이 세상에서는 당신의 친인이지만 내세에는 또 다른 어떤 사람의 친인일 수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전생에도 다른 사람의 친인이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각기 운명이 있는 것이라, 우리가 다른 사람을 어떻게 하고자 해도 결코 안 된다. 왜냐하면 사람의 생명은 사람이 배치한 것이 아니라, 신(神)이 배치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당신이 그들에게 그 무슨 고통이고 고통이 아닌 것을 남겨놓는 문제를 담론할 바가 못 되는데 이런 문제들은 일찍이 배치가 있다. 이런 일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런 것이 아니다. 당신이 그 경지에 있지 않기 때문에 문제를 보는 것은 모두 속인의 생각이다. 사실 수련 성취하여 신과 부처가 되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위덕인가. 그 후의 일은 수련과정 중에서 배치하게 된다.

제자: 연공할 때 머리가 흔들립니다.

사부: 이는 모두 좋은 현상이다. 맥(脈)이 통할 때, 에너지의 충격에 의해 머리가 흔들릴 수 있다. 사실 연공 중에 나타나는 현상은 아주 많아서 만 가지도 넘는다. 어떤 상태가 나타나든지 당신들은 모두 정확하게 대해야 한다. 수련의 길에는 곳곳마다 수련인의 오성(悟性)에 대한 고험(考驗)이 있다. 공(功) 중의 성분은 매우 많은데 사람 표면에 대해 가장 민감한 것이 바로 전기(電)이다. 초기에 공(功)의 작용 하에 어디를 움직이기만 해도 당신은 느낌이 불편할 수 있다. 어떤 때는 좋은 것을 수련해 내도 병에 걸린 것은 아닌지, 어째서 불편하게 변했는지 의심한다. 만약 이렇다면 당신이 말해 보라. 어떻게 수련하겠는가? 당신은 수련인이며 당신은 그것을 모두 좋은 현상으로 간주해야 한다. 또 확실히 좋은 현상이다. 맥이 통할 때, 매우 괴롭고 국부적으로 통증이 있을 수 있으며 신체의 변화 또한 불편할 수 있다. 어떤 때는 마치 많은 벌레들이 몸에서 기어 다니는 것 같다. 왜냐하면 맥이 만 갈래도 넘기 때문에 단지 이 몇 가닥의 맥뿐만 아니라, 종횡으로 교차된 것이 모두 맥이다. 어떤 때는 온몸이 마치 전기가 통한 것 같고, 차갑고, 뜨겁고, 저리고, 무겁고, 돌아가는 등등의 상태가 너무나도 많다. 감각상 모두 당신의 신체로 하여금 아주 괴롭게 한다. 그러나 그것은 좋은 일이다. 이는 에너지와 신체 변화가 조성한 것이다. 감각을 말하자면 그야말로 너무나 많다. 여러분은 그것을 모두 좋은 일로 간주해야 한다. 또 확실히 좋은 일이다.

제자: 각자(覺者)는 대자재(大自在)합니다. 사부님께서 대법(大法)을 전함에 수많은 수련생들에 대해 책임지실 수 있는데요, 대자재란 이것을 어떻게 인식해야 합니까?

사부: 당신들을 제도하기 때문에 자재(自在)를 말할 나위가 못된다. 나는 당신들을 대신해 죄를 감당하고 있으며, 어떤 때는 당신을 대신해 소업해 주고 있다. (박수) 그 해의 석가부처, 예수도 어찌 이렇게 하지 않았겠는가? 어떤 사람은, “사부님, 당신께선 이렇게 큰 능력이 있으신데 왜 아직 번거로운 일이 있으십니까?”라고 말한다. 사실 번거로움은 모두 당신들의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수련생은 본래 그에게 소업해 주었으므로 조금 남은 번거로운 일은 마땅히 자신이 넘겨야 하지만 그는 여전히 넘지 못한다. 또 요만한 번거로움을 넘지 못한다고 해서 그를 망치게 할 수도 없지 않은가. 때문에 내가 그를 대신해 감당했는데, 이렇게 하자 번거로운 일이 나를 교란하게 되었다.

사람을 제도하기란 매우 어렵고 매우 고생스럽다. 나는 예수가 왜 십자가에 못 박혔는지 알고 있다. 나는 또 석가모니가 왜 부득이 열반했는지 알고 있으며, 나는 노자가 왜 총망하게 『오천언(五千言)』을 써놓고 갔는지도 알고 있다. 정법을 전하기란 지극히 어렵다. 만약 바르지 않은 것을 전하면 누구도 상관하지 않는데, 화란(禍亂)이 끝나면 자신이 지옥에 들어가 훼멸되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자신을 해치기 때문이다.

제자: 고층차의 천마(天魔)는 어떻게 크고 작은 각자(覺者)를 인지(認知)하며, 누가 가서 이 한 무리의 마(魔)를 제약합니까?

사부: 신(神)은 더욱 높은 신(神)이 책임지고 있으며, 더욱 높고 더더욱 높은 것이 있다. 마(魔)는 우주 정부(正負)생명의 표현이며 고층차에서는 저층차의 인식과 같지 않다. 만약 나한 층차에 도달하면 어떤 사람의 사상도 없다. 사람은 백년 후에 자신의 육신체(肉身體)에서 나올 때, 사람이 일생 중에 한 일들, 세 살 때 한 일을 포함하여 마치 1분 전에 금방 한 것처럼 눈에 역력하다. 이 공간 · 시간을 떠나면 이 공간 · 시간과 같지 않기 때문에 일체는 마치 방금 한 것 같다. 그때 사람이 일생 중에 한 일의 옳고 그름을 자신이 모두 알게 되는데 그때서야 후회한다. 그때에 사람이 억제되었던 그 부분의 사상도 풀어진다. 하지만 부처의 지혜와는 같지 않다. 왜냐하면 부처는 더욱 큰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제자: 사부님의 법신을 어떻게 공양(供養)합니까?

사부: 법신은 바로 나이다. 불교를 믿는 많은 사람들이 향을 피우고, 염불하고, 절하고, 경을 읽는다. 매일 부처를 모시면서 의식도 아주 성대하게 하지만, 의식을 치르고 난 후에 사람들은 또 제멋대로 하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다. 사람들은 이미 부처에 대한 경앙(敬仰)이 무엇인지 모른다. 한 수련인이 수련 중에서 고생을 낙으로 삼으며 자신의 일체 집착을 제거해 버리고 자비향상(慈悲向上)하며 수련 중에서 끊임없이 정진하고 있다면,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이것은 당신이 어떤 의식을 하는 것보다 나를 기쁘게 한다. 왜냐하면 내가 이 법(法)을 전함에 사람에게 다른 어떤 요구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바로 당신에게 법(法)을 얻게 하며, 내가 요구하는 것은 바로 당신의 그 속인 마음을 제거하여 최후에 당신을 제도하는 것이다.

물론 부처의 법신도 음식물이 필요한데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부처가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부처는 양식을 먹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사람이 진짜로 알든 가짜로 알든 이 말은 그래도 맞는 말이다. 부처는 사람의 양식을 먹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그들의 그 경지 중의 음식물을 먹는다. 신(神)은 음식물을 먹지 않아도 그가 굶어 죽지는 않지만 굶주리거나 야윌 수 있다. 그러므로 그도 음식물을 먹어야 하지만 표면의 물질을 먹는 것이 아니라 더욱 미시적인 입자로 구성된 물체를 먹는다. 향을 피우는 것 또한 실질적인 의의가 있다. 지금 당신이 승려에게 “왜 향을 피워야 합니까?” 하고 물으면 그는 부처를 공경한다고 말한다. 부처를 공경하는데 왜 향을 피우는가? 다른 어떤 것을 하면 안 되는가? 사실 향을 태워 나오는 연기도 물질이 아닌가. 그러나 연기를 구성하는 물질도 단지 표면 물질뿐만이 아니며 연기 역시 다른 물질체가 있는데, 신과 부처는 이런 것들을 연화(演化)해 제자를 가지(加持)하는 데 쓴다.

제자: 법신과 화신(化身)이란?

사부: 나는 화신(化身)을 말한 적이 없다. 석가모니 부처는 많은 것들을 모두 매우 맞게 말했다. 하지만 불교 중에서 말하는 것들은 모두 석가모니 부처의 원래 말, 원래 뜻이 아니다. 불교의 경서는 석가모니 부처가 세상을 떠난 오백년 이후에야 정리되어 나왔다. 오백년이라, 여러분 생각해 보라. 지금부터 오백년 전에는 이 미국이 없었다. 오백년 전에 누가 말한 것을 지금에 와서야 사람들이 그것을 정리해 냈는데, 이것은 당시와 얼마나 큰 차이가 있겠는가. 환경이나, 시간이나, 지점이나, 어떤 정황을 겨냥해 말한 것들이기 때문에 차이가 대단히 크다. 내가 전한 법(法)은 불교가 아니다. 나는 화신을 말한 적이 없고 단지 법신을 말했을 뿐이다. 나는 현대인의 사유, 현대 인류의 문화를 결부하여 말한 것이다.

제자: 아인슈타인은 광속도가 일정하다고 말했는데, 각각의 공간에 적용됩니까?

사부: 아인슈타인이 인식한 이 이치는 인류 범위 내의 이치이다. 현재로서는 이 방면의 인식 역시 인류의 가장 높은 인식이다. 그러나 인류의 경지를 벗어나면, 당신은 아인슈타인이 인식한 것이 또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부동(不同)한 층차에는 부동한 이치와 물질의 부동한 층차의 표현형식이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당신이 위로 올라갈수록 진리와 가까워지며 위로 올라갈수록 옳다. 고층에서 뒤돌아보면, 아래의 인식은 모두 우주의 근본 이치가 아니거나 근본 이치에 접근하지 못했다. 과감하게 진리를 인식한 사람, 그는 과감하게 앞 사람이 정한 법칙을 돌파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그가 정한 법칙 안에 있다면, 당신이 어떻게 연구해도 모두 그를 따라가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를 돌파한다면 당신은 진리를 향해 한 걸음 더 내디딘 것이다.

사람들이 현재의 인식을 벗어나면 과거의 인식이 절대적인 진리가 아님을 발견할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광속이 최고속도라고 말했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동일한 층차 중에서 생명의 염력(念力)은 광속보다 빠르다. 그뿐만 아니라 인류 이 한 층차를 벗어난 더욱 높은 층차는 시간이 부동하기 때문에 가장 느린 속도마저도 낮은 층차의 가장 빠른 속도보다 빠르다. 생명은 층차가 있는 것이다. 부동한 층차에는 또 부동한 시간과 공간 형식이 있으며, 일체 중생과 물질은 모두 부동한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는다. 층차가 높을수록 그 속도는 더욱 빠르다. 다시 말해서 고층차의 가장 느린 것도 저층차의 사람이 인식하는 광속보다 훨씬 빠르다. 불타(佛陀)의 능력은 사람의 능력보다 크며 더욱 높은 부처는 더욱 큰 것으로 인류가 인식하는 광속을 훨씬 벗어났다.

내가 이런 것들을 말함은 바로 여러분에게 인류는 인류 이 한 층의 이치와 사람이 마땅히 인식해야 하는 물질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사람의 인식에 불과하며 우주의 진리가 결코 아니므로 그것을 절대적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단지 이 한 층차 중의 인식에 불과하다. 석가모니는 왜 법무정법(法無定法)을 말했는가? 마지막에 또 자신은 일생 중에 어떠한 법(法)도 말한 적이 없다는 한 마디 말을 했는가? 왜냐하면 그가 개오할 적에 아직 여래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으며 그 역시 위로 수련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는데 최후로 만년(晩年)에야 비로소 아주 높은 여래 층차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그는 49년간 법을 전하는 중에 역시 끊임없이 낮은 데서부터 높은 데로 우주에 대한 그의 인식을 말했다. 그는 그가 이전에 말한 것은 최고의 이치가 아님을 알고 있었으며, 그가 다시 제고해 올라갔을 때는 또 원래 말한 것에 비해 높아졌다. 더 말해도 역시 최후의 근본적 이치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방금 말한 것이 또 맞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가 또 제고되었기 때문이다. 석가모니 부처는 자신이 일생 동안 말한 법(法)이 모두 우주의 최고의 법(法)이 아니며 우주의 최고의 진리가 아닌 것을 알고 있었다. 만년에 이르러 그는 자신이 일생 중에 어떠한 법(法)도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또 부동한 층차의 법리는 비록 최고의 이치가 아니지만 그것 또한 부동한 층차의 생명이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이치임을 알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그 한 층에서는 이치이다. 부동한 층차의 이치가 위로 올라갈수록 근본적인 이치에 더욱 가까워진다. 그러나 우주 중의 신(神)은 최후의 근본 법리를 볼 수 없다. 그러므로 그는 또 법무정법(法無定法)을 말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인식한 이치는 속인 중에서 이미 최고였다. 만약 아인슈타인 그에게 기회가 있어 더 연구해 내려갔다면, 만약 그가 더욱 높은 이치를 발견할 기회가 있었다면 그럼 그도 자신의 이전 인식을 뒤집었을 것이다. 사실 그는 종교 중에 더욱 높은 인식이 있음을 이미 발견했다. 왜 아인슈타인은 만년에 종교를 믿고 종교로 들어갔는가? 왜냐하면 그는 종교 중에서 말한 것이 진정한 이치임을 발견했기 때문에 간 것이다. 왜 많은 과학자들이 최후에 종교를 믿게 되었는가? 과학에서 이처럼 조예가 있는 사람들이 말이다. 그 절대적인 실증과학의 관념에 따라 보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아무런 조예도 없고 다른 사람이 내린 정의 중에서 맴도는 그런 사람들만이 유명무실한 수호자(守護者)이다. 진정으로 조예가 있는 사람 그의 사상은 어떤 정의나 결론에 제한받지 않을 것인데, 그래야만 총명한 사람이다.

제자: 연공할 때에 사상이 조용해지지 않으면 『전법륜』을 외워도 됩니까?

사부: 된다. 절대적인 입정(入靜)에 도달하려면 초기에 연공하는 사람은 해내기 어렵다. 일정한 시간을 연마했다 해도 완전히 입정(入靜)하는 데 도달하자면 역시 아주 어렵다. 무엇 때문인가? 여러분 생각해 보라. 당신들은 속인 중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속인 중에서 수련하고 있는데 수련하는 것은 바로 당신 자신이다. 그렇다면 또 마침 당신 자신이 속인 중에서 생활함으로 인해 먹고, 자고, 입기 위해, 집의 아이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오늘은 누가 아프고, 내일은 또 무슨 급한 일이 생기는데, 어쨌든 인간세상의 일은 무엇이든 다 당신을 교란할 수 있으므로 당신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생각하게 된다. 오로지 수련 중에서 속인의 마음이 집착하는 것을 아주 담담하게 보아야만 할 수 있다. 이는 속인 중에서 수련하는 것과 모순되지 않으며 일을 잘 하는 것과 공부를 하는 것과도 모순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무엇을 하든지 자신의 득실에 집착하지 않으면 점차적으로 도달할 수 있지만, 초기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오직 속인의 마음을 담담히 내려놓고 줄곧 아주 담담하게 내려놓으며  더는 집착하지 않는 이때라야만 사상이 자연히 청정(淸靜)하게 될 것이다.

사람이 조용해지고자 하지만 종교에서도 방법이 없다. 어떤 사람은 아미타불을 염하기만 하면 조용해질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연공방법이라 과정 중에서는 여전히 조용할 수가 없다. 아미타불을 염하는데 어떻게 염하는가? 일심불란(一心不亂)하게 염해야 하는데 아미타불이라는 몇 글자가 모두 눈앞에 나타날 수 있도록 정말로 무엇이든 염하여 다 비워야 하며 무엇이든 다 없어야 한다. 이 경지에 도달해야만 그것이 진정한 입정(入靜)이다. 과정 중에는 이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며 단번에 일심불란에 도달하기란 불가능하다. 초기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입으로는 아미타불을 염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우리 아이가 병이 있다, 누구누구가 나를 너무나도 업신여긴다, 나의 배우자는 어떠하다.’라고 생각하면서 입으로는 여전히 아미타불을 염하고 있다. 집착이 한 무더기나 되는데 어떻게 조용해질 수 있겠는가. 다시 말해서 수련함에 따라 속인 중에서 집착하는 것을 갈수록 담담하게 볼 때면 당신은 자연히 조용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조용할 수 없는 것이 수련과 제고의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여러분은 이 점을 꼭 기억하라. 그러나 다른 법문에서 수련할 때 그들은 그것을 아주 중하게 본다. 왜냐하면 그는 副元神(푸왠선) 수련이기 때문에 그는 당신의 主元神(주왠선)이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식신(識神)은 죽고 元神(왠선)이 사는 것을 말한다. 그들은 副元神(푸왠선)을 元神(왠선)으로 간주하며 대한다. 식신이란 바로 당신 자신이 아닌가, 당신의 식신이 죽는다면 그건 정말로 죽는 것이며 그가 곧 신체를 접수하여 관리한다. 나 여기서는 수련자가 최후에 이르러 완전히 조용해질 수 있을 때에도 자신이 연공하고 있음을 당신이 알며 또 약간의 의식(意識)이 있을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집착이 아니다. 당신이 자신마저 다 모른다면 그럼 또 무엇을 수련하겠는가? 부처가 자신마저도 모르겠는가? 이런 것이 아니다.

제자: 法輪功(파룬궁)을 연마하면서 불교 친구와 관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합니까?

사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당신들은 오늘날 종교를 믿는 사람을 수련인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내가 당신들에게 한 가지 진리를 알려주겠다. 신과 부처는 아래의 종교형식과 종교 자체에 힘쓰는 사람에 대해 아예 승인하지 않고 오로지 진수(眞修)하는 사람만 승인할 뿐이며 종교는 후세인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석가모니는 그 해에 종교를 창립하지 않았으며 단체로 수련하는 형식을 창립했다. 그는 사람들이 집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모두 출가해서 산림 속이나 산굴 속에서 가부좌를 했다. 후세인들이 그것을 이런 종교적인 형식으로 만들었고 사회상의 사람들이 그것을 종교라고 불렀다. 지금 사람들 역시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한 가지 종교형식으로 만들었다. 종교라는 이것을 신과 부처는 승인하지 않는다. 당신이 세례를 받고 수계(受戒)했다고 해서 신과 부처가 곧 승인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사람이 승인한 것이다. 또한 세례를 받고 수계했다고 해서 천국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당신이 귀의했다고 해서 곧 불가의 사람인 것도 아니다. 부처는 사람이 발원(發願)할 때 마음이 진심인지 아닌지를 보는 동시에 당신이 진짜로 수련하는지를 본다. 부처는 형식을 승인하지 않는다. 그것은 종교가 승인한 것이다.

불교 중의 친구에 대해 말한다면 당신은 그들을 보통 사람으로 간주하고 대하라. 사람이 무엇을 믿고 싶어 하면 그것을 믿게 둬라. 왜냐하면 당신들이 속인 중에서 수련하기 때문에 반드시 다른 사람들과 접촉할 것인데 그들에게 설사 무슨 신앙이 있다 해도 진수(眞修)하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속인 친구로 간주하면 그만이다.

제자: 法輪功(파룬궁)을 연마한 후, 다른 학과를 보고 싶지 않고 한 마음으로 수련하려 합니다.

사부: 이는 두 가지 방면에서 말해야 한다. 하나는 이 사람이 아마 오성이 대단히 높고 근기가 아주 좋아 법(法)을 얻자마자 그는 곧 이것이 무엇인지 의식하게 되었으며, 수련 중 올라가는 것이 아주 빠르다는 것이다. 근기가 좋고 오성이 높아 많은 마음을 그는 다 내려놓을 수 있었기에, 생명의 근본이 움직이지 않았으며, 단지 표면만이 홍진 세상에 오염되었는데, 표면적인 오염이 제거되자 그는 단번에 불법진리를 인식할 수 있었다. 본래부터도 속인의 것에 대해서는 그리 집착하지 않았다. 그럼 이런 사람은 내가 방금 말한 한 가지 비교적 좋은 데 속한다.

또 한 가지 정황은 근기 역시 아주 좋아 수련 중에서 대법(大法)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아직 이성적으로 완전히 수련에 대한 대법(大法)의 요구를 인식하지 못하여, 과거 수련방식 혹은 출가인의 영향을 받는 이런 정황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원인이든지 모두 극단으로 가서는 안 된다. 내가 당신에게 속인 중에서 수련하라고 한 것은 대법(大法)의 수련방식이 결정한 것이다. 더군다나 대법(大法)은 수련자가 어디에서 수련하든지 모두 우수할 것을 요구하므로, 학생이라면 당신은 공부를 잘 해야 하고, 사회의 일원이라면 당신은 당신의 일을 잘 해야 하는 동시에 또 수련자여야 한다.

제자: 법을 공부하고 연공한 지 1년이 되도록 지금까지 아직도 사상업이 있어 마음속으로 조급한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부: 수련생들은 모두 아주 괜찮다. 사실 자신의 부족을 인식할 수 있음이 바로 수련 중에 있는 것이다. 나는 그가 말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나는 방금 여러분에게 한 가지 문제를 말해 주었다. 바로 당신이 와서 法輪功(파룬궁)을 연마하기만 하면 나는 당신의 신체를 정화(淨化)해 주어야 하고 사람 표면의 가장 큰 한 층의 분자를 기본적으로 전부 다 정화해 주는데 당신의 사상부분을 포함한다. 그러나 나는 또 당신이 속인 중에서 생활할 수 있고 속인 중에서 수련을 유지할 일부분을 남겨놓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사람 마음이 다 없으면 인간세상에서 생존할 수 없으며 사람의 것이 없으면 당신은 사람들 속에서 단 일분도 있으려 하지 않는다. 나는 당신들에게 더는 집착을 만들지 말고 가급적 현존하는 사람의 집착을 내려놓으라고 한다.

사실 나는 다른 한 방면에서도 완전히 당신의 이러한 사상을 모두 떼어버릴 수 있고 좋지 못한 사상을 전부 떼어버리고 당신의 집착을 직접 떼어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안 되며 이것은 수련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한 가지를 할 수 있는데, 표면에서부터 당신을 정화해 주어 당신의 사상으로 하여금 일정한 청정(淸淨)에 도달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좀 남겨서 수련에 쓸 수 있도록 한다. 더 제거하면 당신은 연마할 수 없다. 당신이 속인 중에서 수련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나는 내부의 미시적인 데서부터 당신의 신체를 정화해 주는데, 외부 표면에는 그리 많은 큰 신통(大神通)이 표현되어 나오지 않는다. 당신이 속인 중에서 수련하는 것을 유지하게 하기 위해, 당신 생명의 가장 미시적인 데서부터, 안에서부터 밖으로 정화하며, 가장 표면에 이를 때까지 줄곧 정화되기를 기다리는데, 당신이 최후에 남은 조그마한 것을 제거하기만 하면 곧 원만에 이르게 된다. 제거되지 못한 표면적인 것은 최후 일보까지의 수련을 위해 일부러 당신에게 남겨놓은 것으로서 당신으로 하여금 속인 중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고만한 것을 없애버리면 당신은 정말로 속인 중에 있을 수 없으며 당신은 그 어떤 사람 일에 대해서도 다 흥취가 없는, 이런 상태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최후 일보에 이르렀을 때 고만한 것을 전부 제거해 버리게 된다.

이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당신으로 하여금 속인 중에서 수련할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또 당신으로 하여금 속인 중에서 정상적으로 생활하게 하는 동시에 또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하고 속인처럼 집착심이 그렇게 강하지 않게 한다. 당신들은 이런 한 갈래 길을 걸었으며 이처럼 수련하였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당신이 잠시 속인의 사상과 집착이 좀 있다 하여 부담스럽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일부러 당신에게 남겨놓은 것이다. 우리는 다른 한 가지 경향을 주의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본래 그리 정진해서 수련하지 않았는데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는, ‘아, 이것은 나에게 남겨준 것이구나. 그럼 나는 상관하지 않겠다.’ 그러면서 자신을 방임하고 집착을 담담히 내려놓지 않으며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하지 않는다면 그건 안 된다. 그러면 또한 수련이 아니다.

제자: 결혼할 수 있습니까?

사부: 나는 당신들에게 속인 중에서 생활할 수 있는 요소를 남겨 주었다. 제자들 중에 일부 젊은 사람들은, 내가 희망하건대, 당신들은 그래도 가정을 이루고 일을 해야 한다. 가령 장래 인류사회가 모두 와서 대법을 배우는데 다 가정을 이루지 않는다면, 이 인류사회는 곧 끝장나며 없어질 것이다. 이러면 안 된다. 아울러 젊은 사람은 또 미래인들에게 후대를 남겨놓아야 하는 것으로, 당신들은 또 미래의 신인류(新人類)를 위해 수련 방식을 남겨놓아야 한다.

제자: 法輪世界(파룬쓰제)는 얼마나 큽니까?

사부: 法輪世界(파룬쓰제)는 굉장히 크다. (웃음) 무량한 중생이 있고 수많은 부처, 보살과 나한이 있다.

제자: 法輪功(파룬궁)을 연마하면서 아미타불을 염할 수 있습니까?

사부: 염불은 바로 수련이다. 아미타불을 염하는 것은 바로 정토(淨土) 그 한 법문을 수련하는 것이다. 法輪功(파룬궁)을 연마하면서 당신이 또 아미타불을 염한다면 그것은 섞어서 연마하는 것이다. 나도 기어코 당신에게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수련해야만 한다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실로 내려놓지 못하겠으면 가서 아미타불을 염하도록 하라. 나는 이미 이치를 분명히 말했다. 말법시기에 이르러 종교 중에서는 원만에 이르기가 아주 어렵다. 어떤 사람은 대업왕생(帶業往生)을 말하는데 속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사람이 자신의 사상을 거의 다 수련했고 주요한 업력을 다 닦아버렸으며 자그마한 집착이 남아 천천히 제거할 수 있는 이때에 특수한 정황이 나타나는데 그때라야 대업왕생 할 수 있다. 당신이 몹시 더러운 신체를 갖고서 절대적으로 깨끗한 천상(天上)에 올라가고 부처의 세계로 올라간다면 당신을 어디에 배치하겠는가? 그렇지 않은가?

제자: 한밤중 삼경(三更)에 연공하면 마가 훼방 놓는 느낌이 있는데 한밤에는 연공할 수 없습니까?

사부: 당신이 진정하게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수련하며 다른 것을 섞어서 연습하지 않았다면 보증하고 다른 어떤 것도 당신을 해치지 못할 것이다. 어떤 때 신(新)수련생은 다른 것을 섞어서 연마(練)하는데, 그러면 그가 대법(大法), 이 문을 수련한다고 할 수 없다. 법(法)의 요구에 따라 하지 않고 다만 동작만 연습한다면 진정한 수련이 아니다. 문제가 생겨 내 이름을 부른다 해도 당신을 책임지기 어렵다. 당신은 “사부님께서는 왜 저를 책임지지 않습니까?”라고 할 것이다. 당신은 대법(大法)을 수련했는가? 당신은 나의 요구에 따라 수련했는가? 이 이치가 아닌가? 부처수련은 엄숙한 것이다.

제자: 태극권(太極拳)과 法輪功(파룬궁)을 함께 연마해도 됩니까?

사부: 안 된다. 태극, 형역(形易), 팔괘(八卦)류의 이런 권법은 그 속에 모두 기공이 있다. 하지만 다른 무술을 연마(練)하는 것은 상관없다. 무슨 장권(長拳), 홍권(洪拳), 남권(南拳), 소림(少林) 이런 것은 모두 상관없다. 그러나 이 태극권은 완전히 기공(氣功)이다.

지금 사람은 태극권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고 있으며 어떤 사람은 태극권을 신체를 단련하는 건강체조로 여긴다. 사실 태극권은 내외겸수(內外兼修)의 많은 것을 그 속에 갖고 있다. 지금 사람은 어떻게 수련하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장삼풍(張三豐)이 태극권을 수련하는 심법(心法)을 사람에게 남겨주지 않고 단지 동작만 남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후세사람들은 수련하지 못한다. 태극의 동작이 느릿느릿하다고만 보지 말라. 그 능력은 표면공간에 있지 않다. 사람 이쪽에서 당신이 아무리 빨라도 그의 손보다 빠르지 못하다. 보기에는 그가 운동하는 것이 아주 느리지만 그는 다른 공간에서 간다. 마치 여러분이 알고 있는 과거의 고대 일화에서 신선(神仙)이 정상적으로 걷지만 뒤의 사람은 말을 타고도 따라가지 못하는 것과 같다. 속인이 볼 때는 아주 천천히 가는 것 같지만 사실 그는 다른 시공(時空)으로 간다.

사람은 자신이 주먹을 내지르는 것이 아주 빠르다고 느끼지만 그는 영원히 다른 시공의 속도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당신이 볼 때는 태극권의 주먹 움직임, 손 움직임이 아주 느린 것 같지만 당신의 동작이 아무리 빠르다 해도 그보다 빠르지 못하며 그는 벌써 거기에 가 있다. 단지 현대인이 그런 정도에 도달하지 못할 뿐이다. 게다가 그의 손은 공능을 갖고 있는데 이런 공능은 사람이 감당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영화 속의 무술은 아주 멋지게 표현되는데 왜 실천 속에서는 마구 휘두르고, 마구 발을 구르고 걷어찰 뿐 한바탕 무술의 조예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가? 자세가 나오지 못하는가? 왜냐하면 그 속에 공부(功夫)가 없기 때문이다. 그에게 만약 공부(功夫)가 있다면 사람은 피할 수도 없다. 그가 이런 방법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지금 자세가 나오지 못하는 것은 내외(內外) 공부(功夫)가 없기 때문이다.

태극권은 다른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그것은 이미 수련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완전히 기공(氣功)이다. 그의 신체가 따라서 변화되고, 사상경지 역시 제고되어야만 비로소 연마해 낼 수 있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도(道)로 수련 성취되면 신성하기가 비할 바 없어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다. 지금의 사람은 타락한 현재의 관념에 입각해 고인(古人)을 생각하는데, 고인은 이렇지 않다.

제자: 法輪(파룬)이 바른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비뚤게 돌거나 거꾸로 돌 수 있습니까?

사부: 그렇다. 당신의 신체에 어떤 조절이 필요하면 그는 필요에 따라 당신의 신체를 조절해 준다. 이렇게 돌고 저렇게 돌아서 당신의 신체를 잘 조절해 준다. 초기에 사람의 신체를 조절해 줄 때, 法輪(파룬)은 마음대로 돌며 속도의 빠르고 늦음도 일정하지 않다. 신체를 잘 조절한 다음 法輪(파룬)은 아랫배 부위에서 안정적으로 바른 방향으로 9번 돌고 반대 방향으로 9번 도는 정상(正常) 상태에 진입한다.

제자: 제가 연공하는데 아들이 반대합니다.

사부: 그렇다. 일부 사람은 이런 정황이 있다. 가족들이 반대한다. 그건 여전히 당신 자신을 봐야 한다. 어쨌든 수련으로 들어온 만큼 곧 고험(考驗)이 있게 마련이다. 그럼 마(魔)가 당신의 아들을 이용해 당신을 교란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진정하게 대법(大法)수련에 진입하고 당신이 정말로 수련할 수 있으면, 내가 처리해 줄 수 있다. 교란 속에서 나는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전히 수련하려고 하는가 하지 않는가를 볼 것이다. 왜냐하면 부처수련은 엄숙한 것이며 의지가 견정(堅定)하지 못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제자: 가부좌는 결가부좌가 가장 좋습니까?

사부: 최후에는 결가부좌할 것을 요구한다. 천천히 연마하라. 모두 결가부좌 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80여 세 노인도 점차적으로 다 결가부좌를 하는데 문제가 없다. 오로지 당신이 연마만 하면 천천히 다 틀어 올릴 수 있다. 단번에 다 되는 것은 아니므로 억지로 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나는 반가부좌마저도 하지 못한다고 말할 것이다. 당신이 반가부좌를 하지 못하면 책상다리를 하라. 나는 다리마저 반듯하게 앉지 못한다고 말한다면 다리를 좀 높게 치켜들어도 된다. 당신이 반듯이 앉을 수 있게 되면 다리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갈 것이며 매번마다 내려갈 수 있는 것으로, 끝까지 내려올 수 있을 때에는 반가부좌를 할 수 있다. 반가부좌를 할 때 다리가 아주 높게 치켜 올라갈 수 있지만 역시 상관없다. 매번 연공에 당신은 다리가 좀 내려가는 것을 발견할 것이며 매번 조금씩 내려갈 수 있다. 완전히 다 내려가기를 기다려 반가부좌에 두 다리가 완전히 표준적으로 수평으로 되었을 때, 결가부좌를 하도록 하라. 오직 당신이 수평을 이루기만 하면 당신은 다른 다리를 틀어 올릴 수 있는데 바로 결가부좌이다.

제자: 왜 혼혈아를 가련하다고 하십니까? 이번 생에는 중국인이지만 다음 생에는 외국인이 될 수 있고 지구상의 인종 및 元神(왠선)에는 여러 종족이 있습니다.

사부: 전생(轉生)하는 것은 元神(왠선)이 전생하는 것이며 혼혈된 것은 육신(肉身)이다. 부동(不同)한 신(神)은 자신의 부동한 사람을 만들었는데 그러한 신(神)들은 역사상 줄곧 자신이 만든 사람을 책임지고 있다. 백인은 곧 백인이며 흑인은 곧 흑인이고 황인종은 곧 황인종이다. 세상의 어떠한 민족도 모두 천상의 인종과 대응된다. 혼혈된 후에는 천상의 신(神)과 대응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사람을 만든 어떠한 신(神)이든 다 상관하지 않을 것인데, 그럼 이런 사람에 대해 말한다면 아주 가련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할 것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당신은 걱정하지 말라. 내가 말한 것은 사람의 표면적인 정황이다. 사람의 元神(왠선)은 섞이지 않기 때문에 만일 사람이 수련하고자 하면 나는 당신으로 하여금 모두 수련할 수 있게 한다. 당신이 최후 일보로 수련된다면 마찬가지로 원만을 이룰 수 있으며 차이가 없다. 수련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만약 속인이 이런 정황이라면 사는 것이 아주 가련하다. 이런 상황이 집중된 지역을 위의 신(神)은 승인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그 지역의 사람들은 모두 아주 빈곤하며 생활도 아주 어렵다.

제자: 외국에서 공부하는 중국 아이들, 그들은 서방교육을 받습니다. 수련 중에서 그들은 외국어로 『전법륜』을 이해하는데 황인종이 대응하는 세계로 갈 수 있습니까?

사부: 元神(왠선)이 어디에서 온 것이면 어디로 가는 것으로 사람 신체의 표면을 보지 않는다. 만약 수련이 잘 되었다면 모두 마찬가지로 원만을 이룰 수 있다. 그러나 중문(中文)의 표면적인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할 수 있는데 이 표면적 차이는 해결할 수 없다. 하지만 수련 중에서 인류의 내포를 초월하는 것은 영향 받지 않는다.

제자: 사람의 뇌는 아주 발달한 것인데 어찌하여 동물이 사람을 통제할 수 있습니까?

사부: 사람의 뇌는 조금도 발달하지 못했다. 사람 자신이 발달했다고 여길 뿐이다. 그러므로 사람 자신도 사람 뇌의 백분의 칠십 이상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사실은 신(神)에 의해 잠겨 있는 것이다. 어떤 생물이든 일단 영기(靈氣)가 있으면 있는 층차를 벗어나게 되며 다른 생명을 제약할 수 있다. 비록 하늘의 이치가 용납하지 않지만 사람이 좋지 않은 일을 함으로써 그런 것들에 부합했다면 곧 사람 자신이 구해온 것과 같다. 그것이 구실을 잡을 수 있기에 그것이 사람을 통제할 수 있다.

제자: 공(功)과 법(法)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法輪功(파룬궁)의 제고와 법리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사부: 이러한 것을 나는 이미 『전법륜』 중에서 아주 명확히 말했다. 이 문제를 말하자면 매우 방대하므로 간단히 말해보겠다. 정치이론을 하는 사람은 줄곧 물질이 일차적인가 아니면 정신이 일차적인가를 논쟁하고 있는데, 줄곧 이런 의식형태 면의 논쟁이 발생하였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물질과 정신은 일성(一性)이다. 공(功)이 바로 법(法)이며 법(法)이 바로 공(功)인 것으로 정신 자체가 곧바로 물질이다. 수련인의 心性(씬씽) 제고는 표준이 있는 것으로 표현상에서도 척도(尺度)가 있다. 心性(씬씽)이 올라와야만 그 공(功)도 올라오게 마련이다. 공은 당신의 정수리에서 한 가닥 공기둥(功柱)을 형성하는데 공기둥의 바깥 테두리에는 눈금이 있다. 그것이 바로 心性(씬씽)이 높고 낮은 표준이다. 心性(씬씽)이 제고되면 척도가 자라고, 그가 자라면 공(功)도 자라는데 공(功)의 연화(演化) 역시 매우 빠르다. 바로 당신의 心性(씬씽)이 올라오는가, 올라오지 못하는가를 보고 있으며 心性(씬씽)이 올라오면 공(功)도 올라오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이 心性(씬씽)이 얼마만큼 높으면 공(功)도 그만큼 높다는 것은 절대적인 진리로서, 어느 문(門)에서도 다 이러하다. 다만 소도(小道)수련에서 모를 뿐이다.

서방종교는 공(功)을 말하지 않는다. 석가모니 부처가 법(法)을 전할 때에도 공을 말하지 않았고, 오직 도(道)만 공을 말했다. 내가 말하는 것은 불(佛)·도(道)·신(神) 모든 것을 포함한다. 본래 일체 신(神), 일체 법(法)은 모두 우주의 근본법에서부터 깨달아 나온 것이다. 설법 중에서 나는 되도록 당신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당신이 어느 용어를 이해할 수 있으면 그 용어를 썼다. 어떤 사람은, 서방종교는 수련이 아니며 동방종교의 가부좌는 수련이라고 말한다. 서방은 수련이 아닌가? 서방종교 역시 수련이다. 예수는 당신이 나를 믿으면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는데 무슨 뜻인가? 예수는 늘 표면적인 것을 말하고 그런 다음 사람에게 어떻게 하라고 했다. 마치 서방문화와도 같이 그는 내포를 말하지 않았으며 당신이 하기만 하면 되었다. 지금의 사람 그는 예수가 말한 믿음이 무엇인지 모른다. 예수는 당신이 나를 믿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믿음이란 예수가 말한 것에 따라 해야만 진정한 믿음(眞信)이다. 예수가 말한 데 따라 하지 않으면 그것이 정말로 믿는 것인가? 사람이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식사 전에도 ‘아멘’을 말하지만, 속인사회 속으로 돌아오면 그는 나쁜 일만 하는데 그것을 예수를 믿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예수가 말한 것이 단지 “나를 믿으면 천국으로 갈 수 있다.”는 이 한 마디 말뿐인가? 예수는 왜 사람이 되는 그처럼 많은 이치를 말했는가. 그가 말한 데 따라 한다면 천국으로 갈 수 있다는 이 뜻이 아닌가? ‘믿음’이란 개괄적인 단어이다. 자신을 수련하지 않고 자신을 제고하지 않으면서도 당신이 천국에 갈 수 있단 말인가? 때가 되면 예배하러 갈 것인데, 당신이 입으로 늘 신(神)의 이름을 염하고 있으면 당신이 신(神)을 믿는 것인가? 천국에 들어가기를 기다린단 말인가? 그건 안 된다.

당신이 참회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참회란 자신의 잘못을 알고 더욱 잘 하려고 하는 것이지, 참회를 하는 한편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오늘 사람을 죽였는데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말하고 내일 당신이 또 한 사람을 죽이고 나서 당신이 또 참회하며 용서를 빈다면, 누가 당신을 용서해 주겠는가? 이 이치가 아닌가? 당신이 나쁜 짓을 한 것을 참회하면서 앞으로는 더 하지 말아야 하며 정말로 더 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좋지 않은 마음을 발견하고 참회 중에서 당신은 예수에게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여, 저를 구원해 주십시오. 저는 좋지 않은 사상이 있습니다.” 그럼 평소에 당신이 좀 잘 해야 하는데 당신 이것이 바로 사람의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바로 자신을 수련하는 것이 아닌가? 예수는 공(功)을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으나 공(功)은 사부에게 달렸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들이 신체를 수련 성취하고 신체를 개변하게 하기 위해 공(功)을 중점적으로 말했다. 예수가 공(功)을 말하지 않은 것은 당신이 알 필요가 없어서였다. 당신이 오로지 당신의 이 마음을 수련만 하면 공(功)은 예수가 책임지기 때문에 예수는 공(功)을 말하지 않았다. 수련이란 바로 사람의 좋지 않은 사상과 행위를 닦아버리는 것이다. 경지가 제고되어 올라오면 사부 저쪽에서는 당신에게 공(功)을 연화해 주는데 바로 이 이치이다.

제자: 석가부처 그는 수억 만 년 전에 도(道)를 얻었다는데, 생명이 생김에 모두 ‘眞(쩐)·善(싼)·忍(런)’에 동화된 것은 아니었을 텐데, 또 어떻게 득도(得道)할 수 있었습니까?

사부: 천상의 중생이 모두 과위가 있는 것은 아니며 천상의 중생이 모두 부처는 아니다. 일체 생명은 모두 우주대법(宇宙大法)이 양성했고 대법(大法) 중에서 양성된 우주 중에서 생긴 것이다. 그러나 이는 득도(得道)와는 같은 개념이 아니다. 득도란 자신의 과위를 증오(證悟)한 것을 가리킨다. 석가는 부처이며 대단히 좋은 부처이다. 하지만 나 여기에서 수련하는 것은 석가모니교(釋敎)가 아니다. 당신은 이 법(法)에 대해 아직 진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眞(쩐)·善(싼)·忍(런)’은 전 우주의 법리이며 전 우주를 만든 근본이며 또한 일체 가장 원시적인 신(神)과 우주 전 과정의 일체 신(神)을 육성한 근본이다. 석가모니 부처도 물론 그 속에 있다. 우주 역시 성주괴멸(成住壞滅)의 과정이 있다. 석가부처는 가장 원시적인 신(神)이 아니며 우주 중의 일체 생령(生靈)은 모두 괴멸(壞滅)로 나아가고 있다. 삼계에 근접한 중생들이 세상에 내려와 새로 수련하는 것은 이 범위의 생명들이 깨끗해질 수 있는 방법이다. 석가모니가 말한 이치는 그의 그 층차 중의 ‘眞(쩐)·善(싼)·忍(런)’에서 증오(證悟)해낸 여래법이다. 모든 여래는 우주의 진법(眞法), 근본법을 다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주의 근본대법은 우주를 초월하고, 일체 우주생명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뭇 신들은 단지 그의 그 층차 중에서 증오해 낸 자신의 인식일 뿐이며 이것이 바로 그의 그 문이다. 같지 않은 신(神)은 단지 사람을 그 이하의 중생으로 제도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대법(大法)은 근본 대도(大道)이며 수련하자면 가장 빠르고, 가장 간단하며, 그리 많은 것을 따지지 않는다. 법(法)은 피라미드와도 같아 변두리는 이처럼 낮으며 그 층의 신(神)의 이해는 곧 요만한 높이다. 그럼 제도 받은 사람 역시 단지 이 층차 중에서 원만을 이룰 뿐이다. 여래가 이 층차에서 원만을 이루면 그는 곧 이만큼 증오(證悟)한 것으로, 제자들을 거느릴 때 그들은 모두 자신의 그 문의 것을 말한다. 매 한 부처가 깨닫는 것은 모두 같지 않으며 매 한 부처는 모두 眞(쩐)·善(싼)·忍(런), 대법(大法)의 법리 중에서 우주의 眞(쩐)·善(싼)·忍(런)의 근본대법을 이해하고 있다. 한 층 더 높은 신과 부처의 가지(加持) 중에서 바르게 수련하고 바르게 깨달으며, 그가 얼마만큼 이해한다면 그는 그만큼 아는 것으로, 그 자신이 수련한 것을 형성하며 그는 이 층의 법(法)에 동화한다.

제자: 가부좌 중에서 머리가 왜 사부님의 법상(法像)을 향해 돌아갑니까?

사부: 당신의 명백한 일면이 나를 보는 것이다. 때로는 나의 법신이 당신들을 점오(點悟)해 줄 수 있다. 점오할 때 같지 않은 방법을 취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이 한 가지 일을 잘 했는지 못했는지, 한 것이 맞는지 맞지 않은지를 알고자 한다면, 당신은 내 책 속의 사진이나 혹은 나의 다른 사진을 보도록 하라. 당신의 천목이 열렸든 열리지 않았든, 만약 당신이 어떤 일을 잘못했다면 나는 아주 엄숙할 것이며, 만약 당신이 맞게 했다면 나는 당신에게 미소를 지을 것이다. (박수)

제자: 사부님께서 설법하실 때, 저는 모두 아주 옳고 아주 좋다고 여깁니다. 어떤 때는 그야말로 마음속에 와 닿는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되돌아 사부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회상해 보면 마치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부: 사실 나의 설법을 듣는 사람은 모두 이런 상태가 있다. 나는 아주 많은 법(法)을 말했으므로 당신이 그를 모두 아주 똑똑히 기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괜찮다. 매번 당신이 수련 중에서 문제에 부딪힐 때, 만약 당신이 자신을 수련인으로 간주하고 정확히 대할 수 있을 때면 당신은 내가 한 말이 생각날 수 있는데 틀림없이 이러하다. 그러나 만약 그때 당신이 화가 나서 야단법석이며 냉정하지 못하다면 생각나지 않는 것으로 역시 수련이 확고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정황에서 당신은 내가 말한 법(法)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어느 사람이 수련할 수 없다면 그는 내가 말한 법(法)을 영원히 생각해 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 법(法)이 속인에게 말해 주는 것이 아님을 재삼 강조한다. 여러분이 여기에 앉아 있는 것도 모두 인연이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들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제자: 제가 만약 버려진 작은 동물을 데려다 키우면 업을 짓습니까?

사부: 이것은 업을 짓는 것이 아니다. 속인으로서는 좋은 일을 하는 것이지만 과거 불교에서는 죽이지도 않고 기르지도 않음을 말했다. 죽이지도 않고 기르지도 않는다는 것은 이유가 있다. ‘죽이지 않음’은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다 안다. ‘기르지 않음’은 여기에 두 가지 이치가 있다. 하나는 수련할 때, 이런 동물들은 쉽사리 영기(靈氣)를 얻는다. 만약 단번에 영기를 얻는다면 그것이 아주 나쁜 일을 많이 할지도 모른다. 중국에는 ‘요귀가 되었다’는 한 마디 옛 말이 있는데 동물 자체를 수련하지 못하게 했다. 또 하나는, 이런 것들을 키우면 매우 신경을 써야 하며 마음을 분산시킬 수 있고 그것을 생각하는 것도 집착이며 수련에 영향을 준다. 물론 수련인으로서는 동물을 좋아하는 것 또한 집착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한 가지 말을 해주겠다. 여러분 모두 알다시피, 바라문교(婆羅門教)는 석가모니가 가장 반대한 것이다. 그는 삿되게 변한 교로 여겼는데, 그것은 석가모니의 이 불교와 가장 대립했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석가모니가 반대한 것은 바라문교이지, 바라문의 신(神)을 반대한 것이 아니다. 바라문교가 가장 원시시기일 때 믿은 신(神)은 바로 모두 부처였고 믿는 것도 석가모니보다 더 이른 부처였다. 그러나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사람은 부처에 대한 바른 믿음(正信)을 배반했으며 이 종교를 그릇되게 만들었고 심지어 살생하여 부처에게 제를 올렸다. 최후에 신봉한 그 신(神)은 부처의 형상도 아닌, 괴물형상의 그런 요마귀괴(妖魔鬼怪)를 신봉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종교를 삿되게 만들었다. 여러분 알다시피, 만약 불교가 이렇게 발전해 내려간다면 석가모니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여러분 생각해 보라. 수많은 해가 더 지난 후, 그때의 수련하는 사람들이 뒤돌아 과거 역사의 이 교를 본다면 그것이 삿된 것이 아니겠는가?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이 교를 삿되게 만든 것이지, 신(神)이 삿된 것이 아니다.

아주 일찍이 인도에 바라문의 한 제자가 수련하고 있었는데 수련에 아주 정진했으며 그는 산 속에서 단독으로 수련했다. 어느 날, 사냥꾼이 한 마리 사슴을 쫓고 있었는데 이 사슴을 쏘아 부상을 입혔다. 이 사슴이 그가 있는 곳으로 달려오자 그는 사슴을 숨겨 보호해 주었다. 그는 산에 혼자 있어 매우 적막했기에 나중에 이 사슴을 길렀다. 사람이라 집착심에 주의하지 않으면 매우 심각한 것이다. 속인의 이런 가련한 마음, 정에 대한 사람마음의 집착을 모두 이 작은 사슴에게 쏟아 부었다. 나중에 그는 이 사슴에게 매우 집착하게 되었다. 최후에는 이 사슴이 그야말로 그의 가장 친밀한 동반자가 되었다. 결국 그는 많은 정력을 이 사슴에게 쓰다 보니, 그가 가부좌를 하면 사상이 조용하지 않고, 사슴에게 줄 먹이를 생각하다 보면 정진함이 느슨해지곤 했다.

여러 해가 지난 후, 이 사슴이 어느 날 갑자기 죽어버리자 그는 매우 고통스러웠다. 그는 늘 이 사슴을 생각하느라 더욱 정진할 수 없었다. 이때 그의 나이도 이미 많이 들었다. 수련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생명을 연장시킬 수 없는데 그가 수련할 수 없으므로 그의 생명도 결속되었다. 그의 생명이 결속될 때에도 그는 여전히 그의 불법(佛法)을 생각하지 않았고 그는 그 사슴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죽은 후에 그는 사슴으로 환생했다. 사람이 임종할 때, 집착스럽게 무엇을 생각하면 그는 그것으로 전생(轉生)하는 수가 있다. 그랬기에 그는 단번에 한 마리 사슴으로 환생했다. 이것은 매우 슬픈 것이다. 수련하는 사람이 수련을 아주 괜찮게 했는데, 결국 하루아침에 망치게 되었다.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좋기로는 동물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제자: 화가 나면 다른 사람에 대해 인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부: 당신은 인내하지 못하는 것도 제출하는가? 참을 수 없어도 참아야 하지 않는가. 수련인으로서 당신은 자비해야 한다! 나는 방금 당신이 당신의 원수를 사랑하지 못하면  수련 성취할 수 없고 성불할 수 없다고 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누가 당신에게 잘 대해주지 않을 때, 당신이 전생에 그에게 빚진 것일 수 있지 않은가. 당신이 남에게 갚지 않으면 되겠는가? 어쩌면 그때에 당신은 남에게 지금 그가 당신을 대하는 것보다 더 악하게 했을지도 모르며, 남에게 조성한 고통이 어쩌면 이것보다 더 클지도 모른다! 수련 중에서 모순이 올 때 표현은 마치 아주 우연한 것 같아, 누가 당신을 화나게 하고 당신도 그 때에 역시 아주 우연하게 남을 화나게 한다. 어떤 일이 발생하기 전에 당신에게 알려주는 그런 것이 어디 있는가. “이봐, 전생에 당신이 나를 화나게 했으니 금생에 나도 당신을 화나게 하겠다.”라고 말이다. 이런 일은 없다. 많은 일이 보기에는 우연하지만 모두 우연한 것이 아니다.

가령 당신이 예전에 이런 정황이 없었다면, 수련인으로서 제고를 위해 당신에게 이런 환경을 만들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신에게 이런 번거로움이 없으면 안 되며 나 또한 이런 번거로움을 이용하여 당신의 心性(씬씽)을 제고시킨다. 心性(씬씽)을 제고시키는 한편 당신 자신의 공(功)을 자라게 하는지라, 당신의 心性(씬씽)이 제고된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번거로움을 조성해 주는 동시에 그는 또 당신에게 德(더)를 준다. 당신은 고통 속에서 당신 자신의 업력이 또 德(더)로 전화되는데, 당신은 일거사득(一擧四得)이다. 당신은 마땅히 다른 사람에게 감사드려야 한다. 당신은 여전히 남을 증오하고, 남에 대하여 또 인내하지 못하는데 그건 잘못된 것이다. 어떤 사람은 또 생각한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참으라고 하셨으니 나는 꾹 참겠다.’ 시간이 길어지면 당신은 아마 “사부님, 저는 참는 것이 너무나 괴롭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내가 말하자면, 그것은 참음이 아니며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은 전혀 화가 나지 않으며 아무리 큰일에라도 모두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데 무엇 때문에 참는 것이 괴롭단 말인가? 이래야만 수련하는 사람이다. 또 어떤 사람은 체면을 고려해서 참는데 이것은 모두 진정한 참음이 아니다. 하지만 수련을 했으니 당신은 잠시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당신은 그래도 정말로 참아야 한다.

제자: 많은 대기공사들이 모두 젊은 사부들이고 많은 문파의 사부들이 공을 전하고 있는데요?

사부: 많은 사람들이 공을 전함은 천상(天象)이 조성한 것이며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또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많은 기공사들이 스스로 봉한 것으로 사실 그는 기공사도 아니다. 그는 가짜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동물 부체(附體)와 기타 난잡한 것들이 붙어 있다. 세간소도(世間小道) 역시 많은 사부들이 전하고 있는데, 하는 말은 그 한 층의 이치이다. 이것 말고는 바로 산 속에서 수련하는 사람들인데 내가 접촉한 사람 중 어떤 이는 4천여 년을 수련했다 한다. 그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긴 시간을 수련하는가? 그들은 층차가 모자라서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 중 어떤 사람은 이미 삼계를 훨씬 초월했지만 올라가지 못하는데, 그들이 올라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그들을 받아들일 세계가 없어서다. 그는 무엇 때문에 공(功)이 자랄 수 있는가? 이것 역시 이 한 층 법리가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세간소도는 또 다르며 어떤 것은 인위적으로 조성한 것이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한 문을 틀어쥐고 수련했는데, 도가에서 혹은 불가에서 수련했다. 수련하고 수련하다가 그는 괜찮다고 느꼈고 다른 사람이 그를 찾아와 “와서 이것을 수련해 보라.”고 하면 그는 또 가서 그것을 배웠다. 그렇게 되어 그의 공(功)은 난잡해졌다. 본래는 위에서 책임지고 있는 사부가 있었는데 위의 사부가 보니 이미 이렇게 되어 그는 받으려 하지 않는다. 위에서 받아주지 않으면 그는 삼계를 벗어날 수 없다. 삼계 밖에서는 삼계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며 삼계 내에서는 삼계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데, 당신이 아무리 높이 수련했다 해도 위에서 마중 나오지 않으면 나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가 수련을 난잡하게 해서 그의 공(功)도 이미 난잡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삼계 안에 있다. 이것이 바로 세간소도가 수련해도 정과(正果)를 성취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러므로 나는 불이법문(不二法門) 또한 아주 엄숙한 일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책을 본 적이 있어 “사부님, 당신은 도가 사부, 불가 사부가 당신께 전수해 주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한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내가 한 일은 다르며 나는 우주의 법(法)을 말하고 있다. 나는 불가의 법(法)만 말하는 것이 아니고 또 도가의 법(法)만을 말하는 것도 아니며 또 구체적인 어느 한 문의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우주의 근본 대법(大法)을 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거듭 대법(大法), 대법(大法)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우주의 근본법이다. 우주 안의 모든 법문이 다 그 속에 포함되어 있다. 내가 또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나의 금생의 몇몇 사부에는 불(佛)·도(道)·신(神)이 있는데 모두 몇 세(世) 이전에 내가 그들에게 전해준 것이다. 목적은 그들이 이 시기에 이르러 내가 대법(大法)을 전하려 할 때 다시 되돌아 나에게 전하도록 배치했는데 나의 기억을 열어놓은 다음 당신들에게 전해주려 해서다. (박수) 속인사회 중에서 발생한 어떤 한 가지 일이든 모두 우연한 것일 수 없다. 전하는 대법(大法)이 이렇게 큰 한 가지 일이므로 장래에는 배우는 사람이 더욱 많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 중의 각종 바르지 못한 요소의 교란과 삼계 내에서 대법(大法)을 전하는 것을 교란하는 이런 것들, 이런 난잡한 영기를 얻은 동물 저령(低靈)들이 화란을 일으키는 것도 우연한 것이 아니다.

제자: 우리는 이 층차에서 진짜와 가짜 기공사를 구별할 방법이 없는데 앞으로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사부: 당신이 지금 진짜와 가짜 기공사를 구별하려 하는데, 목적이 무엇인가? 당신은 아직도 계속 다른 기공학습반에 참석하려 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를 구별해서 무엇을 하는가? (박수) 내가 생각하기에 아마 어떤 사람들은 기공학습반에 참석해 본 적이 없는 까닭에 ‘리(李) 사부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보니 원래 이 수련은 이렇게 박대정심(博大精深)하구나. 아, 그럼 나는 다른 기공사가 한 말을 더 듣고 지식이나 좀 더 늘리자.’라고 할 것이다. 누가 이렇게 생각한다면 곧 틀린 것이다. 내가 말한 것은 대법(大法)이다. 당신은 다른 곳에서 이런 것을 듣지 못한다. 불이법문은 매우 엄숙한 문제이다.

그 밖에 당신이 이런 것들을 지식으로 간주하거나 혹은 당신이 다른 법문에 참가한다면, 아마 당신은 내가 말한 법(法)이 한 마디도 생각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수련은 엄숙한 일이기 때문이다. 진짜와 가짜 기공사를 당신은 분별할 방법이 없다. 그들의 표현은 바로 돈을 사취하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어떤 사람들은 선(善)을 말하지만 뼛속에서는 다만 돈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분별하기가 매우 어렵다.

제자: 어떤 사람이 대법(大法)에 대해 흥취가 있지만 수련할지 하지 않을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며 또 자신을 수련인으로 간주하지 못하는데, 그럼 우리 보도원은 그래도 그를 도와야 합니까?

사부: 내 생각에 일부 수련생들은 여전히 인식과정이 있다. 막 입문한 사람에게 노(老)수련생들처럼 그렇게 높은 경지에 있으라고 하면 그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다. 그로 하여금 인식과정이 있게 하라. 그가 와서 연마하고 싶으면 그가 오도록 하고, 그가 연마하려고 하면 그를 가르쳐 주라. 서서히 그가 좋다고 느낄 때, 당신은 그에게 『法輪功(파룬궁)』을 빌려주어 보도록 하거나 그가 책을 한 권 사서 보게 하라. 이렇게 해서 그가 좋다고 느끼고 그의 인식이 올라오면 당신은 그에게 『전법륜』을 보여 주라. 그 자신이 얕은 데서부터 깊은 데로 인식하게 된다. 만약 당신이 그에게, 우리 공을 연마하면 당신이 약을 먹어서는 안 되며, 우리 공을 연마하면 당신은 즉시 다른 것을 믿어서는 안 되며, 우리 공을 연마하면 단번에 어느 정도에 도달해야 한다고 요구한다면, 당신은 단번에 그가 놀라서 도망가게 한 것이다. 당신은 그에게 우선 연마해 보게 하라. 그가 좋다고 느끼면, 그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된다.

사람을 제도하기란 아주 어렵다. 만약 그가 장기적으로 아직도 불이법문의 수련을 견지하지 못하거나 혹은 동작만 연마(練)하고 책을 보지 않는다든가 하면, 당신은 그에게 다른 공법을 연마하라고 권하라.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나타날 수 있으며 그에 대해서도 좋지 않다. 그는 여기에서도 좋지 않은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그가 여기에서 온 마음을 다 기울여 수련하지 않으면 나의 법신도 그를 책임지지 않을 것이며, 그럼 그는 바로 속인이다. 속인은 때가 되면 병에 걸릴 것이다. 어쩌면 난법을 하는 마(魔)가 그를 이용해 일을 만들 수 있으므로 단번에 비정상적으로 될 수도 있다. 속인은 수련은 전일해야 함을 모르므로 일단 문제가 나타나면 우리에게 아주 큰 위해를 조성할 수 있다. 그가 전일하게 수련하지 못하고 법 공부를 할 수 없다면 그에게 떠나도록 권하거나 혹은 그의 가족들에게 그로 하여금 더는 연마하지 못하도록 권고하게 하라.

제자: 저는 전에 학교에서 무술을 가르친 적이 있는 무술교사입니다. 지금은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배우며 더는 태극권을 연마하지 않지만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습니까?

사부: 가르쳐도 된다. 그러나 무릇 수련요소가 있는 것은, 태극권을 포함하여, 모두 수련의 문제에 관련된다. 만약 당신이 이 일로 생계를 유지한다면 당신은 할 수 있다. 당신은 나는 학교에서 태극권을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가르칠 수 있다. 특수한 상황에 대해 나는 특수하게 처리한다. 만약 이런 상황이 아니라면 전일하게 수련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당신이 그들에게 法輪大法(파룬따파)를 가르쳐 준다면 더 좋지 않겠는가? (박수) 중국에서 어떤 학교의 선생님은 체육시간에 法輪大法(파룬따파)를 가르쳐 주고 연공이 끝난 후에는 거기에 앉아서 학생들에게 책을 읽어주었는데, 학생들 스스로 우리는 수업할 때 여태껏 이렇게 조용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제자: 法輪(파룬)을 볼 수 있는 외에 또 들을 수도 있습니까?

사부: 法輪功(파룬궁)을 연마하면 어떤 공(功)이든 다 나타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천이(天耳)가 통하기만 하면 다른 공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제자: 대법(大法)을 수련하는 사람이 가정을 꾸릴 수 있습니까?

사부: 할 수 있다. 수련 중에서 나도 당신들에게 자신이 수련할 것을 남겨두었는데 당신들이 속인 중에서 수련할 수 있도록 보증한다. 속인 생활방식의 상태에 부합되게 수련할 수 있다. 또한 미혼인 사람들은 만족스러운 좋은 상대를 찾아 가정을 꾸리기 바란다. 장래에 어쩌면 부부가 다 수련할 수 있는데 그럼 당신이 그를 제도한 것이다. 그러나 또한 이것을 표준으로 하지 말라. 그가 연마하지 않으면 나는 그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지 말라. 역시 속인상태에 부합하여 수련해야 한다.

제자: 사부님께서는 방금 전에 일을 열심히 해야 되는 문제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일을 아주 열심히 하지만 사장은 저를 이용해 동료들에게 압력을 넣어 저는 매우 난감합니다.

사부: 사장이 어떻게 하는가 하는 것은 당신과 전혀 무관하다. 만약 사장이 당신을 시켜 다른 사람에게 압력을 가한다면, 내 생각에 이 일은 처리하기가 쉽다. 당신은 좀 완곡하게 할 수 있으며 당신의 뜻을 분명히 전달하면 된다. 수련인으로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의 책임이 바로 이렇다면 당신은 해도 문제가 없다. 그러나 문제를 처리하는 방법은 선(善)해야 한다. 회사가 손실을 입지 않게 하기 위해, 만약 정당한 것이라면 내가 생각하기에 당신도 마땅히 해야 한다. 아무튼 이런 구체적인 일은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는데 모두 잘할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가 있다. 절대로 연공인의 원칙을 벗어나서는 안 되며 나쁜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제자: 우리는 미국에서 어떤 일이 있으면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眞(쩐)·善(싼)·忍(런)을 생각해 법률소송을 하지 않았는데 맞습니까?

사부: 사소한 일로 경찰을 부르지 말라. 어떤 모순들은 아마 당신들의 수련, 업을 갚는 것, 제고 등 요소를 겨냥해서 온 것일 수 있다. 그러므로 번거로운 일이 나타났을 때, 오직 그것이 엄중하게 당신을 위협하고 당신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면, 내 생각에 모두 우연한 것이 아니다. 만약 정말로 어떤 사람이 와서 당신을 죽이려 하고 당신 집을 불태우며 당신에게 아주 큰 위해를 주는 일이라면, 당신은 경찰에 알리거나 당신은 또 법률소송도 할 수 있다. 만약 이런 것이 아니라면 내 생각에 당신은 이렇게 하지 말라.

수련인으로서, 개인수련 중에서, 개인의 인식제고 과정 중에서, 당신 수련과 무관한 일을 나는 당신에게 만나지 못하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앞으로 당신의 개인 수련 제고의 길은 내가 심혈을 기울여 배치한 것으로, 당신들에게 불필요한 일들을 배치하지 않았다. (박수) 법률이 아무리 건전하더라도 사람의 마음을 단속하지 못하며 보지 않을 때 사람은 여전히 나쁜 일을 할 것이다. 법률을 많이 제정하면 사람에게 해로움이 더욱 크다. 많아서 사람이 기억도 하지 못하는데 아마 사람이 무엇을 해도 법을 범할 수 있다. 법을 제정한 사람은 이 법률로 다른 사람을 다스리려고 하지만 사실 일단 제정하게 되면 법률이 법률을 제정한 사람 자신을 다스린다. 사람은 이미 사람이 자신을 위해 창조한 일체를 감당하고 있다. 법률은 갈수록 엄하고 사람에 대한 제제도 갈수록 엄하여, 장래에 동물을 다스리듯이 사람을 다스릴 것이다. 사람은 이렇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또한 사람 자신이 만들어낸 것으로 자신이 감당해야 한다. 지금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자신을 위해 만든 일체를 감당하고 있는데 이 일체는 모두 끊임없이 인류를 봉폐하고 있다.

신(神)은 사람의 법률을 인정하지 않는데 신(神)은 사람이 부패한 후에야 방법이 없어서 채용한 일종 수단이라고 인정한다. 신(神)은 오로지 심법(心法)만 인정하며 도덕만 인정할 뿐이다. 도덕이 있다면 법률이 없어도 사람들은 나쁜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제자: 하느님(上帝)은 무엇입니까?

사부: 부동한 민족은 부동한 신(神)이 만든 것이다. 사람을 놓고 말하면 그들을 만든 신(神)이 바로 그들의 하느님이다. 이것은 사람 몸(人身)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실 사람의 元神(왠선)은 또 내력이 있다.

제자: 미국에서 수련하는 法輪功(파룬궁)과 중국 대륙에서 수련하는 것이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사부: 차이가 없다. 서방국가에는, 동방의 이 황인종과 마찬가지로 확실하고도 확실하게 각자 공간의 부동한 체계가 있으며 우주의 더욱 큰 공간 속에 있는 부동한 체계와 대응한다. 이런 부동한 공간체계는 모두 자신의 공간을 특수하게 구성하는 물질요소가 있다. 동방인 역시 그의 특수한 물질로 구성한 요소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오면 시차를 제외하고도 적응과정이 있다. 늘 내재적이나 외재적으로 습관 되지 않음을 느끼는데, 바로 물질요소가 서로 다르며 생활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과거에 사람들은 “한 지방의 풍토가 그 지방의 사람을 기른다.”고 말했는데, 그렇다. 왜냐하면 이런 요소들은 속인에 대해 말하자면 아주 주요하기 때문이다. 동방인의 문화적 내포는 서방과 다르다. 예를 들어 중국인은 술수(數術)와 발음을 중시한다. 팔(八)과 발(發)이며, 사(死)와 사(四)의 경우처럼 좋은 발음을 말하기 좋아하며 좋지 않은 발음은 말하기 싫어한다. 그럼 동방의 이런 물질 환경 중에서 역시 이런 물질요소가 확실히 있으며 속인에 대해 자그마한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서방에는 없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의 그런 물질 환경 요소가 있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동방인은 지리방위의 풍수(風水)를 따지지만 서방인으로 말하면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며 틀림없이 쓸모가 없다. 풍수를 보는 당신이 미국 백인이나 흑인에게 봐준다면 혹은 다른 민족에게 봐준다면 전혀 쓸모가 없다. 서방사람은 ‘13’이라는 이 숫자를 매우 꺼리는데 혹은 그들이 따지는 별자리는, 동방인으로 말하면 전혀 그런 것이 아니며 역시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13’은 동방인에 대해서는 전혀 실질적인 의의가 없다. 공간환경은 그것의 물질 구성 성분이 있으며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어떤 것이든지 물질환경이 구성한 그런 기초가 없다면 성립될 수 없다.

제자: 교란과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마난(魔難)을 어떻게 똑똑히 구분할 수 있습니까?

사부: 당신은 나의 배치 자체를 마난이라고 할 수 없다. 사실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만들어 준 것이 아니다. 나는 당신 원래의 것을 이용해 배치한 것이며 당신이 원래 갖고 있던 업력을 일부분 없애버리고 남은 고만한 것을 당신이 心性(씬씽)을 제고할 때 넘어야 할 고비로 삼았으며 당신의 수련과정 중에서 적당한 위치에 놓아두었다. 때가 되어 제고해 올라와야 할 때, 고비를 넘는 데 사용한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번거로운 일에 부딪쳤을 때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이것은 내가 당신에게 배치해 준 것이다. 진정한 수련인이라면 모두 다 넘길 수 있다.

제자: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 것과 우리에게 하지 말라고 하신 일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사부: 당신들이 오직 법(法)을 배우기만 하면 어떤 일을 해야 하고 어떤 일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모두 자신이 분별할 수 있다. 내 생각에 일부 위험하거나 좋지 못한 일은 당신이 하지 말아야 하는데 당신이 기어코 하려 해도 늘 이루지 못할 것이며, 당신이 억지로 했을 때는 번거로운 일에 부딪힐 것이다. 이런 일들은 당신이 분별할 수 있으며 자신이 깨달아야 한다. 모두 당신에게 알려준다면 어떻게 수련하겠는가?

수련 중의 농담을 하나 하겠다. 중국에 한 수련생이 있었는데 그는 전기기술자였다. 언젠가 그는 전기가 흐르는 상태에서 변압기 수리작업을 했다. 변압기의 전압은 3만 볼트여서 사람이 건드린다면 즉시 몸이 뚫리게 될 것이며 동시에 사람이 타버릴 것이다. 그는 변압기의 다른 한쪽에 가서 나사 하나를 조이려 했다. 그 당시 그를 가로막는 것이 보이지 않았는데도 그는 다리를 내디딜 수 없었다. 이는 바로 그를 일깨워주어 그를 건너가지 못하게 한 것으로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당시 기어코 건너가려 했다. 전기가 흐르는 상태에서 작업을 했기 때문에 결국 그가 건너가서 나사를 건드리자 ‘팍’ 하고 그는 감전되었다. 그러므로 때로는 하지 말아야 하거나 혹은 위험하거나 번거로움 등의 일이 있을 때 당신들을 점화해 줄 것이다. 일반인이라면 그 당시 그는 타서 한 덩어리로 뒤범벅이 되었을 테지만, 그는 대법(大法)을 수련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당시 생명위험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마치 폭발한 것처럼 느꼈으며 온몸에 ‘쾅’ 하는 소리가 났다. 그는 즉시 냉정(冷靜)해졌으나 다른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다른 사람들은 그가 그 순간 온몸이 큰 불덩이가 되었고 ‘훅’ 달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전류는 그의 손을 치고 들어가 발 아래로 치고 나오며 구멍을 냈다. 그 당시 그는 ‘나는 연공인이니까 문제가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는 또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행동도 자유롭게 했는데 마치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은 것 같았다. 결국 그 전력공사의 간부들이 와서 기어코 그에게 병원에 가서 검사받도록 했다. 어쩔 수 없이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는데 그 의사도 깜짝 놀랐다. “이상하다! 이런 고전압에 감전되면 일반적으로 다 타버리고 사람은 벌써 죽었을 텐데, 그는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발에 구멍이 뚫렸는데도 왜 죽지 않았을까? 또 구멍에서 피도 흘리지 않았으며 안은 다 타서 눌어버렸다.” 의사도 매우 이상해했다.

대법(大法) 연공인의 신체 속은 고에너지물질로 동화되었기 때문인데, 이에 비해 속인의 전기는 별것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가장 표피는 아직 완전히 수련이 다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한 층이 감전으로 관통되었다. 다만 이 한 층이 관통되었을 뿐, 전체적으로는 상하지 않았다. 내가 이 말을 꺼내는 것은 여러분에게 대법(大法)을 연마하는 사람에게 놀람은 있어도 위험은 없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누가 이로 인해 집착심이 생겨서 일부러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한다면, 그럼 정말로 위험할 수 있다.

제자: 왜 우리를 미국에 와서 수련하도록 배치하셨습니까?

사부: 미국의 과학기술은 매우 발달했고 이런 것을 장악하는 것도 아마 장래에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에 온 사람들은 모두 동방의 엘리트들이다. (박수)

제자: 다리를 틀고 가부좌를 할 때 반드시 입정(入靜)해야 합니까?

사부: 당신이 단순히 다리를 트는 것을 연습해도 괜찮다. 어떤 사람은 나는 다리가 안 된다고 말하며 나는 많이 연습해야 되겠다고 한다. 그럼 내 생각에 당신이 가부좌하지 않고 다리를 연습하는 동시에 또 입정한다면 더 좋은 것이 아닌가? 다만 다리를 트는 것만 연습해도 괜찮다. 연공할 때에는 입정(入靜)해야 한다.

제자: 『전법륜』을 볼 때 다리를 틀고 가부좌하면 도움이 됩니까?

사부: 도움이 된다. 책을 볼 때 다리를 틀고 있으면, 하나는 다리를 트는 연습을 많이 할 수 있고, 또 하나는 역시 연공이므로 이것은 아주 좋다.

제자: 친구의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귀가 먹었습니다. 法輪功(파룬궁)을 연마하면 그에게 도움이 됩니까?

사부: 당신이 만약 그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느냐고 말한다면 이 일은 내가 간단하게 말할 수 없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연공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귀가 먹은 것은 그의 육신이지 그의 元神(왠선)은 귀가 먹지 않았다. 사람이 진정하게 수련하면 어떤 신체(身體)든지 모두 정상으로 회복될 수 있다. 연공인은 또 연공인의 표준이 있어야 한다. 그는 바로 이 병을 위해서 왔고 이 마음의 병을 내려놓지 못한다면 낫지 않을 것이다. 부처수련은 엄숙한 것이다.

제자: 남편은 제가 연공하는 것을 단식하며 반대합니다.

사부: 이 일은 내 생각에 실제상 당신이 어떻게 대하는가에 달렸다. 무릇 가족들의 교란이 나타나는 것은 모두 첫째, 확고하게 수련하는가를 보고, 둘째는 수련자의 心性(씬씽)이 어떠한가를 보며, 셋째는 친인들이 소업을 도와주고 있다. 완전히 대법(大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극히 개별적인 사람도 있다.

제자: 사부님께서는 설법 중에서 신(神)의 생(生)·노(老)· 병(病)· 사(死)의 형식을 언급하셨는데 사부님께서 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부: 과거의 우주는 성주괴멸이 있으며 우주 중의 생명은 생로병사가 있었다. 다만 부동한 공간에서 시간의 길이가 다를 뿐이다. 차이는 대단히 크다. 어떤 것은 시간이 길어서 마치 생사가 없는 것 같고 어떤 것은 짧아서 한순간에 불과하다. 성(成)·주(住)·괴(壞)의 형식 중에서 예컨대 우주의 형성단계가 있으며, 그것이 안정된 시기가 있으며, 그런 후에 또 쇠패(衰敗)와 패괴(敗壞)로 나아간다. 이것은 과거 우주의 근본 형식이며 우주 내 일체 생명 물종(物種) 물질이 운동하는 법칙이다.

쪽지를 다 해답해 주지 못했는데 아직도 아주 많다. 내가 설법하는 시간이 이미 다 되었기 때문에 회의장은 문을 닫으려 한다. 내 생각에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내가 해답하는 것을 들으려고 하지만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내 생각에 기회가 있으면 우리는 다른 도시에서 또 만날 수 있으며, 이번에 나는 이만큼 말하겠다. 나는 또한 휴스턴 현지 수련생들에게 매우 감사한다. 그들의 준비가 있었기에 내가 여기에 앉아 여러분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원래 예정한 것은 오후 시간이기 때문에 직원들도 퇴근해야 하므로 우리는 이럴 수밖에 없다. 매우 유감스럽고 여러분도 모두 헤어지기 아쉬워한다. 내 생각에 사부의 얼굴을 보지 못하면 안심이 되지 않는 이들은 이번에 기왕 나를 봤으니 마음이 마땅히 좀 착실해져야 한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당신이 오로지 수련만 하면 나는 늘 당신 곁에 있다. (박수)

나는 이 자리에 앉은 매 사람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 것을 희망한다. 나의 설법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런 기회 ── 설법하는 기회는 앞으로 아마 더욱 적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우리의 이번 만남을 소중히 여기기 바라며 수련 중에서 당신은 자신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이 법(法)을 얻었으면 수련해 나아가라. 그는 당신의 일에 영향주지 않을 것이다. 바쁜 가운데 당신은 해보라. 만약 내가 한 말처럼 이렇지 않다면 당신이 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당신은 아무것도 손해 보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좋은 것을 안다면 당신은 수련해 나아가라. 불법(佛法)의 진상은 점차적으로 당신에게 현현(顯現)될 것이다.

나는 여러분이 모두 이번 기연(機緣)을 소중히 여길 수 있기를 바라며, 앞으로 수련 중에서 모두 끊임없이 정진하고 진정하게 착실히 수련하며 진정하게 『전법륜』 이 책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많이많이 보고, 연공을 더 하라. 이렇게 하면 당신은 끊임없이 제고될 것이다. 매번 책을 볼 때마다 같지 않은 감수와 문제가 있을 것이다. 매번 당신들이 승화해 올라왔을 때, 당신이 부딪힌 문제는 다음번에 이 책을 볼 때 모두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은 새로운 문제가 있을 것이며 다음번에 다시 볼 때 틀림없이 또 당신에게 해결해 준다. 그럼 당신은 새로운 문제가 있을 텐데 바로 이렇게 끊임없이 수련하고 끊임없이 점차적으로 전진하고 승화될 것이다.

동시에, 일부 번거로움과 마난(魔難), 고통과 고되고 슬픈 일에 부딪혔을 때, 나는 중국 수련생들에게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당신이 보기에 그것이 안 되는 것 같지만 당신은 그것이 되는지 안 되는지 해보라. 만약 당신이 참기 어려울 때, 당신이 참을 수 있는지 없는지 참아 보라.” 장래에 여러분이 끊임없이 수련함에 따라 제고되었을 때, 내 생각에 우리가 다시 만날 때는 이렇지 않을 것이다. 나도 여러분이 수련과정 중에서, 줄곧 원만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제고하고 정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수련 중에서 당신이 나를 보고 싶어 하지만, 사실 나는 바로 당신 곁에 있다. (박수) 오늘은 이만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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