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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법회설법

 

李 洪 志
(1999년 5월 2~3일, 시드니에서)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박수)

시드니에 오지 못한 지가 어느새 1년, 2년이 다 되었다. 지난번 법회를 열 때 내가 왔었다. 그때는 수련생이 이렇게 많지 않았으며, 중국인들만이 대법(大法)을 배우고 있었다. 지금은 사람이 많아졌다. 한 기간의 수련을 거쳤으므로 나는 여러분이 모두 법에 기초해서 법을 인식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수련 중에 여러분은 많은 의문이 생겨 해답을 얻고 싶었을 것이다. 이때 내가 옴으로써 여러분에게 진정으로 일부 문제를 해답해 주고, 해결해 줄 수 있는 비교적 적당한 시기라고 생각되어 여러분을 만나보기로 했다.

이 한 기간 수련을 통해 호주의 상황 또한 비교적 좋아졌다. 물론 수련 중에 여전히 일부 법리(法理)에 대해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있지만, 총체적으로 좋다. 오늘 나는 여러분을 만나보는 것을 위주로 하고 겸하여 몇 개 문제를 말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강의가 끝난 후 오늘은 주로 여러분의 발언을 듣고, 그다음 내일 오후 시간을 이용하여 여러분의 문제를 해답해주려고 한다. 무슨 문제가 있으면 여러분은 쪽지에 써서 회의 진행 팀을 통해 나에게 전해주면 여러분에게 해답해 주겠다.

문제를 해답하는 데에는 전제(前提)가 있다. 나는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수련생들에게 그들 수련 중의 문제에 해답해주는 것이지 속인 사회 중에서 발생한 사건 혹은 인류사회의 기타문제를 해답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문제를 나는 해답할 수 없다. 왜냐하면, 현재 나는 단지 나의 수련인에 대해 책임질 뿐, 그 어떤 국가의 정치・정책・법령에 대해서는 상관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이 일을 함에 사람에 대해 책임지고 동시에 사회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 것도 고려했다. 인류사회의 발전은 정해진 법칙에 따라 발전해가고 있는데, 이러한 일들에 나는 전혀 연관되고 싶지 않다.

아래에 몇 개 문제를 말하겠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나는 그 어느 지역에 가든 수련생들과 만나면 모두 책을 많이 보고 법 공부를 많이 하라고 한다. 물론 여러분은 내가 이렇게 말하리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겠지만 나는 그래도 또 말한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대법(大法) 속에서 제고하려 하기에 책을 보고 법 공부하는 이것이 지극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내가 오늘 전한 이 대법(大法)을 일반적인, 아주 보편적인 기공(氣功)으로 여긴다면 당신은 틀려도 크게 틀렸다. 당신이 만약 건강한 신체가 있기를 바란다면 당신은 병원에 가서 병을 치료하거나 다른 의료수단을 이용해 치료하도록 하라. 내가 생각하기에 당신은 바로 당신의 건강을 위한 것뿐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당신은 그들을 찾아가서 치료하라. 나는 병을 치료하지 않는다. 나는 당신들을 바른 수련의 길로 이끌며, 한 갈래 광명(光明)의 길로 이끌려 한다. 대법을 이용해서 돈을 벌거나 병을 치료하려고 하는 이것은 안 된다. 나는 당신들을 이끌고 한 갈래의 가장 순수하고도 깨끗한 길을 가고 있다. 진정으로 수련해 올라가려면 반드시 법 공부를 견지해야 한다.

나는 물질(物質)과 정신(精神)은 일성(一性)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의 사상계(思想界)에서 사람들은 오랫동안 내내 모두 물질이 일차적인가 아니면 정신이 일차적인가 하며 이 문제를 담론해 왔다. 나는 매우 많은 예를 들어 여러분에게 알려주었다. 사람이 사유(思維)하고 있거나 문제를 생각하고 있을 때 생성되는 사상 자체에 대하여 현재 그것은 물질의 체현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정신이 아닌가? 바로 정신과 물질은 일성(一性)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전체 우주는 가장 미시적인 것에서 가장 거시적인 데에 이르기까지, 가장 작은 것에서 가장 큰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질의 입자(粒子)에는 모두 특성이 존재하고 있는데 眞(쩐)・善(싼)・忍(런)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이 우주의 특성 眞(쩐)・善(싼)・忍(런), 그는 부동(不同)한 층차의 우주 중 일체의 일체를 제약하고 있는데. 물질은 바로 이러한 정신 특성의 집합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정신과 물질, 그것은 일성(一性)이다.

어떤 사람은 한 가지 그릇된 인식을 하고 있는데, 그는 말하기를 기공(氣功) 연마는 그냥 기공 연마일 뿐, 心性(씬씽)을 제고할 필요도, 책을 볼 필요도 없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려는 가장 관건 문제인데, 그러면 영원히 제고하여 올라올 수 없다. 또 몇 개의 기공 동작으로 단련한다 해서 당신의 병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중국 대륙의 매우 많은 일반사람도 모두 알고 있다. 만약 당신이 법 공부(學法)를 하지 않고 책을 보지 않아 당신이 그 속의 이치를 알지 못하면 당신의 도덕은 다시 올라갈 수 없다. 당신의 心性(씬씽)이 좋게 변해 좋은 사람, 더욱 좋은 사람으로 될 수 없다면 당신에게는 병이 있게 된다. 사람은 모두 이러하기에 병이 있게 되는데, 오로지 속인을 초월해야만 당신은 병이 없게 된다. 그런데 단지 몇 개 혹은 더 많은 동작연습만으로는 속인을 초월할 수 없다. 오직 진정으로 그 법리(法理)를 알아야만 당신의 사상과 경지가 제고되어 더욱 좋은 사람, 속인을 초월한 좋은 사람으로 된다. 다시 말하면 당신이 초상적인 사람으로 되었다면 당신은 마땅히 일반 속인들이 반드시 얻게 되는 병을 얻지 말아야 하는 바로 이런 이치이다. 나는 방금 사람은 반드시 더욱 좋은 사람이 되고 현재의 일반 속인을 초월하는 데 이르러야만 진정으로 병이 없게 된다는 것을 말했다. 그러므로 당신이 더욱 높은 경지로 수련되어 가려면 이 요구보다 더 높아야 하지 않겠는가? 병이 없다 하여 높은 경지에서 수련하고 있는 사람과 같다는 것이 아니며, 단지 속인의 도덕 수준보다 높은 사람일 뿐이다. 내가 당신들에게 하라고 하는 것은 속인을 초월하고, 나아가 더욱 높은, 다시 말하면 더욱 좋은 사람, 도덕이 더욱 고상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오직 이래야만 여러분은 수련되어 올라올 수 있다.

현재 일부 중국인 이외의 다른 민족의 수련생은 법 공부를 그다지 중시하지 못하고, 그다지 잘 이해하지도 못한다. 방금 내가 한 이런 말들이 당신을 명백해지게 했을 것이다. 기공의 수법(手法)은 단지 수련의 한 보조적 수단일 뿐, 절대로 근본적인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만약 당신의 心性(씬씽)이 올라가지 못하고 당신의 경지가 더욱 높은 경지로 제고되지 못하면 당신이 아무리 동작을 연마해도 전혀 연마해 올라갈 수 없다. 오로지 당신의 心性(씬씽)이 그런 높은 표준에 도달해야만 당신은 비로소 제고를 가져올 수 있으며, 병을 제거할 수 있다. 당신이 자신에게 더욱 높고 더욱 훌륭할 것을 요구할 때에 당신은 속인을 초월한 사람이 될 수 있는데, 그러면 속인이 아니다. 여러분도 보았겠지만, 사람이 속인 사회에서 하는 생각・행동・행위는 자신을 위한, 자기 집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이기적이며 심지어는 오로지 이익만을 도모한다. 게다가 현재는 도덕(道德)이 매우 타락한 시기이다. 당신은 속인과 같은데, 당신이 동작을 좀 연마한다고 해서 당신의 병이 나아질 수 있겠는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당신은 속인과 같은데, 동작을 연마한다 해서 초상적인 사람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반드시 책을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당신의 정신 경지와 사상이 그렇게 높은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당신은 병이 나을 수 없고 또한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도 없다. 이것이 바로 내가 무엇 때문에 여러분에게 책을 많이 보라고 하는지 그 이유이자 책을 보아야 하는 필요성이다.

법은 당신들이 부동한 층차 중에서 제고하도록 지도할 수 있다. 『전법륜(轉法輪)』 이 책은 여러분을 체계적으로 수련하게 하는 책이다. 그러므로 지극히 중요하다. 당신이 수련하는 사람이든 수련하지 않는 사람이든 모두 『전법륜(轉法輪)』을 본 후면, 당신으로 하여금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인류는 그 어떤 도덕표준의 구속도 없어 전통적인 것을 반대하고 옛 관념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눈앞의 현실에 착안하면 할수록 더욱더 인간의 본질(本質), 가장 선천적이고 가장 좋은 것을 방기(放棄)하게 된다. 도덕적 구속이 없는 사람은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인데, 이러면 안 된다. 인류의 타락은 이미 인류로 하여금 매우 위험한 지경에 처하게 했는데, 이후 나는 설법 가운데서 여러분의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해답해 주겠다.

다음으로 구체적인 문제를 좀 말하겠다. 속인 중에서 수련할 때, 늘 허다한 집착심을 내려놓지 못한다. 지금부터 수련 중의 구체적인 문제를 말하겠다. 많은 사람이 그의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는데, 그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이지(理智)를 흩트려 놓아도 그는 의식하지도 못한다. 천백 년 동안, 수련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진정하게 말한 사람이 없었다. 모든 사람이 수련은 가부좌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중국 시골에는 나이 든 많은 부녀가 일 년 내내 온돌에 앉아서 옷을 꿰매거나 신발 밑창을 꿰맨다. 만약 이렇게 간단하다면 나는 그녀들이 마땅히 신(神)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 동작, 그것은 다만 보조적 수단으로서 당신이 연공하지 않고서 가부좌를 한다면 그것은 더더욱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수련의 요소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수련 중에, 나는 당신에게 법리(法理)를 알도록 하고 책을 보라고 말하는데, 목적은 당신으로 하여금 더욱 높은 경지로 제고해 가도록 하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제고되는가? 바로 당신은 속인 중의 그런 좋지 못한 사상, 사람에 대한 쟁투심을 버리는 것이다. 작디작은 파리 대가리만 한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해치고, 조금 얻으면 기뻐서 어쩔 줄 모르고, 조금 잃으면 고통스러워 어쩔 줄 모르면서, 이 때문에 잘 먹지도 못하고 잘 자지도 못하여 온몸에 병을 얻는데, 당신은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가! 사람이 이것을 위해 이 세상에서 생존해야 한단 말인가?

여러분은 이미 이 한 점을 명확히 보았는데, 무엇 때문에 진정한 수련인처럼 자신의 집착심을 버리지 못하는가? 당당한 수련인이 돼라. 나는 늘 말하는데, 정법을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우선 당신은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여러분은 수련 가운데서 모순에 봉착했을 때 그 한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는가? 다른 사람이 듣기 싫은 말을 하면 당신은 왜 좋아하지 않는가? 그럼 당신이 좋아하지 않을 때, 마음속에서는 바로 수련과 제고의 기회를 배척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당신은 바로 속인과 같은 기쁨을 얻고자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당신은 곧 속인이 아닌가?! 당신은 반드시 이런 때에 내가 무엇 때문에 좋아하지 않고 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말할 때 마음속에서 좋아하지 않으면 자신이 무엇을 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당신이 속인 속에서 사람마다 자신을 잘 대해주길 바라고 편안하게 지내려고 한다면, 당신은 또 어떻게 제고하겠는가? 당신이 속인의 그 어떤 것도 제거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제고해 올라오겠는가? 그러므로 제고되어 올라올 수 없다. 당신은 이런 것들과 사람이 포기하지 못하는 집착을 진정으로 버려야 한다.

그러나 당신들이 오늘날 수련하고 있는 이 대법(大法)에 대하여 나는 이미 현대 인류사회에서, 속인 사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지를 충분히 고려했다. 그러므로 대법을 수련하는 당신은 직업이 있을 수 있고 장사를 할 수 있으며, 일체 가정생활과 사회활동이 있을 수 있다. 대법이 속인 사회에서 널리 전해지는 것과 수련방식은 당신의 수련에 영향 주지 않으며, 이 점에 대해 나는 이미 충분히 고려했다. 왜냐하면, 내가 전한 대법은 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물질이익 가운데서 당신의 마음을 제거하지만 정말로 물질이익에서 꼭 잃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내가 본 바에 의하면 물질 자체는 아무것도 대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신 가정에 재물이 넘쳐나고 당신의 집이 모두 금으로 된 벽돌로 지었다고 하더라도 당신의 마음속에 그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아주 담담하게 내려놓았다면 이것은 바로 금전에 대하여 집착이 없는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다시 말하면 대법이 요구하는 것은 사람 마음의 개변이지 결코 당신에게 무슨 물질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물론 사람의 마음에 대한 고험에서 필연적으로 엄숙한 이러한 고험이 나타나게 되는데 당신이 이러한 물질에 대해 추구하는 마음이 얼마나 크며 어떤 물건을 중히 여기는지를 본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우리 대법제자 중에는 장사하는 사람, 큰 장사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수련자로서 그들의 사업 환경 속에서 그들은 매우 좋은 사람이며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사람을 속이지 않아도 장사가 잘 된다. 그들 또한 속인들처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면서 애쓰는 것도 없지만, 그들은 장사를 아주 잘한다. 특히 지금 이 경제가 불경기일수록, 활기를 잃은 이런 때일수록 수련인의 다름(不同)이 더욱 도드라진다. 자신이 수련의 표준에 도달했을 때에야 비로소 이와 같은 초상적인 반영(反映)이 나타난다.

내가 방금 말한 것은 집착심이 수련을 저애하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수련생이 모순에 봉착했을 때, 마음속으로 아주 불쾌해할 때, 당신은 당신이 속인한테 화를 내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았는가. 여러분 생각해 보라. 불(佛)・신(神) 그런 위대한 각자(覺者), 그가 인간에게 화를 내겠는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의 층차 속에 있지 않으므로 속인의 정(情)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자신을 속인 중에 둘 수 있겠는가? 당신이 속인과 마찬가지로 모순을 대할 때 당신은 이미 속인과 같은 수준이고, 동일한 경지이며 당신은 이미 속인 중에 있다. 당신이 오로지 그들과 같지 않을 때라야만 당신은 비로소 그 속에 있지 않게 된다. 물론 표현되어 나오는 그것은 곧 너그러움(寬容), 대범함(大度)인데, 속인들은 이렇게 본다. 실은 여러분의 수련 중 心性(씬씽)이 처해있는 위치를 나타낸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어떠한 환경에서든, 어떠한 상황에서든 사람과 모순에 직면했을 때, 모두 선량한 마음, 자비로운 마음으로 일체를 대해야 한다. 당신이 당신의 적을 사랑할 수 없다면 당신은 원만(圓滿)을 이룰 수 없다.(박수)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평범한 속인이 당신을 화나게 만들었을 때 당신은 그를 용서하지 못하는가?! 반대로 그와 함께 속인처럼 쟁론하고 다투어야겠는가? 수련생과 수련생 사이도 역시 마찬가지가 아닌가?

이치를 여러분에게 말해 주면 여러분이 모두 명백히 알게 된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 것은 법리(法理)이며 여러분에게 전시해 준 것은 바로 이 법(法)이다.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당신들 자신의 수련에 달렸다. 물론 내가 당신을 도와줄 수 있는 것들은 대다수가 속인 사회의 이 면에서 체현되지 않는데 아주 많은 사람이 보지 못한다. 수련하면서 이 법을 잘 배우는 것은 지극히 중요한 것으로서 당신이 집착하면서 내려놓지 않는 그러한 마음을 제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그중에는 가장 나쁜 그런 부분의 것들도 포함된다.

당신은 당신의 관념이 당신 자신이라고 인정하지 말라. 아주 많은 사람이 대법(大法)을 볼 때 어떤 관념을 가지고 보고 있다. 그는 “오, 이 구절이 좋다, 오, 이 구절은 내가 이해를 잘 못하겠다, 오, 그 구절은 내가 보기엔 안 되겠다.”라고 생각한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당신은 당신이 매우 총명하고 당신이 가늠한 것이 맞는다고 여길 수 있겠지만, 사실은 틀려도 아주 크게 틀렸다. 왜냐하면, 당신의 사상은 이 속인 사회 중에서 수립된 것이기 때문인데, 당신이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표준은 속인의 표준으로서 절대 속인을 초월할 수 없다. 그러므로 당신은 법에 담겨 있는 진정한 본질을 보아내지 못한다. 이는 당신의 집착심이 당신이 법을 얻는 것을 저애하고 있는 것이며, 당신이 좋다고 여기는 부분을 당신이 골라서 본다면 당신은 결코 진정으로 수련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좋지 않다고 여기거나 당신이 보고 싶지 않다고 여기는 것은 바로 후천적으로 형성된 당신의 그 좋지 않은 마음, 좋지 않은 사상이 작용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당신이 아닌데 당신은 오히려 그것을 당신으로 여기고 있다.

무엇 때문인가? 여러분 생각해 보라. 한 어린아이가 태어나서 그에게는 어떠한 속인의 관념도 없다. 내가 말했지만, 6세 이하의 어린이는 나의 말 한마디면 그의 천목(天目)이 곧바로 물건을 볼 수 있게 된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그는 속인 사회 중의 그 어떠한 관념적인 것을 형성하지 않아 순수하고 깨끗하여 우주 眞(쩐)・善(싼)・忍(런)의 원초적 표준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일단 당신이 속인 사회 중에서 이른바 경험이라는 것을 축적하게 되고 사상에 틀이 생기게 되면 속인 중에서 자신을 미(美)화하여 노련하고 경험이 있다고 하는데, 사실 당신은 이미 자신을 몹시 나쁘게 만들었다. 바로 이러한 관념 때문에 당신으로 하여금 우주의 진상, 본질(本質), 우주의 진리(眞理)와 저촉하게 한다. 이런 것들은 모두 당신에게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인데, 그것이 어떻게 당신일 수 있겠는가? 무엇을 반본귀진(返本歸眞)이라고 하는가? 자신을 깨끗이 씻어서 바로 당신으로 하여금 원초적인 가장 순수하고 바르며 어떠한 사상관념도 없는 상태 속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인데, 그것이야말로 가장 총명한 것으로서 세상의 일체를 똑똑히 볼 수 있게 한다. 당신에게 어떠한 관념도 없기 때문에 일체는 당신의 안중에 있게 되며 세상의 일체를 당신이 척 보기만 하면 바로 어떻게 된 영문인지를 알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지혜(智慧)이다. 당신이 어떤 틀을 갖고 사물을 볼 때면 당신은 바로 당신의 틀 속에 빠지게 되는데, 하지만 당신의 그 틀은 진리가 아니다. 당신은, 당신이 지식이 아주 많아 당신이 가늠한 표준이 맞는다고 여기겠지만, 사실 맞는 것이 아니다. 내가 바로 이렇게 말해도 당신은 나의 관점을 바로 이해하거나 인정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정말로 마음을 내려놓고 그 『전법륜』을 볼 수만 있다면 당신은 나의 이 책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보아내게 될 것이다!

무엇 때문에 중국과 전 세계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배우고 있는가? 중국 지역만 하더라도 1억에 가까운 사람들이 배우고 있는데, 많은 사람이 과학자, 높은 지식인, 사회학자, 사상학자, 철학을 연구하는 사람이며, 나아가 고위층의 간부이다. 외국에서도 그토록 많은 박사, 석사, 연구생, 교수가 배우고 있는데, 그들이 모두 사상이 총명하지 못하단 말인가? 특히 중국의 그 사회에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 것을 겪어 왔다. 사상(思想)을 신앙(信仰)했고 문화대혁명을 거쳤으며 또한 숭배하기도 했는데 교훈이 매우 깊다. 그들은 무엇이든 모두 겪었는데, 이러한 사람들에게 당신이 맹목적으로 어떤 것을 믿으라 한다면 가능하겠는가?!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그들이 법을 배울 수 있고 무엇 때문에 그들이 그토록 확고할 수 있는가, 이 자체가 문제를 설명해 주지 않는가? 이는 내가 여러분에게 좋은 사람이 되도록 하였으며 내가 여러분에게 더욱 좋은 사람, 초상적인 사람, 건강한 사람, 더욱 고상한 사람, 나아가 당신으로 하여금 원만(圓滿)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건 나 리훙쯔(李洪志)가 말 몇 마디로 사람들로 하여금 마치 이지(理智)를 잃은 것과도 같이 나를 따르도록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이 모두 알다시피, 대법(大法)은 느슨하게 관리하는바, 당신이 배우려면 배우고, 당신이 배우지 않으려면 당신 마음대로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든지 나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어떠한 구속도 없고 어떠한 조직형식도 없으며 또한 당신에게 일전 한 푼 달라고 하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여러분이 모두 여기에 모였으며 심지어 쫓아내도 가지 않는가? 그들은 생각이 없는가? 이지가 없는가? 그런데 어떤 사람은 무엇 때문에 마음을 내려놓고 진정으로 이 책을 보지 못하는가? 보건대 리훙쯔(李洪志)가 무엇을 하는가? 무엇 때문에 세계적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 책을 배우고 있는가? 이 책을 보고 나면 당신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당시, 내가 이 법을 전하기 시작할 때 나에게는 가장 큰 걱정 하나가 있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지금의 인류사회에서 어떠한 종교도 모두 사람의 마음과 인류의 도덕을 되돌려 승화시키지 못한다. 이 점은 종교 중의 사람들도 모두 알고 있으나 전혀 어떻게 할 능력이 없었다. 이뿐만 아니라, 현재 세계는 인류 도덕을 되돌려 승화되게 하고, 다시 고상하게 할 수 있는 학설과 이치가 없으며, 더욱이 사람을 다시 승화시켜 원만(圓滿)에 이르게 할 수 없다. 전 세계를 누비며 찾아보아도 더는 있을 수 없다. 이렇게 되었다면 사람은 극히 위험한 상태에 처한 것이다. 오늘 내가 전한 대법이 만약 사람을 제도하지 못하면 사람은 더는 구원될 수 없다. 왜냐하면, 우주 중에는 우주를 창조한 법보다 더 높은 법은 없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정념(正念)이 없고 도덕적 구속이 없으면 어떠한 나쁜 일도 모두 감히 할 수 있는데, 신은 허용하지 않는다. 여러분은 모두 종교 혹은 예언 혹은 어느 한 선지자에게서, 책 또는 입을 통해 인류에게 어떤 난(難)이 있다고 하는 일부 정보를 얻었을 것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만약 인류가 이렇게 타락해 간다면 위험하지 않겠는가? 설사 신이 와서 사람을 징벌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자기들 스스로 잔혹하게 죽일 것이다. 사실 사람은 이미 자신을 훼멸하고 있다. 심지어 평화 상태에서도 자신을 훼멸하고 있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훼멸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오염은 자연환경을 파괴하였다. 장래의 물은 전부 오염된 것뿐일 것이다. 인류의 과학기술로는 근본적으로 물을 다시 그토록 순수하고 깨끗한 정도로 환원시킬 방법이 없다. 당신이 먹는 음식물은 모두 다 화학비료로 속성 재배해낸 것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렇게 나아간다면 인류는 곧 다르게 변할 것이고 체형(體形), 외관(外觀)이 모두 변할 것이다. 만약 사람이 사람을 복제하려고 한다면 사람은 정말로 사람 자신을 훼멸하게 될 것이며, 사람의 허울을 쓴 외계인들이 대량으로 복제되어 사람의 신체를 점유하게 될 것이다. 미래의 인류, 그들은 이렇게 자란 것들일 것이며, 이렇게 갑절로 불어나 최후에는 완전히 인간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

물론 나는 세계의 일체 문제를 분명하게 보아낼 수 있으며 인류의 일체 문제를 나는 말할 수 있다. 지금 나는 인류사회의 이런 문제를 위해 이 법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수련할 수 있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법을 얻어 제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비로소 이런 것을 말하는데, 이것이 내가 이 일을 하는 목적이다.

방금 한 가지 문제를 말했다. 다음으로 나는 구체적인 문제를 하나 더 말하겠다. 우리 어떤 사람은 수련 중 집착심을 부둥켜안고 놓지 않아 이 모순을 더욱 돌출하게 하고, 수련 중의 고비를 크게 하여, 그로 하여금 넘어가지 못하게 했다. 우리 여기 앉은 이 가운데도 있다. 그리하여 그로 하여금 반면으로 나아가 대법을 원망하고 심지어 나까지 미워하게 했다. 다른 사람은 왜 당신처럼 이렇지 않은가? 이 1억이 넘는 사람들이 모두 바보인가? 당신은 왜 조성된 원인을 생각해보지 않는가? 어떤 사람이 대법을 배웠는데 내가 그에게 정정당당한 사람이 되고 좋은 사람이 되며 나쁜 짓을 하지 말라고 알려주었지만, 그는 여전히 도박하러 간다. 돈을 잃고는 돌아서서 그는 대법을 원망한다. 내가 당신에게 도박을 하러 가라고 일렀는가? 나는 반대로 당신에게 도박하러 가지 말아야 하며 이런 좋지 않은 일을 하지 말라고 알려주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대법을 수련하다 갑자기 뜻밖의 상해를 좀 입어도 대법을 원망한다. 당신은 생각해 보았는가, 내가 『전법륜』에서도 이런 예를 하나 들었다. 어떤 사람이 대법을 배운 후 어느 날, 갑자기 병에 걸려 쓰러졌다. 마치 뇌혈전의 증세 같았는데, 반신(半身)이 말을 듣지 않았고 두뇌의 절반 부분이 마비되었다. 그런데 이튿날 그는 땅을 딛고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으며 일주일 후 그는 거의 회복되었다. 그런 후, 그는 연공장(煉功点)에서 수련생에게 대법을 수련하다 반신불수가 되었다고 하며, 더는 수련할 수 없다고 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만약 그가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더라면 그의 반신불수가 어찌 이렇게 빨리 나을 수 있었겠는가? 여러분 모두 그 반신불수가 어떠한 상태인지 잘 알겠지만, 그는 대법을 원망하고 있다. 우리 어떤 사람은 마땅히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당신이 부딪힌 이 난을, 사부님이 당신을 보호하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내가 만약 당신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당신의 사지(肢體)는 손상을 입었을 것이고 틀림없이 당신의 목숨에 손상을 주었을 수 있다! 당신은 아는가? 내가 당신에게 그런 정도까지 감소시켜 주었는데 당신은 도리어 대법을 원망한다. 사람은 바로 이러한 무지(無知) 속에 있기에 제도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는 자신이 우주 중에서 진 빚을 갚으려 하지 않고, 그는 어떠한 난도 없이 편안하도록 내가 그를 위해 감당해주기를 바라는데, 그것이 수련인가? 그러면 당신의 마음을 제고할 수 있겠는가? 당신이 이런 문제에 봉착했을 때 정념(正念)으로 대하지 않으면 어떻게 수련하겠는가? 앞으로 길을 어떻게 걸어가겠는가? 내가 당신들을 위해 그렇게 많은 것을 해주었는데, 당신은 오히려 대법을 원망하고 나를 원망하며 심지어 나를 욕한다. 물론 나는 어떤 사람도 원망하지 않을 것이며 나는 단지 여러분에게 법리(法理)를 말해주고 이치를 말해주고 있다. 설사 당신이 나를 욕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당신을 원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의 마음은 속인 중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들이 나를 좋다고 하거나, 나를 좋지 않다고 하거나, 당신들이 나를 신이라고 말하거나, 나를 인간이라고 말하거나, 나는 여전히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사람의 마음이든지 모두 나를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들이 만약 나의 이런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면 당신들은 수련원만(圓滿)이 멀지 않았다.

나는 그저 예를 들 뿐이다. 여러분은 수련함에 마음을 바로잡아야 한다. 물론 내가 당신에게 바로잡으라고 해도 당신은 곧바로 바로잡지 못할 수도 있다. 나의 한마디 말에 당신이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오직 당신에게 정념(正念)이 생기게 할 수 있고, 당신을 수련시켜 올라갈 수 있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것은 바로 이 법(法)이다. 우리는 억(億)이 넘는 사람들이 수련하고 있는데, 사람마다 모두 여러분처럼 오늘 여기에 앉아 있을 수 없고, 또 내가 당신들 한 명 한 명씩을 상대로 말해주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내가 법을 전했기에 나는 또 당신들을 책임져야 한다. 당신들이 진정으로 수련하여 올라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나는 한 가지 방법을 채용했다. 즉 내가 당신들에게 줄 수 있는 것과 도울 수 있는 것들을 모두 압축해 그 법 안에 넣었는데, 다만 당신 자신이 얻으려 하는 것인지만 보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나를 보지 못하더라도 마땅히 법을 스승으로, 법을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아래에 한 가지 작은 문제를 더 말하겠다. 어떤 수련생은 수련 중에 극단으로 간다. 그가 갑자기 무엇을 깨달아서인지, “오, 이것이 나의 집착심을 일으킬 수 있구나. 나는 가지지 않겠다. 그것을 처리해 버리자. 오, 이 사업은 나의 집착심을 일으킬 수 있구나. 나는 하지 않겠다. 오, 모두 회피해 버리자.”라고 한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것이 수련인가? 이것은 극단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가? 내가 늘 하는 말이 우리가 속인 속에서 수련하면서 최대한도로 속인의 형식에 부합되게 수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간단한 한마디 말이 아니며 당신의 사업을 평소대로 했다고 해서 나의 이 한마디 말의 표준에 도달했다는 것도 아니다. 여러분 곰곰이 생각해 보라, 그것은 당신들 수련의 여러 면에서 체현되는 것이다. 당신이 만약 속인같이 속인 사회 중에서 수련할 수 없다면 당신은 바로 속인 사회의 이런 형식을 파괴하는 것이다. 속인 사회는 비록 그것이 좋지 않지만, 그것 또한 우주대법(宇宙大法)이 인류 이 한 층 생명에 창조해 준 것이다. 바로 그것이 좋지 않기 때문에 비로소 사람들로 하여금 이곳에서 수련할 수 있게 한다. 사람의 이런 좋지 않은 것이 당신을 용해했다 하더라도 당신이 여전히 이 속에서 초탈해 솟아나온다면 그것은 마치 그 연꽃이 진흙에서 나왔지만, 오히려 매우 성결하고 순수하며 깨끗한 것과 같다. 여러분은 절대로 극단으로 가서 법을 비뚤게 깨닫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극단으로 나아가 이것도 버리고 저것도 버리며 그 사업을 잃게 될 때면 사실 당신은 이미 다른 집착 속에 있는 것이다. 당신이 집착을 두려워하는 그 자체가 집착을 형성하게 되는데 바로 당신이 집착할까 봐 두려워하는 집착이다.

나는 이만큼 말하겠다. 왜냐하면, 잠시 후 수련생들이 발언해야 하고 심득체험을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 앉은 분들 가운데 일부 기자도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천 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왔을 것인데, 나는 여러분들을 이해한다. 나 리훙쯔(李洪志)는 속인 중에서 이름을 날리려 하지 않으며, 나는 그저 대법을 수련하는 나의 이런 제자들, 수련생들을 책임지려 할 뿐이다. 내가 호주에 온 목적은, 수련 중에 존재하는 그들의 문제를 해답해 주어 그들로 하여금 제고하여 올라올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당신들이 왔으므로 나 역시 당신들에게 빈손으로 돌아가게 하고 싶지 않다. 예전 나의 요구는, 『전법륜』을 끝까지 보지 않았다면, 나는 당신이 기자라도 만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신이 우리에 대한 요해(了解)가 있어야만 나는 비로소 당신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왜냐하면, 내가 전한 것이 대단히 크기 때문인데, 몇 마디 말로써는 전혀 명확히 말할 수 없다. 당신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모두가 속인 사회 중의 문제들인데 나 또한 해답해주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현재 나는 속인 중의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으며 사회상의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왕 당신들이 왔으므로, 나는 당신들이 오늘 여기에 앉아서 조용하게 우리 수련생들의 발언을 듣고, 이틀간의 우리 전체 법회(法會)를 다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다음 내가 당신들을 대면할 때 당신들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이 회의기간에 나는 절대로 어떠한 사람도 만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법회는 수련생들로 하여금 진정으로 제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절대로 형식이 아니고 절대로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박수)

됐다. 나는 이만큼 말하겠다. 다음 수련생들은 회의를 지속해나가기 바란다. 내일 오후 내가 전면적으로 여러분들의 문제를 해답해 주겠다. 지금은 나도 수련생들의 발언을 듣겠다.

쪽지를 올려보내도 된다. 오늘 오후는 주로 여러분에게 해법(解法)해 주고 여러분이 제출한 문제에 대해 해답해 주겠다. 한동안의 수련을 통해 많은 문제의 해답을 책 속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부 문제는 여전히 사부에게 물어보아야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여러분이 모두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 내가 여러분의 소원대로 당신들이 제출한 문제에 최대한 해답해 주도록 하겠다. 됐다, 우리 시작하도록 하자.

제자: 한 사람이 수련을 시작해서부터 봉착한 일체의 시련은 모두가 배치된 것인지 혹은 인위적인 요소인지요?

사부: 수련 중에서는 수련의 길을 배치한 것이고 잘 넘기지 못하는 것은 인위적인 요소이다. 수련은 매우 복잡한 일이기 때문에, 모든 일이 다 같을 수도 없고, 당신에게 나타난 일이라 해서 그에게도 나타나게 할 수 없으며, 같은 일이라 할지라도 모두 같게 처리할 수 없다. 왜냐하면, 미혹 속에서 수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모두 같다고 한다면 이 미혹은 없어지게 된다. 여러분은 모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두 알게 되어, “오, 다른 사람이 이렇게 하니 아주 잘 되었는데 나도 이렇게 해야겠다.”라고 한다. 그것은 수련이라고 할 수 없다. 시련은 실제로 바로 당신들 자신의 업력(業力)이 형성한 것이며 생생세세 축적되어 온 업력으로서 당신들의 수련을 가로막고 있고, 당신들의 반본귀진(返本歸眞)을 가로막고 있으며, 당신의 승화를 가로막고 있는데 바로 이 업력이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내가 그것을 일부분 청리(淸理)해 버렸고 남은 일부분은 당신 자신이 제거하도록 남겨놓았다. 왜냐하면, 이 우주 중에는 이치가 있는데, 빚을 졌으면 갚아야 하고 어느 생(生) 어느 세(世)이든지 불문하고 나쁜 일을 했으면 곧 업력을 축적하게 되며, 그렇다면 다음 세(世)에서 혹은 현세(現世) 이후 어느 시기에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로 이런 것들이 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것을 나는 마난(魔難)이라고 부른다. 사실 속인도 모두 갖고 있으며 속인들이 고통스러워하는 상태에서 감당하게 되는 질병과 생활 중의 곤란도 사실은 모두 그의 마난이다. 수련생에 대해서는 내가 그것들을 당신들 수련의 부동한 층차에 배치해 놓아, 당신들이 고비를 넘고 수련하여 心性(씬씽)을 제고할 때에 그것을 이용하는데, 이러한 작용을 일으킨다. 그러나 속인은 단지 업을 갚기 위한 업을 갚고 있을 뿐, 그것은 수련의 요소를 지니고 있지 않다. 게다가 속인은 얼마나 큰 업이 있으면 그만큼 큰 업을 갚아야 한다. 우리 여기는, 사람이 수련하려 해도 난이 너무 크면 전혀 수련할 수 없기 때문에 소업(消業)을 해 주어야 한다. 이는 물론 조건이 있는바, 여러분은 모두 알고 있다. 이 법 속에서 아주 명백히 말했기에 나는 중복하지 않겠다.

제자: 자신의 법 공부 진도(進度)가 단체 법 공부의 진도와 같지 않은데 관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사부: 독자적으로 법 공부를 하여 확고하고 실속 있게 수련해 나갈 수 있다면 역시 대단하다. 그러나 여러분이 알다시피 당신이 집에서 혼자 법 공부에 매우 정진(精進)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또 속인 사회를 접촉하지 않을 수도 없다. 오늘날의 속인 사회 사람은 이미 제멋대로라, 어떠한 좋지 못한 일도 감히 다 하는 사회이다. 다시 말하면 아무런 도덕 기준과 아무런 도덕적 구속도 없다. 오늘날의 인류는 바로 이러하다. 그렇다면 사회에서 당신이 접촉하는 사람은 모두 속인 사회의 이런 사람들이고, 그들이 이야기하고,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일체는 모두 오늘날의 인류가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혼자 수련하면, 좋은 환경이 없게 되는데, 당신이 접촉하게 되는 것이 모두 이런 환경이라면 실제로 당신은 이런 환경에 물들게 되어 제고하기가 매우 힘들다. 내가 말했지만 많은 수련생이 수련하기 전에 모두 자신이 괜찮다고 여겼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진정으로 수련하기 시작하면서 그는 그런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다. 왜냐하면, 그가 자신이 좋다고 여긴 것은 그 자신을 현재의 이미 잘못된 인류와 비교한 것으로, 인류 도덕이 가장 고상한 시기의 우주 특성과 비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단체로 연공하면, 같이 있으면서 여러분이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을 선념(善念)에 따라 하게 되고 어떤 일을 하든지 가급적 다른 사람을 고려해 하게 되는데, 이는 매우 순수하고 깨끗한 환경, 상화(祥和)로운 정토(淨土)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우리가 수련인이 되면 당신은 이런 마당 속에서 이런 자비로운 힘에 물들게 될 것인데, 이는 틀림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여러분에게 단체 연공을 하라고 하는 것은 목적이 있는 것이다. 당신이 이 환경 중에서 접촉하게 되는 사람은 모두 이런 좋은 사람들로서 언행과 하는 일이 속인 사회의 사람과 필연 같지 않기 때문에, 이 환경을 잃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일부 소수 지역의 사람은 대법을 배우는 사람이 많지 않고 혼자서 그곳에서 배우거나 두 사람이 배우고 있어 그에게는 그렇게 좋은 환경이 없는데, 이러한 상황에서는 그 자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정말로 이런 수련생도 있다. 정말로 묵묵히 배우고 묵묵히 수련하고 있으며, 정진(精進)하고 있는데 정말 대단하다! 내가 여기에서 말하는 단체 수련환경은 없어서는 안 되는 아주 좋은 것으로서 여러분은 이 환경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이 환경은 여전히 사람을 용련(溶煉)하고 있다.

제자: 수련생과 교류 중에서 남성 수련생들은 비교적 이성(理性)적으로 대법을 인식하는 데 치중하고, 여성 수련생들은 감성(感性)적으로 대법을 인식하는 데 치중한다고 느낍니다. 만약 보편적 현상이라면 어떻게 서로 간에 거울로 삼아 더욱 빠른 제고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사부: 이것을 난 그다지 찬성하지 않는다. 법에 대해 잘 인식한 수련생은 모두 이성적으로 법을 인식할 수 있으며, 다만 책을 적게 본 사람, 다시 말하면 그다지 정진(精進)하지 않는 사람, 혹은 갓 배우기 시작한 사람은 쉽게 감성적으로 법을 인식한다. 이 면에는 남녀 차별이 없다. 오늘날은 여성들도 대단하다. 그녀들에게는 사상이 있고 능력도 있다. 이렇게 보아선 안 된다. 게다가 여성 대법제자들의 근기(根基)와 능력을 인상(人像)으로 구별해서는 안 된다.

제자: 두 차례의 世間法(쓰젠파) 수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사부: 수련생들의 같지 않은 상황에 근거하여 수련생이 여하하게 수련할 것인가 하는 형식을 결정하는데, 여덟 차례, 열 차례일 수도 있다. 당신이 만약 단지 나한(羅漢)의 경지 중에서 원만을 이룬다면, 다시 말해서 당신은 世間法(쓰젠파)에서 한 차례만 수련하면 족하다. 더욱 높은 층차로 수련하게 된다면 수련 중에서 재차 반복하여 수련하며 끊임없이 수련해야 한다. 일부 사람은 비교적 민감한데 어떤 사람은 더 분명하여 아는 것도 더욱 많을 수 있다.

제자: 법 공부 과정 중에서 법리(法理)를 명확히 알아야 하고 또한 지식을 추구하는 집착에 빠져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파악해야 합니까?

사부: 당신이 법에서 수련의 의미를 인식할 수 있을 때면 곧 알게 된다. 법에서 법을 인식하려면 오로지 책을 많이 보는 것뿐이다. 우리 이 대법은 모든 미혹을 밝힐 수 있으며 일체 사람의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는데 오직 당신이 대법 책을 보기만 하면 해결할 수 있다. 무릇 여러분이 많은 문제에서 해답을 얻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당신 자신이 해답을 얻으려 하지 않아서이다. 만약 당신이 책을 보고 법을 배운다면 어떠한 문제도 모두 해결할 수 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현재 정부에서도 공인하지만, 우리에게는 1억이 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마다 나를 찾아와서 문제를 제출하고 내가 그에게 해답해 주길 바란다면, 그런 기회는 전혀 없다. 여기에 앉은 호주의 수련생들은 지금 나를 만날 수 있지만 중국대륙의 수련생들은 전혀 나를 만나지 못한다. 사실 나는 늘 중국대륙에 있으나 그들이 나를 보지 못하는 것은 내가 가서 그들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한 지역에서 내가 어디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전국적으로 전해지면서 수련생들은 모두 알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사람들은 모두 나를 찾아올 것이다. 중국의 이 사회는 다른 사회와 같지 않아 그들은 우리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대법에 손실을 입힐 수 있으므로 나는 당신들과 만나볼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나 또한 당신의 수련을 책임지고자 하는데,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책임지는가? 나는 어제도 이 말을 했지만 나는 내가 당신들에게 줄 수 있는 일체를 모두 이 법 속에 내포시켜 넣었다. 당신이 오로지 책을 보기만 하면 당신은 무엇이든 모두 얻을 것이다. 어떤 수련생은 『전법륜』을 이미 2백여 번이나 보았지만 계속 보고 있다. 볼 때마다 모두 다르다. 왜냐하면, 그는 한 권 수련서로서 그 속에는 부동(不同)한 층차의 내포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첫 번째 볼 때 나타난 문제는 당신이 두 번째 볼 때 해답을 얻어 곧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두 번을 본 다음에도 여전히 새로운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당신이 세 번째로 볼 때 또다시 마찬가지로 해답을 얻는다. 끊임없이 이렇게 수련하고 끊임없이 이렇게 읽어 내려간다면 당신은 바로 끊임없이 정진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대법연공(大法煉功)과 같은 이런 보조적 수단을 더하면 당신은 바로 제고 중에 있게 된다. 어떤 사람은 늘 나에게 묻는데, 선생님, 제가 원만을 이룰 수 있나요? 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내가 바로 당신에게 묻겠는데 당신은 내가 방금 말한 대로 이렇게 할 수 있는가, 없는가. 사실 이 말은 마땅히 자신에게 원만을 이룰 수 있는가, 없는가 하고 물어봐야 한다.

제자: 매우 높은 층차까지 수련한 후 신체 세포가 모두 고에너지 물질로 대체되어 그때에는 신진대사가 없게 되는데, 그렇다면 먹을 필요가 없고 마실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닙니까?

사부: 그러나 반드시 사람의 모든 신체가 전부 고에너지 물질로 전화되어야만 한다. 신체 표면이 아직 도달되지 못해도 안 된다. 여러분 모두 알다시피 기공을 연마하면 기(氣)를 축적할 수 있고 기를 내보낼 수도 있다. 진정하게 고층차로 수련하면, 그것은 곧 기가 아닌, 기는 곧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된다. 더욱 높은 층차의 에너지로서 나는 그것을 공(功)이라고 부르는데, 사실 그것은 더욱 미시적인 정화(精華) 물질이다. 그리고 이런 정화 물질은 당신의 신체 속에 축적되고, 당신 신체의 매 세포는 모두 이러한 고에너지물질을 축적하게 된다. 더욱 미시적인 물질인 그것은 당연히 제약성을 띠게 된다. 오래되면 될수록 이런 고에너지 물질은 점차 많아지고 더욱더 포화(飽和)하는데, 그러면 당신의 이 신체세포는 고에너지 물질에 의해 동화(同化)되지 않겠는가? 당신의 세포가 모두 이런 고에너지 물질에 의해 동화되었다면 당신은 여전히 속인과 같은 이런 신체이겠는가? 그렇다면 이러한 신체, 그것은 다른 공간 속에서 채집해 온 고에너지 물질로 구성된 것인데, 여전히 속인의 그러한 신진대사가 존재하겠는가?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때 당신은 먹지 않아도 되고 마시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당신이 먹을 수 없거나 마실 수 없다는 것과 같다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 이 공간의 것이 아니다. 사람의 것을 당신에게 주어도 당신은 이미 먹기 싫어지며,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는데, 필요로 하는 것은 다른 공간의 더욱 고급 물질이다.

제자: 광저우(廣州) 전체 수련생은 사부님을 그리워합니다! 광저우 전체 수련생이 사부님께 안부를 전합니다!

사부: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박수)

제자: 호주의 수련생들은 보편적으로 층차가 비교적 낮습니까?

사부: 나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다. 사실 당신들이 어느 경지까지 수련했는지 당신들이 지금은 전혀 알 수 없다. 일단 알고 나면 당신들에게 강대한 집착이 나타나서 장애가 되어 당신들 수련의 길을 가로막는다. 그러므로 모른다면 이런 집착도 없다.

제자: 『정진요지(精進要旨)』 중에서 사부님께서 수련은 엄숙한 것이며 결코 속인의 일반적인 반성과 회개(悔過)의 일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반성과 회개의 단계에서 배회하고 있으면서 늘 돌파하지 못하는 느낌을 받고 있는데, 여쭙고 싶은 것은 내심(內心)에서 찾는 것과 반성(反省)은 어떤 구별이 있습니까?

사부: 수련의 제고는 반성, 회개와 동등시 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신이 자신을 반성할 수 있고 자신을 회개할 수 있는 이 자체가 수련의 한 방면으로서 바로 이런 관계이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내가 늘 말했지만, 당신이 그 기독교・천주교가 수련하지 않는다고 보지 말라, 그것도 역시 수련이다. 단지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예수와 여호와는 모두 수련(修煉)이라는 이 용어를 말하지 않았을 뿐이며, 이는 그들의 그 문화 중에 이런 개념이 없고 사유방식에서도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들이 수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지? 사람들이 교회로 걸어 들어가면 매우 공손한 마음으로 그들의 주(主) 예수를 향해 참회하면서 어디가 틀렸고 잘못했으며 이후부터 잘하겠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후의 행위에서 그는 좀 더 잘하게 된다. 그다음에 잘못을 발견하면 다시 참회하고 다시 더욱 높은 표준에 따라 하게 된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수련은 실제로 사람의 마음을 닦는 것이라, 그렇다면 이것은 마음을 수련하는 것이 아닌가? 마지막에 그는 더욱더 좋게 변하고 더욱더 잘하게 되는데, 그가 그들의 그 천국세계가 요구하는 표준에 도달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게 곧 원만을 이룬 것이 아니겠는가? 단지 문화적인 차이에서 공(功)을 말하지 않았고, 말한 것이 동양문화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풍부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많은 용어가 비교적 간단하고, 요구도 비교적 간단하다. 오로지 믿음, 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만을 말했다.

제자: 어떤 수련생이 생사(生死)의 고비를 겪고 있지만, 그는 흐리멍덩해 있는데, 그러면 그와 함께 있는 수련생은 마땅히 어떻게 해야 좋습니까?

사부: “어떤 수련생이 생사의 고비를 겪고 있다.” 이 말은 그다지 옳지 않다. 게다가 그는 또 흐리멍덩하다고 하는데 이는 그가 수련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는 실질적으로 정진하지 못하고 있다. 법에 대한 감성적 인식과 사람의 열정에 의거한 것이지 결코 진정으로 이성적으로 법을 인식한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정진하고 실속 있게 수련하는 것이 아니며 진정한 수련이 아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수련은 엄숙한 것으로서 나는 이러한 사람을 수련자라고 인정할 수 없다. 세간(世間)의 모든 일 중에 수련(修煉)이란 이 일보다도 더 엄숙한 것은 없다. 업력이 온몸에 가득 차 있는 사람, 두뇌가 더러운 사상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이 대각자가 되려 하고, 수련하여 원만을 이루고자 하는데, 이것이 얼마나 엄숙한 일인가. 수련자가 사람의 일체를 내려놓을 수 있는 과정 또한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그렇다면 여러분이 엄숙하게 대하지 않는다면 되겠는가?! 매 한 고비를 여러분 자신들이 잘 넘기지 못한다면 되겠는가?! 조금도 마음에 두지 않고, 믿는 둥 마는 둥, 수련하는 둥 마는 둥, 자신에 대해 전혀 책임을 지지 않는 그가 원만을 이룰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은가? 대법이 요구하는 心性(씬씽)에 따라 해 나갈 수 없다면 그건 안 된다. 속인은 병이 있게 마련이며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속인의 법칙(規律)이다.

제자: 대학생 수련생으로서 어떻게 해야 꾸준히 정진(精進)할 수 있습니까? 어떤 제자들은 대학교에 다니지 말고 취업하면 혹시 더욱 좋은 수련환경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사부: 내가 보기에 이는 틀려도 크게 틀린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 진리(眞理)를 발견하게 되면 흥분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특히 내가 오늘날 대법을 전하면서 그렇게 많은 천기(天機)를 말하게 되는데, 법을 막 얻을 당시 격동되어 수련인과 속인의 관계를 잘 파악하지 못한다. 최대한도로 속인 사회의 형식에 부합되어 수련해야 하는 것은 단지 매우 간단한 한마디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법이다! 모든 방면을 관통하고 있다. 나는 장래에 전 세계에서 더욱 많은 사람이 대법을 배우게 될 것이며 몇십 억의 사람이 배우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이 법을 전하는 그 당시에 나는 그 결과가 어떠할 것인지를 알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두 배우게 되는데 여러분이 모두 사업을 하지 않고 학교에 가지 않는다면 이것이 될 일인가?! 그러므로 나는 이 법을 전하기 전부터 이 일보(一步)까지 고려했는바, 사람으로 하여금 어떻게 속인 사회에서 수련할 수 있도록 하겠는가 하는 것은 지극히 중대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당신의 사업, 당신의 장사, 당신의 공부 등등, 여러 방면의 환경이 모두 당신의 수련에 영향 주지 않기에 당신은 당신의 사업과 공부를 여느 때와 같이해야 한다. 당신의 사업, 당신의 공부가 절대로 수련은 아니지만 수련인으로서 당신이 제고된 후의 心性(씬씽)은 당신의 사업과 공부 중에 표현되는데 바로 이런 관계이다. 그러므로 대법 수련생이 어디에 있든지 사람들은 모두 당신, 이 사람이 아주 좋다고 할 텐데, 이것은 최대한도로 속인 사회 형식에 부합되게 수련하는 데서 체현되어 나오는 상태이다. 만약 당신이 이렇게 할 수 없다면 당신은 바로 나의 말대로 하지 않은 것과 같으며 사부의 요구에 따라서 하지 않은 것과 같다. 만약 당신이 나의 말조차 듣지 않는다면 당신이 나를 보고 사부라고 불러선 뭘 하겠는가? 나는 당신들에게 나쁜 길로 가도록 가르치지 않을 것이며 내가 이 법을 전한 이상 나는 이를 책임져야 한다. 사실 나는 당신들을 소중히 여기기를, 당신들이 당신들 자신을 대하는 것보다 더욱 소중하게 대한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사부와 함께 있으며 미래의 가장 위대한 신이고 새로운 우주의 본보기이며 인류의 장래 희망이기 때문이다. 법을 배웠다고 해서 속인의 일을 하지 않아서는 절대 안 된다. 대법이 허용하지 않는 일을 당신이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당신의 깨달음(悟性)이 좋다는 것을 설명한다. 만약 정상적인 속인 사업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는 것으로서 환희심이 조성한 집착으로 일어난 것이다.

제자: 러산(樂山)의 어린 제자들이 사부님께 문안드립니다! 베이징(北京) 대법제자들이 사부님께 숭고한 경의를 표합니다! 다롄(大連) 제자들이 사부님께 문안드립니다!

사부: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박수)

제자: 『전법륜(轉法輪)』 제8강의 “누가 연공하면 바로 그가 공을 얻는다.”에서 “당신 신체의 모든 정보, 모든 영체(靈體)와 당신의 세포는 모두 공이 자라고 있다.”라고 하셨는데 이 정보(信息)와 영체(靈體)가 가리키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부: 당신의 매 세포는 모두 당신 자신의 형상으로서 줄곧 더욱 미시적이고 더욱 미시적인 곳까지 그렇다. 나만이 법에서 이 문제를 말할 뿐만이 아니라, 현재의 인류도 인식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작은 동물의 세포 절편(切片)을 만들어 컴퓨터에 전송하여 모니터에 나타나는 것을 보면 그 세포는 그 작은 동물의 형상으로, 똑같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표면으로 봐서는 그것은 세포에 불과하다. 다시 말하면 당신이 연공하고 있을 때 당신 신체의 일체는 따라서 변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영체가 아니겠는가? 그것은 틀림없이 그러하다. 그리고 당신이 수련해낸 일체, 이 당신의 공, 당신 공의 매 입자, 같지 않은 법기(法器), 공능(功能), 신통(神通)을 포함해서 모두 생명이 있다. 또한, 이런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며 한 사람이 원만을 이루자면 그는 상당히 풍부한 것들이 있어야 하고 그래야만 대각자로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모두 살아있는 것으로서 모두 생명이 있으며 능력이 있는 것으로 바로 이런 뜻이다.

제자: 쌍둥이는 두 명의 主元神(주왠선)이 동시에 환생 된 것입니까?

사부: 그건 당연하다. 그는 절대로 한 元神(왠선)이 절반으로 나누어지지 않는다.

제자: 아프리카주의 어떤 지역은 일부다처(一夫多妻)제인데 그들에게 홍법(洪法)을 해도 괜찮습니까?

사부: 괜찮다. 누구든 모두 배울 수 있다. 사회제도가 다름으로 하여 도덕(道德), 이성(理性), 관념(觀念)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다르기 때문에 차이가 매우 크지만, 이것은 모두 그들의 수련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어떤 환경에서든, 어떤 계층에서든, 어떤 사람이든 모두 수련할 수 있으며 오직 그들이 수련하는지 하지 않는지만 본다.

제자: 우리 이 공간에서 사람의 신체는 우주의 방대한 신체의 한 개 입자에 불과하고, 입자의 크기에 따라 형성된 공간이 같지 않으며, 형성된 각개 공간마다 당신의 신체가 있는데, 이 공간은 당신 한 사람의 것만이 아니라 우주의 일부분입니다.

사부: 그렇다. 이 이해는 옳다. 당신 자신은 물론 한 개체의 생명이지만 당신은 또 우주 정체(整體) 중의 한 입자로서 정체(整體) 생명의 일원이다. 예컨대 내가 방금 말한 것처럼 당신은 한 개체 생명이지만 또 이 경지 중의 정체(整體) 생명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당신 신체의 매 세포는 모두 당신과 똑같은 형상을 한 독립적 입자의 형식으로서 또한 총체의 일부분이다.

제자: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중국 고대의 사회 상태와 옛사람(古人)은 현대보다 좋았다고 하셨는데, 서로 싸우는 그런 일이 많았던 중국 고대의 역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공자(孔子)가 말한 것처럼 춘추전국(春秋戰國) 이전의 삼황오제(三皇五帝)시대의 고대 사회가 좋았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사부: 고대 사회의 어느 한 시기이든 모두 현대 사회보다 좋았다. 이것은 사람과 사람을 비교하는 것인데, 사실 사람 이 공간은 매우 좋지 않으며 우주 중에서 인류 층차보다 높은 그 어느 한 공간에서 보더라도 사람 이곳은 모두 좋지 않은 곳으로, 가장 더러우며 또한 우주의 진상을 가장 보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본래부터 좋지 않았으며 오늘날의 사람은 더욱 나쁘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사람은 관념이 거꾸로 되었기 때문이다. 내 말은 사람과 다른 공간을 서로 비교해서 거꾸로 된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하늘이 정한 것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현대의 사람과 과거의 사람을 서로 비교해보면 관념이 모두 거꾸로 되었으며 좋고 나쁨도 모두 거꾸로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사람이 나쁜 일을 하면서도 그는 이미 자신이 나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며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그가 유독 이익만 추구한다고 말해도 그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이 도적에게 도둑맞아도 그는 도적을 탓하지 않고 자신이 관리를 잘 못했다고 자신을 탓한다. 이것은 관념이 모두 거꾸로 된 것이 아닌가? 현대인들이 고대를 좋지 않다고 말하지만 사실 현재의 사람은 현재의 좋지 못한 그 관념으로 옛날 사람들을 가늠하고 있다. 당신은 홍콩에서 찍은 옛날 사람들이 죽이고 때리는 많은 영화를 보았지만, 그것은 단지 예술 수법이고 예술 과장일 뿐이다. 기나긴 몇천 년의 역사 중에서 그러한 사건들은 아주 미미한 데 불과하다. 여러분은 모두 예술은 생활보다 높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옛사람은 “사람을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라.”고 했다. 이 한마디 말은 듣기에는 매우 간단하다. 비록 싸움일지라도 모두 자신을 통제할 수 있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사람은 싸우기 시작하면 집중적으로 얼굴을 때리는데, 흉포하고 악독하며 그 어떠한 통제도 없다. 사람이 달라졌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고대에 전쟁이 있었는가?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그것은 하늘이 정한 것이다. 왜냐하면, 우주의 법리(法理)가 사람 이 공간에 정해 준 것이 바로 군대로 천하를 정복하고, 왕이 나라를 다스리며, 승자가 영웅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고층 공간에서 본다면 모두 좋지 않은 것이긴 하지만, 인간의 거꾸로 된 이치 중에서 사람과 우주는 반대라는 이치에 적응하게 됨으로써, 몇천 년 동안 인류사회에 영향을 끼쳤다. 사람의 업력이 커졌을 때면 바로 소업(消業)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천재인화(天災人禍)와 인간의 전쟁이 곧 있게 된다.

제자: 『전법륜』을 읽거나 다른 지역에서 사부님께서 해답한 설법을 들을 때, 모르는 단어의 뜻에 대해, 예를 들면 ‘자연히’, ‘필연’과 같은 이러한 단어들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까?

사부: 단어의 표면 뜻은 일반적으로 사람의 인식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이러한 단어를 지나치게 파고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분이 책을 볼 때 절대로 글자를 지나치게 파고들어서는 안 된다. 당신은 순서대로 읽어 내려가되 자신이 법을 보고 있다는 것과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법의 내포는 표면에 있는 것이 아니며 당신들이 그 한마디 말의 다른 더욱 높은 인식을 알게 될 때 바로 법의 내포가 드러나고 법이 보이게 된다. 뚜렷이 나타난다.

제자: 침구 의사인데 침을 놓을 때 환자의 피부를 접촉하게 되며, 부항(拔火罐)으로 치료할 때에도 환자의 피부에서 매우 많은 더럽고 탁한 것을 뽑아내게 됩니다. 이 두 가지 상황에서는 업력을 전도하게 되는데 수련자가 이런 일을 계속할 수 있습니까?

사부: 그렇게 지나치게 소심하고 신중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사회생활에서 당신들은 모두 속인들을 접촉하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말하면, 당신이 앉은 의자는 다른 사람이 방금 앉았었는데, 당신이 앉겠는가, 앉지 않겠는가, 다른 사람이 건드렸던 물건을 당신이 건드리겠는가, 건드리지 않겠는가. 이런 간접적인 접촉 역시 접촉이다. 이 사회는 바로 더러운 것이며 바로 이렇다. 수련인들은 이런저런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고 다른 한 가지 집착을 만들어서 이런저런 것의 두려움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당당하게 수련하면 당신 신체에서 발사하는 것은 모두 정법(正法)의 빛이다. 많은 대법제자가 과학연구를 하고 있는데 그 세균실험을 할 때 무의식중에 손이 세균 가까운 곳에 다가갔을 때 세균이 모두 죽은 것을 발견했다. 이런 예가 이미 매우 많은데 이는 바로 대법 수련생 자체가 살균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당신이 기공 방법으로 치료하지 않고 속인의 의료 방법을 채용했기 때문에 이것은 괜찮다. 설사 당신이 조그마한 업력을 묻힐지라도 매우 적은 것으로서 어떠한 영향도 없다. 만약 당신이 기공으로 병을 치료한다면 달라진다. 그러면 아주 분명한 것은 다른 사람과 교환이 생겨 당신은 병을 가져오고 좋은 것은 남에게 주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는데 그런 가짜 기공사, 그는 수련을 거치지 않고 기공으로 돈을 벌려고 한다. 사실 그는 그 자신을 해치고 있는데 치명적으로 그 자신을 해치고 있다. 사람은 돈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일도 감히 하며 자신을 해쳐도 여전히 모르고 있다.

제자: 나는 수련한 지 이미 2년이 넘었으며 대법(大法)에 대해 확고하게 믿고 있고 또한 일정한 이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류회 때에는 나는 오히려 무엇을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고 마음속으로는 알고 있지만 말해낼 수 없어서 말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선천적으로 표현 능력이 부족한 것입니까? 아니면 법에 대한 이해가 아직도 부족한 것입니까?

사부: 이것은 법에 대한 이해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사람마다 수련에서 모두 같지 않은 상태가 있다.

제자: 먼저 수련한 것과 후에 수련한 것이 무슨 차별이 있습니까?

사부: 차별이 없다. 나는 먼저 수련하면 어떻고 후에 수련하면 어떻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법이 여전히 전해지고 있으며 당신이 얻었다면 수련하라. 만약 당신으로 하여금 원만을 이루게 할 수 없다면 당신에게 수련하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층차의 높고 낮음은 입문의 선후와 관계없으며 자신이 수련해 내는 것이다.

제자: 가부좌를 하는 중에 머리가 저도 모르게 연속적으로 흔들리고 도는데 가부좌할 때 조용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이 당황해집니다. 이는 어떻게 된 영문입니까?

사부: 두 가지 상황이 있다. 한 가지는, 신수련생으로서 아직 진정으로 우리 수련인이 되기 전, 당신이 예전에 다른 무엇을 배웠던 적이 있거나 예전에 집에서 무엇을 공양했거나 어떤 것을 숭배했을 수 있는데, 그렇다면 속인 중에서 좋지 못한 일을 해서 어떤 것을 불러오게 된 일일 수도 있다. 연공 중에서 당신이 만약 진정으로 확고하게 대법을 수련한다면 내가 그것을 깨끗이 제거해 버린다. 다른 한 가지 상황은 바로 사람이 수련하게 되어 초기에 신체를 조절하는 중 이전에 어느 부위에 병이 있었다면, 이 방면의 업력을 제거하는 중에 나타나는 반영일 수도 있다. 두 가지 원인이 다 있다. 그러나 되도록 그것에 따라 흔들리지 말아야 하며 정말로 통제하기 힘들면 눈을 뜨고 연마하라. 지금은 당신이 왜 움직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이 상태를 유지하고 연마하다가 움직이지 않을 때에 다시 눈을 감아라. 수련인은 대주천(大周天)이 통하기만 해도 흔들림이 나타난다.

제자: 미국 피츠버그의 전체 대법수련생이 사부님께 문안드립니다!

사부: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박수)

제자: 어른이 정공 수련을 할 때 어린애가 옆에서 잠을 자도 됩니까? 이러면 어린이의 主元神(주왠선), 副元神(푸왠선)에게 어떠한 영향이 있습니까?

사부: 당신의 뜻은 어린이가 공(功)을 얻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물으면서도 정면으로 묻지 않는데 이는 집착심이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연공하면 온 식구가 혜택을 본다고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최소한 당신이 지닌 에너지마당은 당신 온 가족에게 모두 유익하다. 당신은 정법(正法) 수련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지니고 있는 그러한 자비하고 상서로운 힘은 바르지 않은 모든 상태를 바로잡을 수 있다.

제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일정한 층차로 수련된 후 만약 늘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예전의 수련과정과 소업(消業)할 때의 감수를 말하거나 떠올리면 바로 그 당시의 층차로 떨어지게 된다고 하는데요?

사부: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수련인으로서 수련의 과정을 말하는 것은 자신과 다른 대법제자가 다시 이런 고비를 넘길 때 더욱 잘 넘길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층차에는 그 어떠한 영향도 없다. 만약 과시심을 갖고 있다면 그건 다른 경우에 속하는데 말하더라도 수련생들은 듣기 싫어할 것이다.

제자: 사부님께서 어제 말씀하시기를, 물질과 정신은 일성(一性)이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그것이 우리의 법 공부와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사부: 쪽지를 제출한 사람은 아직 배우지 않았고, 내가 말한 법에 대해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지만 난 그래도 당신에게 해답해 주겠다. 왜냐하면, 방금 당신도 분명히 들었기 때문인데, 나의 이것은 수련이고 수련과정 중에서 사람의 신체를 개변시킬 수 있다. 모든 이 일체의 변화는 모두 수련 중에서 수련인의 心性(씬씽), 사상(思想)의 승화로 가져오게 된다. 그렇다면 통상 사람들이 인정하는 心性(씬씽)은 정신적 범주에 속하며 정신과 물질은 연계가 없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 정신과 연마하는 공(功)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하며 생각한다. 우리는 그냥 연공하면 되지 그러한 이치를 말해서 뭘 하는가? 이것이 바로 매우 많은 사람이 연공해도 공이 자라지 못하는 근본 원인이다. 당신에게 이치를 알게 할 때에는 당신의 사상으로 하여금 승화되게 하며 당신의 경지로 하여금 제고되게 한다. 당신으로 하여금 더욱 높은 이치를 알게 하는데 그것이 바로 당신이 제고된 후의 사상경지이며 당신의 사상경지가 놓여 있는 위치이다. 당신이 이 표준에 도달해야 당신의 공이 자라 오를 수 있는데, 바로 이러한 이치이다. 당신이 만약 그 이치를 알지 못하면 당신이 날마다 연공하고, 당신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연마하며, 당신이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연마한다 해도 당신은 여전히 공이 자라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이 책만 보고 연공은 하지 않는다고 하면 또한 대법 수련제자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신이 그를 이론으로 간주하고 배웠기 때문이다. 수련은 오로지 자신이 수련하려 하고, 원만을 이루려는 이러한 소원이 있어야 하는 동시에 또한 수련하는 행동이 있어야 하는데, 이래야 비로소 수련이라고 한다. 이것 역시 당신에게 표면상에서 말해주는 것이며, 실질상 정신면의 제고가 바로 공의 제고이다. 왜냐하면, 정신과 물질은 일성이기 때문이다.

제자: 제가 『전법륜』을 통독할 때 몇 번이나 한 가지 똑같은 상태가 나타났는데, 바로 통독하고 있을 때 갑자기 머리가 무겁고 몹시 졸리는 감을 받았지만 자지는 않았는데, 눈은 늘 책 속의 어느 한 단락에서 맴도는 듯한 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책 속에서 다른 한 단락의 말이 나타났는데, 『전법륜』 중의 말이 아니었습니다.

사부: 이것이 바로 당신 자신의 사상업력(思想業力)이 당신을 심하게 저해한 것으로서 당신으로 하여금 책을 보지 못하게 하고 법을 배우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졸리게 하고 잠을 자게 하여 당신으로 하여금 정념(正念) 정각(正覺)을 잃어버리게 하고 심지어 그것이 급하면 당신에게 나타나 교란하며 또 생각 중에서 글자를 현시해 낸다. 대법을 파괴하는 마(魔)도 이렇게 하는데 심지어 급하면 또 당신의 마음을 시끄럽게 하고 당신과 말을 하면서 당신으로 하여금 배우지 못하게 한다. 그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이런 사상업력 혹은 외래의 교란이 작용을 일으키고 있으며 그것들이 당신으로 하여금 승화하지 못하게 한다. 당신의 승화는 바야흐로 그것을 제거하게 되기 때문에 나는 당신들에게 소업을 해준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것이 정말로 제거되면 정말로 해체되는데 그것이 가만있겠는가? 그러므로 그것은 목숨을 걸고 저항한다. 당신이 만약 이런 것들을 자신으로 여긴다면 당신은 법을 얻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법은 당신에게 주는 것이지 절대로 그런 업력에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극복해야 하고 더없이 졸려도 그것을 극복하고 억제하며 깨끗이 제거해야 한다. 당신이 이 한 고비를 돌파해 지나갈 때가 바로 그것을 소거해 버린 때이다.

제자: 현재 많은 일에서 말만 하면 틀렸고, 하기만 하면 틀렸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감히 말하지도 못하고 또한 하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주위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제가 너무 조심스러워한다고 말합니다.

사부: 내가 보기에도 이러하다. 사실 이것은 진리를 인식한 후, 사람의 이치가 본래는 거꾸로 된 것임을 보게 된 후에 나타나는 상태로서 일종의 수련인으로 되어가는 과정의 표현이다. 계속하여 당당하게 수련인이 되어야 하며 당당하게 수련해야 한다. 이는 단지 수련인의 경지가 표현되어 나오게 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데 무위 중에 해낸 일이 바로 높은 표준이다. 다른 한 가지 집착 속으로 빠져들지 말아야 하며 자신이 틀리게 말할까 봐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이 틀리게 할까 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이 두려움 또한 집착이다. 되도록 당당하게 하면 문제가 없다.

제자: 우리에게 허영심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려줄 수 있습니까?

사부: 정(情)이다. 당신은 다른 사람이 당신을 좋다고 하면서 칭찬하는 것을 좋아하며, 다른 사람이 당신을 존중하는 걸 좋아하는데, 당신의 형상에 손상을 주는 어떠한 일이든 당신은 모두 두려워한다. 이러한 심리상태가 생기면 바로 허영심인 것으로서 집착이다. 사람이 체면을 차리기 좋아하는 마음 역시 매우 강하다. 사실 마음을 내려놓고 그렇게 많은 보따리를 지니지 않는다면 더욱 빨리 수련하게 된다.

제자: 수련과정의 많은 고비를 모두 쉽게 넘길 수 있는데, 이를 악물기만 하면 모두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情)”이란 글자의 한 고비를 넘기가 매우 힘들며 연속 몇 차례 모두 넘지 못했는데, 특히 성격이 비교적 연약하고 감정이 풍부한 사람은 넘지 못합니다. 수련한 지 2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 기간에 남자친구에 대한 감정 문제로 연공을 몇 개월간 멈추었습니다. 지금 다시 연마해도 사부님께서 저를 책임지십니까?

사부: 대법은 현재 여전히 문을 열어 놓고 있으며 신수련생들이 끊임없이 들어와 배우고 있는데 신수련생들이 계속하여 입문하고 있다. 오직 수련만 하면 되는데 일체가 당신 자신에게 달렸다. 그러나 당신이 늘 이러하다면 안 되며 한 차례 교훈을 얻은 것으로도 충분하다. “정(情)”이란 글자는 놓기가 매우 힘들다.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는데, 사람은 모두 자기의 사상 감정을 자기 신체 중의 일부분으로 여기고 생각을 통해 생긴 것이라고 여기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정”은 바로 가장 이지적이지 못한 반응이다. 당신들이 무릇 “정”에 의해 이끌릴 때 당신들은 전혀 이지적이지 않다. 당신들이 곰곰이 생각해 보라. 당신들이 어떤 일에 대해 늘 생각하며 잊지 못할 때, 어떤 일 때문에 분을 삭이지 못하고 불평을 토로할 때, 그것은 정에 의해 이끌린 것이다. 어떤 사람이 흥분하여 모든 것을 망각하고 기쁨에 겨워 어쩔 줄 모르거나 정서가 이상할 때 그것은 정에 이끌려 이지가 흐트러진 것이다. 어떤 사람이 감정 면에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며 심지어 가슴을 저미고 뼈를 깎는 듯해서 베어버리지 못하고 있을 때 정에 이끌려 이토록 피동적인데, 일체가 모두 그 정이 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사실, 이 정은 바로 우리 이 공간 중 삼계(三界) 내의 한 신(神)으로서 그는 사람에게 만들어 준, 사람을 위해, 삼계 내의 중생을 위해 존재하는 신이다. 만약 정이 없으면 사람마다 냉담하게 변하게 되고, 만약 사람에게 이 정이 없다면 더욱 악하게 되는바 그러면 인류는 아무런 재미도 없을 것이다. 바로 정이 있기 때문에 사람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알게 되었고, 바로 정이 있기에 사람은 부모와 자녀 간의 애정 관계가 있게 되며, 바로 정이 있기에 비로소 가정을 이루게 되며, 바로 정이 있기에 자신의 자녀를 사랑하고 보호하게 된다. 정은 인류에게 이러한 작용을 일으킨다. 그러나 올바르지 않은 사상의 인도로 이 정은 또 사람으로 하여금 바르지 못한 행위를 생성하게 하거나 바르지 못한 사유방식을 생성하게 한다. 사람이 태어나기만 하면 곧 이런 정에 파묻히게 되는데, 그것은 당신의 일체 세포 속으로 침투되고 삼계 내 모든 분자와 세포는 모두 그것에 의해 침투되어 있기 때문에 수련 중에서 떨쳐버리기가 매우 힘들다. 수련하는 사람, 당신이 이 정을 내려놓지 못하면 당신이 한 일체는 모두 사람의 행위이다. 사실 정을 중히 여기는 것은 바로 이 정을 수호하는 것으로서 당신은 바로 속인이다. 당신이 그것을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당신은 곧 그것 속에 있지 않은 것으로서 바로 신이다. 바로 이러한 이치이다.

부처(佛)・보살(菩薩)・나한(羅漢)・신(神) 그는 이 정 속에 있지 않으며, 삼계 밖의 신은 사람의 이 정이 없다. 그러나 인정(人情)이 없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보호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다. 그에게는 더욱 높은 것이 있는데 자비(慈悲)라 하며, 더욱 고상하고 더욱 광대하며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정은 삼계 내의 한 요소이다.

제자: 푸저우(福州)의 수련생이 전화로 존경하는 사부님께 그들의 인사를 전달해 달라고 합니다!

사부: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박수)

제자: 싱가포르는 다수 종족으로 영문을 통용하는 사회로서 인구는 삼천이백만인데, 백 분의 칠십육은 중국계입니다. 그러나 현재, 단지 소수가 대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다수는 영문교육을 받았고 또한 중국어를 알아들을 수 있지만, 중국어를 알아보자면 힘듭니다. 다른 원인을 제외하고도 위에서 말한 환경이 바로 그들이 법을 얻는 데 장애이며 어려움입니다. 제자도 역시 영문 교육을 받았기에 그들의 어려움을 알 수 있습니다. 사부님, 우리는 어떻게 해야 싱가포르에서 더욱 많은 사람에게 대법을 널리 알려(洪揚) 줄 수 있을까요?

사부: 이런 상황은 다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호주 여기에 있는 일부 중국인, 혹은 다른 서양 나라의 화교들은 완전히 서양 문화 속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그들은 중문을 말할 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법을 배울 수 없겠는가? 영문 『전법륜』을 볼 수 있다. 다른 언어로 된 『전법륜』을 배워도 마찬가지로 법을 얻을 수 있으며 문제가 없다.

제자: 사부님께서 현재 지구상의 사람은 모두 반드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제자가 이렇게 이해하면 맞습니까? 즉, 당초에 이런 사람들이 내려올 때 결코 한 걸음 한 걸음씩 좋지 않게 변해 떨어진 것이 아니며 반대로 위험을 무릅쓰고 내려온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인간 세상에 내려와서는 모두 미혹 속에 들어온 것이기에 업(業)을 수없이 짓고, 어떤 사람은 업을 너무 많이 지어 완전히 길을 잃어버려 전혀 수련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렇다 할지라도 사부님께서는 그들이 당초에 내려와 법을 얻으려는 이 점을 보았기 때문에 그 어떤 사람이든 오로지 그가 오늘날 수련하려는 이 일념이 나와 이 문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사부님은 그를 제도하는 것입니다.

사부: 기본적으로 그러하다. 그러나 모두 정념(正念)으로 내려온 것은 아니다. 떨어진 것도 있다. 그러나 대법이 사람을 제도함에 사람을 동일하게 대한다. 나의 이 대문은 이미 모두 문이 없도록 열어 놓았으며 오로지 사람의 마음만 볼 뿐이다. 그 밖에 현재 세상의 사람은 모두 사람이 되려고 온 것이 아니라는 이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모두 다 불・도・신(佛道神)이 되려고 내려온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모두 다 수련하러 온 것도 아니다. 그러나 모두 대법을 위해 왔으며 대법을 위해 이루어졌으며 대법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중에는 정반(正反)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 모두 있다.

제자: 제자는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배운 후 꿈에서 사부님을 두 번 보았는데 모두 현재의 형상이었습니다. 제자는 영문 교육을 받았고 또한 혼혈아입니다. 무엇 때문에 당신의 법신(法身)을 볼 수 없고, 당신의 분신(分身)을 보았습니까?

사부: 사람마다 수련의 진전이 같지 않기에 나는 당신들에게 너무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싶지 않다. 어떤 수련생의 상황은 같지 않으며 역시 나의 법신을 보지 못한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그 법신은 부처의 형상으로서 남색 머리카락에 황색 가사(黃袈裟)를 두르고 있다. 부처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부처의 형상을 보는 걸 허용하지 않는데 바로 이 문제이다. 나는 당신들의 제고에 영향을 주지 않으려고 당신들의 구체적 상황을 별로 말하지 않는다. 일부 사람은 볼 수도 있는데 보고 나면 또 환희심이 생기기 쉽기 때문에 나도 줄곧 구체적인 상황을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줄곧 묻는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가 선천적인 요소를 갖고 있어 그로 하여금 볼 수 있게 하는데 이런 사람이 매우 많다. 왜냐하면, 내가 말했지만, 사람은 모두 인간이 되려고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바로 이 원인이 조성한 것이다. 그렇다면 또한 어떤 사람은 수련을 매우 잘하여 더욱 빠른 돌파가 필요하므로 그로 하여금 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또 볼 수 없게 된다. 그 어떤 종교 혹은 그 어떤 수련법도 당신을 그것의 신을 초월한 더욱 높은 곳으로 제도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대법은 일체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데 얼마나 높이 수련할 수 있는지는 바로 수련자 본인에게 달렸다. 그는 우주의 법이며 그가 우주 중 일체 생명의 생존환경을 개창하였기 때문에, 당신을 선천적인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요구도 그와 마찬가지로 역시 높은바, 어떤 수련생들은 매우 높은 층차로 수련되어야 하는데, 만약 깨우쳐야 할 것을 밝혀준다면 영원히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

수련의 길은 사람에 따라서 결정되며 사람마다 같지 않다. 어떤 사람은 매우 똑똑하게 보는데, 오늘은 이것을 보고 내일은 저것을 보지만 어떤 사람은 보지 못한다. 보지 못하는 사람을 층차가 낮다고 여기지 말아야 하며 또한 볼 수 있다고 해서 그가 잘 수련했다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 수련 층차의 높고 낮음은 한 사람의 心性(씬씽)의 높고 낮음을 보아야 하는바 이는 절대적이다. 역사상 어떤 수련도 모두 공능(功能)을 心性(씬씽)의 고저(高低), 층차의 고저를 가늠하는 표준으로 삼지 않았으며 여태껏 있어본 적이 없다.

제자: 모든 것은 다 德(더)로 바꿔온 것인데 그렇다면 사부님에게서 얻게 되면 德(더)를 잃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

사부: 나는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당신들은 모두 수련인(修煉人)이기에 모두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해야 하며 당신들 누구든 모두 이렇게 해야 한다고 나는 말했다. 당신들은 수련 중에 있기에 그것은 당신들 수련에 대한 요구이다. 그러나 나는 수련하는 사람이 아니며 사부는 당신들을 제도하러 온 것이다. 당신들은 이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영원히 당신들을 나와 비교해서는 안 된다.

제자: 사부님께서는 매 제자의 수련 길은 모두 원만으로 배치하였다고 말씀하셨는데 『전법륜』에서는 “그 자신이 휴대한 것과 그 자신의 인내력을 한데로 결합한 것은 고정되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사부: 이것은 모순되지 않는다. 사람마다 나는 모두 원만으로 배치하려 한다. 그러나 사람마다 모두 동일한 경지 중에서 원만을 이룬다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이치가 아닌가? 그러므로 당신 자신이 지닌 것, 당신의 인내력, 당신의 감당능력, 당신의 선천적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두 같지 않다.

제자: “아주 낮은 층차에서 개공개오(開功開悟)하였다.”, 이런 사람에게 원만(圓滿)으로 배치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사부: 당신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수련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자신이 속인 중에서 성과가 좀 있으면 바로 만족한다. 그들은 매우 의미가 있다고 여기며 삶이 즐겁다고 하는데 이런 이치가 아니겠는가? 같지 않은 수련자가 어떤 층차에서 원만을 이루려 하는 것은 그에게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제자: 제자는 법 공부하고 연공한 지 이미 1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매번 동공을 연마할 때마다 늘 연속 하품을 하며 온 얼굴에는 눈물범벅이 되는데, 어떤 집착심을 아직 내려놓지 못해서가 아닌지요?

사부: 아니다. 하품은 수련 중의 한 상태로서 수련의 초기에 늘 보게 되지만 꼭 모두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이 상태는 결코 고정적인 것이 아니며 초기에 신체 속에서 생성되는 기가 뇌 속으로 밀려들어 가 그것이 배출되어 나오려 할 때면 틀림없이 하품을 하게 될 것이다. 그 무슨 나쁜 일이 아니며 초기에 신체를 조정할 때, 두뇌 속의 병을 깨끗이 제거할 때에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데 모두 수련과정의 한 표현이다.

제자: 어떤 한 가지 일에서 각자 자신의 견해를 고집할 때, 집착심과 자신의 견해를 고집하는 것을 어떻게 구분합니까? 예를 들면 어떤 한 가지 일하는 방법에 있어 같지 않은 견해가 있는데, 오로지 한 가지 방법만 채용해야 하고 또한 매 한 가지 견해가 모두 같지 않은 층차의 법의 체현이라면 자신의 인식대로 해야 하는지 아니면 조직의 요구에 따라야 하는지요? 매 제자가 어떻게 법을 스승으로 삼아야 합니까?

사부: 문제를 처리할 때 같지 않은 의견이 있으면, 토론을 거친 후 대법을 우선시해야 하며 자신의 주장을 너무 강조하지 말아야 한다. 최종적으로 결정이 나면 함께 잘해야 한다. 각자 자신의 견해를 고집하고 장기간 쟁론하면서 통일할 수 없다면 그것은 이미 법을 파괴하는 마(魔) 혹은 마성(魔性)에 이용당한 것이다. 자신의 의견을 고수하고 죽도록 놓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로 자신에 대해 집착하는 것이다.

제자: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갖는 견해는 모두 자아 관념을 형성하게 되지만, 수련자는 속인과 달리 자아 관념을 대하는 면에서 마음 상태가 속인과 같지 않으며, 속인은 자아 관념의 정확성에 집착하기에 다른 사람이 자신을 인정해주길 바란다. 하지만 수련자는 자아의 견해만 있을 뿐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이렇게 이해하면 맞습니까?

사부: 절대적으로 맞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수련자는 속인 중에서 쉽사리 관념을 형성하지 않으며 일체는 모두 법을 첫 자리에 놓고 법으로 미혹을 타파하며, 속인의 관념을 타파하고 법으로 일체를 가늠한다. 정념(正念)을 확고히 하고 법을 수호하는 외에 속인의 일은 하되 추구하지 말고 행하건 행하지 않건 모두 집착이 없어야 하며 고정 관념이 있어선 더욱 안 된다.

대법제자는 발생하는 쟁론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정념(正念)으로 대해야 하는가? 특히 의견에서 강렬한 충돌이 생길 때 자신을 보아야 한다. 자신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100%로 법에 있는지? 당신이 자신의 견해를 견지하는 기점이 어디에 있는지 반드시 이 사상의 근본을 보아야 한다.

제자: 우리 이곳의 어떤 수련생은 비관적인 정서를 갖고 있는데 자신은 삼계(三界) 내의 생명일 것이라고 하면서 아무리 노력하고 수련해도 삼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하는데 그의 생각이 맞습니까?

사부: 누가 그에게 삼계 내의 생명이라고 알려 줬는가? 나는 누구에게도 당신이 수련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으며,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당신이 무엇을 하러 왔든, 당신이 원래부터 법을 파괴하러 왔든지 불문하고 나는 모두 당신을 제도한다고 말했다. (박수)

당신들은 아는가? 오늘날 대법수련생의 사람 수는 확실히 매우 많다. 만약 우리 자신들이 잘하지 못하면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는 큰일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일부 직능 부서에서 곧바로 주의하게 된다. 사실 줄곧 조사하는 사람이 있으며 특수 공작을 하는 일부 사람들도 수련생을 따라서 수련하면서 관찰하는데 수련생들이 무엇을 하는지 본다. 여러분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어떤 일을 하든 그는 모두 중생의 일원으로서 그는 우선 한 생명이며 그들에 대해 나는 오직 사람의 직업이 다른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어떠한 마음을 품고 우리 이 환경에 들어왔든 나는 모두 선념(善念)으로 그를 대한다. 오직 그가 수련하려고 하면 나는 곧 그를 위해 책임진다. 그러므로 대법을 파악하려고 들어온 수많은 정부 직능 부서의 이런 사람들은 우리에게 결코 어떤 은밀한 것들이 없으며 어떤 나쁜 점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대법이 대단히 좋다고 인식하고는 착실하게 대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후에 그는 수련생에게 알려주는데 “제가 누구인지 당신들은 압니까? 저는 바로 파견되어 들어온 사람인데 저는 당신들이 대단히 좋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지금 배우려고 합니다! (박수)”라고 했다.

내가 말하는데 우리 대법은 다른 사람이 와서 알려고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 모든 수련생과 협조인은 모두 이러하다. “당신이 와서 조사하고 무엇을 알고 싶다면 내가 당신에게 모두 알려준다. 당신이 무엇을 보려 하면 나는 모두 꺼내어 당신에게 보여준다. 어떠한 숨김도 없이 정정당당하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인간세상의 유일한 정토(淨土)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인류는 대법을 알기 전에는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만약 그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 환경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그는 정말로 이 세상에 이런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제자: 나는 늘 금방 잠에서 깨어날 때, 혹은 길을 걸을 때 대뇌의 일부분은 『전법륜』의 어느 한 단락을 외우고 있으나 나의 主意識(주이스)는 속인 중의 일을 생각하고 있는데 이것은 수련된 그 면이 외우고 있는 것인지요?

사부: 그렇다. 이런 상태가 나타날 수 있다. 수련이 잘된 그 면은 명석한 것으로서 잘 수련하지 못한 사람의 이 면이 정진(精進)하지 못하는 것을 조급해하는 것이다.

제자: 저의 남편이 3월에 뉴욕 동부법회에서 문제를 제기했는데, 사부님께서 그를 고무 격려하여 마음을 깨끗이 씻고 새로운 모습으로서 환골탈태(脫胎換骨)하여 새로운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도 사부님의 말씀에 따라 착실하게 수련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저의 남편은 줄곧 깊은 후회와 자책 속에 빠져 걸어 나오지 못하고 있으며 또 강렬한 마(魔)의 교란이 있는데 이미 4개월이 넘었습니다.

사부: 당신 남편의 主意識(주이스)가 너무 약하며 뚜렷하게 자신을 지배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그에게 틀렸다고 알려주니 그는 또 자책 속으로 빠져 들어감으로써 다른 한 극단으로 가서 집착하고 있다. 게다가 마(魔)가 기회를 타서 그의 이런 부정확한 마음을 이용해 그를 교란하고 있다.

제자: 그가 계속 수련할 수 있습니까?

사부: 이건 그에게 물어봐야 한다. 내가 무엇 때문에 정신병 환자는 수련할 수 없는지를 말했겠는가. 여러분이 알다시피 우리 이 대법은 당신 主意識(주이스)를 수련하는 것이며, 바로 당신 자신에게 주는 것으로 당신들은 명명백백하게 자신이 수련해야 한다. 과거의 일체 수련방법은 과거의 모든 종교를 포함해서 모두 副意識(푸이스)를 수련하는 것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主元神(주왠선)은 법식대로 전생 윤회(轉生輪廻)한다. 그러나 표준에 도달한 그 부분은 천국(天國)으로 올라간다. 하지만 당신들의 진정한 자신이 아닌 副元神(푸왠선)이다. 이것은 천고의 비밀로 과거에는 누설할 수 없었다. 나는 오늘 이 대법(大法)을 전하고 당신을 진정으로 제도하기 위해 나는 천고의 비밀, 비밀 중의 비밀, 천기 중의 천기를 모두 중생들에게 말해 주었다. 만약 당신 자신이 수련할 수 없고 당신 자신이 명석하지 못하면 이 법을 누구에게 주겠는가? 누구에게 와서 얻게 하겠는가? 그러므로 반드시 당신 자신의 主意識(주이스)가 명석해야 한다. 당신이 흐리멍덩하면 안 된다. 그러므로 내가 재차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바 이지적으로 당당하게 수련해야 한다.

제자: 가부좌할 때 방석으로 뒷면을 좀 높여 허리를 지지해도 됩니까?

사부: 잠시는 되는데, 당신이 연마하는 데 과정이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장래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때에는 당신이 꼭 잘 수련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자: 꿈에서 사부님께서 저에게 진짜를 가짜로 되게 수련하고 가짜를 모두 닦아 없애버린다면 당신은 곧 수련 성취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부: 이는 두 방면으로 보아야 한다. 첫째, 인류사회의 이 현실은 신이 보기에는 결코 진실하지 않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것은 당신이 집착하고 있는 것에 대한 진실한 점화(點化)로서 당신이 구체적으로 집착하고 있는 그 일면을 점화하는 것이다. 나는 다만 당신에게 이렇게 알려줄 수밖에 없다. 내가 당신에게 점화해준 말을 나에게 재차 해석하라고 하지 말아야 하는바, 해석해준다면 내가 당신에게 점화해선 뭘 하겠는가?

제자: 眞(쩐)・善(싼)・忍(런)의 순서에는 어떤 특수한 함의(含義)가 있습니까?

사부: 원용(圓容)이다. ‘진(眞)’ 속에 眞(쩐)・善(싼)・忍(런)이 들어있고, ‘선(善)’ 속에도 眞(쩐)・善(싼)・忍(런)이 들어있으며 ‘인(忍)’ 속에도 여전히 眞(쩐)・善(싼)・忍(런)이 들어있다.

제자: 『전법륜』 책에서 사부님께서 불도양가(佛道兩家)를 말씀하실 때 늘 도가(道家)를 불가(佛家)의 앞에 놓는데 이것이 眞(쩐)・善(싼)・忍(런) 순서의 배열과 관계가 있습니까?

사부: 당신은 이런 일에다 주의력을 집중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특별한 관계가 없는바, 불도신(佛道神)은 내가 말하기 좋다. 나는 도불신(道佛神)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것은 말하기가 불편하다. 신불도(神佛道)도 그다지 말하기 쉽지 않다. 眞(쩐)・善(싼)・忍(런), 얼마나 쉬운가! 바꿔서 말해도 되지만 말이 꼬인다. 내가 어떻게 말하면 여러분도 따라 하면 된다.

제자: 저는 성실하고, 신중하며, 또한 마음이 급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마음 상태가 이미 수련 중의 장애로 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부: 커다란 장애가 되고 있다. 당신이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이것은 매우 좋다.

제자: 이것은 후천적 관념과 업력이 초래한 것입니까? 아니면 선천적인 특수성에 의해 조성된 것입니까?

사부: 관념이다. 바로 이런 유형의 관념으로서 장기간에 양성된 것인데 일에 부딪히기만 하면 당신으로 하여금 이런 관념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그것의 성질은 바로 이른바 조심스럽고, 진지하며, 조급해하는 것인데 습관적으로 양성된 것으로서 모두 제거해버릴 수 있다.

제자: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렇게 고생스러운 환경에서도 여전히 수련하려고 하는 것은 정말로 대단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도리어 세간(世間)이 너무나 고생스럽고 무료하다고 여겨 꼭 수련하려고 하는데, 제가 너무나 고생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까?

사부: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한 것은 나와 뭇 신들의 사람에 대한 견해이며, 당신의 감수는 세인(世人)의 정상적 감수에 불과하다. 인류사회는 확실히 매우 고생스럽다. 다른 공간의 생명은 모두 날 수 있고, 뜰 수 있으며, 커졌다 작아졌다 할 수 있는데, 일체가 모두 매우 자유롭다. 유독 인류와 표면공간만이 자유롭지 않다. 당신이 태어날 때부터 당신은 이 공간의 모든 것의 속박을 받게 되며 당신은 길을 걸어도 지치고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며 마시지 않으면 갈증이 날 것이고 적게 입으면 추울 것 등등인데, 이것은 이 공간에 들어와서 자연적으로 초래하게 되는 고생이다. 물론 또 사람과 사람 사이의 心性(씬씽) 마찰, 업력의 작용으로 끊임없이 무지(無知) 속에서 업(業)을 짓는데, 또 어떤 사람은 느끼지 못하는 고생이 있고, 똑똑히 말하지 못하는 고생이 있다. 그래서 인류는 바로 고생이다.

제자: 한 수련생이 묻기를 그가 금속과 접촉할 때면 손에서 전기가 방출되는데 이미 1년 남짓 지속하였다고 합니다. 사부님께 여쭙는데, 여전히 동일한 층차 중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까?

사부: 아니다. 사람을 놓고 말하면, 사람이 수련 중에 나타나는 일체 에너지, 즉 당신의 공(功)과 당신 신체의 개변은 대부분 전기를 띠고 있다. 사람이 가장 민감한 것은 바로 전기의 성분인데 전기는 사실상 일종 에너지의 표현이다. 다른 한 면에서 말하자면 만약 누가 수련 중의 어떤 면에서 정진함이 부족했다거나 어떤 면에서 약간 미흡했다면 수련생을 점화(點化)해 주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상황은 수련 중에서 층차를 제고할 때 인체 표면에서도 돌파가 있는데, 이에 따라 방전(放電)하는 공능(功能)의 진행 속도에 차이가 있어 나타날 수도 있다. 이건 모두 작은 일로 긴요하지 않으며 모두 잘 조절될 것이다.

제자: 시드니에 대법을 공격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그에게 법적 소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속인의 수단으로써 속인과 다투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는데 이 견해가 맞습니까?

사부: 우선 수련생이 대법을 수호하는 마음이 틀리지 않는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본다. 어떻게 법을 파괴했는지를 보아야 한다. 만약 그가 대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면 법을 수호하는 수련생의 입장에서 법적 수단을 통해 해결하는 것도 잘못이 없다. 물론 우리는 될 수 있으면 이런 방법을 쓰지 말아야 하지만, 법적 수단을 통해 해결한다고 해서 꼭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을 제도하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출로를 열어놓아 사람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가 무의식중에 법을 파괴한 적이 있었다 해도 여전히 그에게 인식과정을 주어야 한다. 그를 찾아가 말해보고 만약 그가 여전히 계속해서 고집한다면 우리가 한번 법적 수단을 채용해보는 것도 안될 것 없다. 왜냐하면, 호주대법학회는 등록된 합법적인 단체이기 때문인데, 법적으로 합법적이므로 사람들이 마음대로 공격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중 많은 이런 일이 개인수련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서 자신을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는바 자신의 집착심이 조성한 것이 아닌지, 제거하지 못한 집착의 요소가 작용을 일으킨 것이 아닌지를 보아야 한다.

제자: 저의 문제는 수련 중의 상태로서 수천수만 가지도 넘는데, 우리는 자신이 수련 중의 상태를 정확하게 대하고 있는지를 어떻게 가늠해야 합니까?

사부: 개인 수련 중에서 나타나는 일체 감수와 상태를 모두 수련 중의 정상상태로 여겨야 한다. 사람마다 수련 중에서 매 한 고비를 다 잘 넘으려 하고 또 자신이 도대체 잘 넘겼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사실 만약 당신이 이익 앞에서 태연하고 끄떡없다면 당신은 바로 넘어간 것이다. 당신이 갈등 앞에서 자신의 원인을 찾을 수 있고 자신을 먼저 바르게 한다면 당신은 바로 넘긴 것이다. 각종 고험(考驗) 속에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으면 당신은 바로 넘긴 것이다. 물론 넘긴 정도는 같지 않다. 어떤 수련생 그는 전부 넘길 수 있으며 어떤 수련생은 겉으로만 넘기고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내려놓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보기에는 모두 괜찮지만, 마음속에서 여전히 좀 걸린다면 그것은 그가 아직 보류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이것은 판단하기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여러분이 고비마다 모두 잘 넘겨야 하는데, 넘기지 못했다면 당신은 곧 수련표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인가? 그럼 당신은 안된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수련(修煉)은 바로 사람의 이 마음을 수련하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분명하게 말해도 이익 앞에서, 원망 앞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 속에서 당신의 마음은 모두 움직이게 될 것이다. 진정으로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면 내가 말하건대 그것은 정말로 대단하다! 매번 자신이 고비를 잘 넘기지 못했을 때 당신들은 곧 생각할 것인데, ‘내가 이 고비를 잘 넘기지 못해서 안 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 어떤 사람은 인식이 좀 높고, 어떤 사람은 인식한 것이 좀 낮고, 어떤 사람은 이 고비를 잘 넘겼지만, 어떤 사람은 좀 부족하며, 어떤 사람은 전혀 넘지 못했다. 그러나 당신들은 모두 후회할 줄 알며 자신의 무기력을 한스러워한다. 그러면 곧 결심을 내리고 다음번에는 고비를 잘 넘겨 이 부족함을 메우려 하고, 다시 고험(考驗)이 나타나면 그것을 잘 넘기려고 다짐하는데, 사실 이것이 바로 수련이다. 고비마다 모두 넘어갈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수련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그것은 바로 나 이 사부가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으로서 당신에게 설치한 난(難)이 너무 작아서 당신의 心性(씬씽)이 그 속에서 제고를 얻지 못한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제자: 일본제자들이 사부님께 문안드립니다!

사부: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박수)

제자: 저는 수련한 지가 3년이 넘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작년 3월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녀도 3년을 수련했습니다. 저는 자신이 부족함이 많아 어머니의 난(難)을 크게 한 것에 대해 늘 후회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생사의 고비를 넘길 때, 저는 당시에 대법의 엄숙함을 똑똑히 인식하지 못해서 법에서 진정으로 어머니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을 자책하고 있습니다.

사부: 이것은 그 무슨 자책할 것이 없다. 자책도 많으면 역시 집착이다. 당신들 각자는 모두 수련 중에 있어 어떤 일을 잘못할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절대적인 작용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더욱이 다른 사람도 역시 수련인이다. 수련은 각자 자신의 일로서, 만약 그녀가 교란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파악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곧바로 수련이다! 다른 사람이 잘하지 못했고 그녀에게 준 도움이 너무 작다고 하는데, 만약 수련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존한다면, 그것은 그 자신이 수련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에 대해 그 무슨 자책할 것이 없다. 부족함이 있다면 이러한 교훈을 받아들이고 자신으로 하여금 어떻게 더욱 잘하도록 해야 한다. 몇 개 방면에서 본다면, 아마도 당신이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마 대법을 배운 매 사람은 모두 배운 것이 헛되지 않을 것이며, 아마 장래에 당신의 원만이 그를 제도되게 할 수도 있다.

제자: 우리에게 물질의 구조를 말씀해 줄 수 있습니까?

사부: 이 문제는 대단히 크다! 어느 한 층 물질의 구조인가? 어떤 물질의 구조인가? 그것은 매우 복잡하다. 분자의 표면 배열순서에 대해 현재 과학은 이미 인식하였다. 물질 구조 전반, 그것을 끝까지 다 말하지 못하며 내가 며칠을 말한다 해도 다 못한다. 내가 말하는 우주의 개념은 여전히 최대한도로 사람의 인식, 사람의 사유, 사람의 어휘를 이용하여 당신들에게 말해 준 것으로서 이것은 매우 한계가 있으며, 또한 개괄적이다. 바로 이렇다 하더라도 나는 개괄적으로 우주의 물질 존재방식을 말했다. 거기다 사람의 언어 또한 극히 부족하고 한계가 있는데, 인류에게는 그것을 형용할 수 있는 그러한 용어가 없다.

제자: 우리 이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물 발생의 시간순서가 시간 개념이 없는 다른 공간에서는 어떻게 체현됩니까? 연대에 따라서 직접 나타내는 겁니까?

사부: 전에 한 젊은이가 나에게 “1 더하기 1은 2와 같은 이것이 진리인가”를 물었다. 나는 속인 중에서는 진리이지만 이 공간을 벗어나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며 부동한 시공에서 그것은 진리가 아니라고 말했다. 바로 부동한 시공 상태에서 당신이 인간의 개념으로 그것을 가늠해선 안 된다. 그것도 그것의 시간으로 계산하는 방식이 있으며 생존과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은 완전히 같지 않으며 좋고 나쁨, 정(正)과 반(反) 및 사람의 인식은 모두 같지 않다.

제자: 사람마다 자신이 갚아야 할 업이 있고 자신의 업은 자신이 감당해야 하며 다른 사람은 마음대로 교란할 수 없는데, 만약 어떤 사람이 생명 위험이 있을 때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사부: 이 문제를 나는 여러 번 말했다. 비록 수련인은 속인의 일을 간섭하지 않으나 만약 당신이 한 사람이 살인하고 있고 불을 지르고 있는 것을 보고도 당신이 상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로 心性(씬씽) 문제다. 내가 말한 무위(無爲)는 당신들이 집착심을 갖고 기어코 어떤 일을 찾아서 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제자: 홍콩 수련생들이 선생님에게 문안드립니다!

사부: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박수)  

제자: 『전법륜』 책을 볼 때 다른 잡념이 머릿속으로 파고드는데, 이런 문제를 어떻게 파악하고 다루어야 합니까?

사부: 이것은 모두 매우 자연스러우며 사람마다 모두 부딪힐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반드시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 이것은 후천적으로 형성된 사상관념과 당신 사상 속에서 생성된 업력이 조성한 것으로서 그것은 당신이 수련하여 법을 얻는 것을 교란한다. 그것을 배제하고 확고하게 주의력을 집중해서 책을 보고 법을 배우는, 이렇게 하는 자체가 바로 그것을 제거해버리는 것이다. 법이기 때문에 당신이 법 공부를 하면 바로 그것을 제거하는 것으로서 절대로 그것의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한다. 만약 눈은 비록 책을 보고 있지만, 마음이 다른 데 가 있고 매 글자를 뭐라고 읽었는지도 모른다면 그것은 안 되며 헛되게 보는 것과 같다.

제자: 매번 心性(씬씽) 고비를 넘을 때, 그 당시에는 고비를 넘겼다고 느꼈으나 후에 다시 돌아보면 잘 넘기지 못했거나 못 넘어갔음을 발견하곤 하는데, 이것은 층차가 제고되었기 때문에 조성된 감각이 아닌지요?

사부: 그렇다. 만약 당신이 수련을 통해 층차를 제고한 다음 돌아보면 이런 감각이 있다. 사실은 표준이 높아졌고 요구도 높아진 것이다.

우리 10분 휴식합시다. 괜찮습니까? (수련생이 사부님께 생화(鮮花)를 드리면서 사부님께 가장 숭고한 경의를 드렸다!) (박수)

사부: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박수) 이 꽃들이 매우 비싼 것 같다! 여러분은 이런 데 신경 쓰지 말고 이런 돈을 쓰지 말라. 아무튼, 나는 당신들에게 감사드린다. (박수)

제자: 일부 수련생들은 과거에 다른 공법을 배웠는데, 가부좌를 2시간에서 3시간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가부좌할 수 없는 수련생보다는 낫다고 여기며 법 공부와 心性(씬씽) 수련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명시해 주십시오.

사부: 선천적인 신체조건이 어떻든지 진정으로 대법 속으로 들어오게 되면 달라진다. 일부 수련생은 과거에 체육에 종사했고, 일부 수련생은 무용에 종사했기에 그 다리는 아주 유연하여 쉽게 틀어 올릴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연공이라고 할 수 있는가? 아니다. 만약 그가 진정으로 수련을 하려 하면 그는 다르다는 것을 알 것이다. 무용하던 다리지만 다리를 틀어 올리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나며 게다가 매우 아프다. 왜냐하면, 수련인의 가부좌는 절대로 기제가 없는 단순한 가부좌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수련으로서, 당신의 모든 것은 당신의 제고를 위해 책임져야 하는바 가부좌를 포함해서다. 가부좌는 진정으로 당신을 소업하고,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작용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가부좌하는 시간이 아무리 긴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만약 소업을 할 수 없고, 수련 중에서 작용을 일으킬 수 없다면, 단지 다리를 틀어 올리기 위한 가부좌인데, 다리를 틀어 올린 시간이 아무리 긴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내가 여기에서 누구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고, 법리를 말하고 있다. 나는 여태껏 누가 가부좌를 한 시간이 길다고 해서 그의 층차가 높고 그가 수련을 어떠어떠하게 잘했다고 말한 적이 없다. 만약 당신이 과거에 다른 공법을 배웠거나 무용, 체육 등을 해서, 원래부터 다리를 틀어도 아프지 않고 당신의 가부좌가 원래와 똑같고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대법은 스쳐 지나가서는 안 된다! 만약 진정으로 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이 법의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 다리를 틀어 올리지 못해도 당신은 조급해하지 말라. 집착이 형성되면 역시 장애가 된다. 조급해하지 말고 우선 반가부좌로 연마하다 보면 결국 틀어올릴 수 있다. 여태껏 다리를 틀어본 적이 없는 80여 세 되는 사람도 모두 틀어올렸는데 왜 자신이라고 틀어올리지 못하겠는가? 모두 틀어올릴 수 있다.

제자: 제자는 몇 년 동안 법을 배우면서 일체 오묘한 비밀을 꿰뚫어 보는 것과 거리가 너무나 멀리 떨어졌다고 느낍니다.

사부: 사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당신은 표면에서 아직 잘 수련되지 않은 사람의 일면으로 신을 알려 한다. 사상 중에서 집착하는 이런 것 또한 후천적인 관념과 사상업력인데, 어찌 이런 것으로 하여금 신을 알게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당신은 또 진정한 자신의 정념(正念)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분별하지 못한다. 수련과정에서 당신이 『전법륜』을 보다 갑자기 어떤 법리를 알았다면 당신은 이미 그 한 층에 있게 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한 층의 법리를 절대로 당신에게 명시해 줄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모든 것을 단번에 다 알 수 없는가? 왜냐하면, 당신의 잘 수련되지 않은 이 일면은 절대로 신불(神佛)을 알 수 없고, 또 수련이 잘 된 그 한 면은 격리되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다만 법 공부를 해가기만 하면 점차 더욱 높은 층차의 이치를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이미 당신에게 준 명시다. 그러나 수련이 잘 된 그 면에서는 수련자가 순식간에 그 표준에 도달할 수 있으며, 수련이 잘 된 그 부분은 바로 그가 위치하고 있는 그 경지 중의 우주의 일체 법리(法理)를 바로 알게 된다. 어떤 수련생들은 나를 만나기만 하면 아주 많은 묻고자 했던 문제를 제출하지 못하는데 마치 할 말이 없는 듯하다. 사실 당신들은 이미 무엇이든 모두 명백해졌으며 수련이 잘 된 그 한 면은 나를 만나기만 하면 바로 정신이 들며 표면에 아직 수련이 잘 안 된 인체 표피마저도 역시 명백해진다. 그러나 아직 수련이 잘 안 된 인간의 이 일면은 모두 영원히 제기할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나를 떠나기만 하면 인간표면은 갑자기 문제가 생각나서, 아이고, 내가 문제가 있었는데 왜 사부님께 여쭤보지 않았을까? 아주 많은 사람이 이런 상태다.

제자: 줄곧 수련과정과 불법수련(佛法修煉)의 용맹정진에 영향을 주는 요소를 주의 깊게 연구하여 자신으로 하여금 더욱 잘 수련할 수 있도록 촉진하려고 합니다.

사부: 그 무엇을 연구할 것이 없는데 바로 집착심 문제다. 나는 법리를 당신들에게 더없이 투철히 모두 말해주었다. 과거에 이런 것은 모두 전적으로 사람 자신이 깨달아야 하는 것이었는데 나는 그것을 모두 말했다. 절대로 대법을 연구하려는 마음으로 법을 배우지 말라. 문제에 부딪히면 당신은 당신의 마음에서 문제를 찾아야 한다. 틀림없이 거기에서 나온다. 집착을 제거하면 틀림없이 그 고비를 넘어갈 수 있으며 일을 잘할 수 있고 또한 제고해 올라올 수 있다.

제자: 항상 법에 대해 자신과 이해가 비교적 비슷하고, 일부 문제에 대한 깨달음이 같은 사람과 함께 교류하고 토론하는데, 이 역시 집착이 아닙니까?

사부: 그것은 당신들이 자신의 마음에 맞는 수련생과 접근하기 좋아하는 생각 중에, 다른 인간적인 마음이 작용하고 있지 않은지를 보아야 한다. 만약 없으면 그것은 괜찮으나, 옳지 않은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정진 중의 장애일 수 있다.

제자: 법에 대한 이해가 다르거나 깨달음이 다른 어떤 한 가지 일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하면 자신의 고유 관념을 배제하고 더욱 잘 제고해 올라갈 수 있습니까?

사부: 수련하는 사람으로 당신은 다른 사람과 한 층차에서 동시에 제고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당신은 다른 수련생과 전혀 같지 않은 견해가 존재할 것이며, 법리에 대한 인식도 다를 것이다. 당신들이 매 한 미소층차(微小層次)에서 법에 대한 이해가 다른 것이 바로 차이이며, 수련생마다 모두 진보하고 모두 정진하고 있으나 법에 대한 이해는 전혀 다를 수 있다. 당신들이 그 어떤 일을 함에 대법 일을 포함하여 모두 되도록 대법을 중히 여기고, 대법을 증실(證實)하고 세인을 구도하는 것을 중히 여기며, 대법을 수호하는 것을 모든 생각의 가장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 만약 속인에게 홍법(洪法)을 할 때 행동에서 속인으로 하여금 이해할 수 있게 하려면 법의 가장 표면적인 이치에 따라 속인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자신이 더욱 높은 법리를 인식했고 아무리 높이 수련했다 할지라도 사실 당신은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다만 마음으로 깨달을 뿐, 초상적인 이치로 속인에게 홍법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속인과 혼동해서도 안 된다.

제자: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는데, 모든 공간의 생명체는 모두 우리 속인의 이런 신체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사부: 그렇다. 모두 인간의 이 한 층 분자로 구성된 신체가 없다. 그러나 삼계 밖의 그다지 높지 못한 층차 중에는 특수한 것이 있는데 이런 상황은 아주 드물다.

제자: 그래서 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며 또한 생로병사(生老病死) 문제가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이런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른 공간의 사람은 날 수 있고 가볍고 무거움이 없으며 아주 미묘하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죽은 사람은 인간의 육신인 이 껍질을 벗었어도 그들은 여전히 고통스러워합니까?

사부: 그것은 사람이 죽었어도 삼계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삼계 이내의 사람은 모두 인간이라고 부르며 모두 고생스럽다. 다만 삼계의 높은 곳으로 갈수록 그는 그보다 낮은 층차에 비하여 좀 좋을 따름이다. 세간의 사람은 그래도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사실 인간보다 낮은 것도 있고, 또 지옥도 있으며, 지옥보다도 더 낮은 곳도 아주 많다. 인간은 신과 비교하면 몹시 고통스러운 것이다. 생로병사(生老病死) 문제는 삼계 내에 모두 존재하는 것으로 인간만이 아니다. 보통사람의 主元神(주왠선)은 인간의 신체를 떠날 때 삼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는 여전히 삼계 내에 있다가 죽은 후에 위로 올라가서 전생(轉生)한다. 삼계 내의 인간보다 높은 부동(不同)한 층차 중에 있다면, 고생이 인간보다 훨씬 적다. 만약 그가 또 인간보다도 못해 인간 아래의 층차 중에 있다면, 그의 고통은 사람보다도 더 크다. 삼계 내의 각층 사람을 통칭하여 인간이라고 한다. 그러나 천상(天上)의 사람은 우리 지구상의 사람을 인간이라고 부르며, 천상(天上)의 사람을 천인(天人)이라고 부른다.

제자: 난징(南京)의 제자들이 사부님께 문안드립니다!

사부: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박수)

제자: 선쩐(深圳)의 전체 수련생들이 사부님께 문안드립니다!

사부: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박수)

제자: 저는 1년 전에 대법을 만났는데 아주 좋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저는 종교를 신앙하고 있는데 그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대법의 요구를 따르면 반드시 불이법문(不二法門)이어야 하고 저는 대법(大法)과 종교를 선택하기가 몹시 어려운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고 싶은데요?

사부: 이것은 그래도 자신에게 묻는 게 좋겠다. 무엇을 선택하는가 하는 것은 자신이 결정한다. 그러나 법리(法理)상에서 나는 이미 분명하게 말하였는바 길은 비록 당신 자신이 걷지만 나 또한 수련계의 실제 상황을 여러분에게 알려주었다. 내가 그 당시 중국에서 공(功)을 전수할 때 내가 이쪽에서 강의를 시작하기만 하면 부근의 멀지 않은 곳에서 꼭 가짜 기공도 학습반을 열기 시작하는데, 사람 자신으로 하여금 바른 것 또는 사악한 것 중 원하는 것을 선택하게 한다. 우리 오늘 여기에서 법회를 열고 있는데 어떤 종교조직이 또 저쪽에서 무슨 회의를 열고 있지 않은가. 아무튼, 사악한 구세력이 상생상극(相生相剋)의 이치를 이용하여 세인(世人)들이 제도되는 것을 교란하고 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법을 얻는 것이 쉬운 것 같지만, 사실은 결코 쉽지 않다. 현재 일체 정교(正敎)는 모두 책임지는 신이 없으며 종교 중의 사람도 모두 돈과 재물, 지위를 위해 아귀다툼하고 있다. 사람이 무엇 때문에 종교를 믿는가 하는 것은 큰 문제이며 이런 이치를 나는 이미 아주 분명하게 말했는바 믿고 안 믿고, 무엇을 선택하는가 하는 그것은 당신 자신의 일이며 당신이 수련하고 싶은 것을 수련하고 당신이 수련하고 싶지 않으면 당신은 수련하지 않아도 된다. 나 여기서는 오로지 사람의 마음만 보며 그 어떠한 형식상의 것도 없다.

제자: 대법제자가 원만을 이룰 때의 신체는 두 가지 상황이 있는데 하나는 신체가 고에너지 물질로 대체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원영(元嬰)이 신체를 대체하는 것인데 이렇게 이해하면 맞습니까?

사부: 나는 오늘날 당신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려고 한다. 그러나 매 사람의 상황이 다르고 어떤 이는 그에게 육신(肉身)을 주어도 그는 가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그의 세계로 돌아갈 때 만약 육신을 가지고 돌아간다면 그곳의 신들이 이상하게 여기기에 그는 가지지 않을 것이다! 어떤 수련생들은 나는 모두 다 갖고 싶다고 할 것인데 사실 당신은 현재 인간의 사상으로 이런 것을 생각하고 있다. 당신이 명백하게 알 때, 개오(開悟)할 때면 전혀 이렇게 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에 당신은 이미 인간의 사상이 없어졌고 완전히 그 경지 중에 입각하여 문제를 사고하기 때문이다. 대법 수련은 사실 무엇이든 다 수련해낼 수 있는 것으로 수련생이 무엇이 필요하면 바로 그것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우주의 근본법이기 때문이다.

제자: 제자의 호법신(護法神)은 모두 사부님께서 파견하신 것입니까?

사부: 정법수련은 사부와 뭇 신, 천병(天兵)들이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불순한 요소를 지닐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종교 중의 용어와 개념을 사용하지 말라. 대법을 수련하는 당신들뿐만 아니라 더럽게 입고 지저분한 사람이 낡은 솜이불을 갖고 어디를 가면 거기에서 잠을 자는데 당신이 보기에 그가 거지 같지만 그의 주위에는 천룡팔부(天龍八部)가 호법(護法)을 하고 있는데, 인간은 그가 누구인지 아는가? 인간은 역시 모르는데, 인간은 바로 인간의 눈으로 문제를 보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일부 수련생들은 수련을 하자 담력이 커지는가, 과거에는 어두운 밤길을 감히 걷지도 못했지만, 대법을 수련한 이후에는 대담하게 걷는다. 이는 모두 원인이 있는 것이다.

제자: 쟝시(江西) 징더쩐(景德鎭)의 전체 수련생들이 사부님께 문안드립니다!

사부: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박수)

제자: 속인 중에서 장애인의 대우를 받고 있는데, 법을 얻은 후 이런 대우를 더는 받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나는 이런 대우를 받으면 업을 갚지 못할까 봐 걱정입니다.

사부: 이 문제는 두 가지 면에서 봐야 한다. 당신이 장애인이라 일할 수 없어 생활수입원이 없는데 나라에 이런 정책이 있다면 내가 보기에 괜찮다. 왜냐하면,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기를, 최대한도로 속인에 부합되게 수련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형식적인 것을 보지 않으며 오로지 마음만 본다. 현재 인류사회는 바로 이러하고 법률도 이렇게 규정하는바 사회가 당신에게 주는 것을 허락하였으니 그럼 당신들도 이 점에서 최대한도로 그것에 부합하도록 하라. 만약 이 장애가 대법수련을 통해 이미 나았는데도 당신이 여전히 이런 대우를 받으면서 정부에 알려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로 心性(씬씽) 문제인바 바로 이렇게 본다. 또 다른 명목의 보조가 있는데 당신들이 다만 속인 사회의 조건에 부합되게 받으면 문제가 없다.

제자: 연공(煉功) 중에 사상업(思想業)이나 다른 정보의 교란이 나타났을 때, 제가 아직 배제하기도 전에 그것이 이미 사라져버렸습니다.

사부: 너무나 빨라서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하여 수련을 잘못한 것이 아니다.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도 그것이 반응을 일으키도록 방임해 두는 것은 수련을 잘못한 것이고, 만약 행위상에서 그것이 지배하도록 방임한다면 그것은 바로 속인이다. 사실 당신이 그것을 의식했을 때, 당신이 그것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의식할 수 있고 이런 사상이 틀렸다는 것을 인식했으면 사실 당신은 바로 그것을 배제한 것이며, 평소에 법 공부하여 닦은 기초가 좀 더 탄탄하다면 더 좋아질 것이다. 속인은 수련하지 않기에 전혀 이런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데 그들은 모든 사상이 모두 그들 자신이라고 여긴다. 최후에 속인 중에서 형성된 관념이 사람을 지배하여 모든 것을 하고 있지만, 사람은 오히려 그들 자신이 한 것이라고 여긴다. 인간 자신은 그때 이미 매몰되고 휩싸여 아무런 작용도 일으키지 못하므로 전혀 인간 자신이 아니다. 현재 사회의 사람은 모두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그가 대단하다고 칭찬하며 이 사람은 쉽게 손해 보지 않고, 쉽게 속아 넘어가지 않으며, 재주가 있고, 노련하다고 여긴다. 나보고 말하라면 그는 더없이 어리석다. 그는 이 한평생 그 자신이 살지 않고 다른 것에게 자신을 맡기고 대신해서 살게 했는데, 그의 신체는 다른 것에게 통제당하고 있다.

제자: 저는 비록 자아를 똑똑히 분별하는 방법을 취했으나 여전히 나쁜 것을 완전히 없애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부: 당신의 말대로 당신이 그것을 갖지 않겠다고 하여 그것이 바로 죽어버린다면 이는 너무나도 쉽다. 당신이 그것을 똑똑히 분별할 수 있는 동시에 당신 자신이 강건해지고, 깨닫게 되어 그것의 포위망을 뚫고 나오면 갈수록 강대해지지만, 그것은 갈수록 약해지고 소실되어 최후에는 소멸하여 버리는데, 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제자: 공(功)에 좋지 않은 것을 가져다줄 수 있지 않습니까?

사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당신의 정념(正念)이 작용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주의하지 않을 때 틈을 내줄 수 있지만, 공은 그것의 교란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부가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법 공부를 많이 하고 정념(正念)을 유지하며 문제에 부딪히면 자신에게서 찾고 자신의 문제를 찾을 수 있다면 나쁜 것은 벌써 놀라기가 이만저만이 아닌데, 그것은 그 자신의 노출이 곧 자신으로 하여금 소멸하고 끝장나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제자: 만약 살아 있는 동안 원만에 이르도록 수련하지 못하였다면 대업왕생(帶業往生)할 수 있습니까? 法輪世界(파룬쓰제)에서 계속 수련하는 것이 극락세계와 같습니까?

사부: 우주가 정법(正法)하고 천체(天體)가 재조합되고 있으며 정법 후의 일체는 모두 가장 좋은 것인데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은 그 표준보다 높은 층차의 생명으로 될 수 없으며 어느 표준에 도달했으면 바로 거기에 있게 된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과거의 극락세계에는 이런 상황이 있었으나 정법 후에는 말하기 어렵다. 대업왕생(帶業往生)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인정화한 인간미가 풍기는 그런 상황이 아니다. 사람들이 그것에 감정적인 색채를 부어 넣었다. 무엇을 대업왕생(帶業往生)이라고 하는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정말 대업왕생(帶業往生)할 수 있다 함은 사실 그가 확고함과 신념(信念)에서 이미 표준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사람이 가장 넘기 어려운 한 고비, 수련 중에서 반드시 넘어야 할 그 한 고비가 바로 생사(生死)를 내려놓는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모두 반드시 생사 앞에서 당신을 고험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또한 절대적으로 배제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마다 그 자신이 직면한 최대 난관과 최대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사실 모두 사람이 이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지 없는지를 고험하는 것이다. 생사를 내려놓으면 바로 신이고 생사를 내려놓지 못하면 바로 인간이다. 물론 당신이 생사를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은 정말로 죽으라는 것이 아니다. 수련은 인간의 마음을 제거하는 것이다. 사람이 죽을 때 사상 중에 완전히 사망의 그런 두려운 감각이 없는 이것을 속인이 해낼 수 있겠는가? 곧 죽게 생겼는데 그 심정은 어떤 심정이겠는가. 그 어떠한 수련 기초와 사상 기초가 없다면 그가 해낼 수 있겠는가? 사람이 조금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 직전에도 입으로 여전히 부처를 염하며 두려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염불을 하면서 스스로 일종의 희락(喜樂) 사상을 떠올리는데, 부처에 대한 이런 희락(喜樂)을 지니고 간 것이다. 당신이 말해 보라. 이 사람이 지옥에 떨어질 수 있겠는가? 그는 확고한 정념(正念)으로 생사를 내려놓은 것으로서 이것은 이미 인간의 행위가 아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런데 그의 입에서는 부처님을 염하고 있는데 그 부처가 이런 사람을 보고 그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그는 아직 업력이 있다. 그가 수련에 정진하지 못해서 아직도 제거하지 못한 마음이 있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바로 그를 극락세계에서 아주 가까운 한 곳에 데려다 놓고 거기에서 더 수련하도록 한다. 몇만 년, 몇십만 년을 수련하여 표준에 도달하면 다시 극락세계로 간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긴 시간을 수련해야 하는가? 왜냐하면, 그곳은 고생스럽지 않으며 고생스럽지 않으면 수련이 느리기 때문이다. 인간 여기에서는 왜 수련이 빠른가? 어찌하여 일생 몇십 년에 바로 수련 성취할 수 있는가? 그러나 나의 대법제자는 더욱 빠른바, 인간 여기가 고생스럽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모두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 서로 모두 이러하며, 고생스럽지 않은 것과의 비교가 없어 사람들은 고생을 느끼지 못한다. 사실 신이 보기에는 사람은 몹시 고생스러운 것이다. 대법을 수련하면 수련이 절대로 헛되지 않을 것이다. 개인수련 단계에서 정진하지 못하거나 정진함이 부족하여 오성이 좀 차하나, 수명이 다 되어 그래도 일부를 얻었기에 자연히 배치가 있을 것이다. 내세에 이어서 수련하려는 소원이 있다면 수련한 것은 모두 헛되게 잃지 않을 것이고, 수련한 것이 모두 헛되지 않게 얻은 것을 지니고 전생(轉生)할 것이다. 전생한 후 이어서 수련하는 이런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보아하니 확실히 수련할 수 없기에 다음 생에 그에게 복(福報)으로 전화하여 배치해 준다. 그 역시 고생을 겪었고 대가를 치렀지만, 얻은 것으로는 정과(正果)를 이룰 수 없어, 그것을 복으로 전화하여 내세에 큰 벼슬을 하거나 큰 부자가 되게 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우리 수련인이 추구하는 것이 아니며 그가 계속하여 수련할 수 없다면 결과는 바로 이러하다.

또 한 가지가 있다. 한 수련생의 아들이 수련하여 원만을 이루었다. 그도 수련했지만, 원만을 이루지 못했고, 그의 아들은 수련하여 원만을 이루었다. 그럼 내가 생각하기에 아들이 부모를 그 아들의 세계로 데려다 중생이 되게 할 수도 있는데, 과위(果位)는 없다. 그가 중생에 속한다면 그것은 백성인데, 부처의 세계에도 다른 중생이 있다. 그러나 그는 지상의 이런 더러운 사람이 아니라 그 경지의 표준에 도달한 천인(天人)이다.

제자: 창춘(長春)제자들이 사부님께 문안드립니다!

사부: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박수)

제자: ‘자신’에 대한 집착이 가장 제거하기 어려운 마음이 아닙니까?

사부: 그것은 물론이다. 매 사람은 세상에서 살면서 모두 자신을 위하고 있으며, 거기에서 수많은 사심(私心)이 생겨난다. 사(私)가 있으면 쉽게 정(情)에 이끌려 수련 중에 아깝고 버리기 어려운 것이 각 방면에서 모두 나타나는데, 수련에서 집착을 내려놓기 어렵다. 때로는 대법을 위해 일을 할 때에도 역시 집착심에 의해 자신의 역할을 수호하려하고 자신의 명예를 수호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수호한다. 속인이 표현하는 것은 더욱 복잡하다. 자신이 벼슬하기를 좋아하고, 선조와 가문을 빛내기를 좋아하며, 다른 사람이 자신을 좋다고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돈이 있는 것을 좋아하며, 다른 사람보다 한층 뛰어난 것을 좋아하는 등등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수호하는 것은 바로 정(情)과 사(私)를 위하고 자신을 위하는 표현이므로 제거하기가 가장 어렵다. 자비로 모든 사람을 대해야 하며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모두 자신한테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설령 다른 사람이 우리를 욕하고, 우리를 때렸을지라도 우리는 모두 자신한테서 찾아야 하는데 자신의 어느 면이 잘못돼서 조성된 것이 아닌지를 찾아야 한다. 이런 모순의 근본 원인을 찾는 것이 사(私)를 버리고, 자신의 집착을 제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당신 개인수련 중에서 대하는 모든 사람을 용서하는 데까지 마음을 크게 먹어야 하는바 당신의 적을 용서하는 것을 포함해서다. 왜냐하면, 당신이 말하는 적은 인간이 구분한 적이며, 사람이 이익을 위해서 구분한 것이지 신의 행위가 아니다. 그러므로 요구도 높다. 신이 어찌 인간을 적으로 여기겠는가? 그러면 우리는 수련과정 중에서 어떠한 일에 부딪히든 먼저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 내가 다른 사람의 것을 얻었을 때에도 역시 다른 사람을 생각해봐야 한다. 그가 이것을 잃으면 그에게 어떤 손해가 있지 않을지, 그의 마음이 괴롭지 않을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어떤 일에서든지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 하며 다른 사람을 우선시하고 나중에 자신을 생각해야 한다. 나는 바로 당신들이 남을 먼저 생각하고 나중에 자신을 생각(先他後我)하는 정법정각으로 수련하여 원만을 이루게 하려 한다. 이것이 바로 사(私)를 제거하고 있는 것이며, 바로 ‘자신’을 제거할 수 있다. 당신들이 수련이 잘된 그 부분은 틀림없이 방금 내가 말한 것과 같고 모두 이러하다. 그러므로 당신들 이쪽에서 볼 때 당신들이 문제에 부딪혔을 때 자신의 원인을 찾을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많이 생각하고, 자신을 닦고, 안에서 찾으며, 다른 사람의 좋지 못한 것을 적게 보고, 하는 일마다 내가 말한 대로 따라 할 수 있다면 사실 당신들은 바로 정진 중에 있는 것이다.

제자: 최근 몇 년 동안 저는 줄곧 불교(佛敎) 사찰의 일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법(法)을 배운 후 충돌이 있다고 느끼는데,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마땅히 집착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나의 책임을 버리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십시오.

사부: 사실 아주 간단하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내려놓지 못하는가? 당신은 당신이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책임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속인의 표준이다. 그것이 부처수련과 관계가 있는가? 당신은 그 속인의 정(情)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다. 이 책임은 부처가 보고 정한 것인가? 그렇다면 당신은 누구를 위해서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인가? 종교 자체를 위해서 책임지고 있는가? 당신의 책임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원만을 이루게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책임이 당신 자신으로 하여금 원만을 이루게 할 수 있는가? 원만을 이룰 수 없다면 당신이 그것에 집착해서는 뭘 하는가? 당신은 당신 자신의 진정한 원만을 위해서 책임져야 하지 않는가? 당신은 이른바 당신의 책임을 위해 일생토록 집착하고 대법이 스쳐 지나가게 할 것인지, 아니면 진정으로 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진정한 수련과 진정한 원만을 이루는 데 책임을 질 것인지? 이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잖은가. 유위(有爲)적인 일이라, 그는 절대로 원만을 이룰 수 없다. 당신이 그 사찰에서 수련하면서 당신의 그런 이른바 책임을 지려는 이런 마음을 제거하지 않으면 부처가 보아도 괴로워한다. 당신은 당신이 거기에서 무슨 책임을 졌다고 해서, 부처가 당신을 표준에 도달했다고 인정하리라 생각하지 말라. 부처는 종교를 인정하지 않으며 다만 사람의 마음을 인정할 뿐이다. 종교는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다. 예수가 그 당시 종교를 만들지 않았으며 석가모니도 그 당시 종교를 만들지 않았고 다만 수련하는 사람의 마음을 보았을 뿐이다. 물론 수련인이 함께하는 수련환경이면 더욱 좋다. 그것은 진정으로 수련하여 원만을 이루고 정과(正果)를 얻는 것을 제일 첫 자리에 놓는 것이다. 환경에 집착하며, 교회 자체에 집착하는 그것은 유위(有爲)가 아닌가?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를, 자신이 얼마나 많은 사찰을 지었고 얼마나 많은 불상을 만들었다면서 장래에 마땅히 원만을 이루어야 한다고 한다. 내가 말하지만, 원만을 이룰 수 없다. 속인 중의 많은 사람도 불상을 만드는데 아무것도 아니고 단지 일에 불과하며 그것은 유위(有爲)적인 것이다. 유위법(有爲法)은 환각 속의 물거품과 같다고 했는데 이것은 석가모니 부처가 한 말이다. 당신의 사상이 진정으로 제고되지 않으면, 만약 한 속인의 머리가 사상업(思想業)으로 가득 차 시시각각 반영되어 나오는 것이 온통 나쁜 사상뿐인 그를 부처 거기에 갖다 놓는다면, 마치 한 무더기 쓰레기를 신(神)・불(佛) 앞에다 놓는 것과 같은데, 이것을 허용하겠는가? 그것은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수련 중에서 바로 이런 더러운 것, 좋지 못한 것을 제거해야 하며 순수하고 깨끗한 신체・깨끗한 사상・더욱 높은 경지의 사상에 도달해야 만이 당신은 비로소 그곳에 갈 수 있다. 아직 이런 것을 버리지 못하고 이런 유위(有爲)적인 일을 내려놓지 못하면 그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것이 아닌가?!

제자: 사부님께서는 또 몇 년을 계속 설법하실 것입니까?

사부: 법정인간시기가 끝날 때까지이다.

제자: 책 속의 ‘인간(人)’, ‘인류(人類)’, ‘속인(常人)’의 함의는 다릅니까?

사부: 똑같다. 단지 같지 않은 경우에 다르게 사용했을 뿐인데 함의(含義)는 똑같다. 속인(常人)이 바로 인간이다. 사실 더욱 높은 경지 중의 사람, 천인(天人)을 포함해서 바로 삼계 내의 천인(天人)을 포함한다. 인류(人類)가 바로 인간(人)이고 수련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속인(常人)이다.

제자: 수련과정에서 초상적(超常的)인 이치를 깨달았지만 정확한 것인지 아닌지를 모르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부: 초상적인 이치를 깨달았을 때는 꼭 신성(神聖)하고도 대법법리(大法法理)에 부합된 정념(正念)을 지닌 승화된 감각이 있다. 더욱 높은 층차의 법리는 다만 마음속으로 깨달을 뿐이다. 고인(古人)은 마음속으로 깨닫고 이해하는 것을 말하는데, 자신의 사상 중에서는 명백하지만, 인간의 말로 말해내려면 오히려 몹시 어렵다. 일단 말해냈을 때 아주 평범하고 일반적인 것으로 변하여 속인의 이치와 같은 것을 당신은 발견할 것이다. 인간의 언어를 통해 말하기만 하면 곧 그 느낌이 아니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고층차 중의 이치는 오로지 고층차 중의 사유와 언어로 말해야 하기 때문에 수련생들은 행위상에서 고층 중에서 깨달은, 인간보다 높은 행위를 속인에게 더더욱 표현해 줄 수 없다. 인간은 바로 인간으로, 인간보다 높은 이치와 행위를 이해하지 못한다.

최대한으로 속인 사회의 상태에 부합되게 수련하는 것에 따른다. 당신이 깨달은 더욱 높은 법리 그것은 당신이 수련 중에서 승화하는 것이며 결코 당신이 속인 중에서 그런 상태를 표현하지 않게 한다. 당신이 이쪽에서 법리를 명백히 알았을 때 다른 공간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상당히 큰 것으로, 미시적인 입자로 구성된 신체의 그 부분이 변화하는 그것은 상당히 격렬하며, 게다가 그 한 층 중의 법리 속에서는 순식간에 일체를 명백히 알게 되는 것이다.

제자: 수련 중에서 다른 공간의 물체나 생명을 보았는데 그들의 좋고 나쁨을 어떻게 가늠합니까?

사부: 수련을 갓 시작한 사람은 가늠하기가 몹시 어려운데, 똑똑히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아주 많은 고층 공간의 신이 정법(正法)을 피하기 위해 도망쳐 내려왔으며 또 삼계 내의 각개 공간 중의 아주 많은 신이 그의 경지보다 높은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도 역시 어느 정도 미혹 중에 있다. 그런데 그들의 표현은 사람에 대해 말한다면 또 비교적 선(善)하고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선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그 경지에서는 이미 표준에 부합되지 않는데, 다만 사람들이 보기에 그래도 사람보다는 선(善)할 뿐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소수 수련생으로 하여금 집착에 쉽게 미혹되게 하고 똑똑히 분간하지 못하게 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당신에게 불이법문(不二法門)을 가르쳐 주었는데 누구나 그를 상대하지 말고 무엇을 보아도 모두 마음을 움직이지 말라. 당신이 그와 말을 하지 않아도 되며, 당신은 아예 그를 상대하지 말고, 그를 보지도 말라. 오로지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다. 그의 일체를 회피하고 그가 당신에게 무엇을 알려주어도 당신은 모두 듣지 말라. 어쩌면 그가 당신에게 환심을 사려 할 수도 있다. 당신으로 하여금 그의 말을 듣게 하기 위해서 그는 당신에게 내일 그 복권의 번호를 알려줄 수도 있는데 그가 이렇게 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런 것도 우연한 것이 아니며 이것 역시 당신 수련 중의 마난(魔難)으로서 당신의 사람마음(人心)을 고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런 일들에 반드시 주의해야 하고, 확고히 해야 하는바 그들과 접촉하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 왜냐하면, 이럴 때면 당신들은 분별하기가 몹시 어렵기 때문이다.

제자: 수련인의 아주 어린 자녀가 병원에 갈 필요가 있습니까?

사부: 수련하지 않는 사람이 병을 봐야 하면 병원에 가야한다. 왜냐하면, 속인은 병에 걸리면 의사에게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이다. 당신의 신체가 모두 장차 불체(佛體)로 변화되는데 그것은 의사가 아무리 치료해도 도달하지 못한다. 그러나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의 많은 가정에는 흔히 아이가 있는데 그들은 틀림없이 평범한 아이가 아닐 수 있다. 환생하기 전부터 그는 이 가정 사람들이 장래에 대법을 배울 것을 알고 있으므로 그는 이 집에 가서 환생하겠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틀림없이 배경이 보통이 아닐 수 있다. 무릇 이런 아이들을 말하자면 어른이 연공을 할 때 이미 아이를 대신하여 연마하는데 줄곧 아이가 스스로 연마할 수 있을 때까지이다. 이러한 상황이 아주 많은데 이것은 당신들 어른들이 파악해야 한다. 만약 당신이 이런 상황인지 아닌지를 보아내지 못한다면 당신은 그를 병원에 가도록 해도 무슨 잘못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당신의 마음을 보는데 역시 각종 생각과 각종 마음 상태가 표현될 것이다. 이렇게 말하자. 만약 당신이 확고한 대법수련자라면 사람마다 제 나름대로 운명이 있다는 것을 명백히 알 것인데 문제가 나타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로 하여금 쉽사리 문제가 나타나게 하지 않을 것이다. 흔히 내가 방금 말한 고층차에서 온 이런 어린아이는 법을 얻으러 온 것이며 그는 전혀 업력이 없으며, 그는 전혀 병에 걸리지 않는다. 그가 감당한 일체는 틀림없이 당신들 어른 대신 감당하고 있을 수 있는데, 아주 많은 것이 이런 상황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절대적인 것은 아니므로 구체적인 상황은 당신 자신이 파악하도록 하라.

제자: 싱가포르 수련생들이 사부님께 문안드립니다!

사부: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박수)

제자: 쟝수(江蘇) 제자들이 사부님께 문안드립니다!

사부: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박수)

제자: 쟝수성(江蘇省) 우시(無錫)의 영산대불(靈山大佛)에는 매일 수만 명이 가서 참배하는데 듣기에 대불(大佛)에는 부체(附體)가 있으며 뱃속에는 또 많은 유골함(骨灰盒)이 있다고 합니다. 제자들은 거기에 가서 홍법(洪法)하는 일을 놓고 쟁론이 그치지 않는데 사부님께서 명시해 주십시오.

사부: 홍법은 사람을 향한 것이지 결코 그것을 향한 것이 아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인간들은 유골함(骨灰盒)마저도 부처님의 뱃속에 넣는데 그것은 좋은 일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쁜 일을 하는 것인지? 승려는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가? 유가족이 돈을 썼기 때문에 그 화상은 돈을 위해서 부처마저도 팔아먹는다! 지금은 이 정도로 난잡해진 시기로 사람이 부처님에게 절을 할 때 누구한테 절을 하는 것인가? 그 유골함에 절을 하고 있지 않은가?! 이미 가소로운 정도에까지 이르렀다. 그 사자(死者)는 사람 때문에 죄가 너무나 커졌으며 유가족과 조상까지도 모두 연루된다.

제자: 저는 法輪(파룬)과 일부 광경을 보고 우리 法輪功(파룬궁) 제자들과 교류한 후 그 광경과 法輪(파룬)이 모두 사라졌는데 제가 잘못한 것입니까?

사부: 이것은 두 가지 면에서 보아야 한다. 당신이 만약 환희심을 품고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면 그럼 아마 없어지고 당신으로 하여금 보지 못하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에게 보여준 신성한 광경이 당신으로 하여금 대법을 확고히 수련하는 더욱 좋은 마음, 더욱 순정(純淨)한 마음이 생기게 하는 대신 오히려 당신으로 하여금 환희심이 나오게 했으므로 당연히 당신에게 보여주지 않는데 당신의 수련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본 후 그 어떤 환희심이나 과시심이 생기지 않고 이것이 진실이라고 느껴 다른 수련생으로 하여금 정념(正念)을 확고하게 하는 생각을 품도록 다른 사람에게 말해준다면 이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 말을 해서 안 되는 것이 아니고 집착심을 품고 말할까 봐 걱정이다.

제자: 만약 우리가 수련을 잘했다면 우리가 원만을 이룰 때 어쩌면 아직 젊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가서도 우리는 계속 가족들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합니까?

사부: 당신이 이런 집착을 제거하지 않으면, 절대로 원만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속인의 사상으로 이런 일들을 생각하고 있다. 여러분에게 알려 주는데 내가 당신에게 단지 소업(消業)만 해주고, 당신들을 단지 돌봐만 주는 것이 아니다. 만약 당신이 수련 성취하여 정과(正果)를 이루면 당신의 세계도 풍부해져야 하는데 많고 많은 일을 내가 당신에게 해주어야 한다. 당신이 과거에 다른 사람에게 빚진 생명・살해한 생명과 은원(恩怨)들을 내가 모두 당신에게 해결해 주어야 하며 많은 일을 당신에게 해주어야 한다. 당신이 만약 이런 문제에 집착한다면 그것은 바로 당신이 수련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데 큰 장애가 된다. 이런 인간의 마음을 내려놓고 당신은 오직 수련만 해라. 당신이 원만을 이루기 전에 당신은 이 가정의 한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하는데 이것은 필연이다.

제자: 『성경』을 보면 예수가 교회당에서 사채를 놓는 사람에게 화를 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法輪大法(파룬따파)는 우리에게 화를 내서는 안 된다고 요구하였는데, 만약 예수가 부처라면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사부: 『성경』은 예수가 직접 쓴 것이 아니며 인간이 예수의 행위에 대해 표현한 것도 아주 정확한 것은 아니다. 그런 사채를 놓는 사람에 대한 태도가 좀 부드럽지 못한 이것은 그럴 수 있다. 그가 악을 질타하고 나쁜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 아주 엄격하지만 정말로 화를 낸 것은 아니다.

제자: 상하이(上海) 제자들이 사부님께 문안드립니다! 사부님께서 상하이에 오시기를 기대합니다!

사부: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박수)

제자: 우리가 어떻게 하면 대도무형(大道無形)의 각개 부동(不同)한 층차 중의 체현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습니까? 제가 보도원을 맡고 있을 때 일인데, 일부 수련생, 학회책임자와 보도원이 홍법(洪法) 일에서 모두 같지 않은 정도로 인식을 같이할 수 없어 장시간 토론을 하는데, 시간도 낭비하고 힘도 낭비합니다. 이는 모두 인식차이와 어느 정도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부: 아주 보편적이다. 중국 대륙의 많은 보도원이 이미 성숙하였고 문제에 부딪혔을 때 그들은 우선 자신에게 문제가 있지 않은지를 생각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건전하게 수련하는 중에 있다. 그러나 또한 일부 지역의 보도원은 법 공부한 시간이 짧거나 그다지 정진하지 못하고 일하기에 바쁘므로 문제에 부딪혔을 때 논쟁하기 좋아하고 자신의 내심에서 찾지 않는다.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껴졌을 때 나 자신이 잘못된 것이 아닌지를 당신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렇게 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바로 대법수련생을 가늠하는 표준이다. 자신의 출발점이 결코 잘못되지 않은 것을 발견했으면 나중에 당신은 상서로운 태도로 상대방에게 알려주라. 모순되고 있는 양측이 모두 이렇게 자신을 대할 수 있다면 그 무슨 모순이 있겠는가? 또 무엇을 논쟁하겠는가? 그러나 말은 이렇게 했지만, 수련 중에서 집착심을 제거하기 위한 논쟁은 여전히 있을 것이며 심지어 때로는 강렬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수련 중에 있고 제거하지 못한 마음이 있기에 당신들이 의식하지 못할 때가 있으며 자신한테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잊을 때가 있다. 태도에 집착하고 자신의 관념에 집착하면 모두 논쟁이 발생할 수 있다.

제자: 각 층차에서 체현되는 대도무형(大道無形)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사부: 오늘날 대법이 사회에 내놓은 형식은 대도무형(大道無形)이다. 그 어떤 속인 사회의 형식도 모두 대법을 널리 전하는 데에 어울리지 않으므로 나는 어떤 형식도 취하지 않았다. 당신이 오늘 와서 배우고 싶으면 배우고, 오고 싶지 않으면 가는데, 자유다. 물론 당신이 정말로 배우려고 한다면 우리는 당신을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책임은 속인들이 보지 못하던 것이며 속인 이 공간 중에서 그것은 무형(無形)이다. 사무실이 없으며, 돈을 모으지 않고, 물품을 모으지 않는다. 당신들 매 한 사람은 모두 속인 사회의 일원(一員)으로서 모두 속인 사회의 일과・공부가 있고 각종 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당신들이 속인과 유일하게 다른 점은 바로 당신들이 자신을 수련하고 당신들 자신이 수련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속인은 수련하지 않기에 수련인에 대해 때로는 이해하지 못한다. 마치 수련생들이 중난하이(中南海) 국무원(國務院)에 간 것처럼, 무엇 때문에 이 사람들이 순식간에 왔을까? 또 순식간에 가버렸을까? 그들은 사회 일원(一員)이기 때문에 형식이 없으며 다만 그는 수련하는 사람에 불과하고 민중(民) 속에서 왔고 의사표시를 마치고는 다시 민중 속으로 돌아간 것으로서 조직형식이 없다. 그러나 이럴수록 조직을 꾸미는 데 습관이 된 사람과 조직에 매인 민중은 이해하지 못하고 당신들의 조직은 치밀하다고 한다. 수련인이 한 일들에 대해 오늘날의 중국인은 이해하기가 몹시 어렵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지금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좋은 사람으로 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믿지 않는다.

제자: 백인종이 전 한 시기 문명에서 내려온 것이라면 황인종과 다른 인종(人種)은 언제 왔습니까?

사부: 전 한 문명 시기, 그 당시의 대륙판은 현재의 것과는 달랐다. 그러나 대체로 남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 이 일대에 모두 황인종이 거주하고 있었다. 현재 거기에 있는 인디언 인들, 그들은 황인종에 속한다. 중국의 이 지역에 있는 황인종은, 그 당시의 가장 중심 지역이었던 카자흐스탄에 있었다. 대홍수 이후에 바로 신장(新疆)의 그 큰 사막 일대로 이동했는데, 그 당시는 비옥한 토지였다. 그 후 또 계속하여 동쪽으로 이동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도인, 이집트인, 페르시아인, 황인, 백인, 흑인은 근대 지구상의 6대 인종이고 기타는 혼혈인(混血人)이다.

제자: 저는 사부님께서 하시는 설법은 『전법륜』에 대한 의문점을 풀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장기적으로 사부님의 각 지역 설법을 듣는다면 이것이 『전법륜』에 대한 자신의 깨달음으로 될 수 있습니까?

사부: 내가 여러분에게 진실한 말을 하는데, 인간은 내 설법을 들을 자격이 없다. (박수) 단지 인간에게만 설법하려 한다면 여래불(如來佛) 하나만 세상에 내려오면 된다. 내가 설법할 때 우리 여기에 앉은 어떤 사람들은 볼 수 있겠지만 부동(不同)한 천체의 층층층층의 생명이 모두 듣는다. 나는 인간만을 위해서 설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수련 중에서 틀림없이 당신들에게 수련할 것을 남겨준다. 내가 법을 다 말하고 명백히 말한다면 당신이 수련할 것이 없고, 자신이 수련한 것으로 칠 수 없지 않겠는가를 걱정하는데, 이런 뜻이 아닌가? 이런 것이 아니다. 당신들에게 수련할 것을 남겨준다.

제자: 신쟝(新疆), 우루무치(烏魯木齊) 수련생들이 사부님께 문안드립니다!

사부: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박수)

제자: 원래의 과위(果位)가 어디에 있으면 바로 거기로 수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사부: 고층에서 온 사람은 대체로 이러하다. 그런데 당신은 당신이 누구인지 아는가? 당신이 고층차에서 왔는가? 고층차에서 왔다 하더라도 죄가 있어 떨어진 것이 아닌가? 당신은 당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전혀 모른다. 설사 위에서 내려왔어도 몇천 년을 환생(轉生)하고, 기나긴 세월을 거침으로써 업력이 커져 그들은 선천적인, 본래 갖고 있던 일체 특성을 근본부터 상실했다. 이렇듯 강한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문제를 제기하지 말라.

제자: 사부님께서는 사부님 자신과 사부님의 생활 등을 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사부: 당신은 현재 아직은 속인이고 제출한 것은 속인의 문제이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으며 내가 인간에게 준 것은 바로 이 법리(法理)이다. 당신들은 나를 한 보통 사람으로 여기라. 나는 바로 인간의 모습을 완전히 구비한 사람으로서 여기에서 당신들에게 말하고 있으며 또한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내가 얼마나 큰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서 말하자면, 나 역시 펼쳐 보여주지 않을 것이고 당신들도 보지 못한다. 그러나 당신이 수련하면 나는 당신을 책임질 수 있으며 또한 이 책임을 질 수 있다. 이 점은 실천 중에서 수련생들도 체험했는바, 내가 더 많이 말할 필요가 없다. 미래의 인간들은 나의 존재를 알지 못할 것이다. 만약 오늘날의 수련생들이 모두 원만을 이룰 수 있다면 나의 법은 결코 인간에게 말한 것이 아니라 신에게 말한 것이다. 수련하지 않는 사람은 다음 한 생(生), 또 한 차례의 윤회를 거치면 그는 아무것도 모르게 된다. 장래의 인간은 나를 알 수 없으며 남겨진 것은 여전히 신화(神話)이다. 그러므로 나는 인간에게 무엇을 남겨주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 자신의 일생, 나 자신의 상황에 대해 나는 말하고 싶지 않으며 또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이에 대한 글을 쓰게 하고 싶지 않다. 제자인 그들은 장래에 나를 알 것이며 원만을 이룬 후 그들은 내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를 똑똑히 알 것이다. (박수)

제자: 뉴질랜드 전체 수련생들은 존경하는 사부님께 문안드립니다!

사부: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박수)

제자: 心性(씬씽)제고와 법리에 대한 인식은 아주 큰 차이가 있으며, 법에 대한 인식은 줄곧 앞서 있고 비교적 높은 경지에 있으나 착실히 수련하는 중에서 心性(씬씽)제고는 늘 뒤떨어져 있는데, 때로는 아주 형편없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깨달은 이치에 편차가 나타날까 걱정됩니다.

사부: 사실 당신이 이 점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당신이 수련을 괜찮게 했다는 것이다. 속인은 모두 자신의 잘못을 보지 못하는데, 당신은 당신의 수련 중에서 같지 않은 상태의 차이점을 볼 수 있다. 사실 당신이 상상한 것처럼 그렇지도 않다. 법리 인식에서는 통상적으로 모두 쉽게 명백해지지만, 사람은 사회 현실 속에서 각종 이익과 정(情)에 대해 집착하고 있는바, 법리를 명백히 안 후 단번에 버릴 수 있다면 수련할 필요가 없고 또한 넘어야 할 고비도 필요 없다. 무엇을 집착할 때 법 중에서 구실을 찾는 그것은 반드시 틀린 것이다. 추구함이 없이 법을 배워야 하고 이에서 명백해진 것은 곧 바른 깨달음(正悟)이다.

제자: 베이징(北京), 미국의 수련생들이 사부님께 문안드립니다!

사부: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박수)

제자: 저는 수련 중에 때로는 색욕(色慾) 업력(業力)이 나타나는데 그것을 어떻게 없애 버립니까?

사부: 당신들이 꿈을 꾸는 중에서 봉착하게 되는 것은 당신들에 대한 각종 고험인데 당신들이 평소의 수련 중에서 당신들이 마음을 착실하게 수련해 냈는가, 이 한 고비를 잘 넘었는가를 본다. 그것은 고험이고 당신이 이 한 고비를 넘을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보며 수련한 것이 착실한지 착실하지 않은지를 본다. 왜냐하면, 그때야만이 비로소 진정으로 체현해 내기 때문인데, 그때야만이 당신이 덮어 감추려 하는 마음들이 전부 잠자고 있기 때문이다. 잘하지 못했으면 중시해야 하는바 필경 표현됨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평소에 잘 수련했다면 틀림없이 꿈속에서도 잘할 수 있고 넘어갈 수 있다.

제자: 저는 자신이 문제에 봉착하고 문제를 사고할 때 늘 자신이 어떠어떠하다는 것에 둘러싸여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마치 이런 뿌리가 있는 것 같고 늘 제거해 버리지도 못하는 것 같아서 몹시 고민스럽습니다. 무엇 때문에 정각(正覺)의 상태를 유지할 수 없습니까?

사부: 정말로 괜찮다. 당신이 이 마음을 제거하려는 것을 나는 보았다. 이것이 바로 수련이다. 완전히 자신의 그 사심(私心), 그 뿌리를 제거해 버리는 데는 과정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생의 절반 과정에서 양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이 수련 중에서 반드시 이 사(私)를 위하는 근본적인 그것을 제거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당신이 이런 것을 의식할 수 있고 수련 중에서 심혈을 기울여 그것을 제거하는 이것은 아주 좋은바 이것이 바로 수련이다!

제자: 늘 자신이 정진(精進)하지 못하고 고생을 겪을 수 없고 의지력이 부족함을 느끼는데, 어떤 방법으로 자신이 고생을 겪을 수 있는 능력을 강화할 수 있습니까?

사부: 책을 많이 보라. 점차 당신의 수련 의지를 확고히 하면 다른 것은 바로 극복할 수 있다. 지름길이 없으며 수련은 바로 이렇게 하는 것이다. 당신이 이런 것을 의식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좋으며 당신이 이런 것을 의식할 수 있는 이것은 절대 속인이 해낼 수 없는 것이다. 사실 당신이 자신에 대해 만족해하지 않는 것이 바로 수련하고 있는 것이며 능력은 서서히 증강될 것이다.

제자: 이번에 국외의 언론에서 사부님과 法輪大法(파룬따파)에 대해 잘못된 보도를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비록 대법을 수호하는 일들을 하려고 했지만, 마음속에서 또한 그들의 행위가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느꼈는데 저의 심리 상태가 맞습니까?

사부: 다른 사람이 대법을 공격할 때 당신이 만약 당신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느꼈다면 그럼 당신은 대법 중의 일원(一員)이 아니다. 무엇 때문에 베이징(北京)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중난하이(中南海) 국무원(國務院)에 가서 청원했겠는가? 그들은 톈진(天津)의 사건이 그들을 상대로 한 것과 마찬가지로 느꼈으며 경찰들이 우리 대법제자를 잡아가는 것이 마치 자신을 잡아가는 것과 같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그도 수련생 중의 한 사람이고 여러분은 모두 같은 법을 수련하기 때문에 톈진(天津) 수련생에 대한 박해에 대해 다른 수련생들이 선의로 관련 부서에 반영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겠는가? 언론의 그릇된 보도에 대해서 말한다면 그에게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우리의 진실한 상황을 알려주어야 한다. 대법에 대한 악의적인 박해를 듣고도 제멋대로 내버려둬서는 안 되며, 세인(世人)들이 법을 얻는 데 영향을 주는 것이 큰일이다. 보도는 서로 인용할 수 있기 때문에 당신이 보도하면 다른 신문도 인용 보도할 수 있다. 여러분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이 인용보도보다 설득력이 더욱 강하다. 나 리훙쯔 (李洪志)를 좋다고 말해도 나는 개의치 않으며 나를 나쁘다고 말해도 나는 개의치 않는데 속인은 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그러나 수련생으로서 당신들이 대법을 수호하는 이것은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악(惡)한 일면으로 그들과 다투어서는 안 된다. 당신들은 선한 마음으로 그에게 진실한 상황을 알려주어야 하는바 이것이 바로 법을 수호하는 것이다.

제자: 선쩐(深圳)의 전체 제자들이 사부님께 문안드립니다!

사부: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박수)

제자: (첫째) 여쭙고 싶은 것은 봉국사(奉國寺) 원시육불(原始六佛)의 법신(法身)은 그들의 근본적인 층차를 대표하는지 아니면 수련 중의 층차를 대표하는지요?

사부: 부처이기에 이미 부처가 되었으며, 수련과 층차의 문제가 없다. 당신은 왜 이것을 묻는가? 이것은 대법 중의 일이 아니며 수련 제고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제자: (둘째) 원시육불(原始六佛)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원시생명(原始生命)입니까?

사부: 그들의 명호(名號)는 이미 그런 부처의 특정한 명예와 지위를 뜻한다. 원시(原始)라고 말하는 것은 이 명호(名號)의 시간을 가리키는 것이며 번갈아 바뀌는 중에서 결코 꼭 그 첫 번째 원시생명(原始生命)이라고 할 수 없다. 이 원시(原始)는 부동한 층차, 부동한 경지에서 부동한 인식이 있다. 사람으로 놓고 말한다면 인류의 이 문명역사를 벗어나거나 몇천 년을 초과하면 마치 원시(原始)가 되는 것 같다. 그러나 부처가 본다면 다만 한순간일 뿐이다. 고층 생명으로 놓고 말한다면 그들은 그다지 원시적이지 않다.

제자: (셋째) 석가모니 부처의 불상은 무엇 때문에 서쪽 방향을 향하고 있습니까?

사부: 당신은 불교를 수련하려는 것인가? 나에게 부처의 일을 물어보려고 왔는가? 나는 대법을 말하고 있으며 불교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여기에 앉아 있는 것이 바로 당신의 연분이기에 나는 당신의 문제에 답변해 주겠다. 사찰을 지은 것이 어느 방향이든 다 있는데, 동쪽을 향해서 지은 것, 서쪽을 향해서 지은 것도 있고 남쪽을 향해 지은 것도 있다. 만약 그것의 대전(大殿)이 어느 쪽으로 향하면 그 불상도 틀림없이 그쪽으로 향하게 마련이다. 이것은 그 무엇을 설명할 수도 없으며 모두 인위적이다. 불(佛)은 진실하고 위대한 각자(覺者)이다. 그러나 당신이 말한 것은 다만 그 큰 흙으로 만든 상(像)일 뿐이다. 사람이 부처로 수련하려면 자신을 진정으로 제고하는 데 마음을 써야 하며, 일체 유위(有爲)적인 일 혹은 불교 자체에 대한 집착은 모두 수련이 아니고 장애이다.

제자: 眞(쩐)・善(싼)・忍(런)은 초물질(超物質)입니까? 그들은 원시생명(原始生命)입니까? 아니면 초원시생명(超原始生命)입니까?

사부: 역시 불교이다. 들어온 것은 연분으로서 나는 그래도 당신에게 해답해 주겠다. 眞(쩐)・善(싼)・忍(런)은 모든 일체 일체의 우주의 특성이고 우주의 법은 바로 眞(쩐)・善(싼)・忍(런) 중에서 나온 것이다. 아래로 내려가면 갈수록 법은 더욱더 복잡해지며 요구가 더욱 많고 더욱 커지는데 마치 피라미드와 같다. 이 대법은 우주 중의 중생에게 부동한 층차의 생존환경을 개척해 주었고 부동한 층차의 불・도・신과 인간 그리고 마(魔)와 기타 중생을 창조하였는데 천(天)・지(地)와 일체 물질을 포함한다. 이 우주가 복잡한 정도는 인간의 언어로 명확하게 형용할 수 없으며 그는 또 그의 다른 부동한 상태가 중생들에게 제공한 부동한 층차의 생존요소가 있다. 예를 들면 상생상극(相生相剋), 음양(陰陽) 등등등등 많고 많은 것이 모두 이 우주 대법 중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이다. (박수)

제자: 회의 전에 제가 전화로 관련자에게 연락하여 회의에 참석하는 요구사항을 알아보았는데 전화를 받은 사람이 저에게 제가 法輪功(파룬궁) 제자냐고 물었는데 저는 바로 답변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홀로 자습하여 배운 지 1년밖에 안 됩니다. 리(李) 선생님께 여쭙고 싶은데 제가 선생님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사부: 당신이 진정으로 배우기만 하면 당신은 제자이며 당신이 홀로 배워도 관계가 없다. (박수) 당신의 변화와 내가 평소에 당신에게 준 점화(點化)가 이미 당신에게 이 점을 알려준 것이 아닌가? 당신은 여러 사람과 함께 수련하는 환경이 없어서 아주 많은 일을 깨닫지 못했다 해도 당신이 수련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수련생들과 같이 많이 연공(煉功)하면 제고가 더욱 빨라질 것이다.

제자: 사부님께서 말씀하기를 92년 이후 각 종교의 뭇 신들은 모두 인간 세상의 일을 책임지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제자가 오성이 낮아서 그것의 함의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좀 해석해 주십시오.

사부: 이 문제를 나는 여러 차례의 설법 중에서 말했다. 이번에 여러분에게 설법해 주는 것은 아주 간단하게 와서 사람을 제도하는 것만이 아니고 우주가 정법(正法)하고 있으며 인류와 관련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당신들이 과거에 신앙했던 그런 신들마저도 모두 이번 정법(正法) 중에서 그들의 위치를 새롭게 배치하고 있으며 사람은 더욱 이러하다. 그들이 어찌 인류의 일을 책임지겠는가.

제자: 안후이(安徽)성 허페이(合肥), 선양(瀋陽), 옌볜(延邊)의 대법제자들이 사부님께 문안드립니다!

사부: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박수)

제자 : 어떤 사람이 대법이 좋지 않다고 언론에 발표하고 있어 제가 그와 다투면 저는 대법의 眞(쩐)・善(싼)・忍(런)의 ‘인(忍)’을 준수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까? 다른 사람과 다투는 것은 집착심으로 치지 않는지요?

사부: 선심선의(善心善意)로 그에게 이치를 말해주고 그에게 알려주어도 정말로 듣지 않으면 그만두라. 사실 당신은 아직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데, 당신이 그에게 대법의 법리를 말해줄 때 당신은 그에게 설법을 하고 있는 것이며 그에게 법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그를 도와주고 그를 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듣지 않는 것은 그 자신의 선택이며 그와 무슨 다툴 필요가 있겠는가? 선념(善念)으로 이 일체를 대한다면 효과는 더욱 좋다.

제자: 법을 배우는 중에 때로는 어떤 법리를 깨달았지만 일단 말을 하려면 이 인식이 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는데 이런 느낌이 가면 갈수록 뚜렷해집니다.

사부: 그렇다! 내가 방금 말하지 않았는가? 오직 마음으로 느끼고 깨달을 수 있을 뿐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다. 당신이 오직 속인의 언어를 통해 말을 하기만 하면 곧바로 속인과 동등한 그 이치 중에 떨어진다.

제자: 수련자의 여성 비율이 남성보다 많은지요?

사부: 지금 보아하니 여성이 대법에 대한 인식이 더욱 빠른데 이것은 정말로 좋은 일이다.

제자: 나는 본래 아이를 아주 좋아하고 또한 아이를 갖고 싶었지만, 대법을 접한 후 생각나는 것이 인류가 이렇게도 낮은 층차(低層)에 있고 인류도덕이 이렇게 부패한데, 아이를 낳아서 순결한 심령(心靈)을 오염시킬 필요가 있겠습니까?

사부: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당신이 생명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명이 인간에게 잉태되어 전생(轉生)하는 것이다. 업력(業力)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그 자신이 지니고 있으며 당신 여기에서 태어나지 않으면 다른 곳에서 마찬가지로 태어난다. 당신은 대법수련생인데 또 아이가 오염될까 봐 두려워하는가?

제자: 저는 소수민족 유아교사인데 제 일은 각 유치원을 다니면서 중국의 문화와 전통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저는 사부님의 5장 공법을 어린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데 이렇게 해도 됩니까?

사부: 아주 좋다. 사실 어떤 지역의 유치원은 원장부터 교사에 이르기까지 모두 연마하고 있으며 그 어린이들도 연마하고 있다. 어린이 그는 집착이 없으며 거기에 앉으면, 야! 정말로 좋다고 한다. 정말로 순정(純淨)하고 대단하다. 이 일은 물론 좋은 일이다. 아이들을 대법의 법리로 교육하면, 그들의 일생 동안 받는 수혜는 무궁할 것이다.

제자: 어떤 사람들은 성실하게 기독교, 불교 등을 수련하고 있어 모두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얻을 기회가 없는데 그들에게는 어떤 앞날이 있습니까?

사부: 내가 이 일을 하기 전에 그들의 신들은 모두 그들에게 진정으로 제도 받을 수 있는 그 사람들을 명시해 주었다. 어떤 사람들은 믿고 어떤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무슨 교인지를 보지 않고 그가 얼마나 높은 관직에 있든, 그가 누구인지도 상관하지 않으며 오직 사람의 마음만 본다. 어떤 사람이든 나의 앞에서는 사람인바, 나는 우선 사람의 마음만 본다. 당신이 원하지 않으면 나는 상관하지 않으며 당신이 원하면 나는 당신을 제도하는데 바로 이런 것이다! 형식을 보지 않고 직위를 보지 않으며 무엇을 믿는가를 보지 않는다.

제자: 대법을 수련한 지 이미 몇 년이 되었는데, 최근 몇 개월 여러 사람과 교류할 때 어떤 제자들이 쉴 새 없이 말을 하고 끝도 없이 말하는 것을 보면 저는 갈수록 말을 더 하기 싫어집니다. 사부님께 여쭙고 싶은 것은 이런 상태가 맞습니까?

사부: 만약 그가 쉴 새 없이 말하고 끝도 없이 말할 때 말할수록 당신이 듣기 싫어하고 말할수록 짜증이 난다면 당신은 한 가지 마음이 있다! 그러나 그는 말할수록 끝도 없는데 비록 그가 직접 당신을 향해서 한 말은 아니지만 바로 당신을 겨냥해서 하는 말이다. (박수) 바로 당신의 마음을 폭로하고 있는 것이며 실질적으로 이미 폭로되었지만 다만 우리 자신이 아직 발뺌하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이 쉴 새 없이 말한다고 한다. 내가 당신들에게 어떤 일에 봉착해도 모두 자신을 보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당신은 어떤 마음이 나온 것이 아닌가? 당신들은 수련인이고 초상적인 사람으로서 무엇 때문에 속인의 좋지 못한 것을 보면서 속인과 비교하는가? 비록 그가 수련인이지만 그도 속인 중에서 수련하고 있고 그도 아직 제거하지 못한 마음이 있으며 또한 속인의 표현이 있다. 그가 이런 것이 없다면 그는 바로 부처가 된 것이 아닌가? 신이 된 것이 아닌가? 이런 이치가 아닌가! 그러므로 수련생 중에서 일단 이런저런 문제가 나타나면, 당신은 봐라, 저 사람은 저렇게도 수련을 잘 못했는가 하면서도 자기 자신은 돌아보지 않는다. 나는 설법 중에서 늘 여러분에게 알려주었는데, 두 사람 사이에 모순이 발생했을 때 제3자가 보아도 자신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 그들이 모순이 발생했는데 무엇 때문에 내가 보게 됐는가, 나에게 어떤 마음이 있지 않은가, 나에게도 이런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수련은 당신이 진정으로 자신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며, 자신을 돌이켜보아야 한다. 그 외에 또 말해야 할 것은, 어떤 수련생들은 단체 법 공부할 때 끊임없이 대법 혹은 수련과 관련이 없는 일들을 말하는데 바로 수련생과 수련생의 수련을 교란하고 있는 것이기에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이런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지적해주어야 한다.

제자: 수련인의 이기적인 면을 보았을 때 마음이 너무나 괴롭습니다.

사부: 그럼 당신의 그것 또한 집착심인데 마땅히 그 누구도 수련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게 해야 한다. 당신은 그의 사심(私心)이 표출된 것을 보았는데 표출된 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그에게 인식하게 하여 그것을 제거하도록 알려주라는 것일 수 있다. 당신도 그의 그 사심 때문에 마음이 움직였고 그것 때문에 몹시 괴로워졌는데 당신은 여전히 집착심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제자: 자심생마(自心生魔) 하면 무엇 때문에 단번에 끝까지 떨어져 더는 수련할 수 없게 됩니까?

사부: 내가 말한 것은 일종 형용이다. 만약 그가 자심생마(自心生魔) 하여 만회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면 그는 단번에 끝까지 떨어진다. 만약 그가 의식할 수 있다면 그럼 여전히 구원받을 여지가 있다. 법리상에서 나는 여러분에게 자심생마의 위험성을 알려준 것이다.

제자: 수련인은 교육계통을 개선하여 사회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쉽게 대법을 받아들이게 할 수 없습니까?

사부: 많은 수련생이 대법이 좋다고 생각하며 일체 사람의 마음을 개변할 수 있고, 사람으로 하여금 향상(向上)할 수 있게 하며, 사회로 하여금 진정으로 가장 좋은 상태, 도덕이 고상한 사회로 도달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아직 많은 수련생과 수련하지 않는 속인은 생각하게 되는데, 만약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더욱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이 사회는 얼마나 좋을까! 사실 당신의 마음은 속인 사회 중에 있다. 나는 다만 이렇게 당신에게 알려줄 뿐이다. 당신은 법에 대해서 깊은 인식이 없으며 아직 내가 전한 이 법이 무엇인지 똑똑히 모르고 있는데, 결코 속인 사회를 어떻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수련하는 사람에게 설법하고 있으며 수련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제도 받게 하기 위한 것이다. 속인 사회는 바로 속인 사회에 불과하다. 만약 정말로 어떤 속인 중의 큰 벼슬을 한 사람이 대법의 선(善)한 법리로 세상의 기풍이 날마다 떨어지는 사회도덕을 개변시킨다면 그것은 인간 마음의 선한 표현으로서 나는 반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대법이 전해진 것은 바로 사람에게 좋은 것이 아닌가. 바로 이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속인의 일이며, 그것은 다음 단계, 장래 법정인간(法正人間) 시기의 일이다.

제자: 타이완(臺灣) 전체 수련생들이 사부님께 문안드립니다!

사부: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박수)

제자: 지금 여쭙고 싶은 문제가 몇 개 있는데 인간의 능력의 고저(高低)는 元神(왠선)이 태어나면서 구비하고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매 사람의 德(더)와 업(業)에 의한 배치입니까?

사부: 당신이 말한 능력은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속인의 이른바 총명인데 이것이 수련 중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며 오히려 심한 장애로 된다. 다른 하나는 수련 중에서 체현된 속인을 초월한 능력인데 이런 것에는 선천적인 요소가 있고 후천적인 요소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수련 중에서 층차를 가늠하는 표준이 아니며 사람이 수련을 한 정도와 법에 대한 인식 능력을 보려면 바로 근기(根基)를 봐야 한다. 인간의 선천적인 본성은 기나긴 세월 속에서 생생세세(生生世世)의 전생(轉生) 중에 매몰되었으며 매 사람의 본성이 아직 얼마나 드러날 수 있는가 하는 이것은 바로 인간의 이른바 근기와 오성이 어떠한지에 달렸다.

제자: 세계 각지에서 예전에 남겨진 불도신(佛道神)의 각종 장엄한 형상은 조각・그림으로 표현되었는데 어떤 형식을 통해 인간 세상에 남겨 내려온 것입니까?

사부: 당신이 말하는 것은 그 부처의 형상을 인간이 어떻게 아는가 하는 것이 아닌가. 인류 도덕문명이 아주 좋은 시기는 인류도덕이 좋지 못한 시기의 사람과는 차이가 대단히 크다. 인류사회의 도덕이 높으면 신이 인간에게 펼쳐 보여주는 우주의 진상도 많은데 이것은 사회 전반에 가져온 상태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사회는 좋지 않다. 오늘날의 사회가 신앙하는 것은 과학이지 신이 아니므로 갈수록 보이지 않는다. 이 과학은 또 외계인이 인간에게 창조해 준 것이며 외계인도 이 공간의 생명으로서 그것은 다른 성구(星球)의 생명에 불과하다. 프랑스 루브르 궁전의 그런 벽화에 그려진 것이 아주 많게는 신의 일들인데 아주 진실하게 그렸다. 내가 본 것은 그러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독교의 전성시기에 남겨진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인류의 도덕이 가장 좋을 때, 신을 가장 믿을 때 남겨져 내려온 것이다. 그렇다면 많은 예술가, 그도 경건한 기독교 신자이다. 그러기에 신은 그에게 펼쳐 보여주어 그는 볼 수 있게 되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그의 순간 기억력이 아주 좋기 때문에 그가 그런 신들의 광경을 보았을 때에 그는 그것을 그려냈다. 나는 아주 비슷하게 그려졌고 아주 진실하게 그려졌다고 느끼는데 정말로 그런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런 종류의 벽화를 본 후 그런 신성하고 또 경앙(敬仰)하는 마음이 우러나오는데 그런 위대한 신에 대한 경앙이다. 그 불상은 바로 이렇게 인류에게 남겨진 것이다.

제자: 수련하여 원만을 이룬 물질은 위로 놓고 말하자면 진귀한 것인데 반본귀진(返本歸眞)에 이 수련과정을 더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까?

사부: 당신이 연결 짓는 이것은 모두 그런 것이 아니다. 당신의 수련과정이 바로 반본귀진(返本歸眞)이다. “원만을 이룬 물질은 위로 놓고 말하자면 진귀한 것이다.”는 이 말은 통하지 않는다. 당신이 원만을 이룬 그 경지를 초월한 더욱 높은 신들에게는 꼭 진귀한 것은 아니다. 더욱 높은 신을 놓고 말한다면 그는 흙으로 여긴다. 사실 인류사회 여기는 우주 중에서 좋지 않은 그 어떤 것이든 모두 여기에 떨어진다.

제자: 기독교 신자가 대법을 수련할 수 있습니까?

사부: 내가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신은 근본적으로 그 무슨 교(敎)이고 아니고를 중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다. 예수가 세상에 있을 때는 교회당이 없었고 기독교가 아예 없었다. 석가모니가 세상에 있을 때도 절이 없었으며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다. 석가모니가 세상에 있을 때도 경서가 없었고 예수가 세상에 있을 때도 『성경』이 없었다. 후에 사람들이 그 당시 그들이 한 말들을 회고하여 써낸 것이다.

그러므로 불(佛)・신(神)은 근본적으로 인간이 하는 그 무슨 형식이고 아니고를 중요시하지 않는데 당신의 그 형식을 관계하여 무엇 하겠는가? 종교는 인류에게 나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형식에 집착하는 사람 자체가 신(神)・불(佛)의 성실한 제자가 아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문화대혁명 때 그 절을 모두 부숴버렸다. 그 당시 부처는 왜 상관하지 않았는가? 그것을 상관하여 무엇하겠는가? 그 절에는 어떤 사람이나 다 가고 그 무엇이나 다 구한다. 부처에게 비는 사람 그는 수련하는 것이 아니며 부처에게 절하는 목적은 아들을 낳도록 해주고, 돈을 잘 벌게 해주고 재난을 없애 자신을 보호해 달라는 것이다. 부처가 당신에게 이런 것을 해주는 것인가? 부처는 중생이 제도되도록 근본적인 것을 해결하고 당신을 제도하여 천국으로 올라가게 하는데 당신은 도리어 속인 중의 안일함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므로 부처에 비는 그 마음은 부처에 대한 가장 나쁜 마음이며 부처를 괴롭히는 마음이다.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며 부처를 인정화(人情化)하여 대한다. 그가 부처・보살이 좋고, 대자대비하다고 말하면 부처・보살은 그가 구하고 있는 것을 만족하게 해야 하며, 그가 이 부처는 좋다고 말하면 부처는 반드시 기뻐할 것이라고 한다. 사람은 이렇게 말하기만 하면 부처가 기뻐하고 사람의 마음이 부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는 몇 마디 좋은 말을 하면 부처로 하여금 기뻐하게 할 수 있다고 여기는데 얼마나 가소로운가. 이러한 사람이 그곳에서 불상에 절을 한다면 그 부처가 계속 그곳에 있겠는가? 들으면 귀가 소란스러워 부처는 이미 그곳에 없다. 부처가 그 상(像)에 없다면 난세(亂世)의 사악한 영체(靈體)가 와서 향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사람이 모시는 것은 무엇인가?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 절을 계속 남겨서 무엇하겠는가. 당신 사람이 부수지 않아도 부처가 번개로 쳐서 그것을 부순다. 이런 이치가 아닌가? 그러므로 신은 오직 사람 마음만 본다. 당신의 마음이 그 수련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당신이 그 불교를 수호하고 그 종교를 수호해도 그게 무슨 소용인가. 그것은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다. 당신이 수호하고 있는 것은 종교이며 종교 자체에 대한 집착이다. 누가 그 종교를 수호했다고 해서 그가 성불(成佛)할 수 있고 신이 될 수 있으며 천국에 갈 수 있다면 그것은 웃음거리가 아닌가?

제자: 기독교는 法輪大法(파룬따파)와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 아닙니까? 단지 동서양의 차이만이 아닙니까?

사부: 이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다. 法輪大法(파룬따파)는 우주를 만든 법이며 일체중생을 포함하며 인간(人)과 신, 천지, 만사만물을 포함한다. 모든 신은 우주 대법이 이룬 것이다. 『전법륜』 이 책을 당신이 보라. 이 책 속에 이러한 문제들을 나는 모두 분명하게 말했다. 영문으로 된 『전법륜』이 있으므로 당신들은 책을 볼 수 있다.

제자: 저에게 문제가 있는데 해답해 주십시오. 저는 수련한 지 3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나타난 마난(魔難)을 모두 쉽게 넘었지만, 작년에 고비가 나타났습니다. 몇 달 동안 변에 피가 섞여 나왔습니다. 이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지금 이미 신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이래도 수련해 올라갈 수 있습니까?

사부: 여러분들도 아마 보아냈겠지만, 이 문제 자체에 문제가 있다. 당신이 여전히 그 3년과 같이 편안하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수련인가? 이 3년을 진정으로 정진(精進)했는가? 진정으로 자신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간주했는가? 이 표준에 도달했는가? 때로는 마음속에 자신의 집안일을 법보다 중요하게 보고, 생각하느니 돈을 벌고 육친의 정(親情)에 대한 집착으로 모두 이 법보다 중요하게 여기면서 자신의 업력을 제거하려 하지 않고 고생을 하려고 하지 않는데, 이는 진수제자인가? 이렇게는 10년을 수련해도 아무것도 개변할 수 없다. 내가 진정으로 당신을 높은 데로 이끌 때, 당신의 신체를 청리할 때, 과거의 어혈・폐혈(廢血)・좋지 못한 것을 밖으로 내보낼 때 대번에 또 그것을 신체에 문제가 생겼다고 여긴다. 정념(正念)을 확고히 하지 못하고 이것을 수련 중에 사부가 청리해 주고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수련은 그렇게도 엄숙한 일인데 또 그것을 병으로 여기니 내가 이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이는 고비를 넘고 있는 것인가? 마음에서 아직 안정되지 못했는데 본래는 좋은 일로서 당신의 신체를 청리해 주었다. 누가 당신에게 이런 일을 해주는가? 당신이 수련하고자 하기에 비로소 당신에게 해 준 것이 아닌가? 당신 자신이 이 일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또 그렇게 천천히 수련하며 정진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일들을 법에서 인식하지 못하면 이 신체를 청리하는 과정은 길어지게 되고 계속하여 없어지지 않으며 늘 이 상태로서 몇 달 지속한다. 사상이 안정되지 못할수록, 시간이 길어지면 마치 난(難)이 커진 것 같고 더욱 넘어가지 못한다. 어찌하여 그렇게 긴 시간을 지체하고도 여전히 넘어가지 못하는가. 사상은 동요되기 시작하는데 이 수련이 소용없는 것이 아닌가? 사부님이 나를 책임지지 않고 있지 않은가? 혹은 어찌 된 일인가 한다. 이미 신체에까지 영향이 미쳤다. 이 문제에서는 당신이 자신을 연공인(煉功人)으로 여기지 않았다.

평소에 여러 가지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서 나는 당신들에게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많은 사람이 대법을 수련한 후 그 무슨 난치병이 나았고, 위독한 환자의 병이 전부 나았다. 이는 그가 집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는 정진하면서 그의 병을 아예 생각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사형선고까지 받았는데 내가 무엇을 더 두려워하겠는가, 오늘 대법을 얻었으니 수련하자! 얻을 수 있는 데까지 끊임없이 닦자! 연마하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병은 전부 나았다. 이는 그가 병에 대해 어떠한 집착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치병 환자를 포함하여 어떤 이는 중병에 걸려 죽어버렸는데 무엇 때문인가? 그들은 전적으로 병을 치료하기 위해 왔고 연공 중에 자신의 집착을 내려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생각한다, 그 사람이 法輪功(파룬궁)을 연마하여 불치병을 고쳤으니 나도 잘 연마할 수 있다. 내가 와서 연마하면 선생님이 반드시 나를 책임질 것이다! 그의 머리에서는 그가 책을 보기만 하고 연공을 하기만 하면 선생님은 반드시 그의 병을 없애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보라. 마음속에는 바로 그런 조그마한 차이라고 하지만 그는 여전히 선생님은 반드시 그의 병을 없애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표면상에서는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수련하고 책을 보고 있지만, 그는 그 병 때문에 책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의 본질을 본다! 수련은 엄숙한 것인데 당신은 부처를 속이고 있지 않은가? 당신은 사부를 속이고 있지 않은가? 자신도 속이고 있다. 당신의 본질이 바뀌지 않는데 당신이 진수(眞修)한다고 할 수 있는가? 무엇 때문에 수련생들은 꿈속에서 고험이 있는가? 당신 자신을 덮어 감추려는 모든 마음이 잠들었을 때, 당신이 무슨 상태인지 다시 본다. 진정으로 수련인의 표준에 도달해야 하는데 이 이치가 아닌가? 대법까지 배웠는데 아직도 정진하지 않는가. 절대 기회를 놓치지 말라. 아주 많은 사람이 법을 얻지 못하고 있다.

제자: 무엇 때문에 제가 단체 연공에 참석하기만 하면 저의 아내는 그렇게도 괴로워하는지요?

사부: 당신의 업력이 조성한 것이다. 사람이 이전에 생생세세(生生世世)에 빚진 아주 많은 빚을 당신이 수련한다고 갚지 않고 자유자재로 가서 신이 된다면 이것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이것이 무슨 신인가? 업을 짓고도 없던 일로 한다면 될 일인가? 신이 한 사람의 생명을 볼 때, 그 사람의 일생(一生)만을 보지 않는다. 한 생 한 생 환생하는 것은 마치 하루하루 지나는 것과 같다.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 당신이 어제 한 일을 승인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는 안 된다. 그렇지 않은가? 신은 전반적으로 당신의 생명을 보며 당신이 어느 단계에서 무엇을 하였는지를 모두 볼 수 있다.

제자: 어떻게 하면 마음의 용량을 키울 수 있는지요?

사부: 당신이 수련 중에서 자연히 키울 수 있는데 이는 의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집착을 많이 내려놓을수록 흉금은 더욱 넓어지며 일에 대한 도량도 더욱 커진다.

제자: 꿈에 사부님께서 저에게 유리컵 네 개를 부쳐온 것을 보았는데 한 개만 완벽하였습니다. 다음날 꿈에서 자신에게 딸이 네 명이 있었는데 오직 한 명만이 살아남았습니다. 수련생들이 깨달은 것은 사부님께서 주신 것의 4분의 1만 얻은 것이 아닌가 하는데 맞습니까?

사부: 당신에게 깨달으라는 것이다. 나는 말할 수 없고 내가 말하면 나 자신이 깨달은 것이 아닌가?

제자: 부처의 경지와 층차에 도달한 후에도 여전히 主元神(주왠선)과 副元神(푸왠선)이 있습니까?

사부: 그때에는 없다. 내가 『전법륜』에서 말하지 않았는가? 원만을 이룬 후 副元神(푸왠선)은 다만 호법(護法) 혹은 다른 형식으로 존재한다.

제자: 중국은 수련하기에 좋은 환경입니다. 호주에서 한동안 생활해도 수련 효과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까?

사부: 그럴 리 없다. 당신이 수련하기만 하면 어디서든지 모두 같다.

제자: 저는 가부좌를 한 시간 할 때 평소 대부분은 시간이 길게 느껴지며 고통을 참고 끝냅니다. 그러나 소업(消業)할 때 가부좌하면 시간이 특별히 빠르고 단번에 끝나며 느낌도 다른 것을 발견하였는데 이 상태가 맞습니까?

사부: 이것은 모두 당신이 연공할 때 나타나는 상태이며 이는 모두 아주 자연스러운 상태이다.

제자: 소업할 때 가부좌하면 양쪽에서 모두 소업 됩니까?

사부: 무슨 양쪽인가? 수련해 낸 일면은 아프지 않다. 신체의 두 다리를 가리킨다면 물론 모두 아프다. 앉아있는 시간이 길면 다리가 아플 뿐만 아니라 허리가 아프고 저리며 마음이 소란스럽고 메스꺼운데 모두 나타날 수 있다. 신체적으로는 고통을 받고 마음으로는 시달림을 받는다! 다리가 아픔은 단지 신체상에서 감수하는 것이며 가부좌하는 동시에 또 마음이 소란스럽다! 그리하여 내려놓으려 한다. 우리 아주 많은 사람이 모두 이런 느낌이 있다. 고생스러우면 소업이 된다.

제자: 직접 사부님을 만나 뵙게 되어 아주 영광입니다. 지금 문제 하나가 있는데 사부님께서는 불이법문(不二法門)을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제가 평소에 불경이나 서적들을 본다면, 나와 같이 일부 낮은 층차의 수련자에겐 마땅히 이로울 것이며 천천히 표준에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불교 역시 불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맞습니까?

사부: 당신의 생각은 틀렸다. 대법과 불교는 같지 않다. 당신은 『전법륜』을 많이 보라. 내가 당신에게 하려는 말이 정말로 아주 많으며 당신이 알려고 하는 것도 아주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 시간이 모자란다. 나는 여기서 나의 수련 제자들에게 그들이 부동한 층차에서 수련할 때 부딪힌 문제에 대해 말해 주고 있다. 당신이 수련하고자 하면 책을 한번 보라. 『전법륜』을 보고 나서 당신은 다시 결정하라. 당신이 수련할 것인지 아니면 당신의 불경을 볼 것인지, 당신 자신이 결정하라. 대법은 모든 종교와 전혀 같지 않다.

제자: 사부님을 뵈니 아주 격동되어 말을 할 수 없습니다. 말하고 싶지만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이럴 때는 主意識(주이스)가 똑똑지 않아서입니까? 아니면 사람의 정(情)이 너무 짙어서입니까?

사부: 모두 아니다. 아주 많은 수련생이 나를 만났는데, 당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나를 만나면 할 말이 없어진다. 그것은 이때면 당신들의 수련이 잘 된 그 부분이 정신을 차렸기 때문이다. 그 경지 중의 법리, 잘 수련해낸 그 면은 모든 것을 알기 때문에 나를 만나면 물어볼 것이 없게 된다. 사부가 여러분에게 해준 그렇게 많은 일을 당신들의 명백한 그 일면은 모두 알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단지 당신들에게 법리만을 말하고 있지만, 당신들은 다른 방면에서 진정하게 제고되며 당신들의 소업을 포함하여 당신들에게 아주 많은 일을 하였는데 당신들에게 보이는 그 부분이 있다. 그리하여 나를 보면 울고 싶어진다. 당신들의 잘 닦아지지 않은 이 일면은 또 무엇 때문에 우는지 모르는데 바로 이런 상태이다. 당신들은 사부가 당신에게 한 이 일들을 형용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이렇듯 구할 길이 없는 난세(亂世)에서 사람 마음과 도덕이 급격히 내려가는 상태에서 당신들을 도와 소업하고 당신들에게 그렇게 많은 것을 주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해 줄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당신들 그쪽에서는 이것을 보았기에 바로 이런 상태가 나타난다. (박수)

제자: 제가 여쭙고 싶은 것은 어떻게 하면 자신이 법을 얻었음을 알 수 있습니까? 과거에 당뇨병이 있고 콜레스테롤이 높았지만, 法輪功(파룬궁)을 수련한 후 모두 좋아졌는데 이미 법을 얻었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까?

사부: 이것이 바로 당신을 책임진 것이 아닌가? 수련은 항상 먼저 신체를 조정하고서 정식적인 수련단계로 진입하게 된다. 당신은 변화 중에 있는데 내가 책임지지 않으면 이런 변화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법 중에서 이미 변화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당신은 책을 많이 보고 법을 많이 배우며 정진하라.

제자: 수련할 때 연공구결(煉功口訣)을 외우면서 연공해도 괜찮습니까?

사부: 구결을 읽는 것은 연공 전에 읽고 연공 중에는 읽지 말라. 가장 좋기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제자: 지금 방금 들어온 수련생이 이미 몇 년을 수련한 제자와 같이 원만을 이룰 수 있습니까? 일부 노인들은 문화수준이 제한되어 있고 또 자신의 일부 요소 때문에 법에 대한 이해가 더욱 부족한데, 그들의 수련원만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사부: 당신은 노인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사람마다 모두 그 자신의 정진하는 정도가 어떠한가를 보아야 하는바 이렇게 나이를 봐서는 안 된다. 내가 당신에게 법을 얻게 했다면 나는 당신 모두에게 충분한 시간을 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정진하지 못하고 자신을 연공인으로 간주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모든 것이 헛수고로 된다. 내가 당신에게 준 충분한 시간은 당신에게 정진하라고 충분한 시간을 준 것이지 연공을 하다 말다 하는 시간을 준 것이 아니다.

제자: 아이를 낳은 지 3일이 되는 날, 검은색 옷에 머리에 모자를 쓰고 흰 수염을 한 외국 노인이 아이에게 이불을 덮어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온 가족은 모두 대법을 수련하므로 이 외국 노인이 아니고 마땅히 사부님의 법신(法身)이어야 하는데 제자는 알 수가 없습니다. 사부님께서 해석해주시길 바라는데 가능한지요?

사부: 나는 부동한 층차에 부동한 형상이 있고 또한 부동한 층차에 부동한 천국이 있다. 그리고 아이가 어디에서 법을 얻으러 왔으며 어떠한 신이 따라다니며 돌보고 있는지 하는 이 일체를 나는 당신에게 모두 말할 수 없다. 오직 가서 수련만 해라. 이것을 보았으면 더욱 정진해야 한다.

제자: 우리는 대법 속에서 혜택을 받은 그 백인 수련생들이 더욱 자발적으로 나와 자기의 민족과 동포들에게 대법을 소개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사부: 매 대법제자, 그가 백인이든지 또는 중국인이든지 아니면 다른 어느 민족의 사람이든지 그들은 수련 중에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함을 모두 알고 있다.

제자: 저는 호주에 와서 4개월 동안 수소문 끝에 겨우 연공장을 찾았습니다. 수련생들은 전부 익숙한 얼굴인데 예전에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심득교류회 중에서 만난 모든 대법수련생도 마치 예전에 만난 적이 있는 것같이 생소하지 않습니다. 무엇 때문인지 알 수가 없는데요?

사부: 그것은 당연하다. 우리 대법제자들이 닦는 것은 모두 동일한 법이고 모두 대법 속에서 수련하며 수련해낸 일면은 모두 아주 익숙하다. 게다가 당신들 서로 간에 아마도 어느 생(生), 어느 세(世)에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제자: 저는 머릿속이 늘 텅 빈 상태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늘 묻는데 당신은 法輪功(파룬궁)이 좋다고 하지만 무엇 때문에 기억마저 하지 못하느냐고 합니다.

사부: 수련해 낸 일면, 수련하여 명백해진 일면이 격리되었기 때문이다. 명백하지 못한 일면은 결국 수련해 내지 못한 일면이다. 당신을 교란하는 것이 더는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하라.

제자: 어릴 적부터 열등감이 있었는데 열등감도 없애야 할 집착심입니까?

사부: 그렇다. 그것을 없애야 한다. 당신은 오늘날 아주 행복한 우주생명으로서 대법제자이다. 천상(天上)의 신마저 당신을 부러워하는데 당신은 또 무엇이 열등한가.

우리 이틀간의 회의가 곧 결속된다. 이 이틀간의 법회에서 나는 여러분이 모두 어느 정도 제고가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번 법회는 아주 원만하게 개최되었는데 아주 좋았으며 예상했던 효과에 도달했다. 이번 법회를 통해 매 수련생들로 하여금 모두 부족한 점을 찾게 하고 이후의 수련 중에 끊임없이 정진하고 여러분의 수련에 신심(信心)을 북돋워 줌으로써 이 법회로 하여금 실질적인 효과가 있게 하였다. 이것이 바로 법회를 연 목적이다. 나 역시 여러분이 법회를 동력으로 삼아 금후의 수련 중에서 자신에 대해 책임지기 바란다. 이 자리에는 신수련생이 비교적 많고 또 일부는 대법에 대해 깊이 인식하지 못한 사람도 있는데, 일단 당신이 이 문에 들어왔고 이 일체를 보았으니 나는 당신이 책을 찾아 그를 좀 알아보기 바란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배우고 있으며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수련하고 있는지? 우리 이 장소에서 당신도 상서로운 분위기를 느꼈을 것인데 지금 이는 당신이 다른 어떠한 상황에서도,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결코 찾을 수 없다.

내가 이 일을 함에 사람에 대해 책임지고 사회에 대해 책임지며 더욱이 사회에 번거로움을 조성하지 않도록 고려했다. 우리 수련생은 어떤 곳에서든지 모두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어떠한 번거로움과 어려움에 부딪혀도 모두 착한 마음으로 선의(善意)적으로 다른 사람과 말하며 절대 악의적인 일면이 작용을 일으키게 하지 말아야 한다.

이 법회를 이만 끝내려 한다. 나는 여러분이 앞으로 더욱 정진하기를 바란다. 이 법회 이후에 법을 배우는 수련생들이 더욱 많아질 것인데, 좋은 것을 이어받아 미래를 창조함에 나는 여러분이 모두 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모두 끊임없이 정진하여 하루빨리 원만을 이루기 바란다!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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